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32화 (232/250)

Chapter 232 - 로만은 끝!

"잠시 이야기 좀 할까?"

"어···."

그녀의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자신의 추악함을 확인하고 지탄하려는 것인지.

로만의 눈으로 봐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따라와."

"···."

앨리스는 말을 끝으로 로만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로만도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 방금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숙소의 문을 열고 나와 향하고 있는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앨리스의 뒤를 묵묵히 따르는 로만의 위치는 에델만에 있던 시절부터 고정된 것이다.

로만이 유일하게 앨리스의 앞에 서는 때는 전위를 담당하며 의뢰를 진행하는 순간 정도가 끝.

"밥은?"

돌연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움직임에 로만이 걸음을 급하게 멈췄다.

"머, 먹고 왔는데···."

"음~ 그럼 어딜 가지."

성인이라 칭하기엔 왜소하지만 수도를 당당하게 가로지르며 걷는 앨리스의 뒤를 따르는 지금.

둘이서 에델만을 휘저으며 지내왔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로 괜찮지?"

앨리스가 손가락질로 가리킨 가게는 모험가 길드 반대편에 위치한 선술집.

간판을 본 로만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

이유불명의··· 힘이 다 빠진 웃음을 보인 앨리스는 가게로 들어가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솔데는?"

"···다른 파티에 들어갔어."

앨리스는 그 말에 오히려 안심한 듯 웃으며 직원이 건네는 잔을 받았다.

"그게 맞지. 역시 이솔데는 모험가가 천직이야."

"···."

다음 질문이 무엇일지, 누구에게 향할지 직감한 로만은 초조함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앨리스는 길어지거나 답답해질 대화를 직감하고 잔에 있는 음료를 벌컥벌컥 비워냈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는 로만은 '긴장' 단 하나에 휘둘려.

목이 타들어 감에도 컵에 가득 담긴 액체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로만."

"그, 응!"

어영부영 답을 하는 로만의 속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에 부채질을 거듭하는 사실은.

바로 지금과 같이- 터지기 직전의 화산과 같은 조용한 분위기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는 것과 같은 이치.

모험가 파티의 리더로 지휘를 하며 다혈질에 가까운 성미를 보여주던 앨리스가.

조곤조곤하니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것이 로만을 더욱 몰아세웠다.

"내 앞에서 거짓말은 하지 마. 나한테 거짓말했다가 이때까지 안 들킨 적 있어?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뒤에 탈이 없을 거야."

"···."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앨리스는 피차 불편한 이 자리를 빠르게 끝내기 위해 빙빙 돌리지 않고 직진했다.

"이솔데처럼 다른 파티에 들어갔어?"

부정의 의미로 작게 고개를 젓는다.

앨리스는 눈앞에 보이는 소극적인 행동에서 짜증을 느끼며 눈썹을 찌그러트렸다.

"아니라고? 그럼 오늘 어디 갔다 온 건데?"

"그냥·· 은 등급 파티에 빈자리가 나서 돕고 왔는데. 아직 소속이 된 건 아니고···."

에델만에서도 로만은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끌고 가지 않으면 금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이해를 못 할 것은 아니라도. 이럴 거면 검술 길드를 버리고 모험가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을 따라 모험가를 택하긴 했으나.

진취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할 모험가와 로만이 가진 성향은 결이 다르다.

"그래. 뭐 그건 자유지. 마지막으로 이것만 답해."

"···뭔데?"

이 분위기에 목이 타는 건 로만만이 아닌지 앨리스는 연신 비어버린 잔을 습관적으로 들었다가 놓았다.

"왜 에델만에서 기다릴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았어?"

"···."

전과 같았으면. 불길처럼 날뛰고 로만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답을 재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도 교단의 회복실에 앉아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거듭하며 차갑게 머리가 식은 상태.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가정해 보자··· 가정이니 말뿐이라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에델만에서 기다리실 로만의 부모님에게 알렸을 거야."

"응. 그렇겠지··."

"모험가 파티의 리더라서가 아니라. 오래 알아왔고 가족을 아는 사이의 도리라 생각하니까."

그 이후로 입에 바느질을 한 것처럼 로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앨리스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내가 모험가 길드로 편지까지 보냈으니. 로만의 성격상 이 대답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거 아냐? 만났을 때 반응을 보니 수도에 이렇게 빨리 올진 몰랐던 것 같지만."

로만의 머릿속을 해부라도 해본 전문가처럼.

확신에 찬 앨리스의 말은 로만이 반박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였고 틀린 게 없다.

앨리스가 살아있다는 반가움에 더불어 잠도 설칠 만큼 생각이 복잡했던 나날들.

"로만. 다시 물어볼게. 왜 알리지 않았어?"

앨리스의 번들거리는 안광을 보며 로만은 깨달았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돌파구는 없겠구나.

혼자 마땅하다 여길 법하다 생각해 왔던 변명들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

"그, 그건···."

바닥에 시선이 고정된 채.

음료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어물쩍거리는 로만을 보며 앨리스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거짓말 없이 솔직하게만 말해. 그럼 화 안 낼 거야."

상대가 화를 내지 않겠다는 말이 어떤 신호인지 모른 채.

로만은 앨리스의 말을 믿고 발악을 담아 과거라 하기도 민망한.

얼마 전의 시간을 끄집어냈다.

"에델만에 전하지 않으려던 게 아니라 ···!"

물질적인 사항보다는 정신적인 마모.

나름 자신이 모험가 길드를 오가며 노력했다는 어필까지.

이름은 같아도 대척점에 서 있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변하지를 않는구나.'

듣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대인관계에 있어 슬라임처럼 물렁하고.

어딘가 덜떨어진 여우 같은 로만의 내면은 알고 있었기에.

로만이 입으로 내는 소리는 앨리스의 예상을 일절 벗어나지 않았다.

'겁쟁이··.'

결국 부모님에게 알리면 어떤 비난과 욕설을 들을지 너무 두려웠고.

감정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시작점에서.

조금 더 있었으면 에델만에 연락을 하려 했다는 마무리까지.

"그래. 그렇구나."

"응··· 진짜 미안."

"로만은 예전부터 아빠를 무서워하긴 했지."

이 말이 앨리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해.

미사여구 가득한 로만의 얘기를 들으며 앨리스는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이제 오래된 인연을 이해하고자 깊이 생각하는 노력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로만. 지탄받고 손가락질당하는 건 누구나 두려운 거야. 그걸 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고."

"미안···."

반성은 하고 있는 로만의 얼굴을 본 앨리스는 몸의 힘이 쑥 빠지는 걸 느끼며 노곤함에 휩싸였다.

'그래. 로만은 저거면 됐다···.'

몰아세우며 이 이상 말해봐야 이제 자신과는 연이 없을 것이니.

에델만에서 일상을 보내던 부모님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자신이 얼마나 허무한 감정을 느꼈는지.

이런저런 불만들은 전해봐야 입만 아프고.

굳이 전할 이유도··· 이제는 느끼지 못했다.

자잘한 감정의 잔재를 싹 비우고 속을 깔끔히 정리한 앨리스는.

조용한 방에서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에 자리를 끝맺기로 했다.

"그래··· 그거면 됐어. 궁금증은 다 풀렸으니 갈게."

드륵!

"애, 앨리스!"

자리에서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앨리스를 보며 로만도 허겁지겁 검을 챙겨 일어났다.

불길한 직감.

이대로면 앨리스와 정말 끝이라는 강렬한 느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앨리스가 평소와 같이 화를 냈다면.

앨리스는 시간이 지나 그때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자신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고.

관계는 예전과 같이 무난하게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느낌이 아예 달랐다.

"잠깐만··!"

따라오며 뭐라 말을 토해내는 로만을 돌아보지도 않고 계산을 끝낸 앨리스는.

바깥에 나와 맑은 하늘을 시선에 담아 한숨을 길게 푹- 내쉬고.

속에 있는 응어리의 해소와 정리가 끝나 후련해진 마음으로.

로만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웃었다.

"알아서 잘 살아. 혹시 길드나 숙소에서 마주치면 인사만 하면서 지내자. 일부러 피하면 서로 귀찮고 신경 쓰느라 피곤하기만 하잖아?"

"···."

여러 방안과 앞으로의 행적을 들며 앨리스를 잡으려 했던 로만은.

자신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 체념의 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뭐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

은 등급 의뢰만 계속해도 위로 갈 수가 없는 것이지.

죽을만한 상황이 거의 없는 메리트도 있으며 돈도 풍족하진 못해도 부족하진 않을 거다.

'알아서 잘 살겠지.'

숙소로 바로 돌아가면 혹여 얼굴이 또 마주칠까.

잠시 산책을 하기로 한 앨리스는 평소 의뢰에 치이며 가보지 못한 방향으로 발을 움직였다.

"오오~"

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5 기사의 웅장한 저택도 한번 구경해 주고.

덜 익어서 풋풋한 빛이 도는 사과를 먹으며 안으로 무작정 향했다.

'저런 저택은 얼마나 할까?'

생기가 돌고 관리가 잘 되어 사람냄새가 나는 저택이 눈에 잡혔다.

5 기사의 저택만큼 크고 성대하지는 않지만 위치는 여기가 더 좋다고 느껴졌고.

가까이서 보고자 몇 걸음 향하니.

-시익?!

의미 불명의 울음소리를 낸 테로가 갑자기 머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 뛰더니 저택의 창살 사이로 기어들어갔고.

앨리스는 급하게 손을 뻗어 꼬리라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테로! 요즘 자꾸 이럴 거야? 혼난다?"

아무리 정령이 장난꾸러기라 해도 평소에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테로의 돌발적인 행보를 보며 앨리스는 정령이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많은지 체감하고 있다.

테로를 믿고 계약을 너무 헐겁게 해줬나 싶은 요즘이다.

"아··! 정말!"

탁! 탁! 탁!

계약자가 가진 느낌을 따라 발을 움직여 저택의 담벼락으로 향했고.

감각으로 테로가 어디 있는지는 대략적으로 알겠다.

담을 빙 돌아 위치를 잡으니 벽 바로 뒤에 테로가 신이 나서 놀고 있는 게 느껴진다.

풀소리와 잎이 스치는 소리. 관리가 잘 된 양질의 흙.

'화단이구나!'

잠깐 넘어가서 테로를 꺼내야 하나? 그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생각이 많아져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붙이고 있으니.

명확하게 자신을 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깜짝 놀란 앨리스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보석 같은 자색 눈동자와 얼굴에 십자 흉터가 있는.

아름다운 소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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