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7 - 이른 아침의 모험가 길드 -1-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세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실전 수업이 들어있는 날이면서.
리케와 클로에가 기운을 차릴 기념비적인 날!
"휴우우우-!"
교관님이 자리를 비웠다고 들은 첫날 둘의 상태는 정말 아찔했지.
클로에는 기운이 다 빠져 흐물흐물하니 젤리처럼 변해버리고.
리케는 티는 안 내려 하지만 저기압이라는 느낌을 완전하게 숨기지는 못했다.
"어디···."
릴리네의 집이 아닌 기숙사에서 눈을 뜬 세리아는 아카데미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전신거울의 앞에선 상태로.
언니가 몸가짐으로 신경 쓰라는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뒤에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가방을 들었다.
아침은 식당에 들러 빵을 두 개 집어 들고 병우유 하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출발!
기숙사에서 아카데미로 향하는 수많은 인원들 중에 끼니를 처리하고 있는 인물은 자신 하나였다.
'오늘도 다들 아침 안 먹나?'
의문은 짧았다. 누가 뭘 먹든 어떠리. 내 배가 불러야지.
붉은 머리를 뽐내며 우유를 호쾌하게 비우는 그녀의 생활은 어찌 보면 이미 한 명의 모험가가 아닐까.
아무리 남작이라 해도 귀족가의 영애이자 아카데미 생도가 길을 걸어가면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빵을 으적으적 뜯으며 식사를 하다니.
이것부터 릴리네가 봤다면 기겁을 하며 허락하지 않을 내용이었지만.
뭐라 할 필요도 없이 너무 당연한 사항이기에. 릴리네가 세리아에게 딱히 언급하지 않은 게 빈틈이었다.
아침을 시원하게 해결한 세리아는 입 주위에 묻은 빵가루를 닦아내고.
머리를 회전시켰다.
'오늘 첫 수업이 뭐더라?'
혹서 저번처럼 수업이 바뀌었는지 모르고 강의실에 혼자 멍하니 있다가. 리케가 어이없는 얼굴로 찾으러 오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품에 있던 수첩을 꺼내 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움직였고.
변동 없이 평소와 같은 수업인걸 확인한 세리아는 당당한 걸음으로 학부 강의실로 향했다.
또각- 또각- 또각-
'벌써 와있네.'
검술 학부인 세리아와 기사 학부인 클로에는 수업이 겹치거나 점심시간이 되어야 만날 수 있지만.
학부도 같은데 수업까지 함께 신청한 리케의 경우는 세리아와 동선이 전부 겹칠 수밖에 없다.
"···오!"
강의실에 먼저 와서 앉아있는 리케를 본 순간 세리아는 알아챘다.
시들시들하던 클로에도 기운이 돌아왔겠구나!
윤기가 번쩍번쩍 도는 피부에 자수정과 같은 빛을 품은 눈동자.
입은 여전히 일자로 무표정을 그리면서도 분위기는 평소보다 말랑말랑하니 따뜻하다.
세리아는 알고 있다.
리케가 품은 저 느낌은 필시 '생기'라 하는···? 아무튼 그거구나!
안심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혼자 앉아있는 리케에게 다가갔다.
"좋은 아침!"
"어서 와."
옆자리를 자연스레 차지하는 세리아를 보며 리케가 가볍게 반응했다.
"흐으응~"
세리아는 자리에 앉아 책도 꺼내지 않은 채.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펜을 바쁘게 움직이는 리케의 옆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부드럽게 글을 적어내는 손은 멈추지 않은 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시하고 공부를 하려 했지만 대놓고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세리아의 시선에 리케가 먼저 반응한 것이다.
"드디어 실전 수업이 왔구나 싶어서? 기대되잖아."
세리아가 실전 수업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
그러나 저런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는 이유는 중의적이라는 걸 리케는 알고 있다.
"세리아. 웃는 모습이 엉큼해."
주책맞은 아저씨 같다고 하려던 리케는 적당히 단어를 가려냈다.
"힛! 별 뜻 없이 친구가 좋아 보여서 웃음이 나온 거야. 클로에도 괜찮겠다 싶어서."
"···."
그제야 두꺼운 책을 꺼내 수업 준비를 마치고 개미만 한 작은 글자로 가득한 페이지를 힐끗 본 세리아는.
일분도 지나지 않아 피곤해지는 눈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냈다.
"리케. 우리 이번 학기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렇지?"
"2학년이 되면 실전 수업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연인관계인 그녀라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들은 게 있어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실전 수업이 사라지면 아카데미에서 무엇에 흥미를 1번으로 두고 배워야 할지.
세리아는 그게 벌써 걱정이었다.
"나도 몰라."
하지만 세리아의 기대와 달리 리케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에엥. 안 물어본 거야? 아니면 결정이 아직인가?"
"나는 그냥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갈 뿐이야."
그게 세상의 원칙이라는 양 강경하게 말하는 리케의 태도에 세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치."
역시 아직.
'오빠'라는 소리가 리케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
일단은 지겨운 이론 수업을 버티며 몸을 움직일 실전 수업을 기다릴 뿐이다. 관련 사항으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
"으으으-! 날씨 좋다!!"
숙소에서 나와 햇볕을 맞으며 앨리스는 찌뿌둥한 허리와 팔다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제는 누워서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드는 바람에 저녁도 먹지 못 한 상태.
책 때문에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잤더니 뻐근한 감각이 착 달라붙어있다.
근육을 풀어주자 허기와 함께 한 가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계약이 끝나면 다른 숙소로 옮겨야겠어.'
로만과 거리를 두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인사를 나누기는 거북하다.
주린 배를 숙소 식당에서 해결하면 편하고 좋았겠으나.
막상 로만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뭘 먹든 밥은 편하게 먹어야지.'
그 이후로 얼굴을 마주친 적은 없다 해도.
한밤중에 문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직 수도에서 생활을 하는 것 같다.
계약을 떠나서 정말 아니다 싶으면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방을 해지하는 경우도 생각은 해야겠지.
"하으! 모르겠다아~"
머릿속이 엉망이 되기 전에 숨을 내쉬어 칙칙한 일은 구석에 박아두고.
일단은 하루를 시작한다.
"푹 쉬었다. 그치?"
-시이익!
테로가 앨리스의 목소리에 긍정하며 꼬리를 흔들고 혀를 날름거렸다.
이리 쉬었으니 에델만에서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이 수도에서 무리하지 않았냐고 물어도 당당하게 무리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은 된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고 체력이 남아돌아 몸이 근질근질해도.
앨리스는 약속한 것이 있기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무리는 최대한 피했다.
부모님이 쉬면서 생활비로 쓰라고 돈까지 쥐어줄 정도였으니···.
'새로 시작하려면 준비할 것도 많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통증이야 퇴원을 할 때부터 없었기에.
앨리스의 입장상 오늘과 같이 양심의 가책이 덜어지는 날만 기다렸다 봐도 무관하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하루종일 뒹굴거나 마냥 놀지는 않았다.
환자였다고 정신이 풀려 누워만 있으면 몸이 굳고 감각이 시드는 법.
금 등급이 하기에는 격이 아주 낮은 의뢰도 보이면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는 채집의뢰를 산책 느낌으로 겸하거나.
문서 작성의 보조, 물품 배달과 같이 정말 간단한 것들을 하며 바깥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활력을 채워왔다.
툭! 툭!
"음!"
돌바닥을 때려보니 발목은 통증 없이 멀쩡하고 컨디션도 날아갈 듯 가볍다.
오늘부터는 등급에 맞는 의뢰를 찾아도 되겠지.
'그래봐야···.'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고 당장 오늘부터 의뢰를 진행하는 건.
무리일 확률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다.
혼자인 이상 파티도 구해야 하고 소속이 된다 해도 파티원들의 평판까지 조사해 봐야 하니.
그것들만 해도 시간을 꽤나 잡아먹을 예정이다.
이건 귀찮다고 빼먹으면 큰일 날 문제다.
모험가 사이에서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검증은 필수.
특히 여성에다 체형도 작은 자신 같은 경우에는 혼자 있을 때 꾼들이 한 번씩 찔러보기 마련이라.
저벅. 저벅.
부지런하게 일찍 나온 덕인가.
새로운 시작에 힘을 내라는 작은 위로인가.
유명한 빵집에서 딱 하나 남은 인기 상품을 산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근실히 발을 움직였다.
"으음~"
재료가 가득 찬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며 모험가 길드로 향하던 앨리스는.
고개를 기울여 삐져나온 토마토를 먹으려다 동작을 멈췄다.
"!"
분명 두 눈에 들어오는 건 바글거리는 행인들 뿐이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피와 감각은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찾아냈다.
-쉬익! 시싯!
테로도 어딘가를 보며 머리에 달린 싹을 빙글빙글 움직였다.
'아··!'
웅성거리며 움직이는 사람들의 사이로 보인다.
겁을 집어먹고 주위를 피하는 행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눈에 확 들어온다.
뒤에서 봐도 틈이 없는 모습과 대기를 일그러뜨리는 살벌한 기운.
저 분위기는 잊으라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다.
'마, 말을 걸어도 괜찮나?'
걸음이 빠지는 방향을 보면 목적지는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익!
테로가 전하는 의지대로.
기회는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는다고 오지 않는다.
그걸 잡기 위해서는 염치고 자시고 인사부터 냅다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저번과 다르게 행동에 제동이 걸리고 망설임이 생긴다.
앨리스가 어정쩡한 자세로 뒤를 쫓다 발이 굳는 기행을 몇 번 반복하니.
백금의 모험가 로만은 그 사이에 모험가 길드로 들어가 버렸다.
"···후우!"
가슴을 펴고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고.
시원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니 조금 정신이 든다.
'정신 차려!'
앨리스는 자신의 볼을 착! 착! 소리가 나게 두들겼다.
길드는 어차피 자신도 가야 할 장소 아닌가.
남은 샌드위치를 한입에 털어 넣고.
걸음의 속도를 높인 앨리스는 한발 늦게 모험가 길드로 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