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0 - 성안(聖眼)은 마주했다.
오라버니가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다며 함께 내려가 저택에 남아있는 사용인들을 해산시킨 뒤.
자신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을 때 클로에는 그저 묵묵히 따르기로 했다.
압도적인 경험과 무력은 안전의 상징이 됨은 물론이요.
혼란한 사태를 파악하고 긴장감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침착함은 옆에 있는 클로에도 마음이 놓일 정도로 영향이 컸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장소가 수도 외곽에 있는 처음 보는 집이고.
거기서 문을 열자 소중한 친구인 리케가 나와서 자신과 눈을 마주쳤을 때.
""???""
이것은 로맨스 소설 애독자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가정을 하게 만들어서.
클로에의 머리는 생에 처음 겪는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했다.
리케도 보라색 눈동자를 껌뻑이며 자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했지만.
한 번의 시선을 주고받고 사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을 간단명료한 대화를 몇 마디 나눈 뒤.
오라버니의 품에 당연하다는 듯이 폴짝 안겨 왔다.
그대로 각각 한 팔을 깔고 안겨서는 지붕을 밟고 길가를 달려 교단에 도착하였고.
혼란이 찾아온 교단에 리케와 둘이 남겨져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클로에의 머리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냥 기다리라니··.'
그 말을 듣고 자신은 방해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같이 가겠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나설 수도 없었다.
자신의 우유부단한 결단력과 어설픈 무력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여기에 없는 언니와 자신을 대신해 마법을 직격당한 오라버니의 안위에 대한 커다란 불안.
또 한편으로는 예측조차 되지 않는 리케와 오라버니의 관계.
머리는 그대로 폭발하기 직전으로 멍하니 생각을 시작하기 전보다 못한 상태였다.
비상사태로 왁자지껄한 바깥 상황.
사람들을 피해 교단의 구석 의자에 함께 앉아있던 리케가 클로에의 손을 잡아 왔다.
"클로에."
평소 세리아가 무의식적으로 펼치는 가벼운 스킨십도 귀찮아하던 그 리케가 이리 먼저 손을 뻗는 건 처음이라 클로에의 몸이 긴장에 굳어왔다.
"··네, 네에!"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교단의 번쩍거리는 바닥만 보고 있으니.
평소의 무표정과 알맞은 덤덤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아니라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리케의 말이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그녀의 한마디에 클로에의 숨이 멈췄다.
"···."
그 이후 리케가 밖을 보라는 순간에 극적으로 언니와 만나 조금은 진정이 된 클로에는.
리케와 서로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손을 부여잡고 기다렸다.
살결을 타고 느껴지는 미약한 떨림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요.
서로가 걱정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관계와 상황에 대하여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클로에도 지금은 도저히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성녀님이 돌아오셨다··!
-제국에 승전을 알리도록 해라!
-와아아아!!!
-아직 끝이 아닙니다! 골목에 펼친 방진이 끝나면 5인 1개 조로 순찰을 돌아야··.
····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웅성거림,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교단의 안쪽까지 들려왔다.
언니와 함께 서서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오지만.
문제가 없어 보이는 보폭과 다르게 피로 칠갑이 된 오라버니가 눈에 잡혔다.
오늘 입고 있던 하얀 셔츠가 전부 붉게 물들고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채로 들어온 그 상태는.
내성 없는 남자의 몸을 보았다고 부끄러움 같은 사치스러운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리케와 손을 잡고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오라버니는 이곳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둘 다 잘 기다리고 있었네."
척 봐도 괜찮지 않은 상처를 품고도 입꼬리를 올리는 그 모습에 정말 가슴이 갈레 갈레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오빠··!"
"오, 오라버니!"
교인들의 환호성과 사이에서 소녀들의 울음바다가 일어났다.
에클레어는 팽팽하던 감정의 실을 놓으며 안도하는 클로에와 리케를 보며 긍정적인 감정이 싹트는 걸 느끼면서도.
앞으로 동생을 앉혀두고 해야 할 설명들에 두통을 느끼며 마나로 방벽을 만들어 당장 일어나는 울음소리와 그림을 가려냈다.
··
··
"···오라버니 지, 진짜 괜찮은 거죠?"
퉁퉁 부은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따라오는 클로에는 에클레어가 전담하여 다독이고 있었다.
"오기 전에 치료는 받았으니 아무 문제도 없어. 당장 디저트 카페도 갈 수 있을 정도니 치료 끝나면 다 같이 갈까?"
리케가 내 말을 듣고 피로 물든 옷깃을 살짝 잡아당기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오빠···!"
괜찮다는 말의 진위를 스킬로 확인까지 했음에도 리케는 평소와 같이 내 몸에 서슴없이 손을 뻗지 못했다.
교단에서 마주하고 클로에와 달려와 안겨들려다가도 멈춰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리케는.
내 옷을 대놓고 휙휙 들추며 몸의 상처를 이리저리 확인하였다.
글레이프니르를 정리하며 깨끗이 닦아낸 손으로 리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시켜주는 게 최선.
"진짜 괜찮으니 걱정 말고. 별 상처도 아닌데 흰옷이라 호들갑스럽게 보이는 거야. 그치?"
나는 필사적으로 에클레어에게 동의를 구하려 했으나 그녀는 동의를 해주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성녀님에게 제대로 확인을 받아봐라. 정말 혹시 모르는 일이다."
드르륵-
마젤라가 진료를 위해 비워둔 방의 문을 열고 성녀가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관계자분 외에는 바깥에서 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녀의 말에 발을 빼는 인원은 없었다.
호적상으로 스카디 후작가의 리케와 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드리트나 백작가의 자매까지.
한 남자의 관계자라 칭한 여자 세명이 문을 닫는 마젤라를 따라 방으로 우르르 들어오자 진료를 하기위한 공간이 협소하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부다처제는 만연하니 대동한 여성이 많은 건 개인사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백금이라 해도 야성적인 느낌이 강한 모험가와 기품이 넘치는 귀족가의 여식들이 이렇게 묶여있는 그림은 성녀에게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워낙에 유명한 여성이 섞여 있으니 이 자체로 제국을 떠들썩 하게 할 그림이었다.
허나 이런 식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입장상.
절대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할 일만 하는 거야.'
신성력을 끌어올리려 집중하려던 성녀는 뒤통수를 따갑게 할 정도로 쏠려오는 여성 진의 눈길에 진땀이 흘렀다.
장남에게 극성인 귀족부터 심각한 상처를 입은 연인이나 가족을 둔 자들의 시선도 강렬하긴 마찬가지.
이런 경우가 딱히 처음은 아니기에 심호흡으로 집중력을 끌어모은 성녀는 여유를 되찾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시작했다.
-빛과 진리를 만드신 여신님에게 간청하오니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환상의 장막 너머를 볼 수 있는 시각, 옳은 것과 정의로운 것을 분별하는 지혜, 좋은 것과 진실한 것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제게 허락해 주십시오. 여신님의 빛나는 존재가 어둠을 비추게 하시고 해를 입히려는 그림자를 앲애게 하소서. 저는 여신님에게 충성과 헌신을 바치고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기릴 것을 맹세하니 마음의 창을 깨끗하게 하여 주십시오.
-성안(聖眼).
그녀의 눈동자에 신성력이 쏟아지며 성스러운 이채가 깃들고.
방 안에는 숨도 함부로 쉴 수 없는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한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뜬 성녀는 앞에 앉은 로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오기 전에 외상은 치료했지만 안심은 절대 금물··.'
고위 흑마법은 쉽게 관측할 수 없도록 정신이나 마나의 틈, 영혼에 깃들어 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그녀가 듣고 시체를 목격한 일로.
흑마법사와 전투를 치르고 승전한 뒤에 안심하고 지내던 성기사가 뜬금없이 저주가 발동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오늘 보았던 강력한 악마라면 무슨 사특한 수를 사용했을지 모르는 상황.
조사에 만전을 기해야한다.
"마나를 한번 응용해보시겠어요? 오러를 만들어 보여주시면 더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지잉-!
손가락을 따라 선명한 오러가 피어오르자 그녀의 성안이 로만의 마나를 파고들어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근육이나 뼈대의 상태도 그렇지만 마나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순도야···.'
소문으로만 들리는 백금의 모험가가 보여주는 신체와 마나의 안은 빈틈없이 빡빡하게 들어찬 상태로.
하나하나 확인을 하며 파헤치고 나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안으로 파고들수록 성안이 주는 피로감이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너무 강하였고.
심장은 고사하고 오러의 시작점인 팔 한쪽을 확인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을 잡아 먹었다.
하지만 시급을 다투는 일에 성녀는 자신의 피로감은 뒤로 밀어두었다.
'··비어있네?'
이 모험가는 독특하게도 심장에 마나를 모으고 방출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연공법에 따라 이런 경우가 존재하기에 성녀는 익숙하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심장 언저리에는 물리적인 형태가 없이 결속된 무언가가 있다.
흑마법과 같은 부정한 느낌은 아니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스킬인가?'
심장에 위치하고 있지만 물리적으로 심장이 아니라 영혼을 지키기 위해 동여맨 듯한 그 모습은.
치렁치렁 매달린 사슬과 같아 결코 아름답다고는 하지 못할 구애의 형태였다.
이 모험가에게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지만 해를 끼칠 행색은 아니라 느껴진다.
'사슬··사슬이라면··.'
분명 악마를 상대하고 있던 당시 독특하게도 사슬을 사용하고 있던 기억이 선명히 있다.
백금의 모험가라면 여러 던전을 다니며 자신이 모르는 성물을 보유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교단의 성물과 같이 신성하다 칭할만한 무언가.
혹시 이것이 부정한 것들에 대한 방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성안을 이용해 접근을 시도 한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