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1 - 백금 하나 금 둘 -2-
오러와 마법은 각자 다른 영역.
그것을 교집합으로 보유하는 인물은 정말 특별한 재능이지만.
무신의 말마따나 무기 하나에도 범인의 평생이 부족할진대 두 가지를 모두 익히려면 이도저도 아닌 게 절대다수의 결과다.
'차라리 한쪽에만 재능이 있어 한 우물만 파는 게 좋다.'
앨리스가 체술에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러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되려 장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
흔히 칼잡이와 마법사들 서로의 뇌 디자인이 다르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리 신용도가 떨어지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튼간.
절대 마법사가 될 머리는 아닌 나에게 궁금증의 싹이 자라났다.
도저히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새싹이.
처음은 근본적인 이야기였다.
내가 가진 이 심(心)이라는 EX스킬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건 아주 고위에 속하는 신비의 마법인가? 무신이 심검(心劍)을 언급했으니 검법인가?
혹은 아예 별개의 무언가?
최근 생각의 방향이 이 스킬로 기울어지며 답답함은 극에 달했고.
결국은 외부인이 보면 무식하다 할 법한 방법까지 떠올리게 되었다.
"응? 애꿎은 나무는 왜 눕혀. 나한테 써야지."
두 마법사는 최고의 살상력이 담긴 마법을 나한테 써라.
덤덤한 척했지만, 이 문장이 얼마나 정신 나간 머저리 같은 말인지 알고 있다.
""네?!""
'그래. 당연하게 저 반응이지.'
나올 거라 예상했다.
적대적인 용병들이나 도적 같은 인간에게 부득이하게 마법을 사용한 경우가 분명 있겠지.
원래 목적은 경도나 크기부터 다른 몬스터를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단련한 마법이니.
그녀들이 모험가 생활을 해오면서 마법을 직격으로 맞고 살아남은 인간을 본 경험은 없을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
"···그, 일단 이론으로 먼저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 분명 난 들어도 하나도 이해 못 해. 모험가들은 대개 중증의 체험주의자라는 걸 알잖아?"
부끄러우면 부끄러웠지 당당하게 말할 자랑거리는 아닐지라도.
이미 마음을 먹고 왔기에 단언하며 릴리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말문이 막힌 릴리네가 고심에 사로잡히자 호숫가에 잔잔한 파문이 일며 침묵이 흘렀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답이 나오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릴 거라 느껴지는 그림에 앨리스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쉬익!
머뭇머뭇하는 릴리네와 정반대로 앨리스는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호승심,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 백금 등급이라는 신용?
저 눈빛이 무엇이든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니 로만에게는 편하다.
"어떤 마법이든 상관없으니 자신 있는 걸로 보여줘."
"예!"
마나를 끌어올리자 앨리스의 육신에 혼혈의 형태가 드러난다.
누군가는 치부라 여길 부분을 소녀는 자부심이라 여기고 있다.
쁘득! 뜨드득-!
날카롭게 벼려지는 동공과 만지지 않아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뿔.
앨리스의 진짜 모습에 릴리네는 놀란 얼굴이었으나 산전수전을 겪은 모험가답게 빠르게 납득을 끝마치고 자리를 지켰다.
"언니. 뒤로 더 가주세요."
"···."
릴리네를 안전한 위치까지 보내고 앨리스는 감정을 다스리며 호수를 등지고 서있는 로만을 보았다.
"앨리스. 재차 말하지만, 나한테 문제가 생겨도 책임은 절대 묻지 않아."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만은 앨리스가 혹시나 손대중을 할까 꺼낸 말이지만, 애초부터 그녀는 진심으로 할 생각뿐이다.
-쉬이익!
이때까지 봤던 백금의 초월적인 무위가 있었기 때문일까.
용인의 형상을 가진 소녀는 본인이 어떤 발악을 해도 로만에게 상처가 난다는 상상이 들지 않았다.
"후우우-!"
끈적한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몬스터도 없고 날아드는 화살이나 마법도 없다.
무영창으로 임시방편인 견제용 마법을 보이는 게 아니다.
이건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이자 능력을 백금에게 증명할 하나의 기회.
기회를 짐승처럼 낚아챌 준비가 되어있는 소녀는 마나와 집중력을 동시에 최고점까지 끌어올렸다.
-은혜로운 대지여. 하늘을 빌려 석문을 열어라. 적에게 무거운 짐을 내리고 견디지 못할 과중함을 짊어지게 하라.
-흑석주(黑石柱).
쾅!
앨리스가 비늘로 뒤덮인 주먹으로 땅을 강하게 내리치자.
해가 숨으며 생긴 자연적인 어둠 위로, 다시 한번 거대한 그림자가 진다.
쿠구구구-!
무식한 덩어리가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
로만은 머리 위로 낙하하는 육각형의 돌기둥을 보며. 평소와 다른 시점을 가지고 관찰을 이어간다.
'저 질량이 전부 마나로 구성된 건가?'
애초에 정면에서 마법사가 마법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감각을 보는 게 목적이지.
단순히 상처를 입거나 자살을 희망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못 배우고 굳은 머리라 해도 무작정 마법을 때려 맞고 기적처럼 깨달음을 얻을 거라 기대할리가.
그대로 양팔을 벌린다.
"흡!"
쿠웅-!!!
품으로 육각형의 돌기둥을 받아내자 충격에 잔디와 흙먼지가 일어나 눈앞을 가리고.
중량에 허리가 뒤로 기운다.
흙속으로 발이 박히기 전에.
발끝으로 마나를 퍼트려 무게를 분산시키자 땅이 움푹 파이며 호수의 물이 졸졸 흘러들어왔다.
"끄으으읍!!"
꽈득!
내리누르는 힘이 멈춘 돌기둥에 힘을 주어 껴안자 기둥 전체로 금이 가며 검은색 파편들이 쏟아졌고.
지지대이자 다리를 잃은 윗부분이 호수로 기울어져 두 번째 낙하를 이어갔다.
푸화아악-!! 촤아악-!
튀어 오른 호수의 물을 흠뻑 맞으며 로만은 바닥의 돌조각을 주워서 관찰했다.
"오! 내부도 빈틈없이 찬 기둥이구나."
마법에 의한 '육중한 질량을 가진 상태로 낙하'라는 목적이 끝나자 가루가 되어 서서히 흩어지는 모양새.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확실히 다른 게 보이긴 한다.
앨리스의 마법은 받아내서 멈추는 순간 목표를 잃어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
-시, 시익!
그대로 굳어버린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물기로 축축해진 티를 벗어던졌다.
릴리네의 마법은 받아내면 옷에서 티가 나 저택에 돌아가면 걱정을 살지도 모른다.
'마법사들 특유의 자긍심에 상처가 날지도 모르겠어.'
자신의 마법이 일말의 효과도 못 보고 박살 나는 꼴은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릴리네와 앨리스에게는 미안한 일이 될지라도.
타인의 의지를 형상에 담아 맞부딪히는 이 감각을 이어가고 싶다.
"어쩔래?"
"!"
펼쳐진 현실을 인식하느라 정신이 엉켜있던 연두색 눈동자에 불이 들어왔다.
"···로만 씨. 저 진짜 제대로 할 거예요!"
"들어와."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릴리네도 앨리스의 마법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나를 보고 안심했는지 준비를 시작했다.
"갈게요."
준비가 끝나니 반대로 차분해진 목소리.
"음!"
내가 다른 마법사도 아니고 처음부터 릴리네를 찾은 이유는 눈높이 설명에 능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녀의 마법은 마법임에도 날카로운 무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릴리네가 쓰는 마법의 주류는 바람을 이용한 베고 찌르기.
마나를 머금어 색깔과 뚜렷한 형상을 이룬 바람은 오러를 내뿜는 명검만큼은 아니어도.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모험가의 칼질보다 예리하다.
-빙 돌아 청명한 하늘을 가르라, 그것이 시작이자 나와 바람의 이어짐이니. 날카로운 돌개바람은 회전하는 칼날이 되어 원한을 풀어내거라.
-표풍(飄風).
살덩이를 토막 내기에 아주 최적화된 마나 덩어리들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들었다.
'은근 살벌하다니까.'
릴리네는 성격이나 평소 보여주는 기품과 달리.
피가 흐르는 생물의 삶을 끊어 내는 데 있어서는 앨리스 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앨리스도 변종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적중'만' 하면 살상력에 부족함은 없겠으나.
릴리네에 비하면 성벽이나 골렘 같은 무생물을 박살 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봐야 한다.
"후!"
릴리네가 마법을 시전 하는 순간 견적은 나왔다.
핑! 핑! 시잉-!
과거 외눈박이 악마가 난사하는 마법도 버텨온 전력이 있는 몸뚱이에 작정하고 두텁게 마나를 두르자.
자연의 칼날은 살점을 꿰뚫지 못하는 즉시 바스러졌다.
'역시···.'
눈이 뜨이는 감각.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마법은 표출하고 가시화 시키는 방법 자체는 다르지만.
오러와 마찬가지로 의지를 내포하고 있으나, 마법사의 손을 떠난 상태라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 힘도 잃는다.
서슬 퍼런 바람이라 해도 대상에게 상처를 내지 못하고 살점을 잘라내지 못하는 순간.
그대로 산들바람으로 변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
··
"진짜 같은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다니까···."
"언니. 전 애초부터 예상했다고요. 그게 백금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으음···! 머리가 바보가 될 것 같아···."
마법이 끝나고 잠깐 생각에 잠겨있으니 마법사들 끼리 말문이 터졌다.
솔직한 심정으로 마법을 몇 번 더 맞아볼까 했으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 역시 둘은 재능이 있다. 한번 더 하면 피부에 상처가 나긴 할 것 같다.
'조심해야지.'
저택에 내가 가만있는데 셋 중 하나가 피를 질질 흘리며 들어오는 장면을 생각하면 절로 제동이 걸린다.
"로만님!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앨리스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물에 쫄딱 젖은 건 나 혼자지만, 아까 거대한 기둥이 호수에 떨어진 여파로 둘의 머릿결도 물기가 촉촉하니 맺혀 있었다.
"잠시 기다려."
타닥- 탁!
숙련된 솜씨로 모닥불을 만들고 앉으니 그 주위로 앨리스와 릴리네가 자리했다.
지금부터가 아까의 감각을 보유한 채 이론을 공부할 시간.
"이제부터는 각자 장사 밑천이 되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말하고 싶지 않다거나 숨기고 싶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알겠어요."
"넵!"
티에 남은 물기를 손으로 짜낸 뒤 옷을 대충 입고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마법이란 뭐라 생각해?"
이건 정해진 형태가 없는 근본론이자. 마법을 가르친다는 모든 서적 첫 장에 나오는 주제.
그러면서도 명확한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책에서 봤기에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자기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마나와 감정을 더 해서 만든 공식의 결과물이죠."
"나약한 의지를 보강하는 수단이요!"
머뭇거림 없이 시원하게 답하지만 완전히 상반되는 대답.
그녀들은 답이 나와있는 이론은 똑같이 이해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수록 상반되었다.
하지만.
정해진 이론이 아님에도. 두 마법사에게 공통된 의견이 하나 있었다.
"그럼 마법을 손에서 쏘아낼 때···."
"잠깐만요! 일단 그 말은 정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맞아요. 사실 마법은ㅡ."
내 말 어디가 걸렸는지 모르지만 앨리스도 그걸 말하고 싶었던 양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리고 나는 둘이 공통적으로 내는 의견을 들으며.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한가닥 정도 실마리가 잡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방으로 답도 없이 뻥 뚫려있던 길이 조금은 좁아진다.
"···이건 큰 도움이 됐는데? 머리가 좀 뚫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