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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16화 (216/250)

Chapter 216 - 세 번째 유랑자 -2-

귀신이라 함은 인간이 죽고 남는 넋을 말하기도 하고.

'넋'이라는 비물질적인 것이 모여 형상을 이룬 무언가를 뜻하기도 하더라.

혹은 사람에게 재앙과 복을 내려 주는 영(靈)을 말하기도 한다.

이토록 종류가 다양한 귀신들조차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위계가 나누어져 있으며.

정말 강력한 귀신은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고 어떤 인간이든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존재가 어중간하거나 나약한 귀신을 보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조건은 2월 28일 축시(丑時)의 신생아.

즉 1시에서 3시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때 세상에 나는 아이는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되는데.

존재가 안개처럼 흐린 나약한 귀신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나라에서는 이 시간에 태어난 아이들 중 불우하거나 갈 곳이 없는 몇몇을 거둬들여.

강대한 귀신들을 봉인한 신사를 지키는 경비이자 수호자로 키워낸다.

협소한 골목과 모난 돌을 쌓아 만든 튼튼한 담벼락 정도가 자랑인 마을에서 보이는 장소.

거기에 수백 개가 넘는 신사 중 하나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산이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우뚝 솟아있는 봉오리가 있으며.

깎아지른 듯 험한 봉오리 위는 탁 트인 빈터와 신사가 하나.

멀리서 보면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은 그곳에는 신사를 지키는 수호자들이 항상 주둔하고 있다.

"교대 시간입니다."

갖은 고생을 하여 최대한 봉인해 뒀지만 신사에서 미미한 귀기가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곳에 봉인해 둔 귀신의 기에 끌려 의지와 무관하게 크고 작은 귀신들이 흘러들어온다.

아무리 나약한 귀신이라 해도 내부 귀신의 통로가 되거나 영향을 준다면 큰 참사가 날 수 있어 24시간 실력자들의 경비는 필수.

"고생들 해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라도 교대 인원의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다.

신사의 수호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간은 위험하긴 해도 지금과 같은 한밤.

아름다운 별이 가득하니 은하수가 놓인 하늘만 보고 있어도 선선한 바람이 시간을 담아 쏜살같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멍하니 밤하늘을 보고 있는데 신사 내부에서 괴이한 소음이 울렸다.

쩌적-! 쯔저적!

"무, 무슨 소리가?!"

십 년을 넘는 시간 자리를 지켜온 수호자들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드르륵-!

긴급상황에 수호자들이 모여 신사의 문을 열었을 때.

바닥에는 봉인을 위한 부적들만이 남아 굴러다니고 있었다.

"비, 비사아아앙!!!"

인간의 피로 배를 채우고 뼈와 살점을 베어 검술을 연마한다는 악명 높은 귀(鬼)의 육신이 사라졌다.

*****

말로이 백작을 불구로 만들던 그날.

눈에 보이는 연구자료를 싹 쓸어오며 아이작이 만들어 쌓아둔 여분의 스크롤도 챙겨왔다.

마법사들의 연구자료야 읽어도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무척이나 한정적이나.

참고 정독하며 게임에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부분들을 일정 부분 납득할 수 있었다.

- 시간선이 동일한지 확인되지 않은 차원을 열었을 때. 하나는 게이트의 설계와 유사하게 통로가 될지라도 ···· 동시다발적으로 열면 시간의 혼선으로 현 차원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 차원의 틈이 사라진다 해도 인간의 눈으로 관측하는 것과 달리 현 차원에 영향은 여전히 끼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제국 굴지의 전문가가 작성했다기에는 모든 게 확신이 없는 추론의 영역이지만.

말로이 백작의 전문 분야를 생각했을 때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차원의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나고 있는지 간단하게는 알고 있으니.

게임에서는 설명 없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부분이 악용 방지가 아니라, 대략적인 설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무척이나 의외인 부분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지금이야말로 차원을 열고 쿨타임을 기다리며 바깥을 떠돌 적기.

정신을 잃고 휘청거리다 쓰러지는 로버트를 발로 차 옆으로 치운다.

차원에서 유랑자를 기다리는 이 짧은 순간 긴장을 끌어올려 숨을 잠시 멈춘다.

혹시 내가 전혀 모르는 녀석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온다.'

사박. 사박.

균열의 사이로 나오는 당당한 발걸음.

다른 차원으로 넘어왔음에 어떤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초연함.

세 번째 유랑자는 이 대륙에 둘은 없을 독특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후···.'

그 외형은 내가 게임에서 지겹게 본 모습이라 안심했다.

허리까지 오는 부스스한 흰머리에 전생의 섬나라를 연상시키는 검을 차고 해진 도복을 입은 근육질의 남성.

피부는 목탄이나 다름없는 새까만 색이며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새하얗게 비어있다.

이마에는 끝이 붉은 날카로운 뿔이 두 개 솟아있으니 필시 인간은 아니리.

그렇다고 용인족이라 하기에는 뿔이 기형적이고 불행을 몰고 다니는 귀기가 따른다.

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저 생물은.

흔히 다른 세상에서 '오니'라 언급하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가 보다는 기나긴 봉인에서 풀려난 몸에 적응하려는 행동을 보이며 목을 이리저리 돌린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후반부까지 어려운 상대는 없다.'

글레이프니는 수리를 끝내기 전까지 그대로 두고 싶었기에 사용은 자제하기로 결정.

손에 들린 단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는 타이밍에 상대의 입이 열렸다.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ㅡ.

두 번째 유랑자인 데가넬로 때와는 다르다.

지금 내 기분은 등장 대사를 게임과 비교하며 음미하고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 첫 번째 형(形) - 나찰(羅刹) ]

머리에 쓰고 있던 로브를 넘기는 동시에 가면이 얼굴에 드리운다.

자연스레 손에 잡히는 무구를 쥐고 땅을 박차 거리를 좁히며.

백염이 감긴 나찰의 검을 사선으로 휘둘러 두꺼운 목을 날렸다.

핑!

세 번째 유랑자 수준으로는 반응도 못 하는 속도.

백발이 뭉텅이로 잘려 나가며 단발이 된 목이 팽그르르 회전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대사에 끝은 맺어야지?"

덩칫값을 못 하는 유랑자의 몸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기운다.

악마와 언데드도 백염에 맞으면 비명을 꽥꽥 지르는데 일개 도깨비가 어련할까.

'아직 안 죽었다.'

목을 날렸음에도 유랑자 특유의 신호가 나타나지 않고 목을 잃은 몸이 움찔움찔 떨린다.

푸확-!

대량의 마나를 움직이자, 나찰의 검에서 백색 불꽃이 폭발하여 숲을 전부 태울 기세로 뿜어진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머리를 검으로 찔러 꿰뚫자.

불길에 머리가 재로 변해 흩어지더니 이제야 귀신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파스스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 책 한권이 덜렁 바닥에 떨어졌다.

[ 풍림화산(風林火山) ]

세 번째 유랑자가 놓고 간 서적을 인벤토리에 소중하게 챙겨준 뒤.

"···하아."

바닥을 구르고 있는 로버트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그냥 두고 가고 싶지만··.'

나로서도 유랑자의 물건을 얻으려면 이놈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복잡한 숲이라 해봐야 수도의 바로 옆.

힘 없이 늘어져 있는 로버트를 질질 끌고 숲을 나와 수도의 안으로 들어오는 건 순식간.

"에라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수도 길바닥에 반쯤 정신을 차린 놈을 던져두고 몸을 돌렸다.

지금 로버트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어 신기하다.

하도 관리를 안 하고 술만 마시니 이제 잘생겼다는 느낌도 흐릿할 정도.

'사람이 단기간에 저렇게 망가질 수가 있나?'

정보를 받고 숙박시설에 들어가 술병을 안고 곯아떨어진 놈을 봤을 때.

이게 누군가 싶어 나도 당황했다.

혹시 방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다시 확인할 정도였으니.

"···쯧."

처음에는 팔다리의 힘줄을 자르고 눈을 뽑아 지하실 같은 곳에 가둬둘까 했다.

애초에 전생이나 현생의 가치관과 시대상에 따라 이득만 취하고 싶다면 그게 제일 옳은 방법이지만.

그 방법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기각.

이유는 로버트가 불쌍하다거나 내가 좋은 인간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단순히 이 놈의 정신력이 약해도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마나를 멀쩡하게 사용하려면 정신이 망가져도 곤란하고 자살해도 곤란하다.

거기에 자유롭게 뒀다가 다른 마법사를 찾아가 합심한다거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차원을 열어도 곤란하니.

'모든 기대를 나에게 걸게 만든다···.'

녀석을 발버둥 치게 만드는 건 혹시나 하는 희망이 가장 강할 것이다.

··

··

쏴아아아-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운 물을 맞으며 복잡한 머리를 정리한다.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참 많은 걸 했으니.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중에서 더러운 기분은 물소리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감각이 마음에 든다.

샤워를 끝내고 터덜터덜 걸어 거실로 향했다.

"아아아~"

소파에 누우니 속에 눌려있던 멍한 감각이 흘러나왔다.

내 여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딜 가더라도 이야기는 하고 가야지.'

며칠이라 하더라도 기분 내키는 대로 수도 밖의 던전으로 향하기에는 홀몸이 아니다.

기다리는 여자들이 있는데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는 건 할 짓이 아니지 않나.

'정신으로는 아는데.'

몸은 열이 빠지지 않아 지금 당장도 가만있기가 힘들다.

아마란스 공작이 준 신선한 충격이 몸을 달궈 아직도 몸이 찌뿌드드하니 풀리지를 않는다.

'무슨 싸움 개도 아니고···.'

책임져야 할 여자들이 있으니 이런 성질머리도 고쳐먹어야 한다 생각하는데.

막상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흐으음···."

촤르륵-

소파에 몸을 파묻고 글레이프니르를 꺼내보니 그때 생긴 상처는 역시 그대로.

쓰다듬어 주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매만지고 있으니 뜬금없는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 제한되었던 두 번째 형상에 변화가 생깁니다. ]

[ 파생 스킬을 얻습니다. ]

'????'

백염이 첫 번째 형상인 나찰이 완성되며 생겨난 파생 스킬에 속한다.

지금은 두 번째 형상도 막힌 상태.

다른 형상은 보지도 못하고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파생되는 스킬이 생길 구석이 없는데 의아한 변화였다.

[ 심상 진입 - ■ ]

▷타인의 심상에 진입하기 위한 허락을 구합니다.

▷심상에 진입한 동안 실제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스킬.

생전 처음 보는 스킬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딱 한 번 들어본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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