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53화 (153/250)

Chapter 153 - 양면성

레오 플로이드가 수도에서 지낸 기간이 비록 몇 년 안 된다 해도.

황실의 은익 기사단에 들어가고 첫 휴일과 동시에 유흥가를 찾아 돌아다녔었다.

실력에는 자신이 있다 보니 구석구석을 겁 없이 돌아다녔고.

수개월만에 눈 감고도 미로 같은 수도의 외곽과 뒷골목을 주파할 만큼 음지에 익숙해졌다.

"뭘 봐. 버러지 새끼들아!"

레오는 잘 알고 있다.

음지에 숨어 사는 것들만큼 힘의 격차에 민감한 족속은 없으리.

술기운이 풀풀 풍기는 레오의 고함소리에 모두 단결하여 입을 닫고 쥐 죽은 듯 침묵을 지킨다.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자들도 알고 있다.

진짜 괴물들은 자신들에게 일체 관심이 없지만 어중간한 재능과 힘을 가진 자들은 뽐내고 싶어 하고 과시하고 싶어 한다.

원초적인 힘을 과시하는 대상으로 죽여도 딱히 탈이 없는 자신들만 한 게 없으니.

이런 순간이 강도나 소매치기 같은 음지의 인물들을 포함해 노숙자, 거지들에게는 진짜 공포의 순간이다.

"거기 너··· 검은 머리."

살짝 비틀거리는 레오의 손가락은 정확하게 한 남성을 가리켰다.

빛이라고는 골목의 밖과 건물들에서 떨어지는 은은한 밝기 정도였는데 어둠 속에서 신기할 정도로 눈이 잘 보였다.

부랑자들 사이에 잘 숨어있던 덥수룩한 검은 머리의 남성이 주위의 인물들에게 강제로 떠밀려 나왔다.

"저, 저 말이십니까?"

"당장 뛰어와. 여기 있는 것들 다 죽이기 전에."

탁! 탁!

레오가 검집을 손으로 치자 주위에서 우르르 손이 몰려와 남자를 레오 앞으로 대령했다.

결국 밑바닥은 이런 것- 레오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간다.

오늘의 희생양을 바친 부랑자들은 혹여 자신들에게 피해가 커질까 그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났고.

레오와 검은 머리의 남성만이 골목의 구석에 자리했다.

"보기만 해도 짜증 나는 색깔이야. 검은 머리··· 아~ 어디더라? 어딘가에서는 불길함의 상징이라고도 한다지."

철컥!

허리춤에 걸린 검을 풀어내자 남자의 표정이 긴박해졌다.

"고, 공자님·· 제 머리 색으로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빠른 대처였지만 오히려 그 점이 레오를 자극해 즐겁게 했다.

대리만족적인 감각? 술기운 때문인지 그 망할 모험가와 흐릿하니 겹쳐 보이기도 한다.

"내가 오늘 교단을 대신하여 불길함을 단죄하고 제국의 때를 씻어내겠노라! 크크."

허리에 있던 검을 든 레오는 그대로 손을 번쩍 들어 내려치기 시작했다.

빠악-! 뻑!

"억··! 제, 제발··! 큭!"

··

··

레오 본인은 너무 즐거워서 이 격동적인 감정의 격류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마신 술은 특별할 게 없었음에도 살아생전 마신 술 중에 최고의 맛이었고.

창부와 몸을 섞으며 성욕을 한번 해소할 때마다 정신이 하얗게 펑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퍽!

후려친 뒤에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자 레오가 검집의 끝으로 쓰러진 부랑자의 머리를 툭툭 밀었다.

"어이~ 죽었냐?"

검으로 베지도 않고 검집으로 몇 대 후려쳤을 뿐인데 부랑자의 숨이 멈췄다.

찰지게 감기는 손맛에 흥이 좀 오르려 했는데 반응이 없어지니 확 식어버렸다.

"쯧- 눈치만 빠른 나약한 놈들."

주위에는 이미 눈치를 보다 싹 도망을 가서 다음 순번으로 잡을만한 녀석이 없었다.

"응··?"

시체를 앞에 두고 돌아서려 하자, 이제 레오의 귀에서 천상의 하모니와 비견되는 사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시체에서 연기 같은 무언가가 올라오더니 검은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가는 걸 레오는 똑똑히 관측했다.

주머니 안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찢어지게 웃는 소리를 내며 기뻐했고 그런 구슬을 잡아 든 레오도 컴컴한 안을 들여다보며 킥킥 웃었다.

"뭔데? 뭐가 그리 좋은지 나도 좀 알려달라고~ 우리 사이에 섭섭하게."

마치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웃는 것 같은 뿌듯한 감정. 레오는 취기에 비틀거리며 검을 허리춤에 챙겨 넣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아~ 술이나 한잔 더 할까."

무언가를 흡수당하고 버려진 시체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

뒷골목에서 사람 한 둘 죽는 건 우습기에 시체가 있거나 피냄새가 진동을 해도 그 정도는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다.

담배, 마약, 미약 주위의 정신 나간 것들까지-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를 자극하는 이 냄새는 다르다.

거리가 상당하여 보통은 모를 수 있지만 미미하게 내 감각에 걸려온다.

'시체 썩은 냄새? 아니 설마···.'

해가 뜨면 경비대가 돌아다니고 특히 지금은 명문 귀족 가문 두 곳의 장남들을 건드린 데가넬로를 수배 중.

볼트와 말로이 가문이 아직 두 눈을 뜨고 보고 있기에.

특히 제국에서 제법 영향력을 가진 말로이 가문을 달래기 위하여 경비대는 형식적으로라도 순찰을 구석구석 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체가 있으면 역병을 방지하고 제국의 치안을 위해 특정지역에 모아 불로 태워 정리하는 게 기본.

그렇기에 저런 것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그어어.

"어, 언데드?!"

"제국 안에서··? 클로에. 혹시 이상한 것들이 있을지 모르니 떨어지지 말고."

"흐으, 네에··!"

나도 이 상황을 신기하다 생각하고 있었고 클로에가 저리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아무리 뒷골목이라 하지만 여기는 제국의 수도.

생기와 인적이 가득한 수도에서 언데드? 이런 현상은 나도 처음 보고 게임에서도 후반부에 선택지에 따라 벌어지는 특정 이벤트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발생이라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서 조건이 갖춰질 수가 있나?'

수준을 보면 흑마법사들이 제국의 수도에 있다고 경계심을 주면서까지 제작할 이유가 없는 나약한 구울.

하면 환경에 의한 몬스터의 발생. 그 가능성이 제일 높을 것인데.

절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구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흐음."

워해머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구울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그 이후로는 정보를 얻기 힘들어진다.

'수도에서 언데드를 만들고 풀어둘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이 진짜 있는 건가?'

애초에 내가 선점하여 알고 있는 정보들은 이 대륙의 모든 사건사고가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이 허다하기에 어떤 가능성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언데드 제조라··.'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흑마법사 목록 중에는 이 짓을 할 놈이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놈들이 했다면 이 정도로 수준이 낮지도 않을 것이고.

지성이 없는 단순한 구울을 만들어도 자기만의 실력과 프라이드를 표출하기 위해 눈에 띄는 어떤 장치를 남겼을 것이다.

살점의 부패도를 체크하고 노출된 어딘가에 상징적인 인장이나 신체가 개조된 부분은 없는지 눈알을 굴렸다.

-코, 콥이다!

-진짜네··? 옷이··.

-끌려가서 무슨 일을··.

···

구석에 몰려있는 인영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작은 소리였지만 귀에 확실하게 들렸다.

'뭔가 일이 있긴 있었나.'

몇 걸음 앞까지 가까워진 구울에서는 딱히 특이점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신성이 깃든 워해머로 깔끔하게 보내주기 위해 머리를 노리고 팔을 그대로 휘두른다.

빠각!

질척한 피가 촤악! 튀기며 골목의 벽면을 적셨다.

마나를 바깥 방향으로 터트렸기에 셔츠는 여전히 깔끔한 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읏!"

머리가 터져나간 구울은 썩은 내를 강하게 풍겼고. 클로에는 냄새 때문인지 잔혹한 현장 때문인지 작게 침음을 흘렸다.

"클로에. 디저트 카페는 다음에 가야겠어.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거든."

"네에··!"

마음을 잡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클로에의 회색 머리를 톡톡 눌러 쓰다듬어 주고 구석에 있는 부랑자들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아까 콥인가 뭔가 했던 건 다 들었다."

"""···"""

다 겁을 한 움큼 집어먹어서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워해머를 어깨에 걸치고 허공을 보며 남일인양- 혹시 모를 불행한 미래를 흘려준다.

"이 사항이 만약 너희들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일이라면 제국과 교단이 나서서 뒷골목을 깡그리 청소하려 할 거다. 원인을 모른다면 지우는 게 제일 편하거든."

내 말에 한 녀석이 발작하듯 입을 열고 덩달아 인간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희가 확실히 깨끗한 것들은 아니지만 ㅡ!"

쾅-!

워해머가 벽면에 박혀 담벼락 전체에 쩌적 금이갔다.

뒤에 숨어 한 마디씩 거들려고 입을 움찔거리던 무리에게 싸늘한 침묵이 찾아왔다.

"억울하다는 건 알겠으니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

음지에서 힘을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담벼락을 힐끔 보며 부랑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 콥이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에게 불려 갔었습니다."

"화려한 옷? 그 남자는 귀족으로 보였나?"

"···."

"생각나는 걸 바로바로 대답해라. 내가 참을성이 없거든."

딱 봐도 귀족을 언급하는 것에 눈치를 보고 있기에 워해머를 위로 살짝 들어주니 즉답이 나왔다.

"허어억-! 제 눈에는 마, 맞습니다! 거, 검을 가지고 있었고 옷이 비싸보였습니다!"

"얼굴은? 대략적인 나이나 특징도 좋아."

말을 시작한 부랑자가 주위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하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자신 없는 어조로 정보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머리색은 확실하게 구분이 안 됐지만 젊어 보였습니다."

정보가 그리 영양가가 없다는 걸 자신들도 아는지 구구절절 말이 이어졌다.

"저희는 비싼 옷에 무기를 차고 있는 상대가 지나가면 눈을 깔고 있는 게 수칙이자 습관인지라··· 죄, 죄송합니다!"

제일 중요한 정보가 비어있어 턱이 가려워지며 손이 절로 간다.

이미 지나간 일을 두들겨 팬다고 떠오를 것도 아니기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불려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혹시 불똥이 튈까 자리를 모두 피해서 정확히는··."

"다른 특징은? 너희가 살고 싶다면 기억나는 걸 전부 짜내봐."

웅성거리며 부랑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하나씩 나왔다.

"다, 담배 냄새!"

"술 냄새도 났습니다··."

··

··

최대한의 정보를 취합한 뒤.

워해머를 집어넣고 뒷골목을 나오니 거리에는 어두운 골목의 일이 거짓말 같은 활기가 느껴졌다.

누군가는 겨우 구울 정도니 넘어가도 된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도에서 지금 일어나는 묵직한 사건은 없기도 하고.

하지만 벽 하나를 두고 양면성을 보이는 제국의 모습은 가슴속에 울렁이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에클레어가 언제 돌아오는지 모르지? 지금 클로에 혼자 있는 건 자제해야겠는데."

"그,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언니가 없어도 집에 있으면 안전할 테니 신경 쓰실 필요는··."

"아니. 혹시라는 게 있으니 그건 절대 안 돼."

불길하다 티를 내는 사건이 대놓고 터졌는데 클로에를 혼자 저택에 둘 수도 없다.

"···."

이 일의 원인을 알기 전에 집에 혼자 있을 리케의 안전도 챙겨야 한다.

실력에 완전 물이 올라버린 리케를 쉽게 이길만한 상대도 그리 많지 않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별개.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순간 당장 시선에 보이는 휘황찬란한 건물이 있다.

"교단··."

상대가 흑마법사나 언데드라 상정하면 교단에 클로에를 잠시 보호해 달라 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수도의 교단에 있는 자들은 실력도 믿을만하고 상대가 섭리에 반한다면 몸을 사리지 않으며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광신도적인 일면에서 신용이 간다.

'그래도 직접 가서 상황 설명을 시작하면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어.'

무슨 액션을 취하더라도 내 여자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움직여야 한다.

어떤 길이 최선이고 최속인가.

'에클레어 저택을 확인한 다음 없으면 클로에를 안고 내 집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면···.'

여러 선택지가 복합적으로 떠오르니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가며 과부하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최선의 수를 짜내기 위해 입술을 거칠게 씹으며 짱구를 굴리고 있으니.

"오라버니··."

클로에가 내 셔츠를 톡톡 잡아당겨 시선을 끌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