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7 - 자아도취와 나르시시즘 -1-
로버트가 기다리던 사고를 터트렸으니 당장은 자진해서 아카데미 경계를 설 이유도 없어 최근에는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고.
내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데가넬로를 찾기 위해 제국의 경비대와 사람 찾는 데 도가 튼 인력들이 동원되어 아카데미와 수도를 싹싹 긁었으나.
흔적이 없으니 수배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다들 자연스럽게 잊어가고 있다.
눈 깜짝하는 사이 수십 수백 장씩 갱신되는 범죄자들의 신상정보와 몽타주를 생각하면 데가넬로를 제대로 기억하고 잡혔으면 하는 사람은 로버트와 아이작 혹은 그 가족과 지인들 정도겠지.
피해자가 아닌데 관심을 계속 두기에 이 제국은 매일이 피가 터져 나가는 유혈의 현장이니.
물론 나도 데가넬로에 관해서는 벌써 얼굴도 가물가물한 쪽이다.
'다음에는 집보다는 마당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까··· 관리가 되려나?'
리케가 아카데미에서 학업에 정진하고 있을 시간.
나는 웃통을 벗고 기합을 넣은 채 마당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피잉-!
사슬임에도 바람을 가르는 속도가 빠르니 칼날 같은 소리가 났다.
글레이프니르를 쉬지 않고, 끊지 않고, 연달아 휘두르며 머리와 손에 녹여낸다.
훈련에서 효율을 끌어올리고 단순하면서 획일화된 행동 패턴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마당이라도 매번 다른 공간이라 생각하고 가상의 상대 또한 종류를 바꿔가며 휘둘러야 한다.
넓이와 거리에 자체적인 제약을 주게 되면 휘두르는 손기술이 매번 다르고 머리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는 법.
"푸후-!"
눈을 따갑게 하고 입에서 짠맛을 느끼게 하는 땀을 뱉어내고 구석에 놓여있는 물을 들이켰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연장이 좋아진 거지. 아직 숙련도가 티 날 정도로 오른 건 아니야.'
투자한 시간이 짧으니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사실.
쇄(鎖)를 엉키지 않고 휘두르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복잡하지만 숙달을 하게 되면 무의식 중에 운용을 못할 것도 아니다.
실제 [ 이매망량이 깃든 쇄(鎖) ]를 사용하던 내 수준이 그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레이프니르를 다룰 때 내 머리는 처음 무기를 든 풋내기처럼 어설프고 바쁘기 그지없다.
'심상의 그 여자 말대로 다양한 무기들과 바람둥이처럼 지냈던 벌칙이라도 받는 건가? 좀 애가 타는데.'
신체에 흐르는 마나를 오러로 가시화하여 글레이프니르에 흘려내고.
특유의 길이 조절 능력까지 생각하며 변수를 창조하려 하니 난이도가 조금 늘어난 수준이 아니었다.
내 머리로는 이것만 생각해도 벅차 다른 자잘한 기능을 응용하는 것까지는 아직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이쁜이가 이름값은 한단 말이지··.'
곡소리가 절로 나와도 글레이프니르는 난이도를 감안하고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매력!
제국의 유명 대장장이들이 제작한 이름 있는 무기들과 비교해도 격 자체가 다르다고 체감하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데가넬로의 공격과 방어 따위는 우습게 뚫어내면서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경도는 당연하고.
백염이나 오러를 보냈을 때 마나의 전도율 자체가 보통의 무기와는 반응부터 다르다.
사슬이 가지는 특유의 움직임, 모양새와 다르게 스킬이나 오러를 사용하려 할 때 이질감이 없어 내 신체의 일부와 같은 편한 느낌이 든다.
숨겨진 명검이나 이름 있는 대장장이들이 만들었다는 무기들을 사용해 봤지만 이만한 물건은 없었다.
이게 단순하면서도 최고로 효율적인 부분.
사용자의 역량에 구애받는 이 녀석의 성능과 잠재력은 내 능력에 따라 발전의 가능성이 무한하기에.
글레이프니르는 나와 함께 성장하는 무기이자 내 성장의 지표라 봐도 될 것이다.
'보는 눈이 너무 올라가 버리는데?'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무기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이 사슬의 성능은.
혹여 동등한 상대와의 실전에서 다른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
··
리케와 새벽의 고정 루틴인 빵집에서 돌아와.
함께 아침을 먹고 아카데미에 가는 그녀를 지켜본 다음부터 시작되었던 훈련은 리케가 수업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다.
"오빠~!"
"잘 다녀왔어? 곧 들어갈게."
리케는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서 보이고는 집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귀엽긴.'
턱-
마당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훈련의 마무리를 준비한다.
내게 있어 훈련의 마무리는 쿨다운과 같은 스트레칭이 아니라.
글레이프니르의 이음새 사이에 묻은 흙이나 먼지를 물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
보통 물건이 아니니 습기로 녹이 슬거나 무뎌질 걱정은 없지만.
천으로 물기까지 깔끔하게 닦아서 마무리해 준다.
막말로 지저분해진 부분은 끊어내고 마나로 다시 길이를 늘여도 되지만 이건 감정을 가지고 있는 글레이프니르에게 내 정성을 보이는 공정이다.
'확실히 씻는 걸 좋아한단 말이지··· 무기든 사람이든 역시 깔끔한 게 좋은 건가? 아니면 단순히 시원해서?'
데가넬로를 조각내고 그 자리에서 글레이프니르에 묻은 살점, 내장조각과 핏물을 성수로 흘려내다가 느끼게 된 것으로.
정성을 들여 씻어내고 닦아줄 때는 쓰다듬는 것과 달리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기뻐한다.
끼익-
훈련의 마무리 절차를 끝내고 씻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자.
리케는 아카데미 정복을 환복하고 오늘도 사이즈가 큰 내 옷을 입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씻고 올게~"
"오빠?"
보랏빛 눈동자로 나를 빤히 보며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리케에게 입을 맞춰주고 냉수로 몸을 빠르게 씻어냈다.
샤워가 끝나고 저녁을 준비하는 리케를 도와 접시를 놓고 수저를 세팅하고 있으니.
리케가 내 허리를 뒤에서 껴안으며 말을 꺼냈다.
"클로에가 오빠를 찾는 것 같았는데."
"나를?"
"세리아랑 나한테 음식점을 추천받고 남자한테 선물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니 빙정의 보답을 하려는 거 아니겠어?"
"아~ 그전부터 식사를 한번 하자고는 했었지. 굳이 무리 안 해도 되는데··."
얼마 전까지는 수업이 없어도 한량처럼 계속 아카데미에 퍼질러 있었으니 그걸 생각해서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찾아도 하필이면 오늘이라 - 클로에의 성향을 생각하면 큰 마음을 먹은 행동일 것인데 아쉽게 되었다.
"내일 잠시 들릴까?"
"오빠 최근에 훈련으로 바쁘잖아. 실전 수업까지 기다려도 괜찮지 않을까?"
···뭔가 관심을 받기 위해 알짱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지만.
미래의 처제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상당한 심력을 소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 최근에 너무 집에만 있기도 했으니 아카데미 정도야··· 내일 점심은 둘이서 외식할까? 리케가 나올 수 있으면."
"진짜?! 무조건 나올게!"
"메뉴는?"
"오빠가 먹고 싶은 거!"
권유를 하면 매번 처음 하는 데이트처럼 기뻐하는 리케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메뉴를 선정한다.
'기름진 것보다는 부드럽고 먹기 편한 스튜 같은 게 좋겠고. 홍차랑 우유도 제대로 구비할만한 곳이···.'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아카데미로 가서 클로에와 용건을 끝낼지.
점심을 리케와 먹고 아카데미로 가서 한량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지 그것도 고민이 되는 사항.
결정을 끝내고 아카데미라 하니 이제야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 지하 출입증은 언제 받을 수 있는 거지?'
준비는 하고 있겠지만 이왕 간 김에 한번 더 재촉을 해야 하나 싶다.
*****
흑마법사 3대 집단 중 하나인 네마 나타스의 뿌리를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헬 브룸이 사라진 자리에 반 강제적으로 앉게 된 그녀.
이스메이는 지금처럼 최고급 마차를 타더라도 게이트가 아니면 불편하다며 귀찮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아~! 돌아다니는 건 역시 체질에 안 맞아. 빨리 이 자리 좀 가져가 줄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이스메이를 보좌하며 일을 배우고 있는 번스타인은 때때로 그녀의 히스테리를 받으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하며 묵묵히 따라다녔다.
번스타인은 제물을 이용한 변장과 변조 흑마법에 재능을 보인 유일한 신입으로 시간이 지나 처세술을 익힌다면 헬 브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식을 들은 이스메이는 처음 네마 나타스에 들어온 신입들이 거쳐야 할 절차를 패스시키고 자신의 옆에 번스타인을 붙여두었다.
날카로운 손톱을 용품으로 관리하는 그녀에게 번스타인이 한 발짝 다가갔다.
"이스메이님··· 업무를 위해 한 가지 배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으흐흠~ 배우려는 자세는 좋아. 뭔데?"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스메이는 손톱을 후-후- 불며 질문을 기다렸다.
"이번 일에 어째서 '그놈'을 선택하셨는지 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이스메이가 굳이 흑마법사에 적대적이고 호부견자의 표본인 레오 플로이드를 포섭하려는 이유.
번스타인이 혼자 죽어라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아~ 이래서는 자리를 물려주는데 오래 걸리겠네."
"죄송합니다."
이스메이의 검은손이 바닥에서 꾸물꾸물 올라와 번스타인의 머리를 툭툭 때렸다.
"일단 업무의 내용을 떠나. 레오 플로이드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말해봐."
번스타인은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했다.
이스메이가 레오에게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 동행을 하였기에 짧지만 느낀 점은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너무 단출하고 허접한 감상이라 이스메이의 마법에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번스타인은 답을 꺼냈다.
"···안하무인 하며 건방집니다."
"음~ 제대로 잘 봤네. 눈썰미가 있잖아!"
"···?"
진심이 담긴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번스타인을 보며 이스메이는 씩 웃었다.
"레오 플로이드처럼 자아도취,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인간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틱-
손톱을 다듬던 용품을 손가락으로 튕겨 마차의 바닥에 버린 이스메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번스타인을 보며 답을 하사했다.
"분에 넘치는 것을 원하면서 그게 당연히 들어올 거라 생각하고. 과분한 기회가 찾아와도 의심을 하지 않는 거야."
번스타인이 잠깐만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 절로 납득이 갔다.
"···그 점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쪽의 자존심을 조금 버리고 추켜세워주면 제일 다루기 쉬운 부류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진짜들은 병적으로 의심이 많아서 이런 수법은 턱도 없고 통하지도 않아."
번스타인이 도서관과 실험실에 박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앞으로의 업무를 위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딱-! 딱-!
어둠을 가로지르며 달리던 말이 발을 멈추고 마부가 마차를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번스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의 문을 열고 고개를 숙인 채 이스메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마차에서 내려온 이스메이는 수도 밖 외진 숲에서 영업 중인 여관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우리 망아지를 만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