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1 - 빙정 -3-
수도의 저택에 와서 처음 들어와 보는 언니의 침실은 어린 클로에의 기억에 있던 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사치품 하나 없으며 취향을 타지 않는 단색의 벽지와 깔끔하게 정리된 가구들.
각이 잡혀 펼쳐져 있는 침구류의 상태는 자신의 방과 전혀 달랐다.
"여기 편하게 앉거라."
언니는 침실에 있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반겨줬다.
테이블 위에는 자신과는 연이 없어 보이는 화려한 목함이 있었고 살짝 열린 틈 사이로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저게 뭐지?'
무엇인지 궁금증이 동했지만 언니의 말에 일단은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놓고 앉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클로에는 드물게도 먼저 말을 꺼냈다.
"언니 방이 조금 춥지 않아··? 아무리 언니라도 감기 걸려."
자신의 걱정에 작게 웃은 언니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목함을 가리켰다.
"한기가 느껴지는 건 이것 때문이지 평소에는 따뜻하게 지내고 있단다. 컨디션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니···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그, 그렇구나. 헤헤··."
그 짧은 사이에 어색함을 죽이고 자연스럽게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클로에는 서늘함의 원인이라 지목된 목함을 보며 에클레어가 자신을 부른 용건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언니는 목함에 손을 얹어 손가락으로 톡톡 때리며 말을 시작했다.
"오늘 클로에를 방에 오라고 한 이유는··· 보다시피 이 물건 때문이다."
끽-
윗부분이 젖혀진 목함의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얼음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보석의 원석 같기도 했지만.
목함이 열리는 순간에 공기 중의 한기가 더욱 강해졌기에 얼음덩어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얼음··? 아니면 보석··?'
허나 클로에의 식견과 경험으로는 목함에 안치되어 있는 이 물건이 무엇인지 예측조차 불가했다.
"언니··?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물건을 보여줬는데 무엇인지를 모르니 부끄럽기도 하고 어떤 반응을 하기가 힘들었다.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언니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흔한 물건이 아니니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이걸 보고 바로 알만한 견해를 가진 자는 드물 거다."
"으응··!"
클로에는 속으로 안심의 한숨을 뱉으며 귀를 기울였다.
"이건 빙정이라 불리는 영약이다. 로만이 클로에에게 보내는 선물이지."
"··으, 응··?! 르- 네에?"
오라버니의 이름에 절로 경어가 나오고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에 외계어 비스름한 말이 나왔다.
언니는 내 반응에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서재는 젖으면 안 되는 책과 서류들이 있기도 하여 마땅히 떠오르는 공간은 여기밖에 없더구나."
서재라는 단어에 잠깐이지만 숨을 멈췄던 클로에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찾고 되물었다.
"언니··! 자, 잠깐만··! 오라버니가 왜 나한테 영약을··?"
영약의 값어치를 자세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가치로 따지면 영약이란 건 자신의 용돈으로는 죽을 때까지 모아도 절대 구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름 있는 귀족 가문에서도 직계에 재능이 있는 자, 미래가 기대되는 잠재력을 가진 인물에게만 하사되는 것이 영약이다.
클로에가 생각할 때 자신과 영약은 연관성이 아예 없는 미지의 물건이었다.
"미래의 처제에게 점수를 따고 싶다나··· 나도 어이가 없지만 실제로 한 말이다. 그것만 말한 건 아니지만···."
기억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기가 차는지 언니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래도 나, 나는 괜찮으니···! 언니가 먹어!"
영약이라는 물건은 자신에게 너무 과분했다.
아직 기사도 아니거니와 무훈이나 어떤 업적도 없다. 거기에 기사 학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단한 생도도 아닌데.
귀중한 물건이 자신에게 낭비되는 건 안될 일이다.
고작 언니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물건을 받는 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약은 이미 복용을 한 자에 한해서는 효과가 없는 영약이다. 로만도 나도 옛날에 복용한 상태지."
에클레어의 말에 클로에의 입이 잠깐 닫혔지만. 고개를 저으며 클로에는 다시 한번 거절했다.
"그래도 아니라 생각해··! 영약같이 대단한 걸 나한테·· 이건 영약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ㅡ."
"클로에."
"응··?"
이어서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칫한 언니는 여러 감정으로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말을 들어보거라."
"으, 알겠어··."
"로만이 한 말로··· 우리 자매가 아주 닮았다고 하더구나. 외모가 아니라 다른 것이."
"언니랑 나··?"
이때까지 예외는 없었다.
드리트나 자매를 보고 닮았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외모만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훌륭한 기사가 되기에는 부족함만 가득한 자신이기에 부정할 수 없었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무리 생각해도 동경하는 언니와 얼굴의 일정 부분 외에는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떠오르지 않았고.
외모라도 닮은 부분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했다.
머리를 바쁘게 돌려보고 있는 자신을 빤히 보던 언니는 시선을 살짝 허공으로 돌리며 조금 낮은 목소리로 답을 알려줬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점이 유독 닮았다고 했다."
"···."
듣자마자 입이 돌처럼 굳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더구나. 내 생각과 가치관이 읽혔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여 클로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건 참을 수가 없어."
"언니···."
시선을 천장으로 향한 에클레어가 드물게도 감정으로 촉촉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항상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알 것도 같구나·· 로만이 무얼 보고 그리 이야기했는지."
클로에가 자신을 한 없이 낮게 잡고 영약을 자신에게 사용하는 것을 손해이자 낭비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여기고 있다는 걸 에클레어는 느꼈다.
에클레어가 느끼기에 이건 자신의 동생이 예의와 염치가 있어서 거절한다거나, 평소처럼 생각이 많다는 것으로 포장해 웃어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다.
드리트나 자매가 사이를 예전과 같이 회복한 것은 아직 짧은 시간.
서로 좋은 것만 보여주고 긍정적이면서 즐거운 경험만 공유해도 부족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피를 나눈 자매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곳을 공유하고 알아가는 것은 기쁜 일이면서도 이처럼 마주하기 힘든 걸 의도치 않게 보여주기도 했다.
클로에가 자기 자신을 영약의 가치보다 낮게 잡고 있는 점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나는 이런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지만. 클로에는 안된다는 생각도 이기적인 것이겠지."
"···."
"클로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군가가 클로에에게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먼저 자신의 행적을 뒤돌아 볼 것이다.
어중간한 성적, 오러를 개화했지만 혼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정쩡한 재능, 눈물도 많고 목소리도 작다.
가끔 신이 나면 주체를 못 해서 실수하기 바쁘고 남들은 고민이라 하지 않을 것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어딜 봐도 결점뿐이었고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을 사랑하기는 힘들었다.
아픈 게 있다면 아픈 게 싫어서 피하는 것이지 자신의 몸이 소중해서 피하는 게 아니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기적인 생각이 함께 든다.
언니의 말처럼 자신의 자매인 언니는 이런 부류의 생각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눈앞이 물기로 뿌옇게 변하자 떨리는 입술을 열어 어떻게든 감정을 제대로 전하고자 애썼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언니가 자신을 아끼지 않는 건 싫어···! 언니는, 언니만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어··."
작은 테이블 사이로 손을 뻗은 에클레어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클로에의 손을 잡았다.
"평생을 이리 살아온 내가 말해봐야 와닿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만."
"···."
입술을 물고 잠시 고민하던 에클레어는 머리에 있는 말을 꾸밈없이 그대로 내뱉기로 했다.
"클로에.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거라. 우리 자매는 생각과 가치관을 함께 바꿀 필요가 있어."
언니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치고 올라온 감정에 가슴이 울컥하며 흔들렸다.
보아라- 감정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 울보인 자신은 저 한마디에 이렇게 눈물이 또 흐르려 하지 않나.
또 언니의 걱정을 사게 될 거라는 생각과 눈물이 많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겹쳐서 찾아왔다.
손을 잡고 있느라 막아내지 못한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흐윽··언니 미, 미안해·· 울고 싶지 않··흡··! 은데··."
잡고 있는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만큼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언니가 손수건으로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줬다.
"클로에. 이 빙정이 귀한 영약이라 해도 가치를 어찌 너에게 비견하겠느냐. 부족하면 부족했지 절대 과분한 물건이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은 부정적인 부분을 읽기라도 한 듯 언니는 나를 위로해 왔다.
자신의 친구인 리케가 말한 '이해'라는 뜻은 어쩌면 이런 방향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긍정하지 않으면 언니도 자신을 긍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가 더 소중한 자매구나··.'
이건 지금까지 쾌거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이해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 무언가였다.
··
··
울음이 진정되고 영약을 섭취하겠다고 말을 하니 언니는 그제야 얼굴에서 근심을 지워냈다.
똑- 똑-
'···?'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행동에 멍하니 보고 있으니 언니는 자신을 일으켜 테이블에 놓여있는 빙정을 보며 이유를 설명했다.
"클로에. 준비를 위해 옷은 전부 벗어라 속옷도 예외 없이."
"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