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4 - 네 번째 유랑자 -1-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 게이트가 있는 영지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양손은 무신의 두 번째 가르침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다.
-본좌를 넘어보겠다?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난 아해구나.
무신이 미리 닦아놓은 형상과 족적을 뒤따르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청출어람을 기대한다며 부여된 두 번째이자 마지막 물질적 가르침.
[ 심(心) - EX ]
▷극에 도달한 의지를 현실로 꺼낸다.
의지를 현실에 반영시켜? 설명만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기스킬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여 가시 시키는 오러나 마법을 모두 포괄하는 해석에 가깝다.
내가 출장까지 가서 노트북 발열로 아지랑이가 생길 때까지 게임을 해왔지만.
SSS급도 아니고 EX등급을 가진 스킬은 본 기억이 없었다.
아카라이트 게임 자체에서 언급도 된 적 없는 등급의 스킬이라니?
그렇게 먼치킨을 꿈꾸던 시간도 잠시였다.
칙- 치직!
마나를 한 움큼 퍼먹고 형상을 이루려다 흩어진다.
"지랄 났다···."
애타고 답답한 마음에 속으로 해도 될 말이 입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신에게 받은 스킬의 등급과 설명만 보고.
꽃길만 펼쳐질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무안무치하고 몰염치했다.
이 스킬은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도만 해도.
나찰을 사용할 때와 비견할 만큼 마나 소모량이 극심하다.
말 그대로 마나가 뎅겅 뎅겅 썰려나간다.
심상에서 이 스킬을 전수받고 얼이 빠져있는 나를 본 무신이 가슴을 쭉 펴고 나불거리길.
-기본이 충족되면 오행(五行)까지 이어서 터득하거라.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면 보이지 않는 심검(心劍). 그것을 넘어서면 언젠가 심즉살(心卽殺)도 가능할 거다.
그 말과 나눴던 대화 중에 힌트가 있는지.
몇 번이고 기억을 되돌리며 연습을 이어갔다.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된다. 익히기만 하면···.'
스킬에 꼬리로 달린 해석을 보면 만능이라는 느낌이 풀풀 풍기고 사용법까지 머리에 들어있다.
하지만 설명서가 있다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별개.
만약 성공해도 실전에 응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후우···."
하다 보면 되겠지만 조급함과 막막함에 숨이 턱! 막혔다.
밤부터 지금까지 뜬눈으로 이어진 노력에도 아무런 견적이 안 나오는 이유는 알 것 같다.
'설명에 붙어있는 '극에 도달한'이 문제일 확률이 다분한데··.'
레벨과 같은 가시적인 수치가 없는 상황에서 저건 너무나 추상적인 설명이다.
이제 마나도 얼마 남지 않아 무력감이 몸을 지배하기 전에 포션을 또 한병 비워냈다.
한번 한번 스킬을 연습할 때마다 실패는 이어지고.
그때마다 내 상상의 빈곤함을 꼬집히는 느낌이다.
"···."
무신이 보고 낄낄 거릴 거라 생각하면 얼굴에 열이 오르고 쪽팔리기 그지없다.
*****
로버트는 과거라 하기도 애매한 시간을 회상했다.
'한 일주일 됐나?'
전에 납치를 당했다가 정신이 돌아와 풀밭에서 눈을 뜨고.
손목 발목에 남아있는 납치의 흔적에 실실 웃었다.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그렇다면 이제 뭐든 상관없다.
연방국과 크고 작은 다툼이 틈만 나면 일어나고.
뒷골목에 피 흘리는 시체나 부상자가 생기면 일단 물건부터 털어가는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
생명경시의 가치관과 낳아놓고 쓸모만을 요구하는 냉혈한 부모.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세상은 역시 싫다.
현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니 그 점이 더욱 부각되어 혐오감이 극에 달한다.
전생에 치안이 좋은 세상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신은.
평생 살아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로버트는 참으로 우습게도.
납치를 당한 그날 이후로 술이 없어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로버트의 마음은 좋은 방향으로 기울었고.
이대로 쭉 가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행복한 시간에 물드는 걸 허락하지 않고 냉혹한 쪽으로 움직였다.
로버트는 아이작이 잡아준 숙소에서 며칠을 지냈지만. 결국 지불해 둔 선금이 바닥나면서 밖으로 나와야 했다.
비싼 술을 물처럼 마신 과거로 인해 현재 주머니도 가벼운 상태.
'···어쩔 수 없나.'
숙식을 해결하고자 어쩔 수 없이 병결을 끝내고 아카데미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오랜만에 발을 들이는 아카데미에 도착한 로버트의 목적지는 당연히 식당.
식당으로 가기 전.
기사 학부 숙소에 들려 오랜만에 아카데미 정복을 꺼내 입었다.
불편한 팔 하나 때문에 옷 입는 시간이 배로 드는데. 이때마다 짜증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단추도 한 손으로 해결해야 하고 벨트나 지퍼도 마찬가지.
딸깍!
"···."
정복을 차려입고 전신거울 앞에 서보니 어딘가 괴상하다.
전에는 거울을 보면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조각상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상이 흐릿하고.
이목구비가 날카롭다기보다는 동글동글하니 부은 것처럼 보인다.
'배가 좀 나왔나··?'
전과 달리 몸이 꽉 끼는 감각이 드는 게 세탁이라도 잘 못 한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착각일 거라 믿는다. 이때까지 아무리 놀고먹어도 망가지지 않았던 천상의 육체 아닌가.
기숙사를 나온 로버트는 멀리 보이는 식당을 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았다.
"하."
명문 후작가의 장남이 배고프고 잠자리가 없어 아카데미로 돌아오다니.
실상을 아는 건 자신 뿐이라 해도 비참한 처지라는 실감이 떠나지를 않는다.
'돈 좀 보내달라 가문에 연락해 봐야 쌍욕만 한 무더기 먹겠지··.'
욕으로 배가 부를 바에는 차라리 아카데미 식당에서 배를 채우고 말겠노라.
··
··
식당에 들어서서 한 손으로 식사를 받아 자리한 로버트는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네?'
로버트는 아카데미에 있으면 끼니는 친구들과 나가서 해결하다 보니.
아카데미 식당에서 뭔가를 먹은 기억은 간식이나 음료 정도가 끝이었다.
"음~"
씹을수록 느껴지는 풍미. 식당의 요리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하긴 귀족들이 모이는 교육시설에 요리가 허접하면 안 되겠지.'
돈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밥 치고는 숙소에서 먹던 자극적인 안주보다 건강한 느낌.
앞으로 애용할지도 모르겠다.
덜그럭 거리며 어색한 팔을 움직여 두 그릇을 비운 로버트가 세 그릇째를 고민하는 도중.
반가운 얼굴을 한 무리가 보여 로버트는 손을 들고 목청을 높였다.
"야··! 메그너! 바스티!"
로버트의 목소리에 생도 무리의 고개가 돌아갔고.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키운다.
"로, 로버트?!"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서 그런가.
친구들 조차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 누구인지 몰랐나 보다.
어정쩡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을 보고 로버트는 궁금했던 이야기를 바로 꺼냈다.
"혹시 너희들 중에 아이작 소식 아는 사람 있어? 아직 병결 중인가··· 아는 사람?"
"""···."""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생도들의 눈동자가 흩어졌다가 로버트에게 몰려들었다.
"뭐야·· 반응이 왜 이래?"
눈치를 보던 인물들 중 하나가 근질거리던 입을 들썩이기 시작하면서.
로버트는 그제야 아이작과 말로이 가문에 일어난 변고를 듣게 되었다.
턱이 빠질 이야기를 듣고 나서 떠오르는 건 딱 하나.
아니 한 명이었다.
'설마··· 그 인간이··.'
말로이 가문이 당한 사건 모두 자신을 납치했던 그 미친 인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
'도대체 뭐 하는 새끼지?'
아이작에게도 상세하게 털어놓은 적 없는 비밀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
정체 모를 그 인물의 도움이 간절하게 필요한데.
언젠가 만날 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릴 만큼 두렵다.
"후··."
어딘가 오한이 드는 느낌에 로버트가 손을 벌벌 떨고 있으니.
바스티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조용히 물었다.
"로버트. 몸은 괜찮은 거야?"
"···몸이 아직 안 좋아서 수업은 빠진다고 전해 줘."
고개를 어색하게 끄덕이는 친구들을 지나 그릇을 그대로 두고 로버트는 자리를 떠났다.
'가서 잠이나 자자··.'
배도 부르니 침대에 눕고 싶다.
커튼을 열어 햇살을 맞으며 토막잠을 잔다면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지 않을까.
··
··
아이작의 얘기를 들은 시점부터 주의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기숙사에 들어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씨이발!!'
눈앞이 까맣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읍··! 으··읍!!"
덜컥. 덜컥.
전과 같이 눈을 가린 상태에 팔다리가 의자에 묶여있고.
이번에는 추가로 입에도 무언가를 물려놔 옴짝달싹 못하는 이 상황.
징조도 없이 납치를 두 번이나 겪는 인생은 고달프다는 말을 제외하고 설명할 단어가 있을까.
"지랄 그만하고 가만히 있어."
딱!
"···크읍!"
의자에서 벗어나려 하니 뒤통수를 후려치는 단단한 무언가.
로버트는 격통으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다.
시각이 차단당한 상태는 목에 비스듬히 달라붙은 차가운 쇠붙이가 선명하게 느껴지게 하고.
변조한 목소리는 누가 사용해도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겠지만.
살기 어린 분위기와 자비 없는 행실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구분된다.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
'이 새끼는 대화라는 걸 모르나? 그냥 정신병자인가?'
첫 번째 만남의 접선 방법은 어떻게 이해를 할지 몰라도.
본인이 갑인 걸 알면 두 번째는 격식 있게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만나도 되지 않나?
평범하게 편지 같은 걸 남겨서 만나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건지.
이렇게 악의적인 행태로 자신을 쥐 잡듯이 잡는 연유를 모르겠다.
"저번과 할 일은 똑같다. 의문은 가지지 말고 앞만 보고해라."
툭.
전과 같이 스크롤을 자신의 앞에 던져뒀구나.
그런 소리였다.
픽-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야가 돌아오고 몸이 자유로워지는 걸 느낀 로버트는 눈을 연신 깜빡여 초점을 잡고.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크롤을 제대로 펼쳐 마나를 부여했다.
쩌적-
스크롤에 마나를 부여하니 역시나. 허공이 갈라지고 파편이 떨어졌다.
"다음에는 쓸만한 정보를 하나 주지. 조용히 기다려라."
말을 끝으로 통증이 느껴지며 로버트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혼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과 같은 상황에 열이 뻗쳤다.
'미··친 새끼···.'
로버트는 컴컴하니 멀어지는 시야와 정신을 어떻게든 부여잡으려 했지만.
저항이 불가능한 기운에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