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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85화 (185/250)

Chapter 185 - 결과는 정해져 있다.

여행을 막상 간다 생각하니 설렘도 느꼈지만, 내 여자들이 머리에 먼저 떠올랐다.

'다 같이 한번 나가긴 해야 하는데.'

내 삶에 제대로 된 도시를 의뢰도 아니고 여행으로 가는 건 드물었다.

실제로 리케와 에클레어 셋이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다 같이 여행을 간 적은 없다.

서로가 바쁘기도 하고 클로에가 저택에 혼자 있으니 에클레어가 쉬는 날은 대체적으로 클로에와 시간을 보내려 했기에.

셋보다는 둘이 지낼 때가 많았다.

개중에 제일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고 있는 리케.

평소에 시간이 없는 에클레어에게 여유가 생기면 그녀와 시간을 보내도록 리케가 클로에를 찾아가면서 양보해준다.

'그래도 둘 다 수도 밖으로 놀러 가본 적은 제법 있네.'

리케와는 데이트를 하면 사람이 붐비는 곳보다는 자연을 보러 다니거나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동식물을 관찰하는 걸 즐겼고.

에클레어와 둘이서 데이트를 하면 아무래도 그녀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아 첩보물을 찍듯이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곤 했다.

서로 기척을 죽이는 실력이 있다 보니 나이와 사회적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유치하게 놀기도 하며 발이 빠르니 수도 밖으로 나도는 일도 흔했다.

두 개의 시간 모두 행복함으로는 비할 곳이 없는 천국이자 끝.

아직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클로에와 보내는 시간은 내게 어떤 느낌을 전해줄까.

'리브로시아···.'

투박하고 거칠게 살았다 하지만, 책이라 하면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정신과 몸에 활력을 부여하는 문장은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 않나.

'책 냄새는 원 없이 맡겠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냄새도 좋아하며.

지나가다 흥미 깊은 제목이 보이면 조금이지만 읽어 보기도 한다.

연극은 가끔 지나가면서 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진득하니 자리를 지켜본 적은 없다.

이참에 한 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즐겁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리케나 에클레어에게 권할 수 있으니.

또각.

오랜만에 꺼내 신은 단화 덕에 걸음에서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난다.

리케가 세심한 손길로 만져준 셔츠를 이리저리 확인하며 게이트 근처의 광장에 가까워질 때 쯤이었다.

'벌써?!'

클로에라면 분명 이르게 나올 거라 예상했기에 그걸 추월하기 위해 더 빨리 나왔다.

무조건 클로에보다 먼저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약속 장소 앞에서 멍한 얼굴로 묵직한 가방을 들고 있는 클로에를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라버니···!"

기쁜 감정을 담아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 밑에는 그늘이 있었다.

"잠 못 잤어? 눈이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아으으··· 그래도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부끄러운 듯 가방을 번쩍 들어 얼굴을 슬쩍 가리는 클로에를 보자 웃음이 났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어?"

"바, 방금 왔어요! 오라버니도 일찍 오셨네요···?"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몇 시부터 있었길래.'

덩달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나를 보는 푸른 눈동자는 알기 쉽게 들뜬 감정.

"기대돼서 일찍 나왔지."

"···!"

한마디에 기분이 좋은지 움찔거리며 올라가려는 입을 앙! 물고 참는다.

탁.

제법 큰 부피를 하고 있는 가방을 뺏어 들었더니 그녀의 얼굴이 시원하게 노출되어 보기 좋았다.

"아, 아아·· 제가 들어도 괜찮아요··!"

인벤토리에 클로에의 가방도 집어넣을까 고민했지만.

이것도 결국 여행의 맛이라는 생각에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멨다.

"필요한 거 있으면 돌려줄 테니 언제든 편하게 말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거 마시고. 여행 갔다가 도중에 쓰러지겠다."

주머니에 인벤토리를 연결하여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포션을 꺼내자.

그녀는 양손과 고개를 이용해 격렬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저, 정말 괜찮아요! 이런 귀한 걸··!"

"마시기 전까지 출발 안 한다?"

그녀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 같아 나쁜 인간이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

눈을 땡그랗게 뜬 그녀가 허겁지겁 포션을 들이켰고.

어쩐지 재미있는 상황에 나도 덩달아 웃을 수밖에 없었다.

····

리브로시아까지 이동하는 게이트 비용은 제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금액이다.

제일 큰 요인은 단번에 갈 수 없다는 게 문제점.

수도에서 게이트로 세 번이나 이동해야 하는데.

게이트 기술력의 한계인지, 일부러 장사를 위해 꼬아두는지는 모른다.

그래봐야 이 문제도 일정 이상의 재력을 보유한 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단순히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일 뿐.

덜컥!

건물을 나오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오~! 딱 봐도 신기한 게 많네?"

리브로시아의 첫인상.

거대한 놀이기구만 없을 뿐이지.

도시 하나가 전생의 유원지 느낌이 풀풀 풍긴다.

"우와아··!"

새로운 환경에 클로에는 조심스럽고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감탄사를 내며 입을 살짝 벌린 채 주위를 열심히 둘러본다.

게이트를 나와 조금만 걸어도 길거리에는 연극을 하는 무리가 여기저기 퍼져있으니.

정신을 풀어버리면 금세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내가 언제라도 당신을 위해 뛸 수 있도록! 가슴에 불을 지피겠소!

-우리들은 이제 만날 수 없어요···! 운명이 그렇게 결정되어 버렸는걸요!

··

길거리에 볼 것이 많으니 그걸 보면서 먹을만한 요깃거리도 자연스레 발전한 곳이다.

거리에 파는 간단한 음식들이 유독 많았다.

핫도그나 샌드위치 그리고 형형색색의 음료, 마도구로 만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를 뚫고 앞장서서 길을 넓게 터준다.

"일단 숙소부터 잡아두고 나오자."

"수, 숙소! 그렇죠··! 네에··."

당연한 말에 화들짝 놀라더니 혼자 얼굴을 붉힌 클로에는 생각을 조금 하더니 혼자서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발을 맞췄다.

숙소는 번화가로 향하기 편하면서 깔끔한 곳.

방은 당연히 두 개.

하지만 바로 옆에 붙어서 자리하고 있다.

*****

오라버니의 해박한 지식의 근간은 경험만이 아니구나.

이외에 서적의 영향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편했다.

단순히 맞장구 정도가 아니라 깊이가 느껴졌다.

관심 있는 분야이자 나름대로 자신 있는 주제를 마주하니.

문득 정신을 차리면 조금 과했나 싶을 정도로 혼자 말을 중얼거렸지만.

그것마저 흐뭇한 얼굴로 듣고 질문까지 해주신다.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도 이런 남성이 있구나.

심장이 두근두근 튀어나올 기세로 뛰었다.

'즐거워서··· 미칠 것 같아!'

시간이 얼음이라면 그걸 용암에 넣어 녹아내리게 한 과도하게 빠른 흐름이다.

뒤따라오는 즐거움, 행복함은 이루말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티끌만큼 부족한 만족감이 존재했다.

이 부족함의 요인을 모를 리가.

언니와 리케는 당연하고 어쩌면 오라버니도 이 부족한 만족감의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클로에에게 리브로시아는 여행이라는 목적이 1순위가 아니다.

관계의 결착을 보기 위해 찾아온 곳이다.

겨우 여행 첫날이다.

리브로시아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오라버니와 발전한 관계로 보낼 수 있다면.

걱정 하나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돌아볼 만큼 특별한 날이 되지 않을까.

'···오라버니도 처음부터 알고 계셨겠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럴 것이다.

어쩐지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가시처럼 찔리는 감정이 함께 피어오른다.

당사자인 본인만 잘 숨겼다고 생각했을 뿐.

리케와 언니가 초기부터 알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마음이 투명하고 알기 쉬운 줄 몰랐다.

"···."

대상이 된 당사자라면 무조건 이 감정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의 대답을 했을 때부터.

오라버니의 마음속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겁먹고 시간을 질질 끌어봐야 결과가 변할 가능성은 없지 않나?

혹여 마음이 없는데 자신과 어울려 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정말 여행만이 목적이라 온 것이라면.

감정적으로 이 이상이 없을 정도로 잔혹한 고문이나 다름없다.

"후··· 후···."

긴장감에 호흡이 흐트러진다.

말을 끝낸 뒤의 결과가 좋아도, 좋지 않아도.

여러 의미로 눈물이 줄줄 나올 것 같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어떻게든 납득을 해야 한다.

그 길이 최선.

동행해 준 오라버니는 당연하고.

걱정하고 있을 언니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질질 끄는 것보다는 결과에 따라서 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지 모른다.

····

"이것도 먹을만 하네. 신기한 맛이야."

"헤헤··."

생각은 생각이고 행동은 행동.

클로에는 로만의 권유에 따라 생전 처음으로 길거리 음식을 사서 취식 보행을 해보는 중이다.

이름 있는 기사가문의 차녀에게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단순히 즐거웠다.

신기한 게 있다면 가다가 멈춰서 오라버니와 이런저런 볼거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인파를 피해 걷다 보니 서점이 줄지어 있는 골목의 구석까지 와버렸다.

"클로에. 여기 느낌 좋지 않아?"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관통하는 가게 내부를 보고 클로에는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드, 들어가 볼까요?!"

오라버니가 걷다가 발을 멈춘 곳은 구석진 곳에 위치한 가게로 손님은 없지만.

안은 생각보다 넓은 편이었다.

중앙에는 나무로 된 거대한 책장이 놓여 있었다.

책장의 옆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벽면에는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시계가 걸려 있어 침묵을 지켜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오! 옛날 모험가가 쓴 책도 있구나."

종이가 넘어가는 기분 좋은 소리와 시계의 초침 소리.

그 두 가지가 모여 시간을 쪼르르 흘려낸다.

'눈 부셔···.'

책을 둘러보다 창문으로 자비 없이 떨어지는 햇빛에 눈이 따가워 반대로 고개를 돌린 순간.

클로에는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굳어버렸다.

"···!"

로맨스 소설에서 흔히 감정이 눈을 가린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판단을 흩트린다는 그 감각은 이런 느낌인가.

아니. 단언컨대 이건 어떤 여자가 봐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처음 아카데미 교관님으로 오라버니를 마주했을 때는 거칠고 사나운 인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책을 보며 집중하는 옆모습이 너무 멋있어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정신을 놓고 쭈욱 지켜보고 있으니.

시선을 느꼈을까, 오라버니의 고개가 자신 쪽으로 돌아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왜 그래?"

"아··허업··! 그, 그!"

한평생 똑같이 살았으니 이제는 알고 있다.

평소의 자신처럼 겁먹고 미루기 시작하면.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어떤 결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그런 자신을 바꿔주는 상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오라버니와의 인연을 시간으로 따지면 1년도 되지 않지만···.'

기실 오랜 인연은 아니다.

그렇기에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게 많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모험가가 되었는지, 가족 사항도, 독서가 아닌 진짜 취미도, 여성의 취향도 자세히 아는 게 무엇 하나 없다.

그런 주제에 품게 된 이 감정은.

자기합리화를 위해 쌓아왔던 이론따위로는 따질 수 없는 것이다.

'하자.'

지금 고백을 하자.

그래야만.

이 폭주하는 감정과 정신 놓고 저지를지도 모르는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머리에는 그런 생각 뿐이었다.

"클로에?"

반응이 이상하니 웃는 얼굴에서 걱정이 느껴지는 표정이 보인다.

행동이 조급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인 걸···.'

이 부족함과 어리숙함 마저 감정의 깊이를 대변해줄 것이다.

"···오라버니."

"괜찮아?"

심장이 전력질주를 한 것 처럼 미친듯이 뛰는 게 느껴진다.

귀가 멍하니 순간 시간이 멈춘 느낌.

"저··· ㅡ"

내가 목소리를 내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필시 오라버니를 바라보는 내 눈빛은 불안하기 그지없겠지.

입술과 목은 이 짧은 시간에 건조해졌다.

이 허름한 책방의 구석에는 운명처럼.

두 사람 이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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