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4 - 던전 조난 -2-
'음식이야 아직 충분히 있고···.'
짭짤한 육포를 씹으며 나무 위에서 보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영지.
들릴 생각은 없어 바로 숲에 발을 들여 폭포를 찾아 나섰다.
소식은 수도 모험가 길드에서 지나가듯 접한 적이 있었으니 던전은 확실히 있을 터.
자그마한 영지에 오크 정도는 간식처럼 씹어먹는 타우가 나타났다?
영역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변종 티도 안나는 깔끔한 상태의 타우 단 '하나'?
개체 한 마리 한 마리가 무식하고 난폭한데 군체까지 이루는 습성을 가진 몬스터의 등장.
울면 울어야 할 긴급 상황이지 웃어넘길 사건은 아니라 수도까지 정보가 닿았었다.
백금에게 올라올 사안은 아니라도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게임에서 들린 장소였기에 과거 조사 의뢰를 본 기억이 확실하게 있다.
그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아 잠잠해져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타우는 잊혀졌을 것이다.
경각심을 일으키는 두 번째 타우가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모험가들이 폭포에 들이닥쳐 던전이 해결됐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기존 던전의 끝에 있는 보상이라 해봐야.
'양손 도끼였나?'
내 기준에서 챙길 무기가 아니다.
기본 보상도 허접.
히든 피스도 전투와 관련 없는 애매한 물건.
아카데미 유성우를 보기 전까지는 없을 거라 믿고 버려둔 상태였다.
··
··
지도도 없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상태가 아니라 예상보다 시간은 걸렸지만.
로메리우스의 영약으로 발달한 감각 덕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쏴아아아-
대량의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귀가 즐겁고 시원했지만.
'그리 장관은 아니네.'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며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을 셋과 나중에 여행 올 만한 장소도 고르는 중이었지만.
여기는 후보에서 제외.
모이면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이 주가 되는데 애매하게 물소리가 크기도 하고.
폭포라는 이름에 웅장한 소리와 바위도 깎아내릴 물줄기를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크기 아닐까.
얼른 끝내고 다음 지역으로 움직이기 위해 폭포로 다가가니 습한 냄새가 코에 담긴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다리 사이에 막대기 덜렁거리며 돌아다니기에는 그렇지.'
어차피 나중에 나신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적인 선과 양심이 있는 법.
부츠와 웃통만 벗어 인벤토리에 넣어둔 뒤 물가로 들어가 첨벙첨벙 발을 움직여 전진했다.
폭포의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아래에 서서 내려 꽂히는 시원한 물벼락을 맞으며. 멍한 기운을 날리고 정신을 날카롭게 깨웠다.
아직 피로나 수면 부족의 끝에 몰렸다기에는 체력이 남아 이도저도 아닌 몸상태.
탁탁 소리를 내며 몸을 때리는 수압이 기분 좋다.
"아아아~!"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가글로 텁텁한 입안을 헹궈내고.
더불어 피와 땀이 엉켜 찝찝하던 살갗까지 닦아내 머리를 뒤로 완전히 넘겨 이마를 깐 상태로 돌입.
맑아진 정신 상태로 물을 뚝뚝 흘리며 성큼성큼 나아가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동굴이 보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익숙한 흔적들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야영이라도 한 건지 불을 피운 까만 자국에.
버려진 화살이라던가 검과 같은 날붙이가 바닥에 끌린 흔적들.
이미 모험가들이 던전에 진입했었는지 왕복을 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다.
'그래·· 벌써 다 왔다 갔겠지.'
다른 모험가들이 클리어했어도 상관없다.
히든 피스가 있는 진짜 루트는 떨어진다 해도 어지간하면 살아서 도달할 수 없으니.
이러고도 누가 거기까지 도착해 히든 피스를 가져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저벅. 저벅. 저벅.
생각을 정하니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동글의 끝지점에 발을 깊게 넣자 공기와 분위기가 변했고.
그대로 쭉 들어가니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네모난 벽돌로 만들어진 복도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던전에서 제일 중요한 '그 장소'.
'기다리고 있으면 돌기둥을 든 타우 한 마리가 달려와서···.'
딜이 된다면 무슨 짓을 해도 병적으로 바닥만 부수려는 타우를 빠르게 잡아도 된다.
별개로 공략을 안 보고 도달했다면.
대부분은 거리를 두고 갑자기 등장한 기형 타우가 무슨 짓을 하는지 패턴을 보다가.
무너진 복도를 장비로 넘어 보스까지 향하는 게 제일 무난하고 유력하다.
아니면 멍하니 있다가 바닥이 부서지고 그대로 물에 빠져 히든 피스가 있는 곳에 도착하거나.
딱!
거기가 어디인지 지금처럼 발을 내딛으면 안다.
인식하고 있으면 느껴지는 불안정한 바닥.
'그 장소'에 도착하고 잠시 기다려봤지만 타우는 오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앞에 먼저 온 누군가에 의해 던전 바닥은 정해진 기믹대로 박살이 나있었으니.
사아아아-
박살 난 공간 아래에서 들리는 선명한 물소리를 들으며 턱을 긁었다.
고민 또 고민.
'기존 루트로 가보는 건 대놓고 시간 낭비겠지?'
안은 몰라도 던전 입구에 모험가들이 몇 번이고 왕복한 흔적이 있는데 줍지도 않을 허접한 보상 실물로 보자고 안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클리어된 상태로 몬스터 사체만 남아있다면 허탈함 밖에 더 들겠는가.
그나마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은 히든 피스로 바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옷을 훌렁훌렁 벗어 인벤토리에 넣고 알몸이 된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몸을 어둠 속으로 내던졌다.
풍덩!
미친 듯이 흐르는 차가운 물살에 '로만'이라는 거대한 불순물이 끼어들었다.
*****
옷의 물기를 최대한 짜내고 마나는 모두 체온을 지키는 쪽으로 돌린다.
물에 빠진 생쥐꼴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
젖은 상태로 꽉 끼는 부츠를 신고 있으니 다리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와 부츠를 벗으려니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손수 부츠의 줄을 하나하나 풀어낸 뒤 찢어버리듯이 벌려 겨우 발을 빼냈다.
"윽···!"
발목 부분이 기형적일 정도로 퉁퉁 부어올라 감당이 안 되는 상태.
시간이 지나 정신이 가라앉으니 통증이 격해지며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일어나 봐야 여기서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시이익!
"테로···."
위로하려 자신의 주위를 뛰어다니며 애쓰는 테로를 쓰다듬을 뿐. 빈말로라도 자기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앨리스의 정신이 부러지지 않게.
테로는 열심히 네 발을 버둥버둥 움직여 재롱을 떨어왔다.
"고마워··."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만 울리는 어둡고 고독한 공간에 자신 이외의 존재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
그것만이 앨리스에게 할당된 유일한 위로였다.
등을 붙이고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으니 앨리스의 몸이 바닥으로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피곤해. 졸려.'
습하게 물기가 남아있는 검은색 케이프를 끌어와 몸을 감싼 채로 앨리스는 돌바닥에 누웠다.
기분은 정반대라도 떠오르는 기억은 행복했던 과거. 수영을 하루종일 한 날이 떠오르는 피로감.
테로를 품에 안고 앨리스는 그대로 수마에 정신을 던졌다.
····
"으음-"
얼마나 잔 걸까.
더욱 심해진 발목 통증에 눈이 절로 떠졌다.
딱딱한 바닥에서 눈을 감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공간.
푹 젖었던 옷이 마르고 바닥을 적신 물기까지 마른걸 보니 몇 시간은 가볍게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하-"
왜 눈이 떠진 걸까. 야속하다.
이대로 어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좋았을걸.
부모님을 찾으며 흘리던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누워서 멍하니 벽만 보고 있었다.
살짝 시선을 내려 품에 있는 테로를 보니.
"···."
계약자의 영향이라도 받은 걸까 힘없이 골골거리며 눈을 감고 있는 테로를 보니 가슴이 쿡쿡 찔려 조용히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다··· 아빠가 직접 만들어준 침대도 편했는데···.'
자신의 죽음은 여기서 천천히 굶어 죽는 아사인가?
아니면 저 문이 열려 몬스터에게 잡아 먹히는 최후일까.
모험가를 업으로 삼는 모두가 불시에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각오를 하겠지만.
그 누구도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가정하는 모험가는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욕망을 쫓는 모험가라 할지라도.
최후라 하면 다들 부끄럼 없이 무용담으로 전해질 멋있는 내용과 장면을 상상하겠지.
음유시인의 영감이 될 화려한 격전을 벌인다던가.
책에 실려 제국민들에게 교훈과 격언을 설파하는 주인공으로 뽑힌다거나.
대단한 업적을 세워 꿈나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자 용기가 되는 것도 좋겠지.
'그래. 그런 마지막이면 좋잖아··.'
생명 활동을 정지하고 재로 돌아가는 순간에 낭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이런 마지막은 싫었다.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
며칠을 굶어도 크게 이상 없을 육체의 복부가 뒤틀리는 허기를 느끼고.
정신이 마모되는 감각에 눅눅하게 절여졌다.
아파서 죽을 것 같던 발목의 색이 푸르뎅뎅하니 변해 통증을 넘어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게 정말 죽음이라는 단어를 여실히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따위로 굶어 죽느니 그냥 기어가서 문을 열어 빠르게 편해질까 고민을 하던 중.
"푸하!"
흐르기만 하던 물살을 뚫고 알몸의 남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