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20 - 글레이프니르 -3- (삽화 有)
"그럼 저, 정말 조금만···!"
저건 완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태세일까.
고양이처럼 기어서 다가오다가도 망설임으로 흠칫흠칫 멈추는데.
그때마다 눈을 가린 사슬이 짤랑거리며 소리를 낸다.
차륵-
글레이프니르가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쇠사슬 형태의 무구라고 느껴지지 않는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게 무슨 향이지?'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서야 상대의 내음을 맡다니.
감각이 예민한 나라도 심상에서는 크게 제한당하는 느낌이다.
'멍청한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리자.'
앞으로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니 정신이 물렁하게 풀리면 안 된다.
혀를 콱 깨물어 느껴지는 통증으로 흐트러지는 긴장감을 바로잡고 숨을 멈췄다.
글레이프니르는 내 쪽으로 손을 뻗어 눈가에 힘을 주며 집중하는 듯하다가.
뭔가 뜻대로 안 되는지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
의문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줄 설명도 못 들은 채 글레이프니르가 갑자기 움직여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으니.
뭔가 싶은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 눈을 피한다.
"저, 저도 처음 해보는 거라. 감각이 잘···."
"지금껏 다친 건 내가 처음인 거야?"
황급하게 고개를 저은 글레이프니르는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는 손상이 생겨도 그냥 기다렸어요··."
글레이프니르라 하면 북유럽 신화에서 신을 잡아먹는 늑대. 펜리르를 라그나로크 전까지 봉인한 무구.
사용자들 또한 인간 같은 나약한 생물과 비견할 수 없는 초월적이고 비범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이나 세월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을 만큼.
"나같이 평범한 인간한테 귀속된 건 처음이야?"
"···네."
한낱 피와 살덩이로 이루어진 나에게 이런 대단한 무구가 온 것은 천운이라 할만한 행운임이 틀림없으나.
글레이프니르의 입장은 주인이 이리 나약하니 어떤지 모르겠다.
어째서 나를 선택했는지도 물어보고 싶지만.
당장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해줄 분위기도 아니었다.
"영광이네. 그럼 여기에 온 것도 내가 처음일까?"
차르르륵-
글레이프니르의 조막만 한 얼굴을 가로지르던 굵은 사슬이 얇은 실처럼 수십 갈래로 갈라지더니 그녀의 양 눈을 완전히 가렸다.
"옛날에 이분이··· 한 번 오셨었어요."
저것만 봐도 글레이프니르를 말하는 인물은 명확했다.
'무신. 그 여자가 왔다 갔구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애매한 자세에서 멈춰버린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구나. 결국 내가 뭘 주면 되는 거야? 받아 가는 게 잘되지 않는다면 내가 도와줄게. 마나? 피?"
혹시 피가 필요하다 하면 당장 빼낼 준비를 하기 위해 단검을 꺼내니.
글레이프니르가 고개를 마구 젓는다.
허둥지둥하다 손을 모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클로에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네.'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여는 걸 기다리자는 생각뿐.
"간만에 실례하마. 본좌의 예상과 다를 게 없는 그림이구나."
"?!"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목소리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무신의 등장에 글레이프니르도 놀란 표정을 하는 게 심상에 허락을 받고 들어온 게 아닌 듯했다.
"잠시 이 못된 아해를 빌려도 되겠느냐? 설명이 필요한 것 같으니."
"갑자기 뭔데?"
노려보는 시선에 무신은 입꼬리를 올려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여자와 관계를 맺을 때 이외에는 봐도 된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고? 따라와라."
'그렇다고 심상까지 관음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는 게 말도 안 될 만큼 신기하다.
뭐라 말릴 틈도 없이 심부의 밖으로 걸어 나가는 무신을 보고.
글레이프니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따라 나갔다.
심부에서 상당한 거리를 멀어져서야 무신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미미하지만 저 아이의 마음을 여는데 고생하는 건 제법 볼만했느니라. 타고난 성정이 실로 풍객(風客)이로다."
지금은 난봉꾼이니 바람둥이니 하는 말에 태클을 걸 여력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막 나타나면 집주인이 놀라잖아. 나처럼 허락을 받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남 집에 무단침입한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냐는 말에 무신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답답함에 해결해 주려 친히 행차했거늘. 뭐 확실히··· 여긴 저 아이의 공간이니 이게 편하고 좋겠구나."
"좋긴 뭐가?"
퉁명스럽게 쏘아내니 지지직- 거리는 느낌이 머리를 관통했다.
어딘가 겪어본 느낌.
- 끌지 않고 설명해 주마. 정말이지··· 부끄러운 단어를 저 참한 아이의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하려 하다니. 정말 음습하고 고약한 취미를 가졌도다.
역시나 전과 같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지만.
편할 거라는 말대로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는 느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진짜 모른다고.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부끄러운 단어를 말하게 하는 취미라니.
내가 에클레어에게 특히 야한 대사를 시키는 취향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이해를 못 한 상태였다.
- 쯧쯧··· 격을 바닥까지 낮춰 단순하게 이해시켜 주자면. 귀접(鬼接)과 비슷한 것이라 한다면 이해하겠느냐?
'···.'
귀접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귀신과 관계를 가져 정기를 뺏긴다거나 생기를 잃게 된다는 현상.
머리에 잡히는 이미지가 긍정적이진 않지만,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두루뭉술하게 이해했다.
딱 이해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잖아."
외견이 아름다워도 사슬인데?
사슬이랑 성관계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 머리에 번뇌가 가득 끼었구나. 정(精)이란 단순히 쾌락의 끝에 생기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며 생명을 잉태시키고 생물을 돋보이게 하는 기운이나 생기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정기(精氣)란 천지 만물을 구현하고 지탱하는 형태이자 정신의 기운이기도 하지.
나를 어떻게든 납득시키려는 묘한 느낌을 풍기며 무신은 설명을 한 칸 더 쌓아 올렸다.
- 저 아이는 어떤 날을 기점으로 효력을 잃고 입에 담을 수 없는 긴 시간을 외롭게 있었다. 망각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니. 삶의 끝이 없는 아이라 해도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는 법.
무신이 말하는 '어떤 날'은 신화에 나오는 라그나로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성경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나 다름없는 멸망의 날.
지금 말한 글레이프니르가 효력을 잃은 날은 펜리르가 풀려버린 날이라 생각하면 아귀가 맞겠지.
그게 어느 차원에서 실존한 사건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옛날인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 본신의 능력 중에 접촉 없이 정(精)을 받아 내는 건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고. 힘도 약해져 그런 게 있다고 존재 자체만 어렴풋이 인식하는 정도겠지.
"결국 이번에도 내가 글러 먹은 게 제일 큰 이유다?"
저 말에 화를 내는 게 아니다.
내 어정쩡한 능력은 이미 인식했기에 확인 사살이 필요했고.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여 잔혹한 현실을 직시시켜 주는 무신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 그렇다. 성찰과 반성은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요점만 들자면 저 아이와 같은 신병이기(神兵利器)가 주인의 정(精)을 받는다는 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느니라. 예로 들면 ㅡ.
이 상황의 어디가 즐거운지 수다스러움에서 흘러나오는 들뜬 느낌.
일단은 귀를 기울여 무신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확실히 이점밖에 없다는 사실은 강제로 납득했다.
결국 제일 중요한 점은.
"무구라면 사람과는 다른 거 아니야? 글레이프니르한테 정(精)을 어떻게 넘겨줘야 하는데? 그것만 말해."
피, 마나, 살점 등 내놓으라 하면 어지간한 건 다 지불할 생각으로 온 상태였기에.
앞에 있는 예시에 비해 정기를 내놓으라는 정도는 장난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수치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지내온 생활만 봐도 나에게 넘치는 게 정기 아닌가.
- 그걸 말하게 하는 게 아해의 질 나쁜 취미라는 거다. 저 아이의 외견이 인간을 닮은 것은 실속 없는 겉멋이 아니니라.
이제 '관계를 할 때는 보지 않겠다는 약조'에 따라 당분간 지켜보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무신을 보고서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친."
무신이 사라지고 홀로 심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글레이프니르의 앞으로 돌아온 나는 가감 없이.
일절 속임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
"절대 강요는 안 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건 내가 글레이프니르면 거절했을 거야. 거절한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다른 방법을 내놓으라고 그 여자한테 다시 다녀올 거고."
주절주절 말을 늘어놨지만, 결론은 정액을 먹으라고 하는 것.
나였으면 칼을 꺼내 들었을 이야기에 글레이프니르는 불쾌함이나 살기가 아닌 옅은 미소를 보였다.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으나 한편으로 미움을 받지 않은 것 같아 안심하기도 했다.
"···정말 괜찮아요."
설명을 들은 글레이프니르는 괜찮다는 말을 끝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붉어진 얼굴로 입을 아- 벌리고 가만히 있는다.
여기에 모두 쏟아내라는 양.
"후- 최대한 빨리 끝낼게."
마음을 먹고 들어왔기에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행동은 빨랐다.
딸깍- 지익-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니 자지는 이미 발기하여 껄떡 인다.
이런 미소녀의 입에다 정액을 쏟아 넣고 먹인다는 그 상상 하나로 발기 완료.
'나는 미친 새끼다. 나는 진짜 쓰레기 새끼다···.'
오늘의 사죄로 죽을 때까지 글레이프니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성수로 정성스레 닦아주리라.
탁. 탁. 탁. 탁.
아주 그냥 좆같은 소리가 심상에 울렸다.
'내 손으로 직접 빼는 게 얼마 만이더라?'
귀두를 그녀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이에 대고 손을 움직였다.
벌린 입에서 나오는 소녀의 뜨거운 숨결이 자지를 간지럽힌다.
사정을 위한 시각 정보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정액을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만으로 훌륭한 자극이었다.
글레이프니르의 외형이 아름다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계속 보고 있으면.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란 인간의 스트라이크 존이 이렇게 광범위했나 싶을 정도.
얼마나 했는지 몰라도 정신놓고 치니 사정감이 차올랐다.
"···나온다."
내 말을 듣고 혀를 내밀며 입을 조금 더 벌려보는 글레이프니르의 입에 그대로 사정했다.
툭. 투둑!
엄청난 양. 색만 봐도 농도를 알 수 있는 진한 정액이 소녀의 입에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분홍빛 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쌓인 정액이 입 주위와 복장까지 더럽혔다.
꿀꺽-
대차게 쏟아지던 사정이 멈추니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정액을 넘기는 모습.
자지가 재차 껄떡였지만, 몸을 부르르 떠는 글레이프니르의 모습에 다급하게 바지를 올렸다.
"괜찮아··?"
"읏···!"
앞에 앉아 상태를 보고 있으니 심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끊어져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사슬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시간이 역행하는 느낌을 주며 박살 났던 조각들이 모여들어 원래 자리를 찾아갔다.
5년을 기다릴 것 없이 수리가 됐다는 게 기쁘면서.
자괴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씨발··· 돌겠네.'
신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현자 타임.
딱 한 번의 사정으로 이만한 무념무상이 찾아온 적은 없다.
겉모습과 이유를 떠나서 지금 나는.
내 무기에 정액을 먹인 미친놈이란 피할 수 없는 사실.
"···미안해. 이건 진짜 할 짓이 아닌데."
"그, 저는 진짜 괜찮아요···."
손수건을 꺼내 성수를 적셨다.
글레이프니르라 인식하니 어쩐지 습관적으로 손이 이리 움직였다.
"닦아줄게. 잠시만."
"···."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입 주위를 닦아주니.
그녀는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손길이 나쁘지는 않은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데 그 모습이 내 죄책감을 심하게 자극했다.
"진짜 미안. 다음에 올 때는 이런 용건이 아니라 책도 잔뜩 들고 오고 어··· 음··· 재밌는 것만 해줄게."
귀속된 관계라 해도 처음 대면한 날에 정액을 마시게 하다니.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나가서 책 가져올까? 한 백 권 정도."
고개를 저은 글레이프니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주문을 넣는다.
"지금은 그냥 펴, 평소처럼 쓰다듬어 주셨으면···."
"얼마든지!"
해달라는데 못할 건 또 무엇인가.
주저 앉으니 그녀가 꾸물꾸물 다가와 사슬의 상태가 아니면서 내 몸 위로 축 늘어졌다.
사슬의 형태일때와 달리 살갗에서는 온기와 부드러움이 느껴졌고 달콤한 내음이 나를 자극했지만.
정신에 빈틈없이 가득 들어찬 자괴감의 압도적 승리.
얼마인지 모를 시간 글레이프니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책을 한번 더 읽어준 뒤에 나는 심상에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