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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68화 (168/250)

Chapter 168 - 병문안 아닌 병문안 -7-

드물게도 클로에가 약속이 있다며 점심에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세리아는 오랜만에 리케와 둘이 남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색함이 있지는 않았다.

아닌 척하면서도 항상 잡담에 귀를 기울여 주는 그녀이기에 돌아오는 답이 없다고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은 아니다.

오늘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드물게도 먼저 앞장을 서서 리케가 향한 곳은 세리아가 익히 아는 곳이었다.

'처음 만나서 같이 왔던 가게네?'

아카데미를 입학하고 기숙사 옆방에 시체 같은 몰골로 쥐 죽은 듯 살고 있던 리케를 끌고 나와서 온 음식점.

겨우 한 학기가 지났을 뿐이지만, 세리아에게 있어서 그리움과 만감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여기 앉을까?"

"좋아~"

여전히 말수가 적은 건 같아도 리케가 유달리 활기와 힘이 없던 시기.

같이 모험가 길드로 뜬금없이 가보았다가 실전 교관님을 마주하게 되고 정말 뜬금없이 영약까지 마신 날이 머리 안에서 촤르륵- 지나간다.

착석한 자리는 저번과 달라도 바깥이 보이는 구석이라 햇볕이 따뜻한 게 기분은 날아갈 기세로 최고.

"잘 먹겠습니다~"

거기다 주문한 메뉴까지 그때와 비슷하여 의도적으로 그날을 회상시키는 느낌이다.

클로에와 자신에 비하면 아직 소식가의 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리케는 앞에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두고도 속을 데워줄 수프로 식사를 시작했다.

"세리아."

"왜?"

평소와 같은 덤덤한 어조로 리케는 뜬금없이 폭탄을 꺼냈다.

"나는 진심으로 세리아가 좋아."

"···?"

과한 활기와 행동력을 가지고 큰 사고를 치지 않는 비결은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는 눈치.

그걸 가진 세리아는 알고 있다.

하여 오해하지 않는다.

분명 리케는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점심을 즐기고 있던 세리아의 자그마한 손은 멈췄다.

친구가 꿈에서라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은 대사를 자신에게 말하니 같은 여자임에도 얼굴이 화끈해졌다.

솔직하게 들이박히는 감정은 단순하게 부끄러움을 불러왔다.

"내가 세리아한테 무언가 말을 하지 않은 게 많다는 건 알고 있지?"

"···응."

눈치는 채고 있으나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기숙사를 비우고 어디에 있는지, 왜 스카디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지, 1학기 수업을 안 나온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은 거대한 산처럼 쌓여있지만.

그건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활시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속에 삼키고만 있었다.

묻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 해지면 다른 주제를 꺼내며 억지로 생각을 돌려내곤 했다.

"숨기려고 했던 이유는 괜히 친구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어. 나 혼자 짊어지면 충분한 고통이라며··· 그런데 클로에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 생각이 좁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거든."

"리케가 생각이 좁다니··."

어딘가 공감되지 않는 비하에 갑자기 자신이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지만 일단은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클로에한테 내 비밀을 들켜서 어쩔 수 없이 조금 깊은 이야기를 나눴어."

"비밀을 들켰다고?"

"응. 들키지 않고 둘에게 말해야 했다면 동시에 알렸겠지만, 이렇게 뒷북 치듯 알려서 서운하다면 미안해·· 기분이 나빠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어."

아카데미를 떠나면 친구들이 어찌 지내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극적인 순간에 클로에를 마주치기라도 한 걸까? 세리아는 뭐라 답하지 못하고 그저 침음을 흘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누구에게 먼저 말했다느니 그런 건 상관없지만··· 지금 말하는 이유가 클로에한테 들켰으니 나한테도 알려주는 거면 그건 서운해."

"미안해. 솔직히 시작점은 거기가 맞지만 이유는 달라."

세리아가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얼굴을 보이자 리케는 되려 푸근한 웃음을 보이며 세리아의 멈춰있는 손을 살짝 잡았다.

평소 먼저 다가오지도 않고 스킨십을 귀찮아하는 리케가 이런 식으로 다가오자 세리아의 입술이 씰룩거리며 진지하게 잡고 있던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았다.

"···어떻게 다른데?"

입을 살짝 가려 나름의 분위기를 유지한 세리아가 질문을 던지자 리케는 평소보다 조금 느린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존중 없는 사랑이 폭력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내 부족한 식견으로 움직인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모른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이었어."

"···."

"어떤 실패도, 실수도 하고 싶지 않아서 경우의 수를 최대한 줄여보려 했고. 한 번의 실수가 내가 아끼는 사람한테 피해를 주거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까 무서우니. 처음부터 혼자 품고 타인에게는 최대한 숨기자는 선택지를 택했지."

세리아의 가치관에서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물의 내면과 생각의 방향을 변하게 하는 것은.

긴 시간 얕게 침식하는 것보다 짧지만 큰 줄기를 가진 사건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고 믿는다.

리케가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까지 더 하여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변화하게 된 것에도 커다란 사건이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은근 여린 부분이 있는 리케가 이유를 쉽게 언급할 수 없다는 것도.

"그 생각이 변했으면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려는거야?"

표정으로는 평소와 다르다 느낄 게 없을지 몰라도.

드물게도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는 리케의 행동은 마음이 복잡하고 긴장감이 차올랐다는 신호를 세리아에게 전해줬다.

"말하기 전에, 이걸 듣고 세리아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 마음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냥 내가 행복한 상황이라고 믿어줘."

"···리케가 정말 행복하다면 그렇게 할게."

본론을 꺼내기 전에 애매하게 남아 찻잔에 찰랑이던 밀크티를 비워냈다.

리케는 머리에 떠올리면 자연스레 웃음을 짓게 하는 연인을 떠올리며 녹안을 껌뻑이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며 비밀을 꺼냈다.

"나··· 로만 교관님이랑 진지하게 교제하면서 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

*****

내 정신머리는 나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속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이유?

나는 속에 있는 무언가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음습함과 나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양손으로 받치고 있는 도시락이 어쩐지 쇳덩이처럼 묵직하게 느껴져 걸음이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한다.

예민하기 그지없는 오라버니는 몇 걸음 더 다가가자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었다.

"형제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린 수녀님은 내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도 꾸벅 인사를 건넸다.

청아한 모습에 마음이 어지럽게 반사되는 듯했다.

앞의 누구와도 눈을 마주하기 힘든 묘한 죄책감.

무의식이라도 기형적인 마음을 먹고 걸음을 움직였다는 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오느라 고생했어. 이렇게 신경 써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래도 관리는 제대로 하셔야 하니까요···."

이를 보이며 개운하게 웃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면 마음에 창이 난듯 바람이 불어온다.

속절없이 치고 오르려는 입가를 잡기 위해 클로에는 습관처럼 입술을 물었다.

딱히 더 이어갈 대화는 아니었는지 오라버니는 수녀님에게 인사를 가볍게 주고받은 뒤 몸을 돌려 앞장섰다.

"괜히 귀찮게 해서 미안해. 아카데미 생도의 귀중한 점심시간을 빼앗고 귀찮게 한다니 교관이든 모험가든 할 짓이 아닌데."

"절··대 귀찮지 않아요··!"

"하하! 역시 클로에는 착하네."

속마음을 쥐어짜 낸 목소리에 소리를 내며 호탕하게 웃고는 두꺼운 방문을 열어 몸을 슬쩍 비켜주신다.

가만히 있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처음 받아보는 남성의 매너를 받아들여.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먼저 발을 들여 탁자에 도시락을 올려두니 옆으로 오라버니가 다가와 한칸 한칸 분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 앉아계시면 제가 할게요··!"

"내가 뭐 손을 다친 것도 아닌데 같이 하자. 클로에까지 환자 취급하면 슬퍼."

"···."

당황하여 그 모습을 말렸지만 커다란 손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탁자를 채워나갔다.

자신이 무언가 할 틈새도 없이 준비가 끝나버렸다.

'그런 뜻이 아닌데!'

백금이나 되는 모험가가 이런 사사로운 잡일을 하다니.

리케가 제국의 부권제에 찌든 남자들과 다른 이질적인 면이 보여도 당황하지 말라 했었고.

자신도 어렴풋이 느껴온 것들이 있었지만 이리 한 공간에서 체감하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드륵-

로만이 자리로 돌아가며 빼주고 간 의자에 클로에는 고개를 한번 숙이고 주춤거리며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아카데미에서 여기까지 온다고 배고프지? 얼른 먹어."

"···오라버니 먼저 드세요."

양손으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예를 보이자 재밌다는 얼굴로 웃은 오라버니는 손을 그대로 뻗었다.

"잘 먹을게."

순서상으로 마지막에 손이 가야 할 과일을 하나 집어 먹고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데.

요리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준비한 것을 남이 먹어 준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언니가 자신에게 매일 아침을 해주면서 귀찮지 않고 보람찼다는 그 뜻을 조금은 이해했다.

"클로에. 지금부터는 에클레어한테 말하지 말고 비밀이야."

"네에?"

기껏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서 고풍스러운 종이상자와 금속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통을 가져온 오라버니는 비어있는 탁자 한쪽에 그것들을 올려놓았다.

겉에 아름다운 꽃들이 그려진 통들은 잠시 밀어두고 종이상자를 열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건 둘한테 줄 선물이고··· 오늘 클로에가 온다고 들어서 아까 수녀님한테 부탁해서 준비해뒀지~"

"···!!"

안에는 과일이 한가득 올라가 보석과 같이 특유의 광택이 흐르는 타르트가 종류별로 담겨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오라버니는 자신을 유혹했다.

"우리 밥은 제대로 먹고 먹은 거다?"

"네에! 헤헤··."

상대에게는 하찮을 만큼 작지만, 자신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생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도시락을 열심히 비우고 자신은 디저트에 손을 뻗기 전 밥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식사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클로에는 타르트의 영롱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혹을 뿌리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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