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3 - 두 번째 기사 -2-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유성처럼 뚝 떨어진 남자는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창을 들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인물은 여기에 없으니.
제국의 두 번째 기사인 벨크 아마란스 공작.
"세드릭- 네놈은 그 나이를 먹어도 발전이 없구나."
콧수염을 만지며 한숨을 푹 내쉬는 행동.
한심하다는 어투를 숨기지 않으며 복부를 부여잡고 찐득한 핏물을 뱉어내는 4기사를 타박했다.
공작의 외관은 40대 정도.
누가 봐도 세드릭 플로이드의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지만.
겉모습이야 모를 일이고 나이가 깡패가 아닌 작위와 본신의 힘이 깡패인 제국 아닌가.
4기사가 아무리 잘 나가도 2기사와 비견하면 내세울 게 없다.
"이 꼬락서니가 날까 예상했는지 알현을 위한 정복의 여유분까지 준비되어 있더군. 부끄럽지 않나?"
"허억·· 하아··."
눈이 충혈되어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4기사의 머리를 창으로 통통 치는 행동.
어린애가 봐도 알만큼 상하관계가 도드라진 모습이었다.
"성녀님이 우리 기사라는 족속을 뭐라 생각할지 생각해본 적은 없는 거냐. 멍청한 놈."
짜악!
창대에 얼굴을 맞은 자작이 차진 소리를 내며 몇 바퀴를 굴러 나가떨어졌다.
"···."
내 눈은 두들겨 맞고 멀어지는 4기사가 아닌 창을 든 공작에게 박혀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공작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제국의 두 번째가 아니라는 느낌.
"모험가 친구. 이 들짐승 같은 놈이 민폐를 끼쳤구만. 내 대신 사과하지."
그는 공작이라는 직책을 가진 인물이라 생각되지 않는 서글서글한 태도를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기사의 제식을 갖추며 살짝 몸을 낮추는 공작의 태도에 나 또한 예의를 표했다.
제국의 두 번째 기사인 아마란스 공작이 저리 부드럽게 말하는데.
보통 사람이면 그가 등장했을 때 물러났겠지.
하지만.
'안 될 말이지.'
나란 인간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져 그렇게 곱게 물러나지 못한다.
지켜야 할 여자들이 생기며 은원에 전보다 민감해진 나는 다르다.
현 상황이 적당히 주먹질에서 끝났다면 이러지 않았겠지.
마지막에 오러를 보이는 순간 느낀 점.
감정에 따라 충동적인 인간은 예상할 수 없는 위험물질.
머리도 안 좋은데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느는 건 질색이다.
"맞습니다. 대단한 민폐였죠."
"···."
아마란스 공작도 예상 못 한 대답인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멍하니 침묵이 이어졌다.
"흠흠-! 재밌는 친구군. 어찌하면 좋겠나?"
"공작님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죄송하지만. 의뢰의 경우를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4기사가 본인의 오러를 사용하며 죽이려 달려드는 건 의뢰서를 보낸 황실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상황이었다.
- 분노로 인해 위의 예시와 같은 사건 사고를 일으켜 왔으나 감정이 해소될 정도로 폭력을 행사한 뒤에는 이성을 되찾으며····.
- 4기사 세드릭 플로이드 자작의 경우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해 무력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대응하는 게 제일 중요한 조건이 될 것.
-그 이유는 아래에 별도로 서술한···.
상대가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존심으로 본인도 절대 마나를 사용하지 않을 거라.
황실에서 전달 한 의뢰서에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내가 의뢰를 거절하지 않고 받게 하기 위한 조항일지도 모르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 장담을 하더니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 입장에선 의뢰가 사기였다고 따져도 모자랄 판.
이럴때 멍청하니 넘어가주는 건 제국의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온 모험가가 할 일이 아니었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저의 행동을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통보에 공작의 표정이 오묘하니 변했다.
애초부터 허락을 들으려는 말은 아니었기에.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촤르륵.
손바닥을 아래로 숨겨 허공에서 글레이프니르를 뽑아내니 바닥에 검은 사슬이 똬리를 튼 뱀처럼 쌓였고.
파직-! 칙! 치직!
오러를 머금은 글레이프니르를 잡고 붕붕 돌리니 새까만 원을 그리며 바람이 일어난다.
회전력을 죽이지 않은 채.
아래로 누르고 위로 올리고 사선으로 빗금처럼 이어지는 복잡한 손동작으로 변화가 생긴다.
몸 주위를 고속으로 회전하는 한 줄기의 글레이프니르가 수십 개로 보이는 환영과 같은 장대한 광경.
"호오··· 놀랍군!"
아마란스 공작은 번쩍이는 창으로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말릴 생각은 없나.'
뭐가 됐든 어떠하리.
창에 뺨을 맞고 바닥을 기고 있는 4기사를 향해 올려 치듯 사슬을 내던진다.
쿠구구구!!!
한 줄의 사슬이 검붉은 오러를 머금고 수도의 돌바닥을 거칠게 찢는다.
땅 아래 숨어있던 거대한 뱀이 몸을 일으키는 듯한 형상을 토하며 4기사의 몸을 양단할 기세로 날아들었다.
제국의 역사책에 아로새겨질 사건이 생기기 직전.
치직-
땅을 박차고 사라진 공작이 4기사의 앞에 나타나.
금빛 오러를 품은 창이 궤적에 따라 일렁이는 황금색 물결을 만들어냈다.
째애앵-!
유리를 수십장 쌓아두고 박살 내면 이런 소리가 날까.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가 울리며 글레이프니르가 튕겨 나왔고 황금색 오러의 파편들이 비상했다.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젊은 혈기가 느껴져서 좋구나."
4기사를 방임하는 태도를 보였던 공작이 움직이니 짜증으로 눈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방해하시려는 겁니까?"
"남자들 사이에 끼는 건 딱 질색이지만, 이놈을 황실로 잡아가야 하는 내 임무도 있다네."
서로를 이해하지만 비킬 수는 없는 상황.
글레이프니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비록 작위가 없는 천민인 저도 모험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체면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고 있네."
"4기사가 오러를 써서 백금인 저를 죽이려 했는데 웃어넘기면 모험가들의 꼴이 앞으로 어떻겠습니까?"
비록 내가 관심이 없더라도 쓰기에 좋은 미끼.
제국에서 기사와 모험가들의 기 싸움은 꼬투리로 잡을 만큼 중요한 문제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
푹!
황금색 창이 4기사의 왼쪽 어깨를 깊이 파고들며 핏물이 튀어 올랐다.
"끄으윽!"
통증을 참는 세드릭 플로이드의 입에서 피거품이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고.
그걸 보고 무심한 얼굴로 콧수염 끝을 손가락으로 비비던 공작은 창을 뽑아내서 전보다 강한 힘을 담아 휘둘렀다.
"커흑!"
창대에 얻어맞고 4기사의 몸이 허공에 붕 떠서 날아간다.
쿠웅-!
곰과 같은 거구가 금이 가 있던 담벼락을 와르르 무너뜨려 흙먼지를 피워올렸다.
덩치를 날린 공작은 나를 돌아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어떤가. 내 얼굴을 봐서 이 정도로 넘어가 주면 안 되겠나?"
뻔히 보이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공작이 보이고 있는 구타는 4기사의 목을 달아둔 채 이 자리에서 빼내기 위한 쇼.
거기에 속아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경험을 했기에 고개를 저었다.
"부족합니다. 목이 붙어있는 이상 저나 제 주위에 보복을 가할 가능성을 어찌 배제합니까."
공작은 연극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라기에는 드물게도 조심성이 많은 친구로군."
"제가 겁이 좀 많습니다."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지."
이렇게 가다가는 대화에 끝이 없겠다는 막연한 느낌.
거기다.
질질 끌다가는 에클레어의 퇴근 시간이 늦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정 그러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멍청이를 보내 줄 방안이 있다면 제시해주게. 최대한 중재하겠네."
기다리던 말에 품을 인벤토리와 연결해 최고급 마나 계약서를 꺼내 공작에게 건넸다.
보기 드문 귀한 물건을 받은 공작이 웃음을 잃고 놀란 눈을 했다.
"요즘 모험가들은 이런 걸 챙기고 다니나···?"
··
··
"이거 우루스 그 무식한 놈도 방심하면 안 되겠군. 하하하!!"
4기사를 시켜 계약을 강제로 진행시킨 공작은 내 어깨를 팡팡 치며 즐거워했다.
성녀에게 응급처치만 받은 4기사를 일으킨 그는 창으로 4기사를 쿡 밀어 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모험가 친구. 다음에 또 보세나. 폐하께 그대의 무용담은 내 확실하게 전하지."
"됐습니다. 그래봐야 뭐 좋다고··· 가감 없이 상황을 전해주시면 충분합니다."
퉁명스러운 말에 그는 창을 안고 고개를 끄덕인다.
"호!! 겸손한 미덕을 아는 사내로다. 모험가는 그만두고 기사를 할 생각은 없나?"
헛소리를 하는 공작에게 나도 모르게 중지를 올릴 뻔했다.
"···차라리 백수를 하렵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람 앞일은 모르는 것이니 생각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게나~"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고 몸을 돌려 4기사를 창으로 밀며 황실로 향했다.
'어이가 없네···.'
저런 쪽으로 나사 빠진 인간은 역시 불편하다.
말을 나눌수록 기가 빨리는 유형, 엮이면 귀찮다는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나는 인간.
공작의 뒷모습을 보며 힘 빠진 헛웃음을 뱉고 있으니 성녀와 마젤라가 다가왔다.
"혀, 형제님! 먼저 치료를 해드려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출혈은 내성이 있어 이미 멈춘 상태.
그래도 힘이 무식한 인간의 주먹을 피하지도 않고 연달아 맞았더니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뚜둑- 뚜두둑!
뻐근한 감각을 지우고자 목을 돌리고 어깨를 돌릴 때마다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문제는 몸이 아니라 아까부터 다른 쪽이었다.
글레이프니르를 감고 있는 팔이 근질근질하다 해야 할지 아주 약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
'뭐지?'
이건 일격을 막아내고 힘의 잔재가 남아 손을 아리게 만드는 느낌이 아니다.
팔을 타고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
공작의 오러와 부딪힌 부위를 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주 작지만.
글레이프니르에 긁힌 상처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