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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50화 (150/250)

Chapter 150 - 만남의 광장에는 분수가 있다.

"오늘이구나. 마음 편히 다녀오너라."

평소와 같은 아침식사 시간.

언니는 잊지 않고 오늘 저녁에 있을 오라버니와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왔다.

"으, 응!"

"필요한 것이나 따로 도와줄 게 있다면 지금 말해도 된다."

클로에는 에클레어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다 준비했으니 괜찮아!"

"··힘냈구나."

미약하지만 자신감이 섞여있는 어조에 에클레어는 클로에가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언니도 오늘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아쉬워하는 동생에게 미안하지만 에클레어도 클로에와 로만이 함께 있는 자리를 진심으로 피하려고 피하는 게 아니다.

리케와 나누었던 대화는 별개.

로만의 짓궂음이 걱정되긴 해도. 분명 다 같이 있다면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은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불가했다.

수시로 발생하고 터지는 일이 많다 보니 대부분 당일까지 장담을 할 수 없는 게 에클레어의 일정이지만.

오늘 같이 확정적으로 중요한 일정이 잡혀있는 날은 대놓고 여유가 없는 날이다.

"아쉽지만 금일은 바쁜 날이라 어쩔 수가 없구나. 대신 다음에는 같이 하기로 약속하마. 이번이 마지막도 아니고 시간은 앞으로도 있으니."

"그러네. 앞으로도··!"

납득과 동시에 아쉬움을 털어내고 웃는 클로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였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충실함을 간직하게 된 푸른 눈의 소녀가 품고 있는 내면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형태를 벗어나 정제된 보석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 점은 로만에게 정말 감사해야겠어.'

벨 수 없었던 물건을 깔끔하게 양단하게 되고.

매일 같이 하던 수련에서 더 이상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도 '성장'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하지만.

인간에게 성장이라는 지표는 비단 무력만이 아니며.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에클레어는 장담할 수 있다.

생에 있어 정말로 성장하기 힘든 부분과 극복하기 힘든 고난은 뚜렷한 형태가 없다.

그렇기에 지독하다.

내면이 성장하는 길은 불빛 한 점 없이 어둠으로 엉켜있는 숲을 걷는 것과 같아서.

도달해야 할 지점이 보이지도 않고 똑바로 걷고 있는지 확신도 서지 않는다.

마나를 사용했다, 오러를 만들었다, 무영창에 성공했다, 과거 흠집 내기로 끝났던 강철을 단칼에 쪼갰다. 와 같이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으면 성취감을 느끼고 혼자서 발전을 체감하기 쉽지만.

정신 수양의 길은 시야가 분명하지 않기에 체감은 고사하고 한번 방향을 잃기 시작하면 다시 갈피를 잡기 힘들어진다.

'이미 꺼드럭거리며 직함만 기사인 것들보다 훌륭해.'

자신도 미성숙한 인간이기에 클로에가 내면을 다듬는 과정을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과거에 바보처럼 끙끙 앓던 에클레어 본인보다는 클로에가 더욱 크고 대담하게 걷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

오늘 아카데미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분명 리케, 세리아와 맛있는 점심도 먹었고.

오라버니와의 실전 수업에서 열심히 굴러 몸에 묵직한 피로감이 감돌기까지 했지만 기억에는 구멍이 송송 나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면 모두 자리를 찾아갈 기억들이지만 지금 클로에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서두르자.'

아카데미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온 클로에는 자신의 방에 걸어두었던 옷으로 환복을 시작했다.

복장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면 고민하다가 약속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딱-!

정복에 있는 검은색 브로치를 풀어 책상에 올려두고 정복을 차례차례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화려한 스타일이나 노출이 심한 복장은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취향이 아니다.

발목까지 오는 롱스커트에 흰색 셔츠 그리고 위에 걸칠만한 단색의 카디건을 챙겼다.

'브로치도 해야지!'

선물 받은 입장에서 최대한 하고 다니는 게 예의라 생각하기에 셔츠에 검은색 브로치도 달아준다.

스륵- 사락-

"으음~?"

막상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니 패션이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전날 옷을 다 꺼내두고 고민할 때는 이 세트가 무난하고 최선이라 생각했으나. 막상 입어보니 더 격식 있는 복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확신과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성향이 또 스멀스멀 고개를 들려하자 클로에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이대로 가자!'

아직 시간 여유는 있지만 초행길은 방심할 수 없다.

오라버니에게 선물할 답례품을 챙기고 살짝 굽이 있는 로퍼를 신고서 드리트나 가문 소유의 마차에 몸을 실었다.

한 손에는 카디건 그리고 한 손에는 술병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있으니 가방을 들고 나올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마차는 열심히 달리고 있어 후회해도 늦은 상황.

벌써 그걸 챙겼으면 좋았을 걸, 그 옷을 입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잡념들이 차오르자 클로에는 마차의 유리에 머리를 기댔다.

유리의 차가운 기운이 머리를 조금 식혀주는 듯하다.

'오늘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

실전 수업이 끝나고 오라버니와 짧은 이야기를 통해 미리 정해둔 장소를 향해 걸었다.

귀족들이 보면 입방아에 오를 수 있는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 준 위치 선정.

마차에서 내려 오라버니가 알려준 대로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또각-

"와아아··."

화려하고 붐비는 제국민들로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던 수도에도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 있을 줄이야.

2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고 노후한 건물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열심히 보수하고 관리를 한 손길이 느껴졌다.

수도의 외곽이라 하면 치안이 정말 나쁠 거라 생각했는데 골목 사이를 봐도 불량해 보이는 인물이 한 명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서서 정리라도 한 것 같았다.

'길을 쭉 따라가면 작은 분수가 있다고···아!'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아담한 분수가 있었고.

거기에는 약속의 상대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급하게 달려가려던 클로에는 오라버니가 쭈그려 앉아 어린아이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걷는 속도를 줄여서 다가갔다.

아이의 행색을 보면 세상물정에 어두운 클로에라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아이··?'

치열하게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아이들.

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길가에서 무언가를 팔고 다니는 아이들은 수도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다.

오라버니의 겉모습을 보면 간 좀 크다는 성인들도, 남자들도 알아서 피해 갈 텐데 담력이 대단한 여자아이였다.

몇 걸음 더 가서 분수에 가까워지니 물소리 사이로 대화 내용이 귀에 잡혔다.

"이 꽃 한 송이가 동화 두 개?"

전혀 화가 난 어투가 아니었지만 꼬마의 다리는 바들바들 떨려왔다.

"히이-! 하, 하나라도·· 괜찮아요."

겁에 질린 여자아이는 바들바들 떨며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전형적인 모험가라고 해야 할지.

그 태도를 보고 시원하게 웃은 오라버니는 꼬질꼬질한 아이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쥐어줬다.

"꼬마야. 동화 두 개는 너무 싸잖아. 열심히 만들었는데 이만큼은 챙겨야지. 이 꽃이 손으로 만든 조화라·· 생화랑 구분이 안 가는 실력이야."

"···!"

손에 쥐어진 은색 동전 하나를 본 아이의 입이 어버버 열리고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위를 커다란 손으로 가린 오라버니는 주위가 한적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에게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줬다.

"어허! 주위에 들키지 않게 잘 챙기고·· 돈으로 들고 다니지 말고 밥을 먹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서 바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온 아이라면 저 말뜻을 바로 이해한다.

경비대가 순찰을 도는 수도라 하더라도 힘이 없는 자는 돈을 들고 있는 것 만으로 감당이 불가능한 재앙이 찾아올 수 있기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 골목으로 후다닥 사라지는 아이를 보다가 시선을 돌리니 오라버니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일찍 나오셨네요!"

"나도 방금 왔어. 클로에도 아직 시간이 안 됐는데 일찍 나왔네?"

오라버니도 자신과 같이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덕에 이대로 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클로에의 손에는 어느새 조화가 들려있었고 그녀는 그걸 멍하니 보았다.

방금 구입한 조화를 자연스럽게 건넨 오라버니는 양손에 들고 있던 카디건과 상자를 자연스럽게 가져갔다.

"어어··! 제, 제가 들게요!"

"됐어. 내가 들면 이렇게 한 손에 들리잖아? 이게 효율적이지. 추우면 그때 말해 옷 줄 테니."

"···네에."

엇박자로 따라가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오라버니가 웃음기가 섞인 말을 꺼내왔다.

"그거 잘 만들지 않았어? 향만 안 나지 생화나 다름없는 게 손재주가 대단하더라. 난 공예 쪽은 젬병이라 이런 재능은 부럽단 말이야~"

손에 들린 조화를 우물쭈물 만지며 클로에가 로만에게 말했다.

"오라버니는 베풀고 사시는군요··."

클로에의 말에 아카데미 수업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건 베푼다거나 그런 숭고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놀라는 반응이 재밌어서 거기에 가격을 지불하는 철부지 같은 마음이지."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일면.

언니가 장난기가 많고 짓궂다고 말하는 오라버니라 하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으음~ 애초에 나한테 다가오는 아이들도 잘 없지만·· 도움이 됐다면 용기를 낸 만큼의 보상이지. 행동한 만큼 소소한 행운이라도 찾아와야 사는 맛이 나지 않겠어?"

턱을 긁으며 멋쩍어하는 오라버니를 본 클로에의 입이 살짝 올라갔다.

*****

에클레어가 출근을 하여 평소처럼 단원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집무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레오 플로이드가 찾아와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 퀭해진 얼굴을 보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하여 잠시 시간을 내줬더니.

뜬금없이 플로이드 가주의 이름을 달고 드리트나 가문에 권하는 정식 청혼장을 들이밀기에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거절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살살 찔러보며 주위를 귀찮게 빙빙 도는 것보다는 이렇게 확실하게 거부할 수 있는 건수를 주면 고마울 뿐.

하지만 안하무인 하고 밑도 끝도 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바쁘더라도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날이었는데. 에클레어의 기분은 곤두박질치기 직전.

거절을 당한 동시에 레오는 음습하게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려 한마디를 추가하며 사표를 내밀었다.

평소에도 예의가 없긴 했지만 오늘따라 욕망의 고삐가 풀린 정신병자가 된것 같았다.

'목적이 없으니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

무슨 배짱인지 대놓고 자신을 도발하는 태도- 거기에서는 아주 옅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을 자극하는 기괴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정식 절차를 밟지 않는 그의 이기적인 행동과 말투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허리에 있는 검에 손이 절로 올라갔지만.

이게 4기사 플로이드 가주의 광적인 편애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후후··어이가 없군.'

제국에서 잘났다는 남자들 꼬락서니가 이럴수록 로만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순식간에 분노가 가라앉으며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정말로 기분이 상한듯한 레오는 징표와 보급품을 반납하고 사라졌다.

····

"단장님·· 레오 플로이드의 사표는 제가 부서에 전하여 수리시키겠습니다."

부단장까지 눈치를 보는 상황에 에클레어는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환기시켰다.

"미안하군. 좀 부탁하지."

"성녀님이 오시는 날인 걸 알면서도 이런 구멍을 내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플로이드의 이미지에 손상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글쎄. 그런 일은 관심이 아예 가지 않는군."

이제 에클레어에게 권력과 정치의 행방은 정말 어찌 되든 좋았다.

레오의 사표를 품에 챙긴 부단장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금세 돌아와 에클레어에게 보고를 올렸다.

"단장님. 교단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음- 모두 준비하도록 알려라."

황실을 수호하는 에클레어 입장에서 오늘 행사는 기분이 어떻든 건강이 어떻든 어지간하면 피할 수 없다.

밖으로 나도는 백금의 모험가 우루스 파티만큼이나 보기 힘든 인물이 돌연 오늘 수도로 돌아온다고 어제 알려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유로운 분이군요."

부단장의 말에 에클레어는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돌아오는 건 늘 예측이 불가능하여 바로 전날에서야 교단도 알게 되어 부랴부랴 제국에 알렸을 확률이 다분하다.

순례를 나갔던 교단의 성녀가 돌아오면 교단을 들렸다 수도의 심장으로 와서 제국의 앞길에 축복을 내린다.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성녀가 정해진 기도문을 읽으며 축복을 내리는 짧은 의례이지만.

황실과 교단의 돈독한 사이를 증명하는 과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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