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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43화 (243/250)

Chapter 243 - 왜 하필이면

저택에서 셋을 보내고 아침과 점심 사이의 어정쩡한 시간.

아카데미 학장인 도란의 권유로 수업이 없는 날임에도 이렇게 학장실에 앉아 겨우 구했다는 귀중한 차를 대접받고 있다.

쪼르륵-

도란은 치렁치렁한 복장을 입고 외팔로 차를 우려내면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들어보시게."

"감사합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찻잔을 들어 입에 살짝 머금었다 넘긴다.

"썩 좋은 물건 아닌가?"

"음··· 향이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집니다."

도란은 안심한 얼굴로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안목이 있어! 로랜드 그 무식한 놈은 줘봐야 구정물이라며 술이나 찾는다네."

"···그건 쉽게 상상이 가는 그림이군요."

사실 내 생각도 로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의를 적당히 차릴 뿐이지.

'이게 그렇게 비싼 차라고?'

내가 문화와 거리가 제법 있다 해도 차를 아예 모르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저택에 있는 셋이 차를 즐기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입가심으로 즐기게 되었는데.

이 차는 취향을 강하게 타는 맛이다.

그렇게 구하기 힘든 찻잎이라 자랑을 하길래 궁금했는데.

향은 괜찮으나 맛은 나무껍질을 씹은 것 같은 미약한 쓴맛이 돌아 기이한 맛.

마시자마자 입을 세척할 음료나 고소하고 담백한 우유가 당긴다.

내 입맛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리케가 만들어 주는 커피나 음료가 간절했다.

"곧 실전 수업의 계약도 끝이구만. 수염이 허옇게 변하면서 느끼기에 시간은 가혹할 정도로 빠르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카데미 생도들을 가르치는 보람은 있던가?"

가르침도 보람은 있었으나 리케를 필두로 이어진 새로운 만남들에 대한 보람이 컸다.

내 인생에 여러 변곡점이 있었으나.

두말할 것 없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윤기 없이 거칠거칠한 변덕스러움이 잦아드는 정신의 안정과 역마살이 잔뜩 끼어있던 생활에 규칙과 안식이 도래했다.

"물론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한 수련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허허! 옳은 말일세. 내가 교단에 서게 된 이유도 설명을 하며 마법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취지였네. 그게 줄곧 이어져 이 자리까지 오게 됐지."

"대단하십니다."

"대단한 게 아니라 겁먹고 자리에 안주해 버린 늙은이라네. 으음··· 그래··· 생도들 중에 백금의 눈에 차는 새싹은 있던가?"

"있습니다."

"호오···! 백금의 모험가가 인정하는 생도라니 경사로군.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하하! 그건 본인들이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제일 먼저 떠오른 리케와 클로에는 에클레어와 내가 돌아가며 봐주는 집중 훈련에 갖가지 영약과 스킬, 귀속 무기 등이 착착 붙으며 실력과 능력면에서는 다른 생도들과 비교도 못할 만큼 압도적이다.

굳이 한 명 더 떠올려 보면 아카데미에서 돌출되기에 재능은 모자라도 그걸 덮어버릴 만큼 열정에 불이 붙어있는 세리아 정도?

남자 생도들 중에도 무난하게 이름을 날릴 싹은 있고 원작 게임의 히로인들 또한 확실한 재능이 있다.

결국 누군가 밀어주지 못하면 그녀들도 개화하지 못하고 거기서 끝이겠지만.

결국 리케와 클로에.

'둘 다 공부에 집중하고 있으려나?'

아침에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관련된 얘기를 하다 보니 세명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린다.

에클레어야 발에 땀이 나도록 움직이고 있을 것이고.

리케와 클로에는 이 부지 어딘가에 있는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받고 있겠지.

검술 학부와 기사 학부 각자의 강의실에서 수업에 집중하고 있거나.

두 학부가 겹치는 수업이라면 세리아까지 같이 앉아 셋이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이어가기 전에. 굳이 이때까지 묻지는 않았으나 로랜드의 언질에 의하면 귀족들 특유의 화법을 싫어한다고 알고 있네만."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 받아들일 때가 있기 때문이죠. 솔직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도란 에스카로는 한 팔로 비어있는 찻잔을 다시 채우고는 느릿느릿한 손길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해서 바로 꺼내는 본론이네만. 과거에 커다란 변고가 있었으니 황실에서 수업에 대한 성과를 확인하려 들 줄 알았다네. 이러쿵저러쿵 말해 보아도 결국 실전 수업 자체가 칙령에 의거하지 않았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한평생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온 노인의 입장에서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네."

도란의 말을 들어보니 황실에서 에클레어를 통해 초장에 그렇게 휘어잡았음에도.

'믿고 있겠다.'는 한마디로 검증을 끝냈다고 한다.

"명령을 내렸으니 저도 당연히 올 거라 생각했는데. 바빠서 보낼 인력이라도 부족하답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저 말은 두고 보겠다는 어투로 느껴져 더 찝찝한 뒷맛이 돌 것 같은데.

도란은 후련한 얼굴이었다.

"후후··· 백금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 듣기만 했지. 책에만 빠져 살던 노인은 현실에서 실감했다네. '믿고 있겠다'라는 말은 이 힘없는 늙은이에게 남긴 말이 아닐세."

"···."

황실에서 신용을 보인 것은 학장이 아니었다. 백금의 모험가가 생도들을 가르쳤으니 굳이 평가하지 않겠다는 것.

결국 지적을 하면 그것도 방향이 이상하게 흐를 수 있다는 걸 염두하는 주름진 너구리다운 대처였다.

얘기를 끝까지 듣고도 뭐라 답하기 애매해 입을 닫고 있으니 도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와 봉투를 가져왔다.

"그리고 결국 오늘 자리는 이것 때문 아니겠나."

··

··

도란과 이 자리의 골자가 되는 주제에 대한 대화를 끝내고, 나는 한 가지 물건을 불현듯 떠올렸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약속했던 도서관 지하 출입증은 언제 받아지겠습니까?"

"물론 잊지 않고 제작 의뢰는 넣어둔 상황이라네. 문제는 워낙 복잡한 마도구라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손가락에 꼽다 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게."

"···그럴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해도 조금 오래 걸리는군요."

"상황이 썩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네. 이런 지저분한 태도로 시간을 끈다거나 하는 허튼 짓은 하지 않아. 남지도 않은 한 줌의 명예와··· 내 남은 한 팔을 걸고 말일세."

교관을 이어가지 않아도 당연히 출입증은 제공할 요량이며 아카데미 도서관 출입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사족을 붙인 도란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제를 돌렸다.

"시간도 애매하니 나머지 이야기는 점심이라도 들면서 하겠나?"

"아쉽지만 모험가 길드에 선약을 잡아둔 터라 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음··· 어쩔 수 없군. 바쁠 텐데 이리 잡아둬서 미안하네. 답은 편하게 주게."

"빠른 시일 안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자리의 요점이자 아까 받은 계약서를 옆구리에 챙겼다.

이번 계약이 끝나고도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

일어나기 전 숨을 멈춘 채 반이 넘게 남은 차를 한 번에 비우고 학장실을 나와 아카데미를 빠져나왔다.

*****

점심시간 모험가 길드는 모 아니면 도.

의뢰 경쟁에서 밀린 백수들로 바글바글 하거나.

당일에 운 좋게도 의뢰 게시판에 종이가 가득해 동이고 은이고 가릴 것 없이 밖으로 떠나 선술집이 텅 비어있는 날도 있다.

퉁-!

길드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눈에 잡히는 한적함.

밖에서도 예상했지만 오늘은 일거리가 풍부한 날인가 보다.

이른 점심을 먹었는지 식곤증에 몸을 비틀고 있는 접수원과 간단한 인사 겸 의뢰 확인 도장을 찍은 뒤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끼익- 끼익-

내려가니 머리에 테로를 올리고 배를 채우고 있는 앨리스가 보인다.

라크 파티와 한 테이블에 앉아있던 앨리스가 소매로 입주위를 급하게 닦으며 벌떡 일어났다.

"···로만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두 사람 다 야밤에 고생했어. 확인해 뒀으니 나중에 수령해."

드륵-

자연스레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어제의 해프닝이 주제로 변하는 미래를 예상하고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라크를 놀릴 생각이었는데.

테이블 한편에 쌓여있는 종이들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밟혔다.

그리고.

라크 파티가 다음 의뢰로 향할 장소를 들은 나는 편두통에 가까운 지끈거림을 느끼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안개 둥지··· 왜 거긴데?"

"의뢰니 가는 거지? '왜'가 왜 나와?"

나보다 머리가 나쁘다 자부하는 라크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이 상황.

'틀린 말은 아니라도···.'

의뢰를 선정해도 어찌 거기로 정하는지 우연이라 하기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안개 둥지면 와포렘?"

"거긴 또 어디야?"

그나마 다행인 건 목적지가 모건의 거주지가 있는 마을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모건이 직접 움직이긴 했지만 3 기사가 죽었다거나 하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기에 모건이 3 기사와 대립을 했는지, 아니면 현재 준비를 하고 있는지, 혹은 죽어버렸는지, 다툴만한 미끼는 던져줬으나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는 상태다.

그나마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악마 숭배에 빠져사는 성향을 가진 집단의 일원이라 하지만.

한 명의 인간이자 흑마법사인 그의 성질과 현 상황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의뢰 내용을 자세히 보니 마을과는 거리가 제법 있고 안개 둥지라기도 애매한 경계선이 목표지점이지만.

전쟁을 위해 제물을 충당한답시고 라크 파티를 단번에 수거해 버릴지도 모른다.

"···."

턱에 자리한 흉터를 긁다가 답을 내렸다.

'어차피 흑마법사들끼리 상황이 어떤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크게는 동거 중인 세 명과의 미래이자 자세히는 리케와 가깝게 관련된 일.

그것만으로 내게는 차고 넘치는 이유다.

라크 파티는··· 예전이라면 그냥 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불운조차 마주하는 직업이 모험가. 이런 생각으로 알면서도 고개를 돌렸을지 모르지.

"3일 뒤에 출발이라 했지?"

"그래."

"···로만 씨. 왜 그러세요?"

낌새를 읽은 릴리네가 눈치를 보며 물어왔으나 명확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험가 파티의 리더가 선택한 사항을 외부 모험가가 그만두라 경고해 억지로 손을 떼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비루해지는 모험가들 사이에도 선은 존재한다.

'···모건만 확인하면.'

다시 한번 수도를 떠날 시기는 정해졌다. 애초에 가야 했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마음.

"어차피 나도 들려야 하니 같이 출발해."

"으음?"

"그 정도는 상관없잖아?"

"···마음대로 해라."

짧은 답으로 끝냈지만 알기 쉽게 복잡한 표정.

내 행동을 이해해 보려는 라크와 릴리네가 입을 닫아버리자 테이블은 잔이 들렸다 내리기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중간에서 영문도 모르고 분위기를 보느라 혼자 눈을 굴리던 소녀는.

망설임 끝에 바로 옆에 있는 로만의 소매를 살짝 잡아 시선을 자신에게 당겼다.

"···로만님."

"응?"

"그, 으··! 어···."

-시이익!

테로는 기껏 불러놓고 머뭇거리며 전진하지 못하는 앨리스의 머리에서.

힘내보라는 듯 꼬리로 그녀의 정수리를 톡톡 건드렸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앨리스가 의외의 발언을 꺼내자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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