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5. 정신을 잃었더니 여자가 됐습니다 (5/95)



〈 5화 〉5. 정신을 잃었더니 여자가 됐습니다

"저기..."
"죄송합니다."

난 능숙하게 손을 들어 보이며 명백한 거부 의사를 전했다.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학교에 가는 길이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그 사이에 큰 길에서 몇 번이고 남자들의 대시를 받았다.

숨도 쉬지 않고 겨울 같은 표정으로 거절하자 내게 조심스레 핸드폰을 내밀었던 그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몸을 잔뜩 말며 돌아간다.

아무리 여자가 됐어도 남자의 관심을 받는 게 좋을 리 만무하다. 몸은 여자가 됐지만  정신은 여전히 남자인 그대로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 난 레즈비언이 되는 건가?'


그렇네, 레즈비언이라는  여성 동성애자를 말하는 것이고 당연히 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좋다. 그건 내가 여자여서가 아니라 남자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여자가 된 사람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 같은 경우엔 예외가 아닐까? 난 어디까지나 남자였으니까 당연히 여자가 좋은 게 순리에 맞는 일이지 않은가?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난 머리를 휙휙 저으며 학교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도무지  걸음 걷지를 못하고 계속 붙잡히는 통에 이미 도착했어야 할 거리를 아직도 걷고 있다.

-9도에 달하는 한파라 거리가 제법 한산한 상태인데도 그랬다.


'이거 개강하면 엄청 피곤할  같은데.'


사실 나였어도 이런 여자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 다니고 있다면 절대로 가만히 놔둘 것 같지 않았다.


음, 아니... 난 소심해서 가만히 뒀으려나? 하여간에 개강하지도 않은 미래까지 걱정해 가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난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대학교인 한국대학교 안에는 학생들이 언제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그 어느 대학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아, 자리 있다."


덕분에 너무 일찍 서둘러 나오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험 기간이라고 하지만 모든 학생이 다 학교에 나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백색소음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확실히 공부는 분위기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새삼 느꼈다.

'일단은... 확인부터 하자.'


일단 공부보다 우선적으로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난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빈자리에 적당히 앉아서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여자가 되고 퀘스트를 깨서 받은 스킬 쿠폰이 총 세 개였다. S급, A급, B급 각각  개씩. 그러니까  세 가지의 스킬을 얻을  있다는 얘기였다.

이걸 사용하면 정말로 게임처럼 능력을 얻는 건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만약에 이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가능하다면  인생은 남자였을 때와는 정말 180도 달라진 삶을 살 수도 있었다.

"정말 많네."

다시 한번 봤지만 정말 무수히 많은 스킬들이 존재했다. 특히나 S급 쿠폰의 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범위가 넓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 이건 뭐야?"


한국대학교 법대에 다니고 있는 내게 제일 구미가 당기는 건 역시나 학과에 관련된 지식이었다.

법(S)

S급 법 관련 능력을 얻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법률적 지식을 얻습니다.

하하... 존재하는 모든 법률적 지식이라니... 그럼 뭐 우루남무 법전부터 헌법까지를 총칭하는 건가? 와...
그럼 공부할 필요가 없겠는데?


난 잔뜩 구미가 당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역시나 등급이 내려갈수록 그 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확인할  있었다.

'D급만 배워도 졸업까지 문제없겠는데?'


세계의 법체계는 독일과 프랑스의 대륙법체계와 영국, 미국의 영미법체계로 갈린다.

일본은 대륙법체계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우리나라가 다시 받아들였는데 고로 D급만 배우면 대륙법과 영미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아, 이 D급의 수준을 모르겠네."

D급이 어중간한 수준이면 차라리 C급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C급을 배우면 대륙법과 영미법에 대한 판례에 대한 지식까지도 추가되는 것 같았는데 S급처럼 모든 법률적 지식을 알고 있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내가  교수가 될 것도 아니고. 물론, 지식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하여간 이건 D급이나 조금 더해서 C급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판례가 중요하긴 하니까. 그럼 C급을 배워?

그럼 영미법에 대륙법에 대한 지식이랑 판례에 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이거를 C급으로 배우자."


D급과 F급에 대한 스킬 쿠폰도 난 고심해서 미리 뽑아 놓고는 손에  쿠폰에 대한 사용처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공부하러  게 아니라 이걸 고르기 위해 도서관에 온  같았다.

어차피 도서관에 자리가 많이 있었으니 자신이 자리 하나 차지한다고 해서  민폐는 아닐 것 같아 느긋하게 핸드폰을 쳐다봤다.


"음... 일단 가장 중요한 S급."

모르긴 몰라도  S급 하나로도 내 인생이 정말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가  배우냐에 따라서 사실 정말 지금의 생활이 180도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뭘 골라야 하나..."

선택 장애가 왔다.  가지 마음에 드는 게 있었는데 아무리 추리고 추려도  손가락이 넘어간다.


"아, 좋은 게 너무 많네..."

가지고 싶은 스킬들이 너무 즐비해서 문제였다. 이거 오늘 안에 고를 수 있을지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쿠폰은 한정적인데 가지고 싶은 능력은 많으니 골이 아프다.


"윤세나?"


이렇게 스킬 하나 고르는 걸 망설이는 이유가 필요한 포인트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깨면 지금은 스킬 쿠폰을 지급하지만 분명히 나중에는 포인트를 지급할 것이다.


F등급인 100P를 모으는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퀘스트 하나를 깨서 주는 포인트가 1P면 100번의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나야."

그렇진 않겠지? 여자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야박하게 포인트를 지급할  같지는 않긴 했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스킬을 고르는 게 신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S, A 스킬 쿠폰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인가?

"윤세나!"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기에 난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글서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이정후?"
"무슨 생각을 그렇기 깊게 해?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정후의 물음에 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니. 그런 거 없어."

너무 어색하다. 정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돼서 친해진 친구였는데 성격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분야도 비슷해서 금세 친해졌다.

고등학교 때 한국대 법대라는 목표도 같았고. 나와는 다르게 근사한 정후를  조금 부럽게 여기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로열 패밀리가의 장남이 정후였으니까.


"공부하러 온 거야?"

정후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짧은 단답 때문일까? 대화가 끊겼다. 정후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컵에 담긴 커피를 보더니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의자를 끌어당겨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난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 깨고자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커피를 들어 입가에 가져왔다.


꽤 오랫동안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그런지 커피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겨울이라 문을 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카페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세나야!"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미성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난 손을 들곤 열심히 흔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그녀에게서 나왔지만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남자였을  나를 불렀던 때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수정이는 대학생 느낌이 물씬 나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브라운 색감의 롱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약간의  체크 무늬가 있고 종아리 반보다 아래에 오는 기장이었다.


상의는 화사한 하얀색의 리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그 위로는 오트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상당히 잘 어울렸다.

"역시 이 공부 벌레들 학교 올 줄 알았다니까."


수정이는 나와 정후를 번갈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 앉는다.


"야, 커피   와."


수정이는 정후에게 카운터를 향해 턱짓을 하며 말했고 정후는 그런 수정이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짓는다.


"커피를 저한테 맡겨 놓으셨어요?"
"쓰읍. 이게 누나가 사 오라고 하면 바로 사  것이지 어디서 토를 달아, 토를!"


수정이가 입술을 깨물며 엄한 표정으로 정후를 나무랐는데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왜 이렇게 귀여워.'


난 수정이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수정이는 팔짱을 끼곤 도도한 표정으로 정후를 보며 주문했다.

"아메리카도 따듯한  하나. 어? 세나야. 뭐라고? 치즈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알았어, 내가 정후한테 얘기할 게. 야! 치즈 케이크도 하나만 사 와."


정후는 이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날 쳐다보더니 말한다.


"뭐 먹을래?"
"돈도 많은 놈이 뭐 그런  물어봐. 얼른 사 와."

수정이의 재촉에 한숨을 내쉬며 정후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고 난 그런 정후를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실 저 역할은 정후가 아니라 나였는데 내가 여자가 된 이후에 내 포지션을 정후가 맡은 것 같았다.

'되게 서슴없이 대하네.'

뭔가 이상했다. 정후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됐고 수정이는 그보다  오래전에 친구가 됐다.

그래서 수정이는 나를 굉장히 서슴없이 대했고, 나로 인해 알게 된 정후에겐 조금 거리를 뒀었다. 아무래도 조금 정후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정후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아메리카노와 치즈 케이크를 사서 우리에게 건네줬다. 난 그런 정후를 보며 미소를 짓곤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고맙긴."


정후는 그렇게 말하며 수정이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수정이는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면서 치즈 케이크를 포크로 푹 찍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한테   없냐?"

정후의 말에 수정이는 오물오물 예쁘게 케이크를 먹으면서 말했다.

"있어.  꼬라 봐?"

수정이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정후의 모습에 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런 대접을 받을 친구가 아닌데. 하하...


아마 집에서는 도련님 대접받으면서 호화롭게 살고 있을 텐데. 수정이에게 박대를 당하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내가 여자가 되고 관계도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 보니까 세연 누나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남자였을 때와는 달리 조금 부드러웠던  같다.

'확실히 그렇네.'

이건 좀 이득인 것 같은데? 그럼 다른 누나들도 나를 좀 부드럽게 대하려나? 아주  잡아먹어서 안달들인데 내가 여자가 됐으니 좀 예뻐해 주려나?

"됐다. 말을 말 자."

정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맛을 다신다.


"넌 안 먹어? 왜 아무것도 안 사 왔어?"
"아, 별로 안 당기네."

정후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고 수정이는  옆에서 치즈 케이크가 맛있으니 얼른 먹어보라며 재촉해댔다.


포크를  입가로 들이밀어 난 별수 없이 받아먹었다.

수정이는 어떠냐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대답을 요구했고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내 대답에 수정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에 포크를 쥐여주더니 말한다.

"얼른 먹어. 아메리카노랑 찰떡이다."


수정이가 나를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게 상당히 익숙하지가 않다.


"왜?"


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수정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에 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말에 수정이도 정후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얘 좀 이상해."

정후의 말에 수정이도 내가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렇네. 뭔가 좀 이상하네. 우리 세나가 오늘 왜 이럴까? 무슨  있어? 아까부터 표정이 좋지 않은  같은데."


수정이의 말에 난 잠시 고민했다. 정후와 수정이는  보며 뭐든 말해 보라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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