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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86화 (186/250)

Chapter 186 - 첫 고백은 도전이다. (삽화 有)

여행 중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상을 못 하는 눈치 없는 등신은 아니다.

다른 여자도 아니고 클로에인데.

내게 연심을 품고 있는 상태로 여행을 가자고 용기를 내서 찾아왔을 때.

발표의 내용에 혹하여 정말로 여행이 가고 싶어 고개를 끄덕인 건 당연히 아니었다.

애초에 결심하지 않았다면 따라나서지도 않았겠지.

클로에가 의도적으로 내게 거리를 두는 시기에 나도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다.

백작의 영지로 향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분노의 방향성이 어디인지 냉정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에클레어가 슬퍼할 사건이 터질 뻔했기에 화가 났는가?

그게 아니라면, 동생이라 생각하며 이뻐하는 클로에가 얼토당토않은 일로 트라우마가 생길 뻔해서?

해답을 찾는 것은 나에게도 시간이 걸렸다.

상황에 따라 답을 미리 정해뒀었기에, 접견실에서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부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건 조금 예상 밖의 타이밍.

"저···!"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 나오는 기세 혹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지금··?'

클로에가 평소에도 내성적인 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당장에 내 감각을 자극하는 이 공기는, 차후에 일어날 상황을 정확하게 감지했다고 자부한다.

"그··그, 그극! 저, 그러니까··!"

"···."

어깨를 들썩들썩하며 고장 난 듯이 몸을 떠는 클로에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얼굴이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붉어지고 눈동자까지 핑핑 돌기 시작하니.

과부하로 곧 고장이 날 것 같았다.

텁.

냉수를 담은 병을 꺼내 클로에의 볼에 살짝 붙여주니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흐읏!"

"진정하고. 마셔."

입술이 건조하게 마른 클로에가 긴장에 잠식되어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꼴깍꼴깍 넘긴다.

"하아··! 가, 감사합니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거친 호흡을 하는 그녀를 보니 순간의 감정으로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클로에. 조금 진정이 됐어?"

그녀의 잿빛 머리에 손을 올리자.

클로에는 동그랗게 뜬 눈동자로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네, 네에··."

그녀를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카운터에 앉아서 졸고 있는 노인 말고는 사람이 없다.

'서점도 잘 되는 시간이 따로있나?'

손님이 없는데 이 정도 크기의 가게를 유지하는 비용이 나오긴 할까.

서점의 주인에겐 악재라도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기.

여유가 없어 보이는 클로에를 이곳에서 제대로 마주하기로 했다.

"좀 앉을까?"

"···."

책장이 가득 쌓여 길처럼 만들어진 공간.

여기저기서 직무 유기 중인 의자를 당겨와 클로에를 앉혔다.

열기를 품고 창문을 넘어오는 빛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책 냄새.

어깨가 크게 들렸다 내려갈 정도로 불규칙하고 큰 호흡.

시간이 지나 긴장을 좀 날리고 진정한 듯 보이는 클로에에게 말을 꺼냈다.

"조금 진정이 됐어?"

"후우우··· 네."

늘어지는 한숨과 달리 단호함이 깃든 목소리.

진정은 했지만 이 허름한 책방에서 결판을 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은 듯.

푸른 눈빛이 나를 뚫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역시 드리트나 자매라 해야 할지, 심력과 결심이 새겨진 눈매는 에클레어와 닮아 있었다.

째깍- 째깍-

침묵 속에 초침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건네는 연심.

그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씩씩하고 호기로운 모습···.'

내게는 사라져서 없는 것이다.

첫 연심에서 일어나는 고백은 순수한 도전이다.

어쩌면 클로에의 이 모습은 일생에 단 한 번 허락된 귀중한 장면인 것이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겁이 많고 속에는 여우와 같은 면이 있어 고백이라는 첫 도전이 실패하면 조바심과 두려움을 닮은 감정들이 자라난다.

그렇기에.

연애를 몇 번 경험하다 보면 고백이란 도전이 아니라.

관계의 발전이 되기 전에 감정의 교류를 확인하고, 마지막 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절차로 변하게 된다.

개인적 견해로 확실한 결과를 요구하게 되는 노련함이 생겼다 해도 되겠지만.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겁을 먹었다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그렇게 흑역사를 경험해온 당사자이기에.

나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에. 내가 여기에 같이 온 이유가 뭐겠어?"

"···아?!"

에클레어를 연상시키는 강경한 기운이 크게 흔들렸고.

부정을 거듭하다가도 내 말을 곱씹고 곱씹어 이해했는지.

그녀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아직 끝난건 아니야. 나는 클로에의 마음을 솔직하게 듣고 싶어."

울음이 터질 뻔 했지만 뚝! 하고 그친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문 상태로 한참이나 시간을 보냈다.

꼴깍-

반쯤 남아있는 냉수를 들이켜서 힘겹게 목을 축인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장소에 걸맞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뜨, 뜬금없지만··· 로맨스 소설을 읽다 보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를 확실히 알기 전에 고백해서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하는 거 알고 계세요?"

"음~ 로맨스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현실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네."

"저는 읽으면서도 그런 부분이 나오면 항상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어째서?"

클로에가 얼굴에 그리는 웃음은 자조의 빛이 스쳤다.

"아무리 그래도 감정을 억누르고 웅크린 채- 성공할 기회를 더 기다리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런데 그건 겪어보지 못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더라고요."

"클로에. 자신을 한심하게 볼 필요 없이 누구나 그래. 인간이라는 생물은 겪어봐야만 알 수 있거든. 그 과정이 없는 것들은 천재거나 바보 둘 중 하나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 번만 더 꺼내겠다며.

미리 양해를 구한 클로에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한발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레 식은땀으로 엉망이 된 클로에의 앞머리를 만져주었고.

손길을 느끼던 그녀는 내 가슴팍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오라버니··· 저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부, 부끄럽지만 읽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거나 망상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해요···."

"멋지네."

"그런데 아직은 마음만 앞선다는 게 느껴져서··· 돌아보면 아직 적을만한 게 그리 없고 경험도, 식견도 좁아서 책에 인생을 담자면 얇은 책 한권도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뒷말부터 클로에의 목소리에 절절한 감정이 깃들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울렁였다.

"하, 하지만··! 제 꿈은 과분할지 몰라도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두꺼운 서적으로 수십수백권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슬픔이나 갈등 한 점 없는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로···."

식은 땀이 흐르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녀가 입꼬리를 미처 올리지 못하고 참고있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정을 토해냈다.

"제 인생이 담긴 바로 다음 페이지 부터 평생··· 등장해 주시면 안될까요?"

마지막 말과 함께, 숨결이 섞이는 거리에서 클로에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어쩐지 상냥한 웃음이 어울릴 법한 상황에 눈물을 쏟는 그녀의 표정은 반대로 강력하게 다가왔다.

상대의 어디가, 어떻게, 왜 좋은지 어필하지 않는 독특한 고백.

내 생각을 말할틈도 없었지만, 앞으로 차차 알려주고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허락만 해준다면··· 기꺼이."

웃으며 팔을 벌려주자 그녀는 그대로 내게 몸을 밀착시키며 안겨 왔다.

··

··

차가운 물이 담긴 병으로 부어오른 눈을 가라앉히는 클로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울었어?"

"흐으으··! 부끄러워요··."

내 말을 끝으로 안겨서 엉엉 울던 그녀를 달래고 서점의 밖으로 나왔다.

발전한 관계에서 이어지는 첫 데이트는 의외로 그녀의 주도 아래에 이루어졌다.

해보고 싶은 건 후회 없이 다 하자는 내 말에.

그녀는 팔짱을 조심스럽게 끼고는 나를 끌어당겼다.

감정에 쌓여있던 고심이 녹으며 고삐가 풀린 클로에는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그러면서도 도중에 자기 행동을 부끄러워하기를 반복하며 나를 지루할 틈 없이 이끌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때까지 근심을 잊은 클로에와 신명 나게 여행을 즐겼다.

-오늘도 저희 델 아르테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에 저희가 여러 영지의 귀족분들에게 초청을 받아 한 달간 유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리브로시아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유명한 연극이 끝나고.

나이가 제법 지긋해 보이는 중년이 올라와 차후 소식을 알렸다.

재미를 떠나 리브로시아에서 꼭 봐야 한다는 연극인데 앞으로 최소 한 달은 못 본다는 이야기.

등장했던 배우들이 모두 올라와 인사를 하고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우리가 운이 좋았네."

"우, 우리··! 헤헤- 그러네요."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클로에와 나는 제일 마지막에 여유롭게 움직이기로 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마저 모두 흩어지고.

아직 내 팔을 꽉 잡고 매달려 있는 클로에를 보고 물었다.

"재미있었어?"

극 중 등장인물들 모두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

보면서 발성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감상은 느꼈지만··.

내 감성에는 길거리에서 본 자그마한 연극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어··· 모르겠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흐으··."

내 물음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어깨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대왔다.

'술에 취한 것 같네.'

느낌만 그렇지 실제로 술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감과 성취감에 취했다는 느낌.

클로에가 연극 보다는 내 얼굴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은근히 내 시선을 빼앗으려 들어 몇 번 눈을 돌려주긴 했지만.

그때마다 놀라서 황급히 눈을 피하니.

첫 연애에 어찌할 바 모르는 소녀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에 내가 더 간지러웠다.

클로에는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더니 얼굴을 붉히며 소근소근 목소리를 냈다.

"아··! 오라버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 금방 돌아올게요."

"천천히 다녀와."

음료를 마시고 꽤나 긴 시간 연극을 보며 자리를 뜨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다.

잠시 후.

조신한 걸음으로 돌아 온 클로에는 다시 내 옆을 차지하고 앉았다.

모두가 자리를 뜨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야외.

달빛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어두운 원형 극장.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나지 않고 밤바람을 맞으며 템포가 느린 잡담을 나누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주위를 몇 번이고 확인한 클로에가 내게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다.

'어··? 이거?'

아까와 같이 팔을 잡고 매달려오는 클로에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크기의 가슴.

천 하나를 두고 느껴지는 감촉이 바로 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촉감을 느끼게 하는 방해물이 한겹 사라진 느낌.

클로에는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오라버니."

"음?"

똑- 똑-

'···?!'

나는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지 머리로 납득하지 못했다.

셔츠의 단추를 살짝 풀어 낸 클로에는 그 틈 사이로 언니와 비슷한 형태로 함몰된 젖가슴을 내보였다.

하지만.

에클레어도 크기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만큼 압도적인 그것에.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속박 당했다.

지나가며 서점에서 사 준 책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반쯤 가린 그녀는.

뜨거운 열기를 가득 담아 내게 간청하듯 말해왔다.

"여행이니까··· 같은 방에서 지내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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