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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66화 (166/250)

Chapter 166 - 병문안 아닌 병문안 -5-

글레이프니르의 인사가 통했을까.

외관이 사슬이라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애교스러움에 에클레어는 놀란 얼굴로 단단한 형태를 한 몸체를 만져보려 했지만.

차륵-!

"음?"

에클레어의 손이 가까워지면 글레이프니르는 그만큼 멀어진다.

그 행동은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할 때 사람 손을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석을 잡고 같은 극을 밀어붙이는 형태를 닮기도 했다.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에클레어의 손에는 절대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여 나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리케에게 보여줬을 때도 그랬지만.

나 이외에 누군가가 터치하려 하면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느껴진다.

"피한다고 힘이나 속도를 이용해 억지로 잡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은 아이구나."

"아마도··?"

계속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슬금슬금 멀어지는 글레이프니르를 보며 에클레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가를 좁혔다가 허리를 펴 겉옷의 매무새를 정리했다.

"뭐- 됐다. 자세한 건 다녀와서 이야기하지."

"조심히 다녀와. 나는 다 잘 먹으니 키티가 먹고 싶은 걸로 편하게 사 오고."

나를 어떻게든 안정시키려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두손 두발을 들었고 교단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로만."

"응?"

뭔가 말하려다 입을 우물거리던 그녀는 살짝 홍조를 보이며 말을 꺼냈다.

"금방 다녀올 테니 외롭다고 울지 마라."

쿵!

드물게도 농담을 던지며 방문을 닫는 에클레어의 행동에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웃음이 터졌다.

'리케도 에클레어도 매력의 끝이 안 보이네.'

재미를 떠나 시도가 실로 신선하고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이 누워서도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차륵-

재롱 겸 인사를 위해 빳빳하게 서 있던 글레이프니르가 무너져 내리며 배 위로 흘러내렸다.

신기한 점은 묵직하고 딱딱한 금속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부드러운 천이 몸에 나풀거리며 올라온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게 그렇게 싫어? 다음부터 주의할게."

느릿하고 소리 없이 스르륵 기어서 내 손으로 다가오는 글레이프니르를 평소와 같이 쓰다듬어 주었다.

츠르르-

어느 순간 사슬에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놀랄 것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슬인데 잠까지 자는 건 아니겠지··?'

무게감을 가지고 늘어져 있는 글레이프니르를 살짝 들어서 원래 있던 허공으로 밀어 넣고 에클레어를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

'배는 안 고파도 밤을 생각하면··· 먹긴 해야겠고.'

뒤꿈치로 침대를 통통 때리며 방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저녁은 에클레어가 무엇을 사 올지 기대가 동했다.

그녀가 나에게 언급한 건강에 대한 걱정과 입맛대로라면 기름지고 자극적인 요리보다는 깔끔한 메뉴를 선호하지 않을까.

직접 나선 에클레어가 먹고 싶은 것으로 사 와도 아무 상관 없다.

실제로 크게 가리는 음식이나 요리는 없으니.

똑똑-! 똑똑-!

에클레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가 아닌 다른 인물이 찾아왔다.

아침때와 같이 힘을 절제하지 못하는 강인한 노크.

누가 왔는지 감각에 집중할 필요도 없이 행동 하나로 참 알기 쉬웠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끼익-

아침에 만났을 때와 같은 듀오였지만 상태는 다르다.

덩치 큰 여자를 대동한 채로 들어온 성녀는 오늘 일정이 상당한 강행군이었는지 아침보다 피곤함을 덕지덕지 붙인 행태.

웃는 입 모양은 아침과 같지만 느낌만은 무거웠다.

본인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몸이 약하다는 설정이 생각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듯 보였다.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기사님과는 황실에서도 그렇고 방금도 잠시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피로의 문제인지 목소리도 묘하게 낮아져 있다.

"그렇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 피곤해 보이시는데 쉬지 않으시고."

피곤해 보인다는 직접적 언급에 그녀의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일단 기사님이 떠난 뒤에도 교단과 황실이 협의를 본 사항이 있어 그건 기사님에게 전해드렸습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에클레어를 침대에서 한숨 돌리게 한 일이 잘했다고 느껴진다.

"제가 들어야 할 정보라면 나중에 직접 듣겠습니다. 바쁘신 성녀님이 찾아오실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그녀는 내 말에 감사를 표했다가 웃음을 지우고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음··· 말씀은 감사합니다. 사실 이렇게 찾아온 건 모험가님에게 여쭤볼 게 있어서 들리게 되었는데 괜찮을까요?"

진지하게 잡는 분위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지도 않을 뒷조사를 하는 것 보다 솔직하게 묻는 게 서로에게 좋으니.

"아무리 성녀님이라도 질문에 따라 너무 민감한 주제는 답을 못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기회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합니다."

"대답을 못 드릴 확률이 높은데 벌써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 건 좀 무섭네요."

습관적으로 끌어올리는 입꼬리가 아니라 정말 피곤한 얼굴에 웃음을 살짝 보였다가 질문을 꺼냈다.

"모험가님의 가족 관계 중 교단에 연관된 분이 계시는가요? 성기사나 사제 출신이신 분이 있으신가 여쭙고 싶습니다."

"아뇨? 가족이라··· 부모님은 농사를하셨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요."

내 질문에 성녀는 짧은 침음을 흘리며 생각하다 한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혹시 더 위로 가족의 계보를 봤을 때도 없으신가요?"

"계보, 평민이라 그런 건 정확히 모르지만. 그나마 기억이 있는 부모님과 살았던 시기에 할아버지나 다른 핏줄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녀가 내게 무엇이 묻고 싶은지는 알겠다.

성법술에 있어 대단한 실력을 가진 그녀가 내 백염을 보고 어떤 걸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겉돌기로 연관성을 찾아보려는 것 같다.

일반적인 물리력에 대단한 내성을 지닌 강대한 악마를 몰아붙이고 정화시킬 힘이 있는 모험가에 대해 궁금증이 많을 터.

하지만 유추할 구멍 중 제일 유력하고 커다란 게 막혔으니 어떻게 나올 것인가?

'아무리 궁금해도 대놓고 묻지는 않겠지.'

지체 높으신 성녀라 해도 모험가에게 무슨 스킬, 아티팩트를 가졌는지 당당하게 묻는 건 애초부터 경우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는 범위다.

까보라 해도 내가 선뜻 보여줄 이유도 없고.

눈치없는 모험가 역을 자처하며 다음 질문을 고민하고 있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성녀님. 저에게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그녀는 미리 준비라도 했는지 마도구처럼 빠르게 대답을 냈다.

"강대한 악과 항쟁하시던 모습이 워낙 용맹하셔서 그 비결을 배워보고자 했습니다."

에클레어처럼 일직선이 아니라 여러 곳을 떠돌고 정치판에도 한발을 걸치고 살면 이렇게 되는 걸까.

돌려말하는 기술이 예술이었다.

"용맹한게 아니라 무지하여 겁이 없는 겁니다. 모험가라는 족속이 대부분 그러하지요."

"···그렇습니까? 저는 백금 등급에 속한 모험가님을 뵙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비범함을 느꼈습니다만."

의외의 사실이었다.

비범함을 느꼈다는 말은 허울 좋은 립서비스라 해도 성녀나 되는 인물이 백금을 처음 봤다는 게.

"밖으로 포교를 도신다면 수도보다 만날 확률이 높을 텐데요?"

나처럼 수도에 짱박혀서 길드 선술집에 들락거리는 백금이 오히려 드물었다.

아니 백금 중에서는 애초에 나 혼자다.

다 역마살이라도 걸린 운명론자처럼 나가서 '모험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여러 가지를 하고 살고 있겠지.

청금만 되어도 노팅엄 같은 정신병자를 빼면 선술집에서 보기 힘들기도 하며.

고위급 모험가를 마주칠 확률은 수도의 바깥이 훨씬 높다.

"청금에 속하신 분들은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백금은 없었다는 뜻.

"영광입니다. 성녀님이 처음 본 백금이 저라니."

"저야말로 영광입니ㅡ"

똑똑-

노크 없이 자연스레 문을 열어도 될 인물이 안의 어수선함을 읽고 예의상 문을 두들겼다.

여기서 제일 아래라고 자진하여 인식하고 있는 마젤라가 성녀와 로만의 의중을 한 번씩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에클레어가 성녀를 향해 간단히 목례를 건냈다.

"이야기를 나누시는 중 실례합니다."

한 손에 종이봉투와 어딘가의 냄비를 채로 들고 온 에클레어가 등장하자 성녀는 몸을 돌려 그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침 용건이 끝나 지금 물러날 예정이었답니다. 그럼 모험가님도 기사님도 평안하시길···."

에클레어가 들어오고 성녀와 보좌는 방을 나갔다.

끼익-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탁자에 먹을 것들을 풀어두며 에클레어는 내게 물었다.

"성녀님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끼어든 건가?"

"아니. 딱 좋은 타이밍이었어. 그리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흐음··."

"뭐 내가 악마와 싸운 것에 대해 궁금한 게 많겠지. 언제 날 잡고 조사 겸 제대로 부르지 않겠어?"

"확률은 높지만 그리 긴 시간을 소요하지는 않을 거다. 일단 큰 줄기는 안에서 단정을 지은 상태이니."

"그건 다행이네··· 사 오느라 고생했는데 준비는 내가 할 테니 앉아있어."

에클레어의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그녀는 피식 웃음을 내면서도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함께 탁자에 음식을 풀고 자리에 앉아 재료까지 푹 익힌 크림스튜로 가볍게 식사를 시작했다.

"곧 수면을 취할 시간이니 부드러운 게 좋을 거다. 그리고 봉투에 있는 빵은 아침에 먹도록하고."

"잘 먹을게."

아침까지 미리 준비해 준 에클레어의 안배에 감사하며 단순히 식사라기보다는 그녀와의 대화에 치중된 시간을 보냈다.

··

··

"이노센스."

피이잉-

그녀의 손에 빛의 입자 같은 둥근 것들이 모여들어 단단하고 예리한 검이 된다.

실로 낭만이 있는 등장 형태 아닌가.

"그냥 눈으로 봐서 느껴지는 감각은 경건하다? 성스럽다? 그런 느낌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노센스의 능력은··· 성법술의 발동이다."

"검을 통해 사용하는 스킬을 얻은 거야?"

이건 게임에서 알 수 없는 외적인 부분이라 상당히 궁금한 부분이었다.

아카라이트의 히로인인 리케의 경우는 바니타스를 통해 혈마법을 익혔다.

에클레어가 정작 게임의 히로인이 아니라 해도 스킬을 배울 가능성은 충분할 터.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노센스를 들고 있는 때. 내가 원한다면 성법술이 계속해서 발동 되는 형태니 스킬을 배웠다기에는 조금 다르군."

"어떤 성법술인데?"

그녀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검을 들어 앞에 세우고 눈을 감았다.

"···이 검에 집중하면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순수함과 결백한 마음은 하나의 검으로 위조되어 신의 축복을 모방할 것이다. 이 검이 권력, 탐욕, 야망, 부패한 영향에서 마음과 믿음을 확고히 하여 그대를 지켜줄 것이다.

-사자의 심장 (The lion's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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