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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45화 (245/250)

Chapter 245 - 로만이 없는 시간에 셋은 지겹도록 이야기했었다.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예상을 거듭했다.

이건 단순히 정령술사가 정령술로 남긴 호의의 표식인가?

마냥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장난스러움에 가까운 이 표식은 당장 내일이 되면 지워질 것 같이 옅다.

'위해가 된다는 느낌은 없고···.'

아직 마법 이론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리케는 이것이 어떤 표식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혼자 정보가 없는 혈마법에 대한 독자적인 실험을 거듭하며.

마나가 향하는 방향성이 선의인지 악의인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이게 애초에 악의였다면 자신의 연인은 놓치지 않았을 터. 누군가의 피로 옷을 적신 채 저택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호의··· 애정···까지는 아직 애매한가.'

이 기운에 따라 만약 여자 모험가가 호의를 가졌다면?

여자라는 생물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끼니를 거르면 배가 고프듯 당연한 이치였다.

'보는 눈은 있는 여자네.'

리케에게 있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고 언젠가 올 거라 예상한 바였다.

저택에 여자들 셋만 있을 때 단골 주제로 나올 만큼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점도 알고 있다.

누가? 감히 어느 누가? 자신의 연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보통 남자들과 결이 다른 깊은 면을 보게 되면 여성의 심장에 예외 없이 필중(必中)이라 리케는 자부한다.

하룬 제국의 유력 귀족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간이고 쓸개고 빼줄 조건을 내걸어 왔음에 누구도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이라 불리는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혼자 무너지고.

자신도 모르게 이성에게 생리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피해 다니던 클로에가 도끼로 찍지도 않았는데 넘어갔다.

제국의 남자들이 봤을 때 애초에 공략 불가능으로 측정되는 드리트나 자매까지 한 남자에게 혼이 빠지는 상황인데.

어련할까.

"들어가자."

"훈련은 끝나셨어요?"

"충분해. 나머지는 저녁 먹고 하려고."

"오빠! 오늘 먹고 싶은 거 없어?"

"난 다 좋은데. 일단 씻고 재료가 뭐 남았는지 볼까."

로만이 땀도 씻어낼 겸 목욕을 하러 들어가자 리케와 클로에는 자연스레 따라 들어갔고.

몸을 씻어내는 행위인지 몸을 채우는 행위인지 모를 시간을 보냈다.

셋은 열기를 간직해 노곤한 심신을 움직여 저녁을 만들고 에클레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

에클레어가 업무를 끝내고 돌아와.

그제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차를 마시며 로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리케는 로만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입에 과일을 넣어주느라 손을 쉴 틈 없이 움직였고.

클로에는 로만이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헤실헤실 풀린 얼굴로 등을 붙이고 늘어진 모양새.

어쩐지 제대로 듣는 사람은 맞은편에 앉은 에클레어뿐인 광경이지만 모두 귀는 확실히 열어두고 있었다.

"제자가 되고 싶다고 한 모험가 이름이 앨리스야? 금 등급이고?"

"맞아. 신상을 깊이 캐물어보지는 않았는데 귀족은 아닐 거야."

"흐응~"

과일을 받아먹으며 리케의 물음에 답했다.

그녀는 앨리스라는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더니 골똘히 생각에 빠진 듯 보였고.

리케의 질문이 끝나고는 에클레어가 팔짱을 낀 채로 정보를 다시 한번 읊어갔다.

"금 등급의 라크, 릴리네, 챔버스 여기에 앨리스라는 모험가까지 얹어서 안개 둥지로 3일 후··· 이건 이해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제자를 받아들인 적은 없지 않나?"

"그렇지. 한 번도 없어."

에클레어는 이때까지 황실과 백금 사이에서 연결 고리 역을 해왔기에 로만에 대한 이런저런 사실을 알고 있다.

솔로.

제자를 하겠다고 다가온 자가 세 자리를 우습게 넘었으나 로만은 개중에 단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성이 와도 무용지물이었고 거대한 상단이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를 내걸어도 그는 항상 혼자였다.

하여 에클레어는 궁금했다.

"그랬는데 갑자기 제자를 받아들일까 고민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내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용인족 피가 섞인 아이인데 체술도 능한 마법사야. 됨됨이도 괜찮은데 관점 자체가 독특해."

"···듣기만 해도 유별나군. 혼혈 용인족인데 마법사라니."

"뭐 용인족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도 섞였을 가능성이 있긴 한데 거기까지는 모르겠네."

유일하게 맞은편에 앉아있던 에클레어는 차를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벅지 한쪽을 차지해 로만의 볼을 부드럽게 만지며 물었다.

"으음··· 제자로 삼을까 하는 판단을 우리에게 넘긴 연유를 듣고 싶다. 그냥 받고 싶으면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말도 없이 받아들였다 치자. 그런데 내 입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후에 알게 되면 기분 나쁘잖아?"

"···."

"말을 안 하면 나도 여자라서 숨기는 것 같아 찝찝하고."

드리트나 자매는 로만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몸을 더욱 밀착해 왔다.

"오라버니···."

"후- 애초에 반대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일부다처제를 로만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리케와 드리트나 자매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에 제국은 부권제라는 제도가 강철보다 단단하게 굳어져 있기에.

이렇게 몸도 마음도 다 준 상황에 가장이 의견을 듣고 그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건.

제국의 여성들에게 있어 이치가 맞지 않는 공상이나 다름없다.

"로만에게 배워나갈 모험가라··· 실제로 한번 보고 싶군."

"데려와?"

에클레어는 데려오라 하면 당장에 잡아올 로만의 목소리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때가 되면 자연스레 마주하겠지. 지금 상황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면 고문이나 다름없지 않나. 숨이 막혀 질식할 거다."

"음··· 그리고 가르침이라 해봐야 리케나 클로에한테 신경 쓰는 정도의 깊이는 없을 거야. 그래서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고 언질은 해뒀거든."

"아무리 그래도 본인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다."

직접적인 허락 없이 앨리스에 대한 안건은 어영부영 수락으로 흘러갔다.

기분이 불편하면 정말 솔직하게 말해달라 했으나, 셋 다 숨기는 기색 없이 그러려니 하는 얼굴인 게 신기했고.

어련히 잘 골랐겠지라는 믿음이 제일 부담스러웠다.

"···오빠. 한 가지 들어줄 수 있어?"

생각을 끝냈는지 조용히 있던 리케가 마지막 과일조각을 입에 밀어 넣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 가지가 아니라 뭐든지 다 말해."

"좋아서 하든 단순히 바깥 생활 중에 욕구 해소든··· 일단 하게 되면 피임은 까먹지 말고 꼭! 알았지?"

리케가 꺼낸 말에 에클레어가 홍조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옳은 말이다. 순번이 있는 일이지."

"맞아요! 그, 그건 중요해요···!"

"···제자 하나 받는데 생각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두고 보면 안다는 듯이 말하지만 앨리스와는 첫 만남부터 얼마가 개판이었는지 이 셋은 모를 거다.

··

··

초장에 에클레어가 나열한 인원들 중에 익숙한 이름을 들은 클로에는 대화의 자리가 끝나서야.

로만이 침실로 오기 전에 그의 방을 찾았다.

똑. 똑. 똑.

-클로에? 노크는 필요 없으니 편하게 들어와.

노크를 하면 기가 막히게 누구인지 알아채는 재미.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걸 들은 클로에는 웃으며 문을 당겼다.

"실례합니다."

"곧 침실로 가려했는데. 무슨 일이야?"

"···오라버니."

"응?"

손을 모아 우물쭈물하던 클로에는 내게 살갗을 붙이더니 간질간질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그, 세리아의 언니 분을 아세요? 분홍색 머리에 엄청 미인이신···."

"세리아의 언니면 파티에 있지. 머리색은 어떻게 알았어? 세리아가 자랑이라도 했나?"

"실은··· 예전에 만나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오라버니랑 여, 연인이 되기 전에···."

연인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부끄러워 눈치를 쓱 보는 클로에의 행동이 귀여워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물었다.

"그건 의외라 할 인연이네. 어떤 도움?"

의외가 맞는 것 같으면서 세리아랑 붙어 지내는 둘을 생각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상상만으로 흐뭇한 그림이었다.

"···답례품을 고르는데 세리아에게 말해서 도움을 받았어요. 세리아는 언니가 모험가라고 계속 말해왔었거든요."

"아아~ 윈터뱅크구나!"

클로에에게 받은 답례품이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술.

'릴리네의 도움을 받았다니···.'

어쩐지 부담 없는 가격에 모험가 취향을 저격하는 솜씨가 기가막히더라.

누가 골랐다 해도 낯가림이 심한 클로에의 노력이었기에 장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그리고."

"이리 와서 앉아.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

"네에···!"

클로에를 안은 채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축약해서 설명하기 불가능한 우스운 관계였다.

세리아는 클로에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내가 릴리네와 친분이 있는 사실을 모르고.

릴리네는 클로에와 안면을 텄음에도 세리아가 리케의 신신당부에 입단속을 하느라 나와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

꼬이고 꼬인 끈이 풀려서 시원해지는 날이 기대된다.

"클로에. 하고 싶은 말은 편하게 해도 괜찮아. 물론 부탁이나 가지고 싶은 것도 좋지."

"···세리아가 언니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그래서 ㅡ."

뒷 말은 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 수 있다. 리케도 이름만은 아는지 듣고 계단에서 똑같은 부탁을 했으니.

아카데미에서 붙어 다니는 삼인방의 관계는 끈끈하고 돈독하다.

마음이 정말 맞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으나.

그런 셋을 서로 만나게 해 준 아카데미는 확실히 제값을 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

딱 한마디로 클로에의 걱정을 종식시키고.

손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그녀의 살결을 만지고 쓸어내리니 클로에는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여 달뜬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그래도 저는 오라버니가 우선이라는 건 알아주세요···."

"물론이지. 무리하지 않는 선이라 약속할게."

안겨서 한 손에 잡히지 않는 풍만한 젖가슴을 비벼오는 클로에를 안아 들고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

그리고 다음 날.

자연의 섭리와 이치에 따라 해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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