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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203화 (203/250)

Chapter 203 -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2-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은 당연하고 눈에 대놓고 보이는 빈부격차.

식당에 앉아서 따뜻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제국민부터 뒷골목에서 딱딱한 빵 하나로 다투고 피를 보는 안타까운 운명까지.

세상은 언제나 양면성을 보인다.

안개 둥지에서 서로의 가치관과 신념을 증명하고 지키기 위해 검과 마법으로 투쟁하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내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트라는 슈엘과 손을 잡고 느긋한 걸음으로 산책을 즐기며 길드로 향했고.

화기애애한 둘의 뒤에서 갑옷을 입은 마젤라가 따르고 있으니 그 그림은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아트라님은 모험가 길드에 가보신 적 있으세요?"

교단의 행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밖에 나온 걸 인지하고 있는 슈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녀를 이름으로 불렀다.

"부끄럽지만 수도 지부에는 가본 기억이 없네요."

순례를 하다 교단에 인력 여유가 없는 자그마한 영지나 마을에 있는 지부에 들른 기억은 있으나 수도에는 딱히 그녀가 필요한 일이 없었다.

부상자가 있어도 수도 지부에는 모험가를 겸하는 교단의 인원이 제법 존재하고 외부에 손을 빌릴 일은 드물다.

애초에 문제가 있다고 성녀를 찾지도 않겠지.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만뒀다고 해도 모험가 경력이 있기 때문일까.

가슴을 팡! 치고 콧김을 흥! 뿜으며 한 걸음 앞장서는 슈엘을 보며 아트라와 마젤라는 은은한 미소를 보이며 따라갔다.

성녀가 순례 중에 견식 해왔던 기억으로.

제법 큰 영지라 해도 간판 모험가는 금이었고 드물게 청금이 존재했다.

수도의 모험가 지부라 하면 그런 청금조차 대항하지 못하는 백금들의 소속이자 모험가의 터전.

'어떤 곳일까?'

아트라의 기억 속에 단신으로 악마를 상대하던 백금의 모험가가 선명하다.

그런 인물이 성장한 곳이라 하니 모험가 길드 수도 지부는 불세출의 모험가를 키워내는 성역이라는 인식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요!"

"슈엘 덕분에 제대로 찾아왔네요. 고마워요."

위치야 알고 있었지만 당당하게 안내하는 슈엘의 태도에 아트라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둘과 달리.

문을 뚫고 나오는 찝찝한 냄새에 마젤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병상에서 간호나 청소를 하며 일을 돕던 슈엘도 그렇고.

성녀님도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지만.

마젤라의 생각으로 모험가 길드라 해도 수도 지부라면 향기로운 내음이 나는 깔끔한 구색을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거리가 느껴진다.

'모험가 지부는 어디든 같군···.'

코를 건드리는 것은 담배 냄새 같기도 하고 기름 냄새를 닮기도 했다.

워낙 많은 것들이 섞여 하나라 단정하기 힘든 것.

"아트라님. 혹시 얼굴을 아는 인물이 있을지 모르니 소란을 방지하기 위해 제가 먼저 길드의 인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자주 해왔던 익숙한 절차.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마젤라의 행동에 아트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슈엘과 여기에 있을게요."

안전을 위한 소란 방지는 어쩔 수 없지.

마젤라가 성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길드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보이는 곳에 계셔주십시오."

····

마젤라를 통해 아트라의 신분을 확인 한 접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신분을 주위에 공개하며 관심과 시선을 모으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교단의 태도를 받아들여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

"모험가 길드 수도 지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접수원인 비올라라고 합니다."

"아트라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왔음에도 이리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국의 5기사인 에클레어부터 시작해 높은 인물들을 마주하고 안내하는 것에 이골이 난 비올라는 지금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을 담력의 소유자가 되었고.

거기서 나오는 과하지 않은 태도가 성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양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는 아트라를 따라 교단의 예법을 따라 인사를 끝낸 접수원은 바로 펜과 메모지를 들었다.

"필요하신 업무를 말씀해주시면 내용에 따라 담당자를 호출하겠습니다."

성녀가 직접 찾아왔다면 보통 업무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지만, 아트라는 난감하게 웃었다.

"아··· 실은 그리 대단한 일로 온 것은 아니라서요."

성녀가 직접 행차해서 수녀의 편지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그림이 어찌 보면 접수원의 입장에서 커다란 부담일지 모르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접수원은 서류를 꺼내 주르륵 확인을 끝낸 뒤.

사무적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우편에 대해서는 길드로 확실하게 도착했으나 모험가님이 수신하셨는가에 대한 정보는 저희가 공개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개인에 대한 것은 예상한 내용이었기에 아트라는 압박감을 느꼈을지 모르는 접수원에게 급히 사과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도착한 사실만 알면 충분하답니다. 민폐를 끼쳐 죄송했습니다."

아트라가 옆을 보니 슈엘도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홀가분해 보이긴 했다.

"비올라님 감사합니다! 이때까지 정말 신세 졌습니다··!"

슈엘이 옆에서 인사를 하자 접수원의 사무적인 얼굴이 느슨하게 풀렸다.

"길드에서 슈엘님을 마주하지 못하는 건 저도 아쉽지만···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도 비올라님이 여신님의 가호 아래 행복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멀쩡하게 사지를 달고 웃으며 퇴직하는 모험가라니.

흔하지 않기에 접수원의 입장에서도 감회가 새롭다.

처음 왔을 때에 비해 어린 티가 나는 외관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때에 따라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슈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힘이 있었다.

접수원은 뻣뻣하게 펴고 있던 허리를 살짝 굽혀 슈엘과 아트라에게 작은 목소리로 정보를 건넸다.

"그리고 이건 예전부터 허락이 있어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마침 아래에 로만님이 계신답니다."

"아래요?"

성녀의 눈이 계단으로 향했다.

길드의 대다수 인물이 아래에 있다는 건 인식하고 있지만 무얼 하는 곳인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아트라님! 저 아래는 선술집이에요!"

"원래는 모험가 외에는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용건이 있는 분들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출입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실례가 안된다면 잠시 내려가 봐도 될까요?"

아트라는 흥미가 가는지 눈에 은근한 기대감을 담아 접수원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접수원이 얼굴에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싫다고 했잖아! 미친놈들아!

깜짝 놀라는 성녀와 다르게 늘 있는 일이라며 침착함을 보이려던 슈엘이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죽어!!

-씨발 내 팔···! 저 년 잡아!!

"어, 이 목소리?"

모험가를 해왔던 슈엘은 아래에서 들려오는 까칠한 목소리의 주인을 알 것 같았다.

'그 혼혈 언니구나!'

구릿빛 피부에 보기 드문 미인.

모험가다운 거친 기세가 유독 강함에도 아닌 척 자신을 챙겨줬기에 기억 속에 선명하다.

-아가씨 잘한다!!

-마법사 무시하는 새끼들 손 좀 봐줘!!

··

··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마젤라가 앞장서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

어제 주에 한 번 있는 아카데미 수업을 진행할 때도 로버트는 보이지 않았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일이라 하면 최근 수업 중 달려드는 세리아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정도?

아이작은 소식을 찾으려 해도 교단에서 나온 뒤로는 들리는 게 딱히 없고.

말로이 가문에 대해서는 지금 내부에 차기 가주를 앉히는 피 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다른 소문을 덮고 있었다.

'이제 그쪽은 관계없는 일이지.'

그것과 별개로 내가 구입한 저택은 텅 빈 썰렁함을 지우며 생기를 품기 시작했다.

1층에 클로에와 에클레어의 방이 붙어있고.

2층에는 리케와 내 방이 붙어있으며 침실도 따로 있다.

사실 방을 나눈 의미가 없는 것이. 다들 내 방을 들락날락하다 잘 때가 되면 침실에서 오순도순 모여 잠에 든다.

다 같이 문란함을 즐기는 날도 있지만 정말 잡담만 하다가 잠에 드는 날도 있다.

"행복하다!!!"

긴 묘사가 들어갈 필요 없이 이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내 여자들도 긍정적인 단어만을 입에 담고 사는 느낌이라 집은 언제나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녀들은 비어있는 저택을 채우기 위해 셋이 앉아 카탈로그를 둘러보며 가구를 골랐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가구가 저택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배치도까지 미리 준비해뒀기에 셋이 아카데미와 업무를 위해 저택을 떠났을 때 혼자 저택에 남아 가구를 들였다.

'귀중품이랑 개인 물품은 다 챙겨두고.'

가구를 전부 배치하고 이제 진짜 마무리로 전문가들을 불러 다시 한번 청소를 맡긴 뒤.

모험가 길드에 시간을 죽이러 와있었다.

"쯧."

선술집에 내려오자마자 나는 혀를 찼다.

놀릴 맛이 있는 녀석이 없었으니.

일면식이 있는 얼굴들이 몇몇 보였지만 각자 파티가 있으니 굳이 낄 생각은 없었다.

그사이 새로운 파티원이 생겼는지 또 다른 여자 하나를 포함한 채 3명이서 자리를 잡고 있는 앨리스도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인사를 하는 앨리스에게 간단히 손을 흔들어주고 자리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특유의 시끌벅적함을 즐겼다.

'리케 입맛이랑 나랑 닮았나? 그렇게 변한 건가?'

우유를 먹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매번 아침에 리케와 먹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이제는 마시지 않으면 허전한 기분이라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된다.

여자한테 위장까지 사로잡힌 다는 게 이것일까.

"흐음."

돌아가는 길에 셋을 위해 꽃을 사 갈까.

아니면 더 좋은 게 있나?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쪽에서 분위기가 시끌시끌하게 치고 올라왔다.

와장창!

안쪽에 있는 누군가의 테이블이 뒤집어지며 바닥에 그릇과 술병이 나뒹굴었다.

-참아!

-말리지 마! 이런 새끼들은 한 번 밟아줘야 한다고!!

앙칼진 목소리가 소란의 시작을 알린다.

'선술집에서 이게 없으면 섭섭하지.'

우유를 마시며 볼거리가 생겼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앨리스가 자신보다 훨씬 큰 떡대들과 눈싸움을 하며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위층에 있는 인물은 조금 귀찮아 보이지만.

이곳은 재밌는 일이 터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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