〈 6화 〉6. 스킬을 배웠습니다.
"그런 거 없어."
난 작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짜고짜 나 사실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믿는다는 것도 우스웠고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걸 친구들에게 먼저 말한다는 것도 잘못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없어?"
"응, 없어. 그냥 조금 피곤해서."
내 말에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후는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긴 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둘은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채고 고맙게도 자리를 피해줬고 난 그런 둘의 배려 덕분에 조금 더 스킬 쿠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후와 수정이가 믿을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내 생각엔 그게 TS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스킬 쿠폰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다.
"흠... 좋아, 일단 S급은 이걸 고르자."
오랜 시간 고민을 하고 내가 고른 S급 스킬은 게임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제일 좋은 대학교에 제일 센 과에 오긴 했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사실 프로게이머였다.
어느 정도 실력도 있어 성공할 자신도 있었지만 확실한 길을 두고 불확실하고 힘든 길을 걷기엔 내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컸다.
우리 집이 정후의 반만큼만 살았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을 텐데 그렇지 않다 보니까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게 됐다.
[게임[S급]을 구매하셨습니다.]
게임[S급]
S급 게임 능력을 얻습니다.
-모든 종류의 게임에 S급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선택한 B급 스킬.
[음악[A급]을 구매하셨습니다.]
A급 음악 능력을 얻습니다.
-음악 능력의 적용은 춤, 가창력, 작사, 작곡, 악기로
한정합니다.
마지막으로 B급은 증명을 위해 가지고 있기로 했다. 사실 배우고 싶은 스킬이 많아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 정말... 게임을 잘하게 된 건가?"
난 간단하게 평소에 머리를 식힐 겸 하던 모바일 게임을 실행시켰다. 카 라이더라는 자동차 경주 게임이었는데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하는 거라서 실력이 좋지 않았다.
만약에 이 게임[S급]이 적용된다면 달라진 내 실력을 볼 수 있을 거다.
"떨린다."
막상 스킬 쿠폰의 능력을 확인한다고 하니 몹시 떨렸다. 사실상 이게 확인이 된다면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정말 진실이 된다.
내가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증거였고 남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후."
난 숨을 내뱉으며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방에 입장했다. 일부러 평소에 내가 잘 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맵을 골랐다.
본래의 내 실력이라면 리타이어나 안 되면 다행인 그런 맵을 선택했으니 확실히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좋아."
난 게임에 집중했다. 시작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1등으로 치고 나간다. 스타트 타이밍과 초반의 자리싸움을 능숙하게 해내고 처음 해봤던 맵이지만 이미 난 이 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알고 있다. 웃기게도 난 이 맵이 처음이었지만 알고 있었다. 어디가 가장 빠른 레코드 라인인지 상대방이 어떻게 어느 라인을 공략할지 그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하는지 그냥 알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난 미니맵을 통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유저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압도적으로 선두로 치고 나가는 내 카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차이를 보이며 완주했고 리타이어를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게임이 끝나고 내가 이 맵에서 최고 기록을 냈다는 축하 메시지를 보며 난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채팅은 이미 난리였다. 이 맵의 1등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이 게임의 프로게이머였고 그 프로게이머보다 무려 3초나 빠르게 들어온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와... 저 사람 뭐냐? 저 차로 저 기록이 가능해?]
[헐... 겁나 잘한다.]
[프로게이머세요? 아니면 BJ신가?]
[후들후들... 따라가질 못 하겠네.]
[넘사다, 넘사. 진짜가 나타났다.]
난 핸드폰을 내려놓고 입을 막았다.
"이거... 진짜다."
TS상점을 통해서 얻은 스킬 쿠폰은 정말 제 기능을 발휘했다. 내가 이런 기록을 낼 수 있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됐다. 차도 그렇게 좋은 차도 아니었고 맵도 생전 처음 해보는 맵이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의 실력이 절대로 이 정도가 아니었다.
"진짜였어."
진짜였다. 이 모든 게. 내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다.
난 남자가 맞았고, 윤세나가 아니라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윤세진이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나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다는 정신 나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이로써 모든 게 분명해졌다.
"다 진짜야."
정말로 다 진짜였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그렇게 생각하자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이 TS상점이란 어플을 만든 사람은 누구고 내게 뭘 원해서 이런 일을 겪게 하는 걸까?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그저 적당한 유희거리가 된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가 되는 대가로 얻는 능력치고는 너무나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 게임 능력 한 가지만 가지고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을 거다.
"말이 안 나오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문이 막힌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커피를 조금 마시곤 정신을 차렸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은... 게임을 해볼까? 내가 평소에 즐겨 하던 게임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언의 LOM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그 게임의 프로게이머 선수로 활동하는 게 꿈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으려나? 21살이면...
이제 곧 해가 바뀌니 22살인 내가 LOM 선수를 하기엔 딱 전성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이였다.
게다가 나는 어차피 은퇴할 때까지 전성기 능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다방면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해볼까?"
일단은 그럼 기말고사를 잘 보는 일이 우선이겠네.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다고 해볼까? 부모님이 허락하실까? 누나들이... 아니 언니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음, 일단은 내가 그 게임에 1등을 찍고 얘기하면 크게 반대하지 않으실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기말고사를 잘 보는 게 우선이겠다.
난 고개를 힘 있게 끄덕이며 커피를 들고 내 자리로 와서 공부해 열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없이 공부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공부에만 열중해서 그런지 허기가 밀려왔다.
"아, 배고파."
난 책상을 정리하고 에코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도서관 안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국대는 확실히 한국대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괴물들은 모조리 모이는 곳이었으니 학구열이라든지 목표라든지 명확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훈이랑 수정이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따로 도서관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항상 도서관에 모여 공부를 했다.
"전화라도 해볼까?"
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여자로 변하긴 했지만 편한 건 역시나 정훈이였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은 정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정훈아. 나 세나."
[어. 잠깐만.]
"아직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야? 그럼 나오지 마. 나 먼저 집에 들어간다고 얘기하려고 전화했어."
[지금 들어간다고?]
"어어. 열심히 해라. 수정이한테도 전해주고."
난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곤 저녁을 먹기 위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순대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남자였을 때도 자주 들렀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은 나를 어떻게 알고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시나 나를 여자인 단골손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였던 나는 어김없이 여자의 나로 바뀌어 기억되고 있었다.
매번 같은 주문을 했기 때문에 이젠 묻지도 않고 그냥 알아서 가져다주시는 사이까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대 국밥이 나왔고 난 들깨 가루와 새우젓을 넣고 알맞게 간을 맞추고 밥 한 공기를 그대로 털어 넣었다.
맛있는 깍두기와 함께 먹는 순대 국밥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게눈 감추듯이 순대 국밥을 깔끔하게 비운 뒤 난 계산을 하고 아메리카노까지 한 잔 사서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으, 춥네."
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상당히 추워 몸이 나도 모르게 움츠려든다. 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듯한 아메리카노로 버티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내가 얻은 스킬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는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 그리고 노래 너튜버가 되는 것.
내 생각엔 둘 다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컸고 그렇게 되면 적어도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줄어들 것 같았다.
"그래, 열심히 해서 이 가난의 굴레를 벗아나자."
우리 집을 내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못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 잘 사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봤을 땐 우리 집도 잘 사는 편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정훈이와 수정이처럼 정말 잘 사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이 잘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기말고사를 잘 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난 다음에 뭘 해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일단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었으니 난 그 방학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LOM 1등을 찍고 방송 장비를 마련해서 너튜브를 시작하자. 일단 그러려면 마이크도 사야 하고, 컴퓨터는 지금 있는 거로 되려나? 방송을 하려면 컴퓨터 성능도 좋아야 하니까 새로 하나 사야겠지?
"돈이 되려나..."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과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용돈으로 생활하고 있는 21살의 대학생이 가진 돈이 많을 리 없었다.
아껴서 쓴다고 했지만 통장에는 그렇게 큰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67만 원이라..."
이번 달을 지내기엔 부족할 것 없는 돈이긴 했지만 이거로 밥을 사 먹고 커피를 사 먹고 하면 방송 장비를 살 돈은 안 됐다.
"빌려 볼까?"
누구한테? 정후나 수정이한테 빌리면 아마 빌려줄 것 같기는 한데. 누나들한테 빌리긴 좀 무섭고... 집에 있는 컴퓨터로 일단은 게임이 돌아가는지 보자.
남자였을 때도 게임을 즐겨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세언 누나가 게임을 하는 거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게임을 한다고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크게 혼났다.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날인데 비우지 않았다던가. 설거지를 하는 날인데 하지 않았다던가 하는...
"음, 일단은 기말고사. 그리고 다음은 LOM 1등. 이렇게 하고 나서 그다음 일을 생각하자. 너무 서둘러도 안 좋아."
일단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기간에는 기말고사에만 집중하고 뭘 해도 그다음에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계획을 짜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 접어들었는데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상당히 어두웠다.
"아, 여기구나."
누나가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 가로등이 꺼져 있어서 무섭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여기였던 모양이다.
난 별다른 생각 없이 어두운 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골목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애는 함께 담배를 피우던 놈 하나를 툭툭 치면서 불렀다.
"야, 야! 저기 봐."
지금 날 가리키는 거야? 다섯 명 정도 되는 애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난 무시하곤 계속 내 갈 길을 걸어갔다.
"와, 대박!"
"존예다. 존예. 뭐야? 연예인인가?"
"저 누나 졸라 예쁘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별안간 담배를 급하게 끄더니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