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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84화 (184/250)

Chapter 184 - 클로에는 같이 가보고 싶어.

"나 오라버니랑 수도 밖에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는데··· 오라버니한테 같이 가달라고 말해도 될까?"

서재에 떨어지는 달빛 때문인가.

눈동자에 유달리 밝은 생기를 번쩍이는 클로에를 에클레어는 마주했다.

오로지 이게 로만의 영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조금 질투가 날 것 같은.

그런 뭉클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야밤의 촉촉한 감성에서 이어진 값싼 동정으로 이루어진 허락이 아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언니는 리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을 듣고 길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힘내라는 말과 재정이든 권력이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편히 말하라는 것뿐.

특히.

그중에서도 언니가 해준 말 중 제일 놀라웠던 것은.

-클로에. 아카데미를 며칠 빠진다고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루든 며칠이든 편히 다녀와라.

제국의 5기사로서 규율을 중시하는 언니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일정이 고민이었는데 그것조차 해결되었다.

조건들의 이가 탁! 탁! 맞물리며 정신의 고삐가 풀리는 순간.

머리에 한 남자의 형상이 와르르 쏟아지며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속에서라도 이리 시원하게 불러보는 건 오랜만이다.

한동안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생각의 한쪽을 틀어막으며 참고 참았다.

만나기 위해 찾아간다거나, 실전 수업이 끝나고 사담을 하는 일도 자제하고 있었다.

그리 노력해도.

'적응'이나 '포기'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였고.

죽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는데.

리케와 언니의 허락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정신의 틈을 억지로 꿰매고 있던 실을 터트렸다.

정당한 도전.

이제는 오직 도전만이 남았다.

'결과를 떠나서 후회하지 않게 어떻게든···!'

두려움이 커도 찝찝함 없이, 전력으로 한 번 시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오라버니와 둘만의 시간.

조금 이기적일지라도 클로에는 자신이 가고 싶었던 곳을 권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라버니가 그곳에 아예 관심이 없으시면 어떡하지···?'

아니.

언제까지 이런 생각만 할 것인가.

착!

양손이 그녀의 볼에 차지게 달라붙어 정신을 깨웠다.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어떻게든 해내면 되는 거야!'

이 선택을 상대에게 권하기 전에 클로에는 합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느껴졌다.

생의 갈림길에 서서 중대사를 결정하는 무언가를 준비하듯.

클로에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 노트의 비어있는 페이지를 열고 펜을 들었다.

··

··

각자가 가진 취미가 있고.

취미의 깊이와 종류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사람들이 흔하게 언급하는 취미로 독서가 있다.

그게 자신을 꾸미기 위한 농담이 아니라 진심인 사람이라 한다면.

어떤 장르라도 책을 소장하고 읽는 걸 즐겼다면, 이 도시를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건 클로에도 마찬가지였다.

리브로시아.

이 도시는 누군가가 소유한 영지가 아니라 제국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특색있는 색깔을 가지고 있는 서점들이 길가에 쫙 깔린 장관을 볼 수 있다.

지식을 찾는 마법사나 골동품을 찾아 돈을 벌려는 자들 혹은 순수한 책벌레 등이 바글바글 한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신간이나 헌책에 대해 장사만 하는 곳이 아니다.

높으신 분들의 연설문이나 중요한 공고문을 대필하는 건 기본이요.

또 어떤 골목에는 솜씨 좋은 필경사들도 있다.

그뿐이랴?

리브로시아는 여러 장르의 소설가 혹은 연극의 시나리오 작가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

한쪽으로 기울어진 문화의 색이 워낙 진하다 보니.

자기 이름을 어떻게든 알리려 드는 인물들이 많아 길거리에서 연극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리브로시아는 소문이나 경험담만 들어도 책이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영지 밖이라고는 수도의 아카데미.

그외에는 부모님과 이름도 모를 곳에 가서 행사를 참석한 기억뿐.

경험이라고는 없는 클로에에게 바깥이란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다.

세리아와 달리 도전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그녀에게.

리브로시아의 존재를 알고 흥미가 동해도 여행이란 그림의 떡과 같았고.

언니인 에클레어도 항상 바빠서 쉬는 날에는 머리를 식히느라 클로에의 입장상 멀리 가자고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지와 막연함에서 풍겨오는 두려움을 잊게 하는 인물이 언니 말고 한 명 더 있지 않은가.

이번이 정말 여러 가지 꿈을 한 번에 이루어 낼 기회였다.

탁!

까만 글씨로 가득 찬 페이지를 덮으며 클로에는 벅찬 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돼, 됐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흐른 것인지.

비어있던 노트에 빼곡하게 정보를 담아 정리하니 밖에는 새벽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카데미?

지금 하려는 것은 아카데미가 끝나고 해도 되겠지만.

'모, 못 기다리겠어··!'

오늘에 한해서 아카데미니 그런 건 모르겠다.

감정 하나에 본인이 기마병처럼 저돌적인 인간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

서재에서 언니가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하라기에 눈 딱 감고 부탁한 한 가지.

그것을 상기하며 클로에는 노트를 꼭 안고 저택을 나설 준비를 서둘렀다.

*****

습기와 냉기가 가라앉지 않은 시간에 빵집에 다녀와 아침을 먹고 이어지는 평화로운 시간.

"오빠! 편지 왔어요~"

리케가 편지를 들고 쪼르르 들어오더니 침실에 누워있던 내 위로 거침없이 다이빙한다.

가볍게 그녀를 받아내 몸 위에 올려두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편지를 확인했다.

"고마워. 이 아침부터 편지?"

"언니한테서 왔어."

받자마자 뒤집어 보니 에클레어 드리트나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진짜네."

평소와 다른 편지의 외관과 형태에 황실에서 온 업무가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부터 집배원이 뛰어오다니.

'가끔 사용하는 이 우표 때문인가?'

간략한 의문은 끝.

제일 중요한 건 내용이다.

시잉-

손가락 끝에 종잇장처럼 얇은 오러를 일으켜 봉합된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낸다.

안에는 반듯하게 접힌 종이 하나.

투명하게 비치는 걸 보니 그 안에 차 있는 글은 절반가량.

아무리 담백하게 글을 적는 에클레어라 하더라도 내용이 적었다.

"어라?"

리케도 그걸 봤는지 꾸물꾸물 기어 내려오더니 내 옆을 차지하고 누웠다.

"으음···?"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의문으로 가려워지는 턱을 긁었고.

리케는 옆에서 키득키득 웃기만 했다.

-클로에가 모험가 길드에서 만나고 싶어 하니. 바쁘지 않다면 들려서 이야기라도 경청해달라.

편지의 내용을 단순하게 줄이자면 그 말이었다.

혼자서 모험가 길드로 와달라 하여 간다.

리케도 얼른 가보라 했고.

'뭐 대단한 일이라고··· 오라면 가야지.'

옷을 간단히 걸치고 나와 아카데미로 향하는 리케와 갈라지는 길까지 함께했다.

"잘 다녀와."

"다녀올게~ 오빠도!"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떠나는 리케를 보니 순간 이 그림에 궁금증이 들었다.

'클로에가 지금 거기 있으면 아카데미는 안 가나? 병결?'

최근 클로에를 보면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길드로 가면서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제대로 된 대면이 없던 소녀가 무슨 용무일지.

저벅-

눈에 들어오는 모험가 길드.

외부로 흘러나오는 담배 냄새.

쾅!

환기를 위해 문을 벌컥 열어젖히니 아니꼬운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뭘 봐? 눈 돌려."

으르렁거리니 우르르 흩어지는 시선에 마음이 편해지는 안락함이 느껴진다.

얼마 만인지 모를 모험가 길드.

터전에 발을 들이밀자 아는 척하는 것들에게 중지를 올려주고 접수원에게 다가가니.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견실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고마워."

모험가들이 모여 왁자지껄 한 곳의 반대편.

접견실의 문을 두들긴다.

똑- 똑-

"들어가도 될까?"

-아··! 자, 잠시만요!

접견실을 두들기자 내부에서 우당탕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서 차음을 위한 단속을 한 뒤.

앉아있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 한 권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클로에와 마주했다.

"잘 지냈어? 안 그래도 최근에 걱정이었는데."

"오라버니··!"

기쁜지 슬픈지 눈으로는 모르겠다.

복잡한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접객실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클로에를 앉혔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 그러네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맞은 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클로에를 위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아카데미는 안 가도 괜찮아?"

"어, 음·· 아마도요."

"···?"

아마도?

어딘가 애매한 단어 선정에 천천히 기다리고 있으니.

무언가 결심한 듯 심호흡을 크게 반복한 클로에는 품에 안고 있던 노트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오라버니가 보고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덜덜 떨려오는 손을 통해 건네받았다.

노트를 받아서 보니 토끼 모양 스티커가 포스트잇처럼 삐죽 나와 있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 봐도 괜찮아?"

붕붕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은 나는 그 부분을 잡고 펼쳤다.

샤락-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리브로시아?'

가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물론 알고 있다.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아 눈에 쏙쏙 들어오는 노트를 탐독하고 있으니.

클로에는 침묵과 내 대답을 기다리기 힘든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쓴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드실 테니. 서, 설명해드릴게요."

····

모험가 길드의 접견실에서 프레젠테이션에 가까운 발표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접수원이 복잡한 의뢰에 대한 중재를 위해 설명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건 정말 처음 보는 그림.

중점으로 시작되는 내용은 원래의 약속인 디저트 가게 한 곳.

어째서 리브로시아를 택했는지, 내가 흥미가 동할만한 곳은 무엇이 있는지.

딱딱하지만 그 특유의 풋풋함에 듣고 있으니 내용보다는 그녀가 힘내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 어떠세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책으로 얼굴을 가려 푸른 눈동자만 빼꼼 드러낸 채로 내게 물었다.

'···장하네.'

클로에의 성격을 알기에 속으로 몇 번이고 감탄했다.

장기인 부분만 계속해서 몰두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용기 내서 메꾸려는 노력이 아름다웠다.

특히.

보상이 가시성을 가지지 않고 뚜렷하지 않음에도, 벽을 보고 혼자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재밌겠어. 같이 가볼까?"

긍정적인 한마디.

그녀의 표정에서 근심걱정이 사라지며 더 없이 밝아졌다.

··

··

필요한 물품은 인벤토리에 충분히 있으니 어딘가로 움직일 때는 옷차림만 깔끔하면 된다.

리케가 직접 골라 준 옷을 입고 에클레어의 동생인 클로에를 만나러 간다는 이 배덕감.

상황을 재차 생각해 봐도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다.

복을 받아도 너무 받으니 팔자가 펴짐과 동시에 머리가 고장 날 것 같다.

이런 멍한 생각과 정신을 즐길만한 여유를 가지고 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리케가 다가와 허벅지에 앉았다.

"오빠. 나가기 전에 아~ 해."

아카데미 정복을 입고 있는 리케의 손에 들린 살정제.

군말하지 않고 삼키니 그녀는 장하다는 듯 가슴팍을 팡팡 두들겼다.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습관적으로 먹었음에도.

리케가 이걸 직접 먹인다는 것은 하나의 뜻이다.

누가 봐도 에클레어와 있던 그날이 연상되지 않는가.

안겨들어 내 목을 살짝 깨물어 자국을 낸 리케는 고개를 움직여 내 귀에 속삭였다.

"오빠에게 무얼 하라고 절대 강요는 안 해. 클로에에게 정신적으로 힘든 결과가 나와도 내가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끌어낼 거야."

터무니 없이 어려워 보이는 일이면서, 리케라면 정말 수월하게 해낼 것 같았다.

"내 여자 덕에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겠다."

여자친구의 친구이자 여자친구의 동생.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참으로 독특한 관계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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