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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58화 (158/250)

Chapter 158 - 인조 악마 -4-

체격 차이를 무시하는 난투의 현장.

인간의 몸정도는 가벼이 토막 치고 반쪽 내버릴 사나운 기세를 담은 대검을 마구 내리쳐도.

도통 잘리지 않는 사슬 한 가닥을 두고 유령 같은 움직임으로 막고 피해내는 인간에 울화통이 난 악마는 결국 흑마법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빠각-!

바깥으로 충격을 주며 짓누르는 발길질에 악마의 무릎이 돌아가고.

-■!

폭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타격과 폭발.

주고받기의 연속.

돈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치킨게임의 주최자인 모험가는 궁지에 몰린 악마가 발을 뺄 타이밍을 주지 않는다.

촤르륵-!

난전에서 신체의 재생과 공격에 몰두하다 보니.

하얀 불길을 일으키며 목을 파고드는 사슬을 밀어낼 마나가 점점 떨어지고.

몇 년은 가볍게 쓸 것 같이 쌓여있던 제물도 밑바닥이 긁히기 시작한다.

목숨을 옥죄어 오는 감각이 여실해지며 승자의 형태는 시간이 갈수록 진해졌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보다 낫다고 하지만 한계까지 달하는 육체의 고통은 정신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휘두르는 걸 포기한 대검을 빼앗아서 어깨에 박아버리고.

무호흡으로 이어지는 폭행에 관자놀이에 돋아난 뿔들이 가루처럼 박살이 나며 살점들은 재생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까지 도달하였다.

악마가 흑마법의 난사를 멈추더니.

반만 남은 혀에서 피와 침을 흘리는 상태로 유창한 발음을 뽐내며 악마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거래를 제안했다.

"그륵··! 인가안··! 이대로면 둘 다 죽는다··이때까지 살아온 시간을 모두 버리는 미련한 짓을 할 셈이냐!"

'아닌데?'

내 꼴이 피칠갑이 되어 말이 아니긴 했지만 겉으로 요란할 뿐 이렇다 할 치명상은 없었다.

완성된 나찰이 부여한 부정함에 대한 강한 내성은 꼴랑 한 단어로 영창이 끝나는 흑마법 정도로 치명상을 입을 물건이 아니다.

물론 내성이 있어도 타격당하는 횟수가 끝도 없이 많아지면 위험하겠지만.

'맞는 것도 기술이고 요령이란 말이지.'

치명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법이 직격 당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흑마법이 발동되어 마나가 일점 되는 곳에 내 마나를 집중시켜 신체의 경도를 부분적으로 끌어올렸다.

극한의 집중력을 요하며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 마나로 강화되지 않은 맨몸에 마법을 맞을 수도 있는 도박에 가까운 미친 작업이었지만.

이렇게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내 겉만 보고 착각에 빠졌나.'

거기에 순간순간 몸을 비틀어 급소를 최대한 비켜 맞는 건 칼밥을 먹고사는 경력자의 기본 중의 기본.

살갗이 찢어지고 터져나간 출혈 외에는 문제가 없었다.

유혈귀에서 오는 출혈내성까지 있으니 일반인이 죽을만한 출혈도 경상에 그쳐 당장 죽을 것 같은 외관과 속은 다른 상태.

"여기를 떠나는 것도 약조하겠다! 그리고 ㅡ"

클로에에게도 손을 뻗지 않을 것이며 원하는 게 있다면 이루도록 도와주겠다느니.

분명 혀를 잘랐는데 혀가 길었다.

계약을 토대로 한 달콤한 미래를 꿈꾸게 하는 말을 뱉기 시작할 때 확신했고 직감했다.

이 악마는 자존심을 버리고 인간인 나와 협의점을 찾을 만큼 절벽의 끝까지 왔다는 것을.

자신이 먼저 티를 내고 조급함을 보이며 합의를 제안하는 것은 한계까지 왔다고 광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법.

"퉤··!"

코와 입에 뭉쳐서 호흡을 방해하는 핏물을 땅에 뱉어내고 마지막으로 정수리에 남아있는 악마의 뿔을 잡았다.

"잘 놀다가 끝에 와서 맥 빠지게 하지 말라고. 진짜는 이제 시작이잖아?"

이 악마는 때로는 베테랑처럼 노련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리숙한 것이 학습이 덜 된 어린 영재 같은 냄새가 난다.

시간을 주면 어떻게 성장할지 모를 싹을 도려내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

안으로 파고들자 점점 짙어지는 사이한 기운과 무너진 건물과 담벼락의 잔해에 성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지독하네요. 마젤라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기사님은 괜찮으신가요? 필요하시면 축복을 내려드리겠습니다."

신성력을 보유한 자에 비해 일반적인 마나를 보유한 자는 사특함에 더 강한 영향력을 받기 마련이다.

"문제없습니다."

제국의 5 기사인 에클레어 드리트나는 신성력을 보유한 성기사가 아니라 근본 그 자체인 기사.

그런데도 이 사악한 기운을 앞에 두고 문제가 없는 척을 한다거나, 티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진짜 영향이 없어 보였다.

'정말 강인한 분이다··.'

교단의 성기사 중에서도 강하다고 손에 꼽히는 마젤라보다 체력이 좋고 발이 빠르며 선두에 서서 수십 수백구의 언데드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썰어낸다.

무언가를 찾는 듯 붉은 눈동자를 휙휙 돌리던 그녀는 시선의 마지막을 자신에게 던지며 물었다.

"성녀님. 더 빠르게 돌파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무리는 하지 마시길."

에클레어 덕에 마젤라는 자신을 지키는데 집중하며 안고 옮기는데 집중할 수 있었고.

제국에 부정함을 일으킨 원인으로 생각되는 무언가가 있는 곳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제국의 수도 어딘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처참한 환경.

접객실에서 들었던 거대한 폭발음의 시작점은 이곳이 아니었을까.

전투를 각오하고 있던 성녀는 마젤라의 품에 안겨 폭발로 만신창이가 된 파편들의 산을 넘어섰고.

눈에 들어오는 괴기스러운 그림에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어버렸다.

"에··?"

촤륵!

"그륵··극!"

피와 상처로 엉망진창이 된 정체불명의 남자와.

그 남자에게 밟힌 채.

백색 불길을 뿜는 쇠사슬에 목이 묶여 바닥을 무대로 교수형을 당하고 있는 사악한 덩어리.

검은색 거품을 부글부글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는 책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처음 보는 사특한 외형을 하고 있었지만.

성녀는 저 생물이 풍기는 기운에서 정말 터무니없이 강력한 악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남자는 누구지··?'

확실한 건 성기사나 사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교단의 인물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저런 위험한 악마와 겨뤄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르륵··므극··."

자신의 목을 파고드는 사슬을 풀어내기 위해 손톱으로 살점을 벅벅 긁으며 발버둥 치고 있는 악마의 모습은 기실 이질적이었고.

악마가 가지는 특유의 자긍심과 재생력은 어디 가고 땅을 기며 질식의 위기에 처한 모습은 세 여자의 정신을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로만··!!"

에클레어는 당황하고 있는 둘을 버려두고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한 순간에 뛰쳐나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성스러움이 감도는 검을 집어든 에클레어의 속도는.

여기까지 돌파해 오는 것도 전력이 아니었다는 듯 더욱 빨라져 있었다.

상상도 못 한 장면에 정신을 잠시 놓고 있던 마젤라가 성녀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렸고 그녀를 내려준 뒤 무기를 빼들어 앞을 지켰다.

"성녀님! 저, 저 간악한 것은!"

"저는 괜찮으니 마젤라는 기사님을 도와주세요!"

"···알겠습니다!"

성녀는 양손을 모아 성법술을 준비하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새하얀 불길··도대체?'

눈에 담고 있으나 저것이 불이 맞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슬을 타고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첫눈 같은 깨끗함이 느껴지면서 신성력과는 닮은 듯 다른 힘.

섭리를 반하는 것들을 단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것을 익히고 공부한 성녀도 저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동했고 당장에 그 정체를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간악한 것을 처단하는 게 우선이다.

기도를 위해 모인 양손에 엄청난 양의 신성력이 모여들어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악마라는 이름을 달고 질식사라는 최고의 수치 직전에 치달은 그 생명체의 외눈이 힐끔 돌아갈 정도로.

-여신님을 모시는 하늘의 심부름꾼이시여. 죄지은 자를 인도하시고 회개의 빛을 내려주시옵소서.

성녀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여 하루하루가 죽음의 고비였다.

본인도 그렇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신성력을 사용한 신체강화조차 불가능한 그녀이지만.

불합리에 대한 보상인지 성물의 사용과 성법술에 있어서는 비할 자가 없다.

-대정화.

성녀를 기점으로 빛이 뻗어나가며 사념이 기어올라오는 땅의 색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빛에 노출된 로만과 에클레어, 마젤라는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각자의 일에 박차를 가했다.

····

에클레어가 이 자리에 온 것을 로만은 눈치채고 있었고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그녀를 확인했다.

악마는 이대로 가면 곧 죽겠지만 앞으로 몇 분은 버틸 기세였다.

믿을 수 있는 조력자가 왔는데 질질 끌 필요는 없음이요.

"에클레어. 마무리!"

비교적 출발이 느렸고 발까지 밀리는 마젤라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고 에클레어만이 가까워진 상태에서.

로만은 글레이프니르를 강하게 잡아당겨 악마의 머리를 강제로 치켜들어 목을 노출시켰다.

촤륵-!

"··긋!"

달려오면서 이미 이노센스를 꺼내든 에클레어는 호흡을 그대로 멈춰서 굳혔다.

"흐읍··!"

두꺼운 악마의 목에 마구잡이로 감겨 백색 불길을 머금고 있는 글레이프니르를 피해 비어있는 구간을 정확하고 깊게 도려내야 한다.

'망설이면 절단력이 떨어지고 겉만 베어서는 의미가 없다.'

평범한 기사나 모험가라면 한참을 뚫어져라 보고 판단해야 할 경로를 에클레어는 깔끔히 읽어냈고.

달려드는 발을 멈추지 않고 도착과 동시에 몸을 앞으로 던지며 망설임 없이 이노센스를 휘둘렀다.

피잉-!

한줄기 빛을 연상시키는 에클레어의 검로가 지나가고.

사람의 몸통만 한 악마의 머리가 글레이프니르에 묶인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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