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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46화 (146/250)

Chapter 146 -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ㅡ 이상으로 설명은 이렇습니다."

"허 참··."

나이를 먹어 주름이 질 때까지 평생 공부해 온 것들과 오래도록 자리하여 불변할 것 같았던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야기.

로버트가 아이작을 위해 준비해 왔던 [ 차원 마법 실험 보고서 ] 서적의 필사본과 허공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

그것들을 본 말로이 백작은 기존 마법이라는 틀을 거침없이 깨부수고 흔드는 내용들에 주름이 깊어졌다.

본인의 자식이라 해도 신용은 별개의 이야기였기에.

영지에 돌아오자마자 아이작을 불러 마나 계약을 맺고 사실을 숨김없이 들었기에 더욱 기가 찼다.

"개인의 마나에 반응하는 마법진이라. 보안 마법이나 마도구가 아닌데 말이지··?"

아이작이 괴한에게 당해 헛것을 본 건 아닌지 환영이나 착란을 일으키는 마법이나 마도구에 당한 흔적도 조사해 봤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맞습니다."

"책의 내용을 떠나서 이 모든 일이 우연의 일치라는 게 어이가 없군··· 기사 학부생이 도서관에서 검도 아닌 차원에 관한 책에 관심을 가지고, 그 볼트의 꼬맹이가 불가사의한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말씀하신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백작은 습관에 따라 진한 잉크로 빠르게 정리를 이어가면서도- 어이가 없는 상황에 콧잔등을 긁었다.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되기에.

말로이 백작은 자신이 역사가 변하는 순간에 서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실험을 속행하기 위해서는 볼트가의 장남인 로버트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렸다."

말로이 백작의 말에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금 곤란합니다. 파편과 경우의 표본을 늘리기 위해 재차 시도를 하려면 로버트가 필요한데 상태가 그래서야 아카데미에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지··."

차륵-

메모를 하는데 방해가 되는지 팔에 있는 마도구를 풀어낸 백작은 펜을 움직이면서 아이작과 대화를 이어갔다.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기사 가문의 장남이라··· 위기를 기회로 삼을 정도의 정신력이 있다면 외팔만으로 지독하게 단련해서 경지에 오를지도 모르지."

"···."

아이작은 백작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입을 닫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성공한 기사 중에는 본 기억이 없지만- 모험가나 용병들만 봐도 외팔이는 흔하고 극복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아. 어설프게 양손을 쓰는 녀석보다 하나를 줄기차게 단련한 녀석이 더 무서운 법이니."

"아시다시피 로버트가 타고난 재능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한때 지겹게 자랑을 들었던 백작이기에 로버트의 재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평균을 넘어선다고 생각은하고 있다.

"신체의 재능과 독한 정신력은 별개의 이야기지만··· 용이 될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올라오겠지."

"하여 최대한 빨리 아카데미로 복귀해서 로버트의 소식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직접 로버트의 영지로 가서 찾지 않아도 주위에 따르는 여식들이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흐음···."

"필립이 돌아왔을 때도 제가 없으면 애써 준비한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쯧- 낭비는 안될 일이지. 알아서 준비하고 떠나거라. 이 실험과 관련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터이니 알게 되는 사실은 바로바로 보고하도록."

무한한 지원의 약속은 그만한 관심의 증거이자 쓰고 버릴 고기 방패들을 잔뜩 고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

아이작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표정에는 기합을 넣고 최대한 무표정하게 유지했다.

"물론입니다."

한쪽 눈을 잃은 절망감에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멘탈이 흔들려도 아버지 앞에서는 당장이라도 가문의 이익과 마법을 위해서 몸을 건사하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마음에 들 수 있다.

기실 그 상황에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거니와, 로버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외형적으로는 그리 티가 안 난다는 게 제일 큰 위안이었다.

아직 감각과 시선의 넓이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행동은 될 일이었다.

'···이걸로 다시 안정권이다.'

아이작은 차기 가주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걸 느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클로에에게 그럴 가능성이 없을까요? 단순히 언니의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한마디로 시작된 장시간의 침묵.

여유롭게 차를 비우는 리케와 달리 에클레어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라 걱정하는 것도 호들갑일지 모르지만요."

저건 알맹이가 없는 빈말이라는 걸 에클레어는 이제 알고 있다.

'클로에가 만약 로만을 사모하여 마음에 둔다면···.'

지금 로만을 따르는 클로에의 상태를 봐서 마냥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른 남자들을 기피하면서 로만은 오라버니라 부르고 보답이라 해도 자신이 먼저 이성에게 식사자리를 제안하고 따르는 점.

클로에가 남자를 보는 눈이 있다는 말이 되지만 그게 에클레어의 입장에서 심란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의 연인이기에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모든 감정을 막아주는 방벽은 아니라는 걸 안다.

정작 자신도 로만이 리케와 연인이라는 걸 알고도 변하는 감정을 거스르지 못했지 않나.

"···모르겠군."

그래서 모르겠다는 답이 나왔다.

"혹시나 그렇게 될까 봐 클로에를 오빠와 못 만나게 할 수도 없잖아요. 언니는 애초에 그리 하지 않겠지만."

"말도 안 되는···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리케의 말에 에클레어가 눈가를 찡그렸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전 언니가 좋아요."

"··맥락 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아까보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생각은 더 많아져 에클레어는 머리가 무거웠다.

"언니는 클로에가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죠?"

"당연하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즉답이 나오는 말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에서 오는 행복함을 언니는 알겠지만··· 제국의 부권제에 찌든 남자들이 클로에에게 이 안정감과 행복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건··."

만나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에클레어는 클로에의 인생이 엮인 일에 부정이라도 탈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없다고는 말 못 해요. 하지만 상대가 자기 자신보다 소중하게 클로에를 아껴주고 웃음짓게 해 줄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

"클로에의 내성적인 면을 묵살하거나 악용하지 않고 의견을 상냥하게 들어줄 ㅡ"

쏟아지는 말에 에클레어는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리케의 말허리를 잘라냈다.

"리케···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그만, 그만해라. 하고자 하는 말은 알겠다."

"흐응~"

리케의 언변에 끝도 없이 말려들어가는 감각.

흐트러진 호흡을 조절한 뒤 에클레어는 식어버린 홍차를 한 번에 넘기고는 미지근한 숨을 토해냈다.

"후우···."

"제가 수다스러웠네요."

에클레어는 비어버린 찻잔에 홍차를 채운 뒤 리케처럼 우유를 섞었다.

작은 소용돌이가 생길 정도로 티스푼을 휘휘 저으며 대화의 종지부를 찾아갔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눠봐야 사람의 마음이란 모르는 법이다."

"맞아요. 그 말씀대로에요."

시원하게 들려오는 긍정에 눈썹이 움찔 떨렸다.

맞다고는 대답하지만 진짜 이해하고 동의하는 걸까? 에클레어는 리케가 두루뭉술한 반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상세한 내용을 꺼내 강조했다.

"클로에가 가질지도 모르는 마음을 떠나 로만이 애초에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머리 아프도록 내리는 가정은 아직 의미가 없다는 거다."

"저는 클로에가 오빠한테 사랑받을만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팅-!

에클레어의 손에 들려있던 티스푼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더니 끊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니, 아니다··· 큰소리를 내서 미안하군. 후-"

본인도 모르게 언성이 살짝 높아지자 에클레어는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리케는 에클레어가 무의식적으로 뿜어낸 기세에 놀라지 않고 깨끗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할 일이 어디 있나요. 클로에에 대한 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전 오히려 감동했어요. 진심이 깃든 가족애는 보는 것만으로 느끼는 게 많거든요."

"···."

리케가 이리도 수다스러운 적이 있었던가.

에클레어는 리케를 주기적으로 만나며 조금은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알게 된 것들은 음식의 기호 같은 표면적인 것이었고 행동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유추를 하는 것은 아직도 불가능했다.

대체 리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비한 자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품고 있는 생각은 한밤중에 보는 숲이자 강과 같아 넓이와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언니. 클로에가 만약 연심을 품어도 그걸 오빠한테 표현할 거라 생각하세요?"

"···하지 않겠지."

이것도 언니로서 즉답이 가능한 이야기- 클로에는 무조건 참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그런 경우가 되어도 마찬가지.

"그 감정을 언니도 짧게 겪어봤겠지만. 참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설명은 필요 없죠?"

회상하는 것만으로 에클레어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지금 느끼고 있는 무한한 행복감과 반대로 정신을 갈아버리는 아찔한 시간들이었으니.

클로에가 그걸 겪는다 생각하니 살짝 욱하는 마음에 에클레어가 도끼눈을 뜨고 리케를 노려봤다.

"도저히 모르겠군··· 클로에를 이 자리에 끼워 넣는 게 목적인가? 여자가 늘어날수록 로만과 둘이 있게 되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만?"

주도권이랄 게 없는 주제임에도 어쩐지 대화의 형세는 리케에게 기울어져 에클레어가 발악하는 그림이었다.

"언니. 저도 그걸 인지하고 있고 막무가내로 여자를 늘리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오빠의 의사가 첫 번째로 중요하고 나름의 기준도 있어요. 분명 그것도 있지만···."

"있지만?"

달칵-

찻잔을 내려둔 리케는 에클레어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무표정하던 리케가 싱긋 웃는 것이 당장 옆에 있었으면 자신의 손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오늘 이런 주제를 꺼낸 이유는··· 저도 클로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친구이면서. 언니가 정신없이 바쁘고 신경 쓸 곳도 많다 보니 아예 이 경우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

"아무리 언니라도 오빠나 클로에와 관련된 일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언니가 예상도 못한 일로 힘들어하면 오빠가 걱정할 거예요."

리케의 말을 들은 에클레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속이 깊은 충고에 고맙다고 하고 싶으나··· 내 귀에는 다가올 일에 마음을 미리 먹으라는 말로 들리는데 내 성격이 삐뚤어진 건가?"

"글쎄요~"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한다는 리케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에클레어는 조금 더 있다 가겠다며 리케를 먼저 보냈고.

확실히 혼자가 된 에클레어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하아··."

별실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홍차를 전부 비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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