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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43화 (143/250)

Chapter 143 - 드릴 건 없고 병결을 드리겠습니다.

볼트 후작가와 말로이 백작가의 위세와 영향력은 제국에서 절대 적지 않다.

어딜 가도 어깨를 펴고 콧김을 뿜고 다닐 정도는 되며.

특히 말로이 백작가는 영지에서 마법사들의 연구와 관련된 재료가 활발하게 유통되는 상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게이트 사업까지 연관된 가문이라 금전적으로는 비할 곳이 없을 정도.

자신의 영지를 돌보고 권력과 재력을 불려 나가기 바쁜 두 가문의 주요 권력자들이 수도의 교단에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는 로프티 아카데미 학장인 도란도 피곤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백작님께는 죄송하지만. 제 성법술로도 이게 정말 최선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말로이 백작가의 재력이 하늘에 닿을 만큼 풍족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안구의 형태라도 보존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일반 사제였다면 오염된 안구를 적출했어야 할 겁니다."

그 말대로 최선의 결과라는 생각에 말로이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내 사제님에게 은덕을 입은 걸 잊지 않겠습니다."

가문의 장남.

아이작 말로이의 한쪽 눈동자가 무언가에 꿰뚫렸다는 말에 수도의 교단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사제를 불렀음에도 완전하게 복구는 할 수 없었다.

치료 시간을 놓친 것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평범한 상처가 아니라 부정적이고 사특한 무언가의 영향을 받은 게 컸다.

이것은 흑마법과는 묘하게 다르면서 경험이 가장 많다는 베테랑 사제도 처음 보는 것.

언데드에게 긁힌 상처 같기도 하고 벤시 같은 유령들이 남긴 마법의 흔적을 닮기도 했지만 무엇과도 같지는 않아 정화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미치겠군··.'

당장에 이 멍청한 아들을 한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볼트가의 장남과 무단으로 수업을 빼먹고 공터에서 땡땡이를 치다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

적당히 눈을 감고 넘어가줄 수 있는 이야기에도 한도가 있는 법이었다.

백작은 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이 아비가 너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반항을 하거나 삐뚤어질 정도로 부담을 주기라도 했느냐? 이 정신이 엇나간 짓거리를 한데 납득할만한 이유를 답하지 못한다면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다."

"···."

반성하는 기미가 일절 없는 아이작의 눈빛이 백작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공터에 촉매와 재료를 위치시켜 두고 땡땡이를 쳤다느니 허접한 변명을 하다니··· 진정 아비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것이냐?"

"제 말을 한번 들어주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후우···."

한숨을 푹 내쉰 백작은 손목에 있는 팔찌 형태의 마도구를 풀어 병상의 탁자에 올려두었다.

가벼워진 손으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긴 백작은 주위에 마나를 둘러 차음을 하며 아이작을 노려보았고 아이작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넘겼다.

교단 내부에서 마나를 함부로 조작하는 것은 결코 교양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큰 사건이 터진 만큼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대답 여하에 따라 당장 손찌검의 파도가 몰아칠 기세였기에 아이작은 먼저 흥미로운 단어를 선정하는데 애썼다.

"게이트를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멀리까지 본 이야기였지만 연관이 아예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신경질적인 얼굴이 살짝 풀리며 눈썹을 꿈틀거린 백작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아이작에게 명했다.

"···자세하게 고해보아라."

장남의 눈 한쪽과 다른 마법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누를 수 있는 실적을 고르라 하면 아무 고민도 없이 실적을 선택할 아버지였기에 예상한 반응.

아이작은 정신을 차리고 눈 한쪽이 터져나간 와중에 몸을 반사적으로 움직여 제일 먼저 차원의 파편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로버트가 아니라 차원의 파편 두 조각을 먼저 챙긴 것은 이번 일을 수습하고 차기 가주의 자리를 지키는 데 아버지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사회적 생존을 위한 생각을 이어가다니 자기 자신이 미치도록 대견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도록 훌륭하고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100점이야.'

눈 한쪽을 잃은 건 뼈가 아팠지만 당장 옆에 난리가 난 로버트 쪽을 보니 되려 침착해지고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런 미치광이를 만나고 정신을 잃었는데 살아남다니 도대체 이 무슨 행운아란 말인가.

아이작은 속으로 자신의 지적인 행동과 천운에 자화자찬을 하며 병상 옆에 놓아둔 가방을 꺼내 들었고.

그 안에 소중하게 보관해 둔 차원의 파편 두 조각을 슬쩍 보이며 짧고 굵은 설명을 아버지에게 이어갔다.

요약된 설명을 들은 말로이 백작은 머리를 최대로 회전시켰다.

"···."

아이작이 하는 말은 허구적이면서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장 흑마법사들이 소통하고 소환하는 악마들만 해도 판데모니움의 생명체.

악마라는 생물도 어찌 보면 다른 차원의 존재이고 교단이 섬기는 여신이나 천사들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인간들이 사는 다른 차원에 대한 이야기와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인간계가 있다 해도 증명의 수단이 없었기에 모두가 궁금해하는 공상의 영역이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모든 마법과 역사 서적에 가문의 이름이 들어갈 발견이다···.'

저 기묘한 덩어리가 없었다면 말로이 백작은 그대로 자식의 뺨을 후려쳤을 것이다.

아무리 아이작이 자신을 닮아 연구와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고명한 마법사들 조차 포기한 영역을 증거도 없이 해냈다고 한다면 사태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밖에 안 보였을 테니.

그러나 연구로 대성한 자신이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와 베테랑 사제들도 처음 보는 부정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자세하게 들어볼 가치는 충분했다.

"좋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문으로 가서 듣겠다. 일단··· 자리는 수습해 주마."

가문을 이어가야 할 장남의 눈 한쪽이 실명되었으나 그나마 가문의 면이 서는 점은.

같은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볼트 후작가의 장남에 비하면 큰 일이라고 난리 치기도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눈 한쪽이 안 보여도 실험은 이어갈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낀다면 시종을 붙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 가문에서 팔 하나.

그것도 주로 쓰는 팔이 고장 났다는 것은 직계에 장남이라도 가주직을 물려받는데 차질이 생기기 충분했다.

볼트 후작가문은 예로부터 교단과 사이가 돈독하여 실력 좋은 사제들을 대거 불러 팔을 결합시키는 데는 성공했고.

피가 통해 근육과 피부에 혈색이 돌았을 때는 모두 환호를 질렀으나.

로버트의 팔은 힘을 아무리 줘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저쪽에 모여있는 볼트 후작가의 인물들은 장례식장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라 마법사이자 철면피인 백작이라 해도 다가가기 꺼려졌다.

'쯧쯧- 자식이 타고난 재능이 그렇게 좋다고 자랑하더니··· 저건 기사로서 끝이다. 가문도 시끄러워지겠군.'

백작은 볼트 후작가에 불어올 가주 자리 쟁탈전과 피바람을 예견하며 눈길을 돌렸다.

골머리가 아픈 일은 당장 눈앞에 하나로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필립은 어디 갔느냐?"

말로이 백작은 아이작이 간청해 보내주었던 필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인상을 쓰며 타박하는 투로 물었다.

"···제가 부탁한 것들이 있어 여러 곳을 돌고 있을 것입니다."

"그건 방금 말한 실험과 관계가 있는 것이겠지?"

아예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기에 아이작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교단에서 빌린 접객실에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건 자리에 앉아서 마주 보고 있는 서로에게 난감한 상황이었다.

볼트 후작가에서는 괴한의 정체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족보'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았고.

말로이 백작은 정보가 확립되기 전까지 이 이야기를 길게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학장인 도란은 피하려고 노력하면 구멍이 많아 피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냥 골이 아팠다.

"그 괴한이 아직 아카데미에 활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볼트 후작가의 인물들이 기세를 압박하며 묻자 도란은 외팔을 뻗어 찻잔을 잡고 느긋한 어조로 받아쳤다.

"현재 모든 교관과 인력을 동원하여 수색을 하고 있지만 사고가 일어난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훈련장에서 흔적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독특한 흔적들은 있었으나 문제가 생긴 생도나 교직원들은 조사결과 없었습니다."

도란의 입장에서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생각은 없다. 인정하는 순간 덤터기를 쓰고 손해가 된다.

후작쪽에서도 아카데미의 학장이라는 직위를 언급하고 최고 책임자라는 것을 건드리면 사과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르나 무리해서 벌집을 들쑤시는 건 자폭버튼이나 다름없다.

"크흠···."

아카데미의 보안에 대해 따지고 싶지만 무단결석을 하고 뛰쳐나갔다는 꼬리표.

거기에 말로이 백작 쪽은 이 자리를 일단 조용히 넘기고 싶었기에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볼트 후작가와 학장의 대화를 관망하기를 거듭했다.

제국에서 한 자리씩 한다는 인물들이 앉은자리는 도돌이표처럼 누구의 잘못인지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 대화가 지루할 정도로 이어졌지만 누구에게도 이점이라곤 없었다.

"··백작은 어찌 생각하시오?"

대화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니 볼트 후작가의 인물들은 말로이 백작에게 시선을 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자리가 무엇이 중하겠소. 이미 일어난 일에 잘잘못을 따져봐야 자식의 상처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병상에 혼자 있을 아들내미가 걱정이오."

"···아니."

예상도 못한 반응에 볼트 후작의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그 사이를 놓치지 않은 도란 학장이 끼어들어 백작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역시 백작님의 혜안은 마법적 지식을 넘어 모든 일에 중점과 진리를 꿰뚫으시는군요."

"허허허! 과찬이오. 그래도 한마디 해보자면··· 지식이라는 뿌리와 줄기는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 아니겠소."

"그 말을 하시니 떠오르는 것이 저번에 백작님이 발표하신 논문 중 ㅡ"

'이건 망했다.'

마법사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쇼를 벌이기 시작하자 볼트 후작가의 인물들은 이미 상황이 종결 났음을 깨달았다.

"···."

볼트 후작가의 입장에서는 합세하여 아카데미 학장을 압박해야 할 말로이 백작이 혼자 고고한 척은 다 하고 있으니 이건 이것 나름대로 미치고 팔짝 뛸 일.

자식을 물건 다루듯이 하는 경향이 제일 강한 말로이 백작이 저딴 촌극을 벌이니 배신감으로 뒤통수가 얼얼했다.

결국 백작이 학장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치료기간 동안 로버트와 아이작은 아카데미 출석률에 문제가 되지 않는 병결처리로 합의.

학장은 괴한을 찾기 위해 교관들에게 합류해 보겠다며 자리를 떠버렸고 그것으로 자리는 끝이 났다.

*****

빙정의 섭취가 끝나고 알몸으로 정신을 차린 클로에와 에클레어가 마주했을 때 예상외로 어색함은 없었다.

전보다 사이가 두터워지고 화기애애한 느낌.

생기가 넘치는 푸른 눈동자를 보이며 클로에는 추위는 가셨지만 에클레어와의 포옹은 바로 풀어내지 않았다.

아까와 다르게 절박함이 사라지고 애틋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자매는 그저 웃었다.

"언니···고마워. 지금만이 아니라 항상·· 나 언니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

"···마찬가지인 이야기를 하는구나."

클로에가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손을 뻗어서 에클레어의 손을 잡을 정도로 한 순간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방으로 돌아간 클로에는 몸을 정리하고 다시 에클레어를 찾아와 뒷정리를 도우며 자매끼리의 시간을 보냈다.

침실이나 서재에는 사용인을 들이지 않는 언니라 둘이서 넓은 방을 정리하니 생각보다 시간은 걸렸지만 언니와 함께 청소를 하니 즐겁기도 했다.

정리가 끝난 뒤 간단한 티타임을 가지며 소소한 이야기 꽃을 피워가던 클로에는 머뭇거리며 한 가지 부탁을 꺼냈다.

"언니.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음? 말해보거라."

"···용돈을 가불 해줄 수 없을까?"

클로에가 아카데미에서 사용할 용돈을 가문에서 받는다 하지만 결국 그 돈의 출처는 에클레어였다.

평소 자신에게 이런 부탁은 한 적이 없는 동생이기에.

에클레어는 어떤 이유든 클로에가 자신에게 기대고 솔직하게 부탁하는 이 상황이 기뻤다.

"용돈을 가불 할 필요 없이 돈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편하게 말하면 된다."

동생이 사치스러운 행위나 허튼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에클레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클로에의 답을 기다렸다.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살짝 붉힌 클로에는 집중해야 겨우 들릴법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 이렇게 받은 게 많으니 오, 오라버니한테 작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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