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9 - 이거 과잉진료입니다.
보는 순간 손바닥이 터져라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일검이었다.
쿵!
글레이프니르에 감긴 채로 허공을 빙글빙글 돌아 바닥에 악마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마나를 쪽쪽 빨아먹던 백염도 발동을 종료.
"후우~"
두꺼운 목을 깔끔히 날려버린 에클레어는 이노센스를 허공에 숨겨버리고 성큼성큼 다가와.
떨리는 양손을 천천히 뻗어 내 얼굴을 잡았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혼자서 이런 위험한 짓을··!"
"멀쩡해."
걱정 말라는 뜻으로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서 까딱거리니.
에클레어는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틀어막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순간에 자꾸 장난을 친다면 정말로 화낼 거다··· 성녀님! 여기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성녀?'
대단한 성법술이라 대체 교단의 누가 왔나 했는데 정말 귀하신 몸이 행차하셨구나.
여기로 뛰어오다 중간 지점에서 다시 돌아간 덩치 큰 여자는 멀리서 한 여성을 안고 우다다 뛰어왔다.
"아니. 치료가 아니라 마무리를 먼저 해야지."
글레이프니르에 감긴 악마의 머리통을 발로 꾹 누르고 있으니 에클레어가 내 팔을 잡으며 만류해 왔다.
"로만·· 치료가 우선이다!"
아직 저기서 뛰어오는 둘을 확인한 나는 에클레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않고 말했다.
"키티."
"···!"
"진짜 괜찮으니 걱정 마."
불만은 가득해 보이지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결국 한발 물러났다.
"···끝나면 제대로 치료를 받아라."
"약속할게. 아! 그리고 클로에는 리케랑 교단에서 좀 기다려 달라고 말해놨는데··."
클로에의 이야기에 에클레어는 숨을 잠시 들이켰다가.
목소리에 여러 감정을 담아 내게 진심이 가득한 감사를 보였다.
"안 그래도 교단에서 만나고 오는 길이다. 정말··· 고맙다."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고맙기는. 성녀님이 수도에 있는 걸 알았다면 그냥 내가 옆에서 지켰어야 했는데."
판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자 에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로만이 마주한 상황에서 그 행동이 필시 최선이었기에 한 것이겠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 남자의 판단이 최고라 인정하고 믿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를 살려주려는 에클레어를 보며 당장 찐하게 스킨십을 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지만.
정말 겨우겨우 억눌렀다.
"···역시 최고네."
내 눈길에서 오는 신호를 읽었는지 홍조를 살짝 보이며 눈을 피하는 에클레어가 참 귀엽지 않은가.
탁-!
성녀가 코 앞까지 가까워지자 에클레어는 헛기침을 하며 은밀한 사담을 마무리 지었다.
"리케와 다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지·· 얼른 마무리를 하고 치료부터다."
"음! 말을 잘 들어서 이쁨 받아야지."
내 말에 에클레어는 기가 다 빠진 헛웃음을 흘려냈다.
"···정말 버틸만한가 보군."
여기가 사람이 살지 않는 숲의 어딘가나 협곡 같은 곳이면 모를까.
이렇게 사람이 사는 곳에 생긴 악마의 사체는 죽였다고 끝이 아니라 완전히 정화를 끝내야 한다.
마나를 채운 뒤에 백염으로 아예 확 태워버리려 했는데.
정화에 있어 진정한 스페셜리스트가 왔으니 내가 괜한 마나를 쓰며 고생할 필요는 없을 터.
촤르륵-
죽은 악마의 머리에 돌돌 말려있는 글레이프니르를 풀어내고 발길질로 머리통을 땅바닥에 제대로 세웠다.
'대놓고 사체가 남는 걸 보면··· 설정상 뻔한가."
흑마법사와 계약을 통해 현세에 강림한 다음 사망한 악마는 본래 헌신이 끝나 판데모니움의 본체로 돌아가야 한다.
예전 교룡각을 맞고 제물을 모두 소진한 늑대 악마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듯이 그게 자연스러운 섭리.
그것과 반대로 이렇게 사체가 멀쩡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뜻하며.
목이 달아나 죽은 상태라도 이 정도로 강한 악마를 버려두면 제국 중앙에 언데드 양성소를 만들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무한하게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들로 할만한 실험이나 훈련용으로 쓸만한 구석이 있을지 모르나 그런 걸 허락할 미친 자는 제국의 공직자 중에는 없다.
"치료는 됐으니 정화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성기사의 품에서 내려온 성녀는 내 꼴을 보고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도를 위해 손을 모았고.
어떤 교인에게서도 본 적 없는 찬란한 빛이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흠숭하는 여신님. 회중에게 버림받고 외면당한 자를 부디 불쌍히 여기시어 빛을 내려주시길 바라옵나이다.
-정화.
하늘에서 내려와 악마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같은 강렬한 빛.
그것은 흔히 교단의 사제들이 사용하는 단순한 정화가 아니었다.
성법술의 영창도 획일화된 틀을 벗어난 경지.
정말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읊는 것으로 성법술을 선보이고 있다.
치이익-
신성한 힘에 저항할 마나를 잃은 악마의 몸뚱이가 정화의 빛을 받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꼴이 뜨거운 지면에 버려져 녹아내리는 버터 같았다.
"···!"
몸뚱이가 점점 줄어들며 드러나는 악마의 숙주이자 문제아.
거대한 몸통과 머리통이 녹아내리며 목이 잘린 인간의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나를 빼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서, 성녀님! 안에 사람이··!"
"···레오 플로이드?"
악마의 무언가라 해도 전리품은 처단의 공로를 가진 자의 것.
나는 악마의 살점들이 녹아서 뭉쳐진 물건을 챙기고 성녀를 보며 부탁했다.
"이 사실은 알리더라도 내용을 조금 손봤으면 합니다. 그걸 약조해 주신다면 제가 겪은 상황을 공유하겠습니다."
악마를 처단한 자로 내 이름이나 에클레어의 이름을 공표하여 네마 나타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대충 성기사와 사제들이 협심해서 잡았다 알리는 게 최고의 그림.
교단과 흑마법사의 골은 더 이상 깊어질 것도 없이 최악이지만.
아예 상정하지 않았던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 건 인식 자체가 다르다.
악마를 퇴치했다고 알리면 나와 에클레어의 명성은 껑충 뛰어오르겠지만.
귀찮은 벌레들이 꼬일게 뻔해 보였고 그렇게 되면 내가 아니라 내 주위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건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상황을 들어보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
··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진단 겸 치료.
성녀라면 호들갑스러운 겉면과 다르게 큰 이상이 없는 내 몸상태를 알아채지 않을까라는 믿음.
자신에게 이득도 없는데 양아치스러운 진단을 내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마음을 풀고 있었다.
"당분간 교단에 머무르시면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겠어요."
예상외의 진단을 내리는 성녀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전 멀쩡합니다. 제대로 보신 게 맞습니까?"
내 말에 뒤에 있는 성기사가 몸을 움찔 떨었지만.
예상이라도 한 듯 성녀는 손을 들어 그 행동을 제지하고는 타이르듯이 설교를 늘어놓았다.
"당장 큰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흑마법을 몇 번이고 직격 당하셨고 이 부정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머물렀다면 시간이 지나서 문제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아뇨. 전 문제없습니다."
"혹여 지연 발동이 되는 흑마법이 걸려있을지 모릅니다. 고위 흑마법의 은밀함은 시간을 들여 제대로 파악해야 하니까요. 제가 이 자리에서 느끼지 못한다 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무리해서 영창을 막고 난리를 피우며 싸워왔는데.
'답답하네 진짜··.'
아무리 성녀라 해도 증명을 위해 내 스킬을 설명하고 공개할 수는 없다.
에클레어만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그냥 집으로 갔을 테지만 지금은 조용히 반론하는 게 최선이었다.
"···집에서 쉬다가 문제가 생기면 찾아가겠습니다."
"안일하게 악마가 남긴 상처를 우습게 넘겼다가는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단순히 출혈량만 봐도 언제 이상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어요··!"
"아니-."
"형제님의 신체가 말도 안 되게 튼튼한 건 사실입니다. 허나 그것 하나 믿고 은인을 소홀히 대하면 여신님의 가르침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성녀가 이리 수다스러운 설정이었나? 밀어 붙이는 말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미치겠네···."
작게 소곤거린 말에 성녀가 웃으며 되물었다.
"형제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미미하게 남아있는 전생의 잔재에 의한 반론의 봉기 '아니-'를 꺼내들었음에도 실패.
성녀는 심각한 얼굴로 내가 아닌 에클레어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솔직히 이리 피를 흘리고도 의식을 붙잡고 계신 게 기적으로 보입니다. 강인한 정신력을 보유하신 덕이겠죠."
마치 이렇게 억지나 때를 쓰는 환자가 익숙하다는 듯 레퍼토리처럼 뱉어내는 말들에 에클레어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내가 아니라 에클레어를 찌르는 성녀의 노련함에 속이 타는 건 나 하나였다.
"성녀님. 제 몸은 튼튼해서 이 정도 상처는 포션 한 병이면 다 털고 나을 수 있습니다."
"다들 그런 말을 하시지만 아무리 좋은 포션이라 해도 만능은 아니에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성녀는 포션 신봉자인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로만."
"응?"
에클레어가 싸늘한 목소리를 흘리며 내 어깨를 잡았다.
"아까 약속했지 않나. 제대로 치료를 받겠다고."
"그건 맞는데··· 교단은 밥이 맛없다고. 여기서 치료 한번 받았으니 괜찮지 않겠어?"
옛날 모험가 초기 시절에 경험해 본 것이지만.
환자의 건강을 생각한 교단의 음식들은 전생의 병원에 입원하면 먹었던 미음 혹은 간이 안된 죽이나 다름없었다.
집에 내 입맛에 딱 맞는 리케와의 식사시간이 있는데 교단에서 지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소리를···! 제대로 치료받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인가?"
내 말에 에클레어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
에클레어는 내 얼굴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으며 성녀에게 물었다.
"성녀님. 교단에서 치료 중에 면회가 제한되거나 외부음식 반입이 불가능합니까?"
"딱히 위독한 상태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성녀와 성기사는 에클레어와 나를 뚫어지게 보며 입이 많이 간질거리는 모습이었지만.
에클레어의 눈동자에는 알기 쉬운 걱정이 가득하여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정신도 없어 보였다.
피로 완전히 변색된 손수건을 그대로 품에 챙긴 에클레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이제 어쩔 거냐는 얼굴로 시원하게 웃었다.
"들었겠지? 음식은 '같이' 준비해 가겠다."
"···."
리케와 함께 식사를 준비할 생각인 듯 이미 에클레어는 신중한 얼굴로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이제 피할 길이 없는 외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