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5 - 병문안 아닌 병문안 -4-
한참을 기다렸던 문이 열리고 허리에 검을 찬 남자가 다가왔다.
"앨리스! 많이 기다렸어?"
"···빨리 가자."
교단에 시간 아깝게 앉아 자신의 파티원 로만을 기다리는 것도 끝.
이제 다시 모험가 길드로 돌아가 미리 의뢰를 선정할 시간이다.
"수고하세요."
보이는 교단의 인원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며 교단을 나오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실제로 복잡할 안건도 아니지만.
조언을 준 사람이 사람인지라 숨겨진 뜻에 자신이 모르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갔다.
'정령이 보이는 사람은 어머니 외에는 처음이었어···.'
고향 친구와 동명이인인 백금의 모험가를 교단에서 뜬금없이 만날 줄은 몰랐다.
두 번을 만났지만 두 번 모두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사람이라는 인상.
첫 만남의 강렬함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만남은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다.
-그리고 정령을 본다고 무조건 착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니 증거 없는 소문은 너무 쉽게 믿지 말고. 나만 해도 알겠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
본인이 정령을 볼 수 있는데 그 구전을 굳이 깎아내릴 이유를 모르겠다.
어딜 봐도 자신에게 손해 아닌가.
반대로 정말 숨기는 뜻 없이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충고? 어째서··?'
금 등급인 자신이 백금이 볼 때는 충고를 못 참을 만큼 어설퍼 보였던 걸까?
-정령을 볼 수 있는 자 중에 나쁜 자는 없다.
어머니가 자신이 테로와 만나 계약했을 때 해주신 말씀이기도 하고.
흔히 정령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듣는 칭찬이기도 하다.
마음이 선해서 보인다, 타고난 천성이 아름답기에 보인다, 신에게 사랑받는 증표이다··· 등등.
정령을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마주할 수 없다고 악한 건 아니지만 선함의 증거는 될 수 있다 하는 설도 존재한다.
앨리스는 자신이 선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은 이유는 부정해봐야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용인족에 어머니는 다크 엘프.
엘프의 피가 흐르고 있는 어머니도 날 때부터 정령이 보이셨고 계약까지 했지만, 아버지는 평생 정령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또한 어머니 못지않게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에.
아마 자신이 테로를 만난 것도 천성이 선하거나 여신님이 특별히 여기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줄곧 해왔다.
"앨리스?"
"···왜?"
"앞으로 진짜 조심할게! 이번에 사용한 포션 값은 나중에 어떻게든 ㅡ"
중얼거리는 로만을 보고 욱하고 감정이 올라오자 앨리스는 눈을 떼고 올라오는 감정을 억눌렀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해.'
모험가 길드에서 자신이 쓰던 명검을 잃은 이후로 로만은 의뢰에서 부상을 당하는 빈도가 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검으로 벨 수 있던 것을 대용으로 구입한 평범한 검으로는 양단하지 못하게 되면서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그 덕에 저번 의뢰에서 타우의 주먹에 맞고 내장에 심한 손상을 당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주기적인 치료로 이제 완치된 단계지만.
그 당시 질 좋은 포션이 없었다면 정말 여신님의 곁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하나?'
애초에 자신이 끌고 온 것이 아니라 수도로 가는 본인이 걱정된다며 로만이 자진해서 따라온 것이다.
위를 보며 쉬지 않고 달리려는 자신.
반대로 청금과 백금을 실제로 본 뒤로 절대 도달하지 못할 재능의 영역이라며.
늘어져 버린 로만과 마찰이 빚어지는 일이 많아지니 파티를 아예 다시 꾸려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
두꺼운 문을 넘어서도 느껴지는 어수선함.
범인을 넘어서는 뛰어난 청력의 단점이라 하면 이런 순간에 잠을 깬다는 것이고.
장점이라 하면 무슨 일로 이리 시끄러워졌는지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으음···."
품에서 대꾸도 없이 새근새근 잠들어있던 에클레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잘 잤어?"
"···."
자신이 잠든 줄도 몰랐는지 상황 파악을 위해 눈동자를 굴리다 에클레어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왜 얼굴을 가려?"
"말도 안 되는 실책이다··· 병문안을 와서 환자의 침대를 빼앗고 잠들다니··."
"애초에 나는 환자도 아니고. 자는 모습 보는 걸로 기력보충 제대로 했지. 보고만 있는데 힘이 나더라."
"···."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그녀를 몸쪽으로 더 끌어당기니 새우처럼 웅크려서는 이불 밑으로 쏙 들어와 자신을 숨겼다.
'본인은 정말 창피해한다는 게 더 귀엽네.'
애교를 보이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귀여움이 곱절로 가산된다.
어딜 가서 그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겠는가.
나만 눈에 담을 수 있는 귀한 그림을 보기 위해 그녀가 숨어있는 이불을 파고들었다.
"키티. 괜찮다니까?"
"내가 나를 용서 못 하는 거다···."
"피곤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도 의뢰 도중 숲에서 잠들어버린 적이 있어. 당장 돌아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도."
"···."
"자도 되는 상황에 자는 건 어떤 문제도 없지만, 나처럼 자면 안 되는 상황에서만 안자면 되는 거잖아."
스륵-
에클레어는 움츠려있던 몸을 풀더니 내 허리를 감아 꽉 껴안아 왔다.
마나가 없는 일반인이라면 허리가 접히거나 부서지고도 남았을 근력.
그만한 힘으로 딱 달라붙어서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여전히 표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알겠으니. 농담이라도 본인을 깎으면서 위로하지 마라···."
"미안."
가볍게 사과를 건네니 에클레어가 내 가슴에 머리를 콩 박았다.
"···미안해하지도 마라."
무슨 말을 해주면 그녀의 엉킨 기분이 풀릴까.
이불 안에 웅크린 성인 두 명이 만드는 열기가 분위기를 이끌었다.
"사랑해."
내 말에 그녀는 품에 있던 고개를 이제야 들어서 얼굴을 보여주더니 웃었다.
"그 말은··· 옳은 선택이다."
"대답은?"
웅크린 몸을 꾸물거리며 곧게 편 그녀는 나와 눈높이를 맞춰 빤히 응시하다 내 허리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췄다.
에클레어는 키스를 시작하면 분위기를 타고 내게 주도적으로 혀를 섞을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내 혀를 자신의 입안에 담아 빨고 핥는 것을 좋아한다.
"음··."
몸을 돌려 그녀를 내 위에 올려두고 따뜻하게 눌리는 제복의 감촉을 즐겼다.
탄력 있는 엉덩이도, 균형 잡힌 허벅지도, 그녀가 나를 만나기 시작하며 신경 쓰고 변하게 된 부드러운 속옷 위로 느껴지는 젖가슴도.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내가 깔린 상태에서 가슴으로 손을 뻗으면 살짝 상체를 틀어서 제복 아래에 감춰진 젖을 마음껏 만지게 해주고.
"흐읍··! 읏··."
키스 도중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한 손은 아래로 내리더니 내 자지를 살살 쓰다듬고 쓸어내린다.
똑-
검은 제복의 윗단추를 풀어 그 안으로 손을 넣자 비단 같은 천과 그 아래에 부드러운 지방 덩어리가 손바닥을 꾹 누르며 압박해온다.
"하으··! 리케와 오늘·· 어디까지 했지? 설마 여신님의 눈이 있다는 교단에서 불경한 짓을 한 건가?"
에클레어는 키스를 끝내고도 멈추지 않는 내 손놀림에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재촉했다.
"으음··· 끝까지는 안 했는데."
"끝까지는··? 흣··! 그럼 뭘 했지?"
"여신님의 눈을 피해서 이불 아래에서 조금? 아무래도 뒷 정리가 힘드니."
두꺼운 문밖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가끔 들려왔지만 모두 거리가 있다.
에클레어는 내 자지를 계속해서 주무르고 쓸어내리며 문을 응시했다.
상당히 고민에 빠져있는 얼굴.
"굳이 뭔가 할 필요는 없어. 며칠 정도는 안 해도 참을 수 있어."
"···지금 이걸 보고 그런 말이 나오나? 읏··."
젖가슴을 계속해서 주무르는 우악스러운 손과 환자복을 찢을 듯이 우뚝 솟은 자지.
내가 봐도 설득력이 심하게 없긴 했다.
이럴 때 남자는 그냥 웃는 거다.
"내 여자한테는 조절이 안 된단 말이지.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굳게 잠겨있는 문을 확인한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내 환자복 하의를 내리더니 쿠퍼 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자지를 잡았다.
"후···괴로워 보이니 딱 한 번만이다."
'진짜 안 해도 괜찮은데?'
하지만 해준다고 하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다.
교단의 안이니 여신님의 눈을 피한다는 명목하에.
리케와 다른 이유이지만 자세는 비슷하게 에클레어도 내 하반신에 위치하여 이불을 덮었고.
에클레어는 다리를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로 내 자지를 입에 물었다.
··
··
남자라는 성별로서 오늘 하루에 충실했냐고 묻는다면 정말 충실했다 할 수 있겠지.
아카데미의 여생도와 여기사의 입 안에 정을 한가득 쏟아부은 하루.
살정제도 먹지 않았으니 정말 박동하는 생명을 그녀들의 입과 목구멍에 부었다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또 흥분감이 올라왔다.
보통은 이러지 않는 데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이 가지는 힘은 정말 대단하고 신기한 일이 아닌가.
이게 남자의 정신에 있어서 성장인지.
독점과 같은 유치한 감정을 많이 가지게 하는 퇴화인지 모르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 중에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 생각을 어째서인지 입 밖으로 말하고 싶었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표현은 되도록 많이 하는 게 좋으니.
뜬금없다 생각되어도 좋았다.
옆에 누워있는 에클레어에게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니.
그녀는 잠시 놀란 눈을 했다가 정말로 기쁜 얼굴로 웃으며 꼭 리케에게도 말해주라며 나를 꽉 껴안고 뽀뽀를 몇 번이고 해줬다.
입술 세례를 받고 여운에 잠겨있으니 내 가슴을 툭 치고는 에클레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어라. 조금 늦긴 했지만 저녁으로 먹을만한 것들을 사 올 테니."
"나도 같이 갑시다. 기사님!"
의자에 있는 겉옷을 다시 걸쳐 입은 에클레어는 내 어깨를 눌러 침대에 다시 앉혔다.
"환자복 차림으로 가긴 어딜 간다고.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흐음···."
어떻게 하면 설득이 될까 고민하고 있으니 그녀의 제복 차림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교단 안이라서 그런가?'
허리에 매번 걸고 있던 검이 없었다.
불시에 어떤 일이 생기면 당장 이노센스를 사용한 전력투구를 고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노센스는 도대체 무슨 능력이지?'
매번 무기에 관해 이야기하려다가 놓쳤다는 걸 깨닫고.
나는 내 몸에 깃들어 있는 사슬을 먼저 꺼내서 보여주기로 했다.
혹여 이번에도 까먹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면 안 될 일이니.
"글레이프니르."
차르륵-
허공에서 쇠사슬이 뽑혀 나오는 소리를 들은 그녀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
"우리가 힘낸 성과를 보여주는 거야! 자~ 인사."
츠륵!
사슬 한 줄기가 뱀처럼 빳빳하게 서서 끄트머리를 굽혔다 펴는 걸 본 에클레어는 외출 준비를 멈추고 이쪽으로 다가와 글레이프니르를 이리저리 탐색했다.
"이게 무슨··?!"
아주 얇은 실을 이용한 장난 혹은 마나를 사용한 조작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에클레어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황당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침대에서 글레이프니르와 놀며 시덥잖은 합을 맞춘 보람이 있었다.
"이노센스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를 못했잖아? 저녁을 먹고나면 이 아이에 대해서도 설명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