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50화 (250/250)

Chapter 250 - 안내역 소녀

서로가 동시에 놀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크기가 다르다.

로만이 느낀 감정에 비해 앨리스의 머릿속은 가히 혼비백산에 가까웠다.

의외의 인물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거기다 그 두 명이 서로 관련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리 마주해 버렸으니.

머리가 과열되어 태도가 흐트러지기 전에 앨리스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쉬이익!

앨리스의 머리가 급격하게 기울어지자 테로가 금발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

상대를 보고 깜짝 놀라서 냅다 숙이는 앨리스를 보고 도리안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상황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고.

머리가 정리되기 전에 검은 머리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날도 남았는데 이렇게 만나네? 놀랐어."

"네, 넵! 저도 놀랐습니다···."

도리안은 눈을 내리깐 채로 한발 뒤로 걸어 앨리스의 옆에 섰다.

딸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빙글빙글 도는 것이 본인도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으나.

미안하게도 진정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앨리스. 저분들은?"

설명을 요구하는 말에 앨리스는 도리안과 로만 쪽을 번갈아 보았고.

로만이 웃으며 괜찮다는 손짓을 하자 소녀는 주춤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빠. 그, 저 모험가 님이 누구시냐면···."

····

앨리스는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도리안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경험담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던전에서 타우 때문에 바닥이 무너져서 물살에 휘말렸는데 ㅡ."

뜬금없이 편지가 날아와 병상에 앨리스가 누웠다고 들었던 날.

그건 도리안과 제인 부부에게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이자 선명한 악몽이다.

'그날이···.'

교단에서 딸을 마주하고 좋지 않은 시간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사고를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본인이 제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니.

단순히 앨리스가 무사하여 감사했다.

"···."

어떤 사고와 실수가 있었고 도와줬다는 은인이 누구인지. 그런 상세한 얘기는 앨리스가 언젠가 웃으며 풀어주기를 기다렸고.

그 깊은 이야기를 예고도 없이 이런 길바닥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도리안이 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중간중간 이야기를 멈추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백금?! 로만···?'

청금이어도 당장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백금이라니?

이름은 어디 집의 죽이고 싶은 아들과 같은데 격과 분위기는 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건지.

긴장감에 도리안은 입이 마르는 걸 느꼈다.

'저 젊은 나이에 백금···.'

제국에 정착하고 정보 수집을 멈춘 채 생활에 온전히 힘을 쏟고 있었기에 백금이 늘었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다.

여기는 연방국과 마찬가지로 단순 무력이 최고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제국이다.

과거에 제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제인과 여러 정보를 취합해 왔던 도리안은.

소문으로만 듣던 우루스와 같은 위치인 백금이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 알고 있다.

이 땅에서 백금이 가지는 위치는 아득하며.

그렇게 초월적인 권력이든 무력이든 무언가가 있는 인물을 실제로 마주쳤다면 엮이지 않도록 눈을 내리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나.

이런 생존지식이 어찌 되었든.

앨리스의 짧은 축약이 끝났을 때 도리안이 부모로서 해야 할 행동은 하나였다.

"모험가님··· 감사합니다! 저희 딸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가, 감사합니다!"

다시 거대한 몸뚱이를 접는 도리안과.

그걸 보고 함께 고개를 숙이는 앨리스를 보고 로만이 머리를 긁었다.

"아까와 같은 말을 하게 되겠습니다만··· 그것도 대단한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닙니다. 우연하게 제가 들린 장소에 앨리스가 있었을 뿐이지. 구출 의뢰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구해준 당사자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인 듯 말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지 에델만의 부녀는 알고 있다.

"감사는 충분히 받았으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볍게 바람이나 쐬러 온 지라."

"···로만님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직접 안내와 접대라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백금의 앞에서는 이 자세가 최소다.

도리안은 제국에서 굽힐 필요가 없는 위치를 가지고 존대를 해주는 로만이 너무나 이질적이라 느끼면서도.

대부분의 귀족들이나 가진 자들은 위엄이 보이도록 아랫사람이 붙는 걸 마다하지 않기에.

예의를 따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로만은 생각하지도 않고 도리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시간을 쪼개서 둘이 놀러 온 거라. 마음만 받겠습니다."

"오빠. 잠시만."

도리안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는 로만의 셔츠를 리케가 살짝 당겼다.

"응?"

"죄송합니다. 두 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리케가 웃으며 용인 부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로만의 손을 잡아 당기자.

로만은 저항 없이 리케에게 이끌려 좁은 골목으로 들어왔다.

"앨리스라고 부르는 거 보니까. 혹시 저 사람이 제자로 삼을까 한다는 그 모험가야?"

"믿기 힘들겠지만··· 맞아. 제국이 이렇게 좁았나."

로만도 지금 상황에 상당히 놀랐는지 손가락이 턱의 흉터로 향했고. 연인의 습관을 본 리케가 씩 웃으며 숨겨뒀던 사실을 먼저 꺼냈다.

"오빠. 나 저 앨리스라는 사람이랑 만나서 이야기 한 적 있다?"

"···어디서?"

로만의 눈이 놀라움에 커지는 걸 보고 리케가 웃으며 품에 안겼다.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야. 오빠가 제자 이야기를 하기 한참 전에. 클로에도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알고 있을지도?"

"···."

리케의 입에서 나온 말이 거짓이라는 가정 따위는 애초에 없다.

그러나 내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저 말을 듣고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수도에 있는 한 아예 없다고는 못할 상황이지만··· 서로 활동하는 영역이 다른데 그게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같은 자리에 천둥이 연달아 박힐 확률보다 낮지 않나 싶다.

"전에 만난 건 엄청 짧은 대화로 끝났었어. 지금이라도 오빠 밑으로 들어갈 사람을 보고 싶은데 괜찮아?"

"으음··· 깊이 가르칠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일단 무언가 배우기는 한다는 거잖아."

"그렇지."

"딱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해. 그리고 음식이나 여기서 볼만한 것도 물어볼 수 있잖아? 시간을 뺏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절약하는 거 아닐까?"

리케의 사람 보는 안목은 세계관 최고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앨리스를 보고 리케가 심성이 좋다고 인정해서 걱정을 해소한다면?

'에클레어랑 클로에도 한시름 놓겠지.'

골목에서 로만과 리케가 나오자 부녀는 무어라 나누고 있던 대화를 끊어냈다.

"앨리스에게 에델만의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

콕 집어서 앨리스를 택하는 로만의 말에 도리안이 순간 답을 망설였으나.

앨리스는 즉시 한발 나와 테로를 품에 안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터무니없이 높은 사람의 앞이라 뭐라 말도 못 하고 무표정을 고수했지만.

눈동자에서 떨떠름함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도리안을 본 로만이 흐뭇한 부녀 관계에 작게 웃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면식이 있는 앨리스에게 편히 안내를 받고 차나 한잔할 생각이니."

"죄, 죄송합니다. 은인에게 이런 미련한 추태를 보이다니···."

"괜찮습니다."

백금에게 불손한 감정을 읽혔다는 생각에 창백해진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니.

그제야 도리안의 눈동자에서는 떨떠름한 기색이 완전히 지워졌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는 앨리스에게 손님들을 제대로 안내하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남기고 물러났고.

도리안의 커다란 덩치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리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앨리스님. 혹시 괜찮은 카페가 있다면 안내해 주시겠어요?"

"무, 물론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리케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 앨리스는 앞장서서 걸음을 움직였다.

여기서 뜬금없이 마주친 로만과 리케도 놀랐겠지.

하지만 앨리스의 머리는 그 이상으로 복잡했다.

아니, 지금은 무척이나 곤란했다.

'카, 카페? 어쩌지···?'

혼혈이라는 이유로 에델만에 있는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에게 배척받아왔던 앨리스는 수도 이외에 제대로 된 카페를 가본 경험이 없다.

고향의 카페라 해봐야 가격표를 보고 저렴한 곳을 찾아 시원한 음료 정도를 사 먹은 기억뿐인데···.

기품 있는 귀족 여성에게 어울릴만한 카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뒤졌고.

일단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중앙으로 향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앨리스는 경로를 정했다.

저벅. 저벅.

뒤를 보지 않고 앞에서 걷고 있으니 웃음기 가득한 대화 소리가 넘어와 귀에 잡힌다.

-시익! 시잇!

테로는 머리 위에서 아예 몸을 돌려 뒤를 보고 있는데 앨리스도 그 상황이 궁금했다.

'···부부신가?'

호칭은 애매해도 하트가 통통 튀어 오르는 분위기를 보면 합리적으로 결론에 도달한다.

로만을 다른 남자들에 비해 매너 있고 부드럽다 생각해 왔으나, 저렇게 상냥한 말과 행동으로 여성을 대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때의 저택도 백금인 로만의 것이라 하면 괴리감이 없으며.

내부에 있던 또 한 명의 미인도 그의 부인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

도대체 자신이 뭐라고.

상상을 하고 있으니 입맛이 쓴 것 같기도 하면서, 속이 살살 아려오는 기분이기도 하다.

살아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들이라 뭐라 정의하기 힘들었다.

앨리스는 이상할 정도로 코가 찡한 느낌을 받아 아랫입술을 콱! 깨물어 감정을 삼켰다.

"이건 좀 곤란하겠는데. 가게가 하려나?"

"···예?"

"아냐. 일단 가보자."

로만이 중얼거리는 말을 넘기자 앨리스는 재차 발을 움직여 에델만의 중앙으로 향했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에델만에 일어난 이변을 느낄 수 있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