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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25화 (225/250)

Chapter 225 - 던전 조난 -3-

공포로 굳었던 다리가 앨리스의 내동댕이로 풀어지니.

로만의 다리는 던전을 벗어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날쌔게 달리는 이솔데의 등만을 보며 로만은 미친 듯이 내달렸고.

물벼락을 맞으며 폭포의 바깥까지 나와 타우가 없는 현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허리를 숙여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쉬었다.

"학-! 후욱-!"

숨을 내뱉으면서도 동굴에서 타우가 뛰쳐나오지 않을까.

고개는 어두운 입구에서 떨어지지 못했고.

호흡과 정신이 돌아와 허리가 펴지자 로만은 바로 옆에 누군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애, 앨리스는?"

질문에 돌아오는 건 이솔데의 타박이었다.

"이 멍청이가···! 앨리스가 없으니 파티는 이제 끝! 보고를 끝내면 해산이다!"

타우에게 쏘려고 시위에 먹여둔 화살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진 이솔데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물어 빠득- 소리를 냈다.

그것으로 감정의 끝을 맺었는지 혀를 차며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발을 움직였다.

그대로 쉬지 않고 움직여 도착한 장소는 영지의 자그마한 모험가 지부.

문을 부술 기세로 들이닥친 이솔데와 로만이 사실을 전하니 행방불명되었다는 앨리스에 대한 관심은 뒷전.

타우가 건너올만한 길이 끊어졌다는 말에 영지의 모험가들과 길드의 직원은 되려 안심한 얼굴이었다.

이솔데는 지부의 분위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지만.

로만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분노에 붉어진 로만의 얼굴을 본 이솔데가 어깨를 잡아 현실을 보여줬다.

"모험가라는 게 당연히 그런 존재 아닌가? 앨리스는 결국 저들에게는 남. 큰돈을 받고자 움직였던 한 명의 모험가다."

"···."

"우리 모험가는 단순한 소모품이라 납득하고 살아가지. 이런 대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위로 가고자 발버둥 치는 것이고."

다른 모험가들이 행방불병 되거나 죽었다 들었을 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넘기는 경우나 마찬가지라며.

이솔데는 로만의 말문을 원천봉쇄시켰다.

"아무튼 리더인 앨리스가 그렇게 됐으니··· 지금 파티는 두말할 것 없이 끝이다. 천운이 닿아 돌아올지도 모르는 앨리스를 기다리는건 자유다."

하지만 자신은 수도로 돌아갈 거라는 이솔데의 말에 로만은 고민을 하다 뒤를 따랐다.

'수도! 수도의 지부라면 다를거야··!'

그곳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로만이 이솔데와 마차에 몸을 실었다.

····

조바심에 손톱이 거덜 난 채로 돌아온 수도는 경비대가 횃불을 자랑하며 돌아다니는 한밤중.

그는 뒤에서 뭐라 말하는 이솔데를 무시한 채.

밝게 불이 들어와 있는 수도의 모험가 지부로 달려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자 접수원을 대면했다.

"무기를 들고 있었다면 일반적인 타우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해지는군요. 이솔데님의 의견이 취합된다면 그때 의뢰 내용을 추가 수정하겠습니다."

"분명 달랐어요! 제가 타우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무기를 다루는 놈은 처음이라고요!"

자신의 절절한 호소를 들으며 접수원은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해당 사항에 대해 메모를 휘갈긴 접수원은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타우의 갈기 형태나 색은 보셨습니까? 뿔에 장식이 있었다거나. 돌기둥에 숭배하는 대상이나 상징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손톱만 한 영지의 접수원과 차별점이라 하면 몬스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수도의 모험가 길드도 결론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의뢰에 대한 정보만 뽑아내려는 행동.

욱하는 마음에 로만의 목청이 올라갔다.

"외견은 자,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저희 파티의 리더가 사라져서 도움을 받고 싶은 겁니다!"

수도 지부에서 일하며 이런 경우를 백번은 넘게 경험한 접수원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사무적인 얼굴로 의뢰를 작성할 종이와 펜을 함께 내미는 행동이야말로.

현 상황에 대한 접수원의 모범 지침이자 업무.

"모험가님. 구출이나 수색 의뢰를 내시려면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지명으로 하시겠다면 금액에 따라 인원을 선정해 드리겠습니다."

"···그!!"

"추가적으로 필요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답해드리겠습니다."

냉랭한 태도에 항변하려던 로만의 입이 굳게 닫혔다.

접수원은 모험가가 행방불명된 상황에 어설픈 공감이나 슬픔을 표하지 않았다.

목숨이 어떻든 그것조차 업무의 일부라는 느낌.

딱딱한 모험가 길드의 대응을 보며 로만은 냉혹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장소는 금 등급으로는 부족한데···! 처, 청금에게 의뢰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죠?"

"마침 모험가 수색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접수원이 기다렸다는 양 건네는 서류를 낚아챈 로만은 글을 읽어내려갔다.

리더가 청금이고 나머지는 금 등급인 파티.

화려한 구조경력과 높은 성공률이 로만의 눈에 잡힌다.

'이 모험가들이라면!'

분명 앨리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희망에 입꼬리를 올리며 서류의 마지막 장을 넘겨.

"···."

최소 의뢰비를 본 로만의 눈앞이 까맣게 타들어갔고.

로만의 눈동자를 본 접수원이 서류 하나를 더 내밀었다.

"청금이 부담스러우시다면 금 등급의 파티도 있습니다."

··

··

한 단계 낮춰 금등급 모험가들로 이루어진 파티의 가격도 자신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어디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력이 첫째요.

두 번째는 돈.

지독하게 원망스러우면서 간절하게 필요한 돈.

먼 곳의 영지까지 파티를 불러 무기를 다루는 타우를 상대하고 사람까지 수색해야 하는 의뢰.

그 전부에 능한 청금의 모험가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델만에서 살아온 로만이 생전 만져본 적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했다.

결국 금전이라는 1차적인 관문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어중간하게 있는 주머니를 털어 다시 게이트를 타고 마차에 몸을 실어 영지로 향한 뒤.

자신이 수도로 자리를 비운 사이 앨리스가 혹여 돌아오지 않았을까.

허황된 기대를 품고 영지의 모험가 길드에 재차 방문했고.

허탕을 치자 발은 자연스레 폭포로 향했다.

퐁!

의뢰 장소로 돌아가 무너진 복도에 횃불을 던져 말도 안 되게 거센 물살을 실감하니.

"···."

저 장소로 뛰어들 용기도 각오도 들지 않았다.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 눈물만 흘리며 날을 지새워 보는 정도가 최선.

폭포 아래 어두운 동굴에 앉아 그 많던 나뭇가지 중 마지막 장작을 넣었을 때.

눈물로 퉁퉁 부어 초점을 잃은 눈을 한 로만은.

막연하게 앨리스가 돌아올 거라 믿던 현실을 사그라드는 모닥불과 함께 지우고.

현실적인 고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푸하!"

힘차게 물을 뱉어내는 소리는 앨리스가 낸 게 아니다.

물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더니 여유로움을 뽐내며 지면에 착지했다.

"···?"

검은 케이프를 돌돌 말아 바닥에 누워있던 앨리스의 멍한 시선에 남성의 근육질 나신이 잡혔다.

바위도 굴려낼 거센 물살을 뚫고 사람이 올라온 상황.

앨리스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피로와 절망감에서 오는 허상이 아닐까 싶었다.

'꿈인가? 당연히 꿈이겠지··?'

허상 혹 꿈이라 믿을 만큼 어이가 없고 신기한 점은.

물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인물이 일면식이 있는 얼굴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안 사라져··?'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변하는 표정까지 너무 선명해 앨리스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누가 있나 했더니. 왜 여기 있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를 듣고.

앨리스가 현실을 자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으읏··! 끅··!"

기력 없이 누워있는 앨리스가 꿈틀거리며 울음을 터트리자.

당황한 표정을 한 로만이 앨리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히이잉··· 흐윽!"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로만은 성수를 꺼내 검은 케이프 위에 부었다.

"눈 감고 있어."

"··킁."

사치스러운 몸 세척이 끝난 다음은 흙과 눈물로 꼬질꼬질한 얼굴.

출발 전에 구입한 깨끗한 천에 성수를 축축이 적셔 앨리스의 얼굴을 닦으며 성스러운 세수를 끝내고.

텅 비어버린 성수병을 물살에 던진 로만이 포션을 꺼냈다.

"직접 마실 수 있겠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의 상체를 조심스레 일으켜.

포션을 들이미니 아기새처럼 입을 움직이며 쫄쫄 흐르는 액체를 열심히 받아 마신다.

종류에 따라 포션을 다수 비우자 앨리스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건드려도 느낌조차 없던 발목에 재차 시큰거리는 통증이 도래하니 그 감각조차 반가웠다.

다시 그렁그렁 해지는 눈망울.

울음으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입술을 앙 다물고 참는 표정을 본 로만이 피식 웃었다.

"···고생했다. 이제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듣는 순간.

꾹꾹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하며 앨리스는 양팔을 뻗어 로만에게 매달렸다.

"흐윽! 감사해요··! 저 지, 진짜 이대로··· 죽는다고··! 끅··!"

"혼자 여기에 있었으면 무서웠겠어. 나라도 울었겠다."

로만은 자신의 목에 매달려 서럽게 우는 앨리스의 등을 두들겨줬다.

이런 진지하고 감동적인 상황에.

매일 해결하지 못하고 쌓인 성욕에 아랫도리에 피가 몰려 움찔거린다.

'아··! 미친.'

가까이서 느껴지는 앨리스의 체향은 강렬했고.

마구잡이로 안겨드는 소녀가 귀에 흘리는 목소리는 묘하게 음심을 자극했다.

"흐이잉···! 끄흡··!"

잊지 못한 전생의 애국가를 속으로 제창하는 동시에.

입으로는 기계적으로 위안을 하며 앨리스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울음을 그친 소녀의 정신은 자신이 남성의 나신에 안겨있다는 걸 깨닫게 했고.

시선은 앨리스라는 주인의 제어를 벗어나 무의식적으로.

아주 잠깐이지만.

로만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찰나에 자신의 시선이 움직인 방향을 느꼈는지 은인의 입이 열렸다.

"···잠시 옷 좀 입자."

"아! 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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