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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54화 (154/250)

Chapter 154 - 왜 화를 내는 거지?

"오라버니··."

클로에가 내 셔츠를 톡톡 잡아당겨 시선을 끌었다.

"응?"

"저한테 모든 걸 설명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제가 어떤 걸 하면 되는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급박하게 머리를 굴리는 내 표정을 읽은 걸까.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클로에의 한 마디가 내 정신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멋진데? 역시 둘은 닮았어.'

에클레어를 봤을 때 느꼈던 제대로 된 기품과 멋이 느껴지는 것이 기사가 아닌 어떤 일을 해도 장래가 유망하니 기대가 된다.

클로에는 정말 해야 할 때가 오면 제대로 한다.

리케가 클로에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이런 쪽일 것이다.

"일단 저택으로 가서 에클레어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자."

"네에··! 마, 마차를 잡을까요?"

마차를 잡고 드리트나의 저택으로 가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마부는 수도에 없다.

에클레어의 저택은 위치상 수도에서도 좋은 위치를 떡하니 깔고 앉아있고.

제국민 대부분이 5기사인 그녀의 저택이라는 걸 입소문과 목격담으로 은연중에 알고 있다.

하지만 수도 길가를 마차가 전력으로 달릴 수는 없기에 타는 순간에 늦다.

"늦지 않으려면 뛰어야지. 그래서 클로에한테 양해를 구하려고 해."

"네에? 양해요··?"

기장이 길더라도 치마를 입은 클로에를 짐짝처럼 옆에 끼고 달리는 건 말이 안 되고. 포대기처럼 어깨에 들쳐 메는 것도 안될 일이다.

'리케랑 로브 쓰고 다닐 때가 생각나네.'

경험은 이렇게 멋지고 값진 것이다.

그때가 있었기에 업는 것은 애초에 질문의 선택지에도 들어가지도 않는다.

지금 입고 있는 롱스커트와 굽이 있는 신발을 생각하면 달리기 불편한 건 물론이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어도 클로에는 내가 달리는 속도를 따라올 수 없다.

"클로에가 내 어깨에 앉아도 되고. 아니면 그냥 안고 달리려는데."

"에엣··! 뭐든 괘, 괜찮지만···그, 그!"

격하게 당황하는 클로에를 보며 나는 턱을 긁으며 재차 고민에 빠졌다.

남자를 기피하고 부담스러워하는 클로에에게 강요나 다름없지는 않았나 싶었기에.

"역시 남자는 좀 그렇지? 다른 방법은 ㅡ."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클로에가 빙글빙글 도는 시선을 바닥으로 푹 내리며 개미 발걸음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 저, 저는 무거워서·· 오라버니가 힘드실지도··."

아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떠올리는 클로에의 모습에 심각한 분위기를 잊고 웃음이 터질뻔했다.

"클로에는 귀엽네."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 있다면 에클레어의 마음도 100프로 이해가 간다.

"···!!"

본의가 아니겠지만 불안감과 분위기를 녹여내는 클로에의 소녀스러움에 꼬여있던 머리가 깔끔하게 환기되었다.

무릎을 살짝 굽혀 클로에와 눈높이를 맞춰 그녀의 눈을 보며 물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괜찮겠어? 클로에가 불편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도 괜찮아."

허락이 떨어졌으니 그걸로 됐지만.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서 한 번 더 물으니 클로에는 푸른 눈에 의지를 보여왔다.

"괜··찮아요!"

"그럼 실례."

"꺄악!"

최대한 부드럽게 안아 올린 클로에가 작게 비명을 지르자 거리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

'내가 여기 왜 왔더라?'

시선에 보이는 저택을 보며 레오는 머리를 긁었다.

취기가 주는 감각이 고통스럽지 않고 쾌락으로만 느껴지니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도 술기운을 몰아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 아아아! 크흐으~ 생각났다! 생각났어!"

이런 와중에도 원하는 게 떠오르다니 자신의 머리회전에 감탄하며 레오는 이마를 잡고 탄성을 토했다.

비싼 술과 창부들을 버려두고 귀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이유.

이제 자신의 상사가 아닌 에클레어 드리트나에게 귀족대 귀족으로서 부조리함을 따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이 시간이면 돌아왔겠지··흐!"

지금이라면 속에 있는 말을 다 해도 자신을 어찌할 것인가.

자신은 이제 은익의 일개 단원 따위가 아니라 4기사가 있는 플로이드가의 도련님이다.

드리트나가 아무리 잘 나가고 있다 해도 뿌리부터 깊고 제국의 거물인 플로이드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진 못할 터.

"흐흐··· 홍차도 좋지만 술이나 한 잔 얻어먹을까."

미래가 창창한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미련한 짓을 설교로 일깨워줄 필요도 있었다.

"끄윽-"

분명 정신의 줄은 남아있는데 취기가 끝도 없이 쌓이는 기분.

실로 구름을 밟고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감각이라 할 만큼 황홀했다.

음주가무에 미쳐 살았던 레오에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

여기서 더 마시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걸까?

'이번만 특별한 거고·· 다음부터 이 감각이 안 느껴지면 어쩌지?'

한편으론 이 쾌락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저벅-

"어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저택의 끄트머리에 있는 철장을 잡은 레오는 고개를 들어 에클레어 소유의 저택을 확인했다.

저택에 불이 군데군데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비릿하게 웃은 레오는 담에 붙어있는 장식품들을 부여잡고 한걸음 한걸음 정문으로 향했다.

겨우겨우 모서리를 돌아 고개를 내밀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

클로에는 도착과 동시에 저택에 에클레어가 왔는지 확인해 보겠다 했지만 이미 알 수 있다.

에클레어는 아직 저택에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내부에 있는 인물들은 사용인들.

그럼에도 클로에를 안으로 보낸 이유는 괴상한 놈 하나가 얼쩡거리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보면 단순한 취객인데 어딘가 익숙한 게··· 뭐지?'

근질근질하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경험상 일면식만 있는 남정네일 확률이 아주아주 높더라.

취해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것만이라면 좋겠지만 웃어넘기지 못할 느낌이 있다.

첫 번째 형상인 나찰을 완성하고 부정함에 강한 내성을 얻으며 느끼게 된 감각.

단어로 설명이 안 되는 그것을 자극하는 묘한 불길함에 무기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으니 모서리를 돌아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코 깨졌던 놈이네?"

"···?!"

나를 보고 술에 찌든 멍청한 표정을 깨트리더니 귀신이라도 마주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저렇게 놀란 표정은 오히려 내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이렇게 대면하고 있으니 저 놈한테서 술기운만이 아니라 불길함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경계심은 끌어올리면서.

행동은 상대방이 열받을 정도로 경박하게.

"왜 여기 있냐?"

입가를 한쪽만 올리고 도발하는 동시에 눈으로 복장과 행색을 빠르게 훑었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는 흔하다. 하지만 허리춤에 걸린 검.

그리고 검집에 덕지덕지 묻은 피.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전보다 살이 빠졌다?

그런 느낌이 아니라 활력이 소진된 듯 한 퀭함.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한 눈가는 당장이라도 눈알이 굴러 나올 것 같다.

"이··! 네놈··!"

말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며 눈이 붉게 충혈된 모습.

화가 난 건 알겠는데 원색적인 감정을 떠나 남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줬다.

덜컥-!

이 타이밍에 저택의 문을 열고 나오는 클로에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자 클로에가 당황한 얼굴로 다가오던 걸음을 멈춰 섰다.

"오라버··니?"

시잉-!

오랜만에 꺼내드는 [ 반쪽짜리 어둠 ]을 클로에 쪽으로 던져주니 날카로운 날이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바닥을 쑤욱 파고들었다.

"이거 가지고 잠시 들어가 있어. 알았지?"

시선은 남자에게서 떼지 않고 웃으며 말하자.

클로에는 자신 쪽에서 보이지 않는 담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는 굳은 표정으로 바닥에 박혀있는 칠흑 같은 검을 뽑아 들었다.

"조, 조심하세요··!"

"난 걱정 말고. 그 검 엄청 날카로우니 다룰 때는 조심 또 조심이다?"

디버프 몇 가지를 면역시켜 주는 검은 가지고만 있어도 도움이 되고 위급할 때는 확실한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클로에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들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천박한 놈이··감히··저번과는 다른 격의 차이를··."

당장이라도 피가 흐를 것 같은 붉은 눈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중얼거리는 놈을 보며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말로 계속하게? 뭐 좋은 거 있으면 숨기지 말고 꺼내봐."

"에클레어··! 에클레어와 무슨··!"

알만하고 정도를 넘은 상황에 이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고 느낀 나는 웃으며 현실을 알려줬다.

"남 여자 이름을 왜 함부로 부르고 그래?"

스릉-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낸 녀석은 그대로 검에서 오러를 보이며 자신의 전의를 표출해 왔다.

"죽··이겠다아!!"

감정도 문제였지만 갈무리도 완전히 되지 않는 오러를 보며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빠르게 접근했다.

어설프게 휘둘리는 검을 피하며 이제부터 박힐 주먹을 눈에 보여준다.

"우리 친구는 이야기 전에 술부터 빼서 정신 좀 차릴까?"

빠각!

"흐큽··! 우웁-!"

배를 맞는 동시에 무릎을 꿇고 토사물을 쏟아내는 꼴을 보며 데자뷔를 닮은 감각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 이 구도를 자주 보는 것 같은데··.'

얼마 전에 모험가 길드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지 않았나?

그날을 회상하며 토사물에 박힌 머리를 밟으며 가르침을 내렸다.

"아무리 내가 막 나가도 내 여자가 귀찮아질 일은 하기 싫거든. 머리통을 이대로 깨고 싶은데 너도 기사 단원이고 귀족··· 대충 그런 거 아냐?"

"커흡!"

발 밑의 남자가 에클레어의 기사단에 속해있는 녀석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머리를 터트렸을 것이다.

무언가 요사스러운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기척이 너무 옅어서 감각만 믿고 죽여버리기도 애매했다.

그나마 살심을 담아 칼을 휘두르기에 응징을 겸해 자존심을 푹푹 찔러 간을 보는 게 최선.

*****

"이 새끼는 애초에 사귄 적도 없으면서 왜 화를 내는 거지? 진짜 이해가 안 되네."

"그으읍-! 끄윽!"

눈의 실핏줄이 퍽퍽 터져나가는 분노. 그 강력한 감정을 원동력으로 머리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무슨 힘이 작용하는 건지 도저히 발을 벗어날 수 없었다.

토사물에 머리가 박힌 채 저 놈이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만 했다.

"여자가 물건이야? 응?"

천한 모험가 따위에게 설교를 듣고 있으니 차오르는 화로 머리통이 펑하고 터질 것 같았다.

'씨발! 씨발! 아버지에게 말해서라도 이 치욕은··!'

-■■■.

품에 있는 주머니를 뚫고 아리따운 소리가 들려왔다.

도와주겠노라고.

힘을 합쳐 저 무시무시한 장애물을 없애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자고.

레오도 느끼고 있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친우가 저 남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두려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함께 위기를 타파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그 마음.

생에 처음 우정이 가지는 멋진 모습을 실감하며 감동하게 된다.

-후후···이쪽에서 여기까지는 어기시면 안 되는 사항들이랍니다? 저희 쪽에서도 귀한 물건이라서 사용을 하고 싶어도 그 시기는 합의 하에. 혹시 몰라 생명을 가져가지는 않게 해 뒀지만 무슨 페널티를 받을지 저희도 장담할 수 없어요.

흑마법사와의 계약사항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그년의 말대로라면 죽지는 않는다.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매번 창피와 분노를 주는 천한 검은 머리를 찢어 죽일 수만 있다면 이제 어찌 되든 좋았다.

-■.

확고한 마음을 먹는 순간 검은 주머니의 끈이 혼자 풀리며 품에서 검은 구슬이 흘러나와 토사물 위로 툭 떨어졌다.

머리를 처박고 숙인 채로 있던 레오는 그 물건을 더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입을 처박아 구슬을 게걸스럽게 삼켰다.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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