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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14화 (214/250)

Chapter 214 - 폭풍이 지나간 후

"···어!!"

매일 다루던 무구의 주인만 알 만큼 작은 상처.

흠집이라 할 만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으니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충격적이었다.

작은 균열이라 무시할 문제가 아니다.

자그마한 균열은 더욱 큰 균열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왜 그러세요? 역시 몸이 안 좋으신가요?!"

"아니, 아닙니다···."

성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글레이프니르를 잡고 있는 손을 움직여 부드럽게 주무르니.

막연하게.

정말 막연한 느낌이지만.

나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차륵-

글레이프니르가 내 손바닥 안에서 자의로 꿈틀거려 의사를 표현한다.

언어로 들린 것도 아니고 글자가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감정의 덩어리가 뭉텅이로 내게 넘어오는 감각이었다.

'···고치는 법은 어떻게든 찾아줘야지.'

머리를 스치는 몇 가지 방법 중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머리에 있는 정보로 답을 찾지 못하면 무신에게 가서 머리라도 박아야지.

크게 상처 입고 파손되기 전에 이렇게 작은 상처를 입었을 때 고치는 법을 알아두는 게 좋긴 하겠지.

언젠가 직면하고 일어났을 일이라면.

이 정도로 끝난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

보통 무구와 달리 감정이 있는 글레이프니르에게는 특히 미안한 일이었다.

심상에서 만났던 무신의 말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 그 아이는 사용자의 격에 따라 한없이 단단하고 강인한 힘을 가지겠지만 반대로 갓난아기의 손길에 끊어질 만큼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글레이프니르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역량이 변하는 순수한 힘의 집합체.

결국 이 상처가 뜻하는 바는 선명하고 명확했다.

'내 역량 부족···.'

능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직시한 입안이 쓰다.

그와 동시에 다음에는 이딴 일을 겪지 않게 더 죽어라 달리고 쟁취하자는 마음.

하루가 멀다하고 죽느니 마느니 바닥을 기며 모험가 생활을 하던 초기.

어린 시절의 독기가 차오르는 감각이다.

'못난 주인이 미안하다.'

손에 잡히는 글레이프니르를 매만졌다.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을 감으며 반대로 나를 위로하려는 글레이프니르를 조용히 돌려보냈다.

"형제님···! 일단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 상처면 포션 하나면 충분합니다. 근육이 조금 뻐근한 정도에 뼈도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으니."

성녀는 내 말을 듣고 어울리지 않게 하늘색 눈썹을 찡그려 토라진 얼굴이 되더니.

잔소리를 영창처럼 이어가며 손에 신성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로만 형제님··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아무리 좋은 포션이라도 만능은 아니라고."

"···."

경험상 분위기가 이럴 때는 입을 꾹 닫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이더라.

뒤에 서 있는 마젤라도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성녀님을 이해해달라는 제스처로 고개를 연신 숙여왔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치료하는 건 제가 전문이니 저를 믿어주세요. 그만한 충격을 받았으면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어요."

사명과 직업정신이 묻어나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

환자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피로 물든 옷깃을 손으로 움켜잡는다.

'아니 뭔 힘이?'

알면서도 경험하니 놀라게 된다.

너무 강한 게 아니라 너무 약해서.

밥숟가락이나 제대로 들 수 있는지 의심이 가는 성녀의 가냘픈 악력.

이런 힘에 내가 함부로 움직이면 휘둘려서 다치지 않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어 몸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태도에 만족한 듯 웃으며 손을 움직였고.

찬란하게 빛이 나는 신성력이 모여들어 내 몸에 쏟아진다.

- 고통받는 자를 위해 여신님의 개입을 요청합니다. 모든 치유의 근원은 여신님이라는 걸 알기에 저희는 이 자리에 있으니 고통을 덜어주시고 위로를 주시기 바랍니다.

- 치유.

모험가 길드에서 마주하는 수녀도 사용하는 단순한 치유.

까진 상처 혹은 자그마한 타박상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기본적인 성법술이 성녀의 손에서 재해석 되고 있다.

'제국의 누가 와도 회복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군.'

빠르게 컨디션을 되찾는 몸 상태에 감탄하면서도 토라진 기분이 풀린 듯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성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포션을 마시면 괜찮다고 한 건··· 성녀님을 못 믿는 다거나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했던 게 절대 아닙니다."

내 말에 멀뚱멀뚱 눈을 마주치던 그녀는 포근한 향을 내며 웃었고.

치료가 끝났는지 신성력이 뿜어내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형제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늘색 머리카락과 목에 걸린 로사리오가 아래로 찰랑거린다.

성녀가 고개를 숙이자 뒤에 있던 마젤라도 덩달아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을 모으는 교단의 인사가 아니라 허리를 숙이는 단순하면서 확실한 인사.

솔직히 교단의 간판이 이러는 건 내게도 부담스러웠다.

"성녀님. 이건 단순히 의뢰이니 제가 감사를 받을 일은 아닙니다. 저는 이번 일을 대가로 사리사욕을 충당하기 위한 막대한 재물을 받을 겁니다."

고개를 들고 흐트러진 로사리오를 정리한 성녀는 내 말에 눈가를 내려 힘없는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살짝 내려 피로 엉망이 되어있는 바닥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로만 형제님. 형제님이 지금과 같은 백금이 되시기까지 어떤 인생을 보내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감히 짐작도 하지 않겠습니다."

"···."

"모험가 일을 자세히 모르는 입장에서 건방진 말을 하는 모습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허나 몸을 혹사하시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익숙해지시면 안 됩니다."

성녀는 숨을 한번 멈췄다가 눈을 감아 하늘색 눈동자를 숨긴 뒤 입술을 달싹거렸고.

말이 끝나지 않은 듯한 그녀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막대한 통증과 충격이 오는 것을 알면서 두려움을 일절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을 대중과 음유시인은 용맹하다고 말할지라도. 형제님을 진정 사랑하는 가까운 분들이 본다면 걱정을 먼저 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트라는 말에 끝을 맺고 긴장을 숨길 수 없었다.

성녀라 해도 모험가 길드의 최고 전력 중 하나에게 주제넘은 언변일지 모른다.

'···너무 건방졌을까?'

원래부터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성물을 다루고 여신님과 소통하게 되면서 이 성향은 더욱 진해졌고 다친 환자들을 보면 병적으로 주제넘는다 느낄 법한 경고 비스름한 무언가를 뱉게 되었다.

오지랖을 부린 이상 그녀는 상대의 화를 받을 각오도 되어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업을 지고 사는 모험가에게 다치지 말라니?

'말도 안 되는 과한 간섭이겠지···.'

아트라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필시 상대도 죽고 죽이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닐 테니.

특히 자신만의 위치가 확고한 인물일수록 '말은 좋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는 반응을 보이거나.

교단의 성녀라는 직위에 어쩔 수 없이 납득하는 척을 보이는 게 절대적이었다.

'많이 화나셨나··?'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부드러운 웃음기와 온기가 담겨있는 진심 어린 반응이 돌아왔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의뢰를 수행하며 성녀님이 해주신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

··

'왜 저러지?'

신장 차이로 올려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늘색 눈동자를 껌뻑이는 성녀를 보며 간질간질한 기분에 습관적으로 턱을 긁었다.

성녀의 당연한 말에 의미 없는 반박을 할 생각은 없다.

4기사와 개싸움을 보면서 그런 관점을 가지는 게 성녀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답다는 감상.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성녀는 유독 항변하기 힘든 언변과 분위기를 가졌다.

만인에 대한 자애인지 박애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데.

얼굴만 몇 번 마주한 관계에서 거짓 없는 걱정을 담아 저런 말을 하는 게 대단했다.

"후후··· 문제가 생기면 슬퍼할 여인이 많은 분이 관리를 안 하면 안 되겠죠?"

마지막에 와서 진지한 얼굴을 지우고 웃는 성녀의 농담에 나 또한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이 옳으신 말씀입니다."

*****

확실히 성녀의 말대로.

의뢰를 나가는 복장까지 내 여자들이 관리하고 사줬다면 이 핏물을 숨길 수도 없겠지.

이걸 봤다면 어떤 걱정을 받고 무슨 말을 들었을지 모르겠다.

피로 떡이 된 옷을 미련 없이 버리고 갈아입은 뒤.

딱딱한 부츠에 묻은 피에 물을 부어 닦아냈다.

"후-"

제국의 역사책에 박제될 뻔했던 다사다난한 의뢰가 끝나고.

나 홀로 모험가인 자리에 그 이상 볼일은 없었기에 자리를 벗어났다.

'에클레어가 큰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아마란스 공작이 두 눈으로 본 상황을 정말 가감 없이 보고한다면 한자리에 있는 에클레어도 들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듣는 건 확실하겠지.

혹시나 듣지 않는다는 가정은 부질없는 내 바람.

'성녀님한테 바로 치료받았다 하면 그래도 안심하려나.'

어깨와 목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통증은 없다.

신체 컨디션은 최고라고는 못해도 무난한 편.

이 정도면 4기사의 둔기나 다름없는 주먹을 수십 대 맞은 몸 상태라 믿기 어려울 만큼 좋았다.

'가볼까.'

저벅- 저벅-

뒷골목을 걸으며 다시 한번 계획을 정리한다.

아침에 나오면서 생각했던 원래 계획은 의뢰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 훈련이나 하려 했으나.

아카데미도 끝나지 않은 지금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생각이 완전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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