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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44화 (244/250)

Chapter 244 - 순전히 직감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테이블에 있는 모두를 집중시키는 앨리스의 한마디.

"아가씨··· 아쉽지만 이 녀석은 제자 같은 건 ㅡ."

"그만. 초 치지 말고 기다려 봐."

테이블 분위기가 박살 나기 전에 말을 이으려는 라크를 제지시키고 머리를 회전시켰다.

'···흠.'

정령을 볼 수 있는 내 시선으로 보는 광경과 라크와 릴리네가 보는 상황은 형편이 다르겠지.

소녀는 머리 위에 자리 잡은 정령에게 등을 떠밀린 느낌이 아니라 격려를 받는 그림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껏 봐온 앨리스의 성격상 테로에게 쥐고 흔들릴 성격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일체 오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물어봐야 한다.

"앨리스."

"네, 넵!"

"라크의 파티에 들어가서 의뢰를 돕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나를 따라오겠다고?"

"허락만 해주신다면 로만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모험가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소녀의 똑 부러지는 기세만큼은 좋았으나.

이 상황은 최근에야 없었지만 과거에 질리도록 있었던 것이다.

뻔히 예측되는 결과에 라크는 입을 꾹 다문 채 지켜봤고 릴리네는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

주위에 자잘한 소음이 끝없이 나고 있음에도 이 테이블만은 잘려나간 세상처럼 느껴졌다.

짧게 이어지는 잠잠함.

정적이 흐르던 시간은 한 칸 더 낮아진 로만의 저음에 흩어졌다.

"어째서? 마법사가 아닌 모험가에게 그렇게 말해봐야 나한테서 무얼 배우겠다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이때까지와 달리 단칼에 떨어지는 부정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백금의 모습.

제법 긴 시간 로만을 지켜봐 왔던 부외자 둘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마법사이기 전에 제 정체성은 모험가입니다. 단순히 마법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험가라 생각합니다. 실전으로 식견을 높이고 마법만이 아닌 다재다능한 수단을 익히고 싶습니다."

앨리스는 질문을 받는 즉시 고양감에 이끌려 입을 열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로만은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때리며 고심했다.

딱. 딱. 딱.

얼굴에서 미미하게 돌던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로만은 앨리스의 눈을 주시하며 물었다.

"금 등급이라면 모험가 사이에 배운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물론입니다.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나이는 어려도 어느 정도 커리어를 가진 앨리스가 모를 리 없다.

글로 적어둔 규정이 없음에도 모험가 생활을 시작하고 빠르면 한 달 안에 알게 되는 암묵적인 룰이니.

모험가라 하면 워낙 모난 놈들이 많은 집단.

대다수 제자랍시고 아랫등급을 부려먹거나 시도 때도 없이 불러 잡일을 시키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니다.

거기다.

배움을 청한다면 먹고살기 위해 양다리로 다른 파티에 속하는 것도 어지간하면 허락되지 않는다.

민폐인 건 물론이며 서로 동시에 의뢰가 잡히면 글자 그대로 엉망이 되니.

하여 모험가들 사이에 윗 등급에게 배운다 하면 잡무를 하며 떼주는 잔돈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게 절대다수가 되기에.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금전과 재물을 따르는 모험가임에도 발전에 대한 간절함과 호승심이 돈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억누를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따른다고 청금이 되거나 백금이 되는데 이점이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시간 낭비일 확률이 높지."

"상관없습니다."

"분기에 의뢰를 한 번도 안 나가는 경우도 허다해. 의뢰는 언제 받고 언제 출발할지 몰라. 고열이 나서 앓고 있는 야밤에 뛰쳐나가야 할지 모르고 정말 중요한 약속이나 계획을 잡아 놨다 하면 당일에 잡힌 의뢰 때문에 깨트려야 하겠지."

"그건 배움을 받는 입장에서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흐음···."

사람에 따라 말뿐이라 할법한 대답을 뱉더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간절한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듣는 사람이 받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아직 경험하지 않았으니 저리 당당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배제할 수 없는 경우겠으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호소력이 있다.

뒤따라 다니며 지금껏 받은 빚을 지우겠다는 기색 따위가 아니라.

본인도 숨기지 못한 눈빛의 날카로움은 나를 잡아먹고 넘으려는 기세. 자신의 마법이 아예 무용하다는 걸 당장 어제 실감했음에도 기가 죽었다는 느낌이 없다.

'보통내기가 아니네.'

내가 가까이하는 인물들은 유별나게 빛이 난다.

아니지, 빛을 뿜는 인물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가까이하게 된다.

사람에게 사용할 법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남다른 입체감이 느껴지는 자들.

이 세상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잊게 만드는 개개인들.

게임에 코빼기도 내밀지 않는 인물임에도 이렇게 창조에 정성 들인 듯한 인물이 존재한다.

'제자··· 제자라.'

평소라면 길게 질문을 이어가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했겠으나.

길드에 오기 바로 전에 학장실을 다녀왔기에 도란과의 대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재능이 있는 새싹을 지도하면서 얻는 많은 이점들.

거기에 앨리스가 있으면 심(心) 스킬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장시간 논할 건수가 되다 보니 혹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도 여자를 제자로 들이기에는···.'

남자를 제자로 들이는 건 아예 생각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받는 것도 문제는 된다.

모험가 생활의 특성이 있는데 연인에게 말도 안 하고 좋다고 날름 들이기에는 당당할 수 없다.

셋에게 다 털어놓고 거북하거나 꺼림칙한 낌새가 있으면 짤 없이 거절하는 것으로.

"확실한 답은 3일 뒤. 출발하는 장소로 나와."

"알겠습니다!!!"

확답은 아니라도 가능성이 있는 말에 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어 신이 난 얼굴.

앨리스는 탁자 아래에 있는 손을 꽉 쥐어 날뛰는 감정들을 흘려냈다.

-쉬익!

테로가 평소와 달리 앨리스의 머리에서 점프하지 않고 아주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내려와 테이블을 가로질러 다가와서는.

아부인지 재롱인지 포동포동한 혀를 내밀어 내 손등을 슬쩍 핥았다.

*****

끼익-

저택의 문이 열리고 아카데미 정복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

소녀들은 똑같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려 마당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았다.

"공부하느라 고생했어. 잘 다녀왔지?"

마당에서 역근경을 파헤치고 스킬 훈련을 하며 땀에 축축하게 젖은 로만은.

문을 열고 들어온 리케와 클로에를 보며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다녀왔어!"

"오라버니··! 다녀왔습니다!"

양쪽으로 거침없이 매달리는 두 명의 포옹.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몸이라 로만은 만세에 가까운 동작을 한 채로 리케와 클로에를 받아들였다.

"정복에 땀 묻는다?"

내 말에 뭘 모른다는 듯 리케가 손가락으로 볼을 콕 찔렀다.

"오빠! 그래서 더 좋은 거야."

"마, 맞아요! 히히··."

장난기 가득한 대화를 나누고 한 명 한 명 짧은 입맞춤으로 반가움을 표현한 뒤에서야 나는 첫 번째로 알려야 할 사항을 전했다.

"에클레어가 오면 다시 말하겠지만. 아마 3일 뒤에 다시 나갈 것 같아."

"흐으으··· 오라버니··· 다치지만 마세요."

얘기를 듣고 표정과 목소리에서 숨기지 못할 감정이 드러나는 클로에를 보고.

로만은 손을 내려 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출발하기 전에 남은 3일은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지?"

"그렇죠···! 네에!"

클로에의 푸른 눈동자에서 숨길 수 없던 무거운 감정들이 기대감의 물살에 밀려 깨끗하게 사라졌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본인만이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겠으나.

부끄러움, 애욕과 욕정, 거기에 정말 순수한 기대감과 즐거움이 소녀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귀엽네.'

양손으로 찹쌀떡 같은 볼을 잡아 늘려주고 싶은 마음.

눈은 감정을 비추는 창가나 다름없다 보니 클로에의 속내를 간접적으로 느낀 로만 또한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사로잡혔다.

그리고.

클로에와 달리 아까부터 조용하게 있는 리케를 향해 로만의 고개가 움직였다.

가녀린 팔로 자신의 두꺼운 허리를 감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리케?"

소녀는 연인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바로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을 연신 거듭하고 있었다.

'···저거?'

리케의 자색 눈동자가 품은 신비이자 스킬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특별하다.

정령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적으로 볼 수 없음에도 흐름으로 위치를 파악할 정도로.

보통 사람이라면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갈 작은 흔적이 단번에 눈에 잡혔다.

로만의 손등에 옅게 묻어있어 있는 마나.

대기 중에 흩뿌려져 있는 자연의 순수한 마나와 한없이 닮았으면서 다르다.

그렇다고 사람이 마법으로 표식처럼 남겼다기에는 부자연스러운 흐름.

저 특수함은 딱 한 번이지만 본 적이 있는 형태였다.

상념에서 몇 가지 경우에 대해 조합을 끝마친 그녀는 머릿속을 떠도는 퍼즐들을 더 세밀하게 조립하기 위해 로만의 옆구리에 볼을 붙인 채로 물었다.

"오빠. 오늘 어디 다녀왔어?"

"아카데미 학장실에 들렸다가. 모험가 길드에 다녀왔지."

"모험가··· 흐응."

리케도 정령이라곤 딱 한번 느껴보았을 뿐이고.

정령을 다루는 자가 귀하고 흔하지 않다 하더라도 제국의 수도에 달랑 한 명만 있을 리는 없으니.

저 흔적을 보고 누군가를 선뜻 떠올리는 건 경솔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건 순전히 직감이었다.

"왜?"

로만의 물음에 리케는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그냥 오빠가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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