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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22화 (222/250)

Chapter 222 - 수도 밖으로

마지막 한입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씹으며 새벽의 수도를 걸었다.

제국의 심장이라는 수도도 잠잠하다 하기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횃불을 들고 다니는 경비대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전과 달리 선술집에서 은근하게 시간을 보낸다든가 하는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길드.'

해가 떠 있지 않은 시간에 모험가 길드는 훨씬 시끄럽고.

여신님이 눈을 감고 있다 여겨지는 이 시간에 교단은 더욱 엄숙하다.

저택에 내가 없을 때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소모품의 대부분을 쌓아두고 나왔기에.

성수나 포션, 붕대 같은 소모품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아카데미 수업까지 달려볼까.'

애초에 저택을 나선 순간부터 돌아오기 전까지 잔다는 생각은 버렸다.

최근에는 수도 안에서 상주하는 시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경험하려 해도 할 일이 없었지만.

리케를 만나기 전까지 수도 밖에 있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당시.

의뢰 강행군으로 수면을 줄이고 피로가 쌓여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순간.

그때야말로 몬스터나 수배범을 추적하고 사냥하는데 최고의 상태라 느껴지곤 했다.

이번 기회에 신체 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물론 좋긴 하겠지.

그래도 이번 여행에선 우선순위가 조금 다른 것이. 내 속에 있는 내면을 꺼내 더 자세히 보고 싶다.

'예전에 뭐라 했더라···?'

라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진지한 얼굴로 이런 예시를 들곤 했다.

-몬스터나 짐승이 함정에 빠져있거나 주위에 먹을 게 없어서 하도 굶으면 침을 질질 흘리고 눈깔이 번들번들하니. 응? 그때가 진짜 조심해야 되잖냐.

허기와 궁지에 몰림으로 생기는 거친 야성··· 그럴듯한 말이지만.

결국 돌려 돌려 나를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나 짐승들과 비견한 거 아닌가.

'생각해 보니 많이 괘씸한데?'

선술집에 있으면 뒤통수 한 대 때리고 화를 풀어야겠다.

모험가 길드는 이 시간에도 창문과 반쯤 열린 문틈으로 빛과 시끌벅적한 인기척을 발산하고 있다.

퉁!

발로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니 정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단 아래 선술집에서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올라오고.

접수원 자리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남자가 코에 얹어둔 안경이 흐트러질 정도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로만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접수원의 근무 시간표는 모르지만,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지금과 같이 남자 접수원이 있을 때도 있다.

인사에 손을 까딱여 간단히 받아주고 바로 용건을 꺼냈다.

"내 앞으로 온 물건 없어?"

원래는 교단만 들리고 떠나려 했지만.

어린 수녀님이 모험가를 그만두고 선술집까지 찾아온 날.

소모품을 보내주겠다던 성녀 호위의 말이 떠올라 들렸다.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많은 서류철 중 하나를 망설임 없이 꺼낸 접수원은 종이를 주르륵 넘기다 한 페이지를 잡고.

한 손으로 안경을 잡아 눈알을 빠르게 굴리더니 사무적인 목소리로 답을 낸다.

"교단에서 로만님 앞으로 보낸 물건은 현재 길드에서 별도로 보관 중입니다."

"바로 꺼내."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

한마디 더 얹을 필요가 없는 건조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든다.

상자를 하나씩 들고 오는 접수원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계단 아래 선술집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에 라크 파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릴리네야 조용해서 목소리가 들릴 일이 드물지만 라크는 목청 큰 것 말고는 장점이 없는 놈인데.

"라크는?"

혹시나 하는 물음에 주위를 한번 둘러본 접수원은 목소리를 최대로 줄였다.

"···현 금 등급 모험가는 대부분 의뢰를 나간 상태입니다."

저 정도로 알려주는 것만 해도 백금에게 해주는 특별대우나 다름없다.

완곡한 정보지만 확실한 대답.

실종이나 돌아오지 않는 모험가 구조 의뢰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의뢰인지 묻는 건 내가 물어봐도 알려줄 리 없다.

'운이 좋네.'

오늘 선술집에 있었다면 강도 높은 진심 괴롭힘을 보여줬을 텐데. 실로 아쉬운 일.

"이 상자로 마지막입니다."

"고생했다."

물건을 받았다고 종이에 지장을 찍어 접수원을 돌려보내고.

튼튼한 상자를 잡아 뜯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야-!"

성녀와 같이 있던 그 성기사는 예상을 넘어서는 고급스러운 소모품들을 한가득 보내왔다.

하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제일 단순하면서 쓸 곳이 많은 붕대 같은 것을 사러 결국 교단에 들려야 한다는 점.

그런 가벼운 소모품은 다른 가게에서도 판매는 하지만 역시 질 좋은 게 필요하니.

····

수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릴 장소는 교단.

어스름하니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제국의 수도.

지금은 교단의 경비도 평소의 배로 늘어나기에 들어가는 절차도 상당히 귀찮다.

때문인지 물건을 구입하려면 반대로 제일 편한 시간.

모험가 패로 간단한 질의를 통해 목적과 신분을 증명하고 내부로 들어서자.

바깥에 비해 안에 상주하는 인원은 밝은 시간의 반 정도.

지나가며 교단의 사제, 수녀와 간단히 목례를 하며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조용하네.'

해가 완전히 뜨지 않으면 다들 침묵을 지키는 편.

마주치는 인물마다 형제님~ 형제님~ 하며 말을 걸지 않아 좋았다.

저벅. 저벅.

고급스러운 복도 바닥과 밑창이 딱딱한 부츠가 닿으며 소리를 낸다.

클로에와 갔던 기도실이 있는 방향과 정반대.

악마와 한바탕하고 입원했던 건물까지는 아니라도 그쪽 복도로 가야 자잘한 소모품을 구입하는 장소가 나온다.

병실이 모여있는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일자로 뚫려있는 골목을 타고 환자들이 고통을 참으며 앓는 소리도 들린다.

'···?'

복도 모서리를 돌아 계산대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을 껌뻑였다.

그 많은 사제와 수녀들이 돌아가며 근무를 서는 장소라 매번 일면식이 없는 얼굴들만 앉아 있었는데.

이름까지 기억하는 익숙한 수녀가 앉아있는 건 처음이었다.

"흐므···."

자리에서 책을 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글동글한 얼굴.

보기만 해도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인상은 각박한 시대상에 실로 필요한 인재가 아닌가 싶다.

'이름이 슈엘이었지.'

성녀가 직접 대동하여 모험가 길드까지 찾아올 정도였으니 이름이 기억에 선명하다.

대단한 분과 커넥션이 있으면서 왜 그 당시 모험가를 했었는지 모르지만.

발소리를 줄여서 코앞까지 가보니.

이 시간에 근무를 서며 공부까지 하고 있었는지.

펜은 쥐고 있는데 눈은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작은 입도 살짝 열려 있는 상태.

책에 필기한 글씨가 끝에 꼬리를 달고 주욱 늘어져 있는 게 설명 한 글자 없이 딱 봐도 알겠다.

"오랜만입니다. 수녀님."

목소리에 멍한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현실을 파악하는 순간 눈동자에 생기가 팟! 터지며 돌아온다.

"에···? 모, 모험가님!!"

깜짝 놀라 목청을 높였다가 슈엘은 작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붕대와 깨끗한 천을 사러 왔습니다."

"혹시 다치셨나요?!"

자리에서 일어나 까치발을 든 수녀가 내 몸을 이리저리 확인하느라 낑낑거렸다.

"전혀 아닙니다. 수도 밖으로 나가야 해서 준비를 하러 왔습니다."

평소라면 짧은 답과 물건만 받고 교단을 벗어나고 남았을 텐데.

물건을 다 받고도 자연스레 대화는 이어졌다.

모험가를 그만둔 그날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책을 보여주는 슈엘의 이야기에 몇 분정도 귀를 기울여 줬다.

거기에 대다수가 알지만 나만 모르고 있던 소식도 하나 주워들었고.

'성녀도 4기사 일이 해결 됐으니 수도에 있을 필요가 없긴 하지.'

그 몸을 이끌고 이미 수도를 떠난 상태.

순례를 떠나기 전에 기도회까지 했다니 대단한 정신이었다.

'이제 볼 일은 없겠네.'

애초에 그녀의 행선지도 모르고 만나야 할 이유도 없다.

모험가 생활을 하며 여기저기 들쑤시는 때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

받은 물건에 대한 감사를 슈엘에게 언젠가 전해달라 부탁하고 교단을 벗어났다.

*****

작은 영지의 간판 모험가는 금 등급인게 대부분.

하여 '최소' 금 등급의 모험가를 필요로 하는 의뢰가 근처에 발생했을 때는 시련 그 자체라.

해당 모험가 지부와 영지는 재앙을 마주한 난감함과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해당 영지에 있는 모험가 길드에 의뢰를 발주하면서.

수도에 있는 모험가 지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으로 동시 의뢰를 넣는 경우가 대다수다.

게이트 비용부터 자잘한 지원까지 해줘야 하니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고 힘없는 영지나 마을일수록 정말 급할 때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지키려는 편이다.

이번에도 크게 다를 것 없이 그런 부류.

게이트는 중간에 있는 영지까지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마차를 타야 하는 위치.

한숨이 푹 나오는 일정이지만 어쩌겠는가.

수도에서 의뢰를 받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땅덩이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던 앨리스 파티는 하루를 지낸 뒤에 움직이기로 했고.

그녀는 평소보다 불편하고 어색한 잠자리에서 이른 시간에 눈을 떠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앨리스의 목소리에 촉촉한 흙을 담아둔 화분에서 테로가 얼굴을 내밀었다.

-시이익.

"테로. 잘 잤어?"

화분에서 나와 몸으로 기어 올라오는 테로를 머리에 올려두면 역시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 내려가 여관의 아침을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파티원이 하나 하나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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