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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39화 (139/250)

Chapter 139 - 빙정 -1-

[ 정령을 볼 수 있습니다. ]

알림 창 중에 제일 중요한 한 줄.

겨우 이걸 가지고는 정령과 계약을 하기도 힘들겠지만 할 생각도 없다. 내 머릿속은 글레이프니르 하나 다루는 것만 해도 터질 지경이라.

원래 이 세상에서 정령을 볼 수 있다는 건 선천적인 능력이자 재능.

정령술사가 시전 하는 정령술은 정령이 보이지 않는 인물에게 있어 마법사의 마법과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유용하고 편해 보이는 정령술사의 실상을 까보면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자신의 능력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기 싫어하는 겁쟁이 정령이라던가, 장난이 심해서 중요한 순간 말을 듣지 않는다던가.

이 두 번째 유랑자 이후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정령술사들이 정령으로 인해 피로감을 토로하는 사이드 퀘스트가 제법 많다.

정령은 생각의 구조 자체가 일반적인 지성체와 완전히 달라 예상 자체가 불가능하고 속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변덕스럽다.

계약을 하게 되는 것도 술사쪽에서 간청해서 진행하면 불공정한 조항이 많다 보니 일반적인 마법사의 다재다능함과는 거리가 생긴다.

그렇기에 정령과 계약을 하고 정령술을 익혔다 해도 마법이나 궁술과 같은 차선책도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하는 게 차가운 현실.

실체를 알고 나면 갑갑한.

현실적으로 정령술이 그렇게 제약 가득한 힘이라도.

남들이 하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힘이 되긴 한다.

흔한 경우로 정령을 보는 것은 집단의 결속이나 신용의 증표가 되기도 한다.

정령을 눈에 담고 마주하는 것은 세상에 날 때부터 타고나는 특권 같은 것.

절대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게 상식이자 흔히 알려져 있는 '정설'이며.

하여 특권을 가진 자는 고귀한 존재에게 편애와 축복을 받고 태어난 생명체라는 이미지도 가진다.

'실제 설정으로는 그딴 거 없이 단순 적성의 문제지만···.'

그런 특별함의 상징이 되는 정령을 다루는 대다수의 인물은 자연과 친화력이 높다고 하는 엘프들이며.

인간이나 다른 이종족들에서도 정령을 다루는 자들이 있지만 그 수와 비중은 엘프에 비하면 극히 드물고 귀한 편이다.

그렇기에 엘프들은 정령을 볼 수 있냐 없냐로 여러 가지를 따지기도 한다.

'정령을 볼 수 있는 존재 중에 사악한 존재는 없다.' 하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로 엘프라는 종족은 우월하고 선하다며 올려치기를 하고 다니기도 한다.

문제는 그 증명할 증거조차 없는 이론 하나를 수백 년 넘게 올려치니 격언의 껍데기를 쓴 그 문장은 사실처럼 굳어져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점에서 이어져 게임에서는 정령술사가 있는 파티에 정령이 보이는 걸 증명한다는 것으로 호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나쁜 건 아닌데··· 뭐 쓸 일이 있겠지.'

이제 정령을 볼 수 있게 된 몸으로 추가된 사이드 퀘스트들을 수행하거나 다음 차원을 준비하는 게 게임의 정석이지만.

지금은 거기에 투자할 시간도 없고 보상도 내게 메리트가 없다.

사박- 사박-

푹신한 풀더미를 밟으며 셔츠가 걸려있는 나무로 향했다.

'그 둘은··· 그냥 두고 가도 되겠지.'

데가넬로를 추적하기 전.

값비싼 포션을 투여한 로버트의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타고난 몸이 튼튼하고 회복력이 좋으니 포션도 잘 받을 것이다.

거기에 팔도 날아간 상태라 눈을 뜨면 멘탈에 엄청난 패닉이 올 텐데.

정신을 차린 뒤 로버트가 질질 짜는 꼴을 보면 주먹이 나가서 죽일지도 모른다.

아이작도 마찬가지.

애초에 데가넬로의 관심이 로버트에 쏠리면서 죽을 만큼 맞은 것도 아니니 이대로 두고 가면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터져버린 한쪽 눈은 고쳐도 형태가 남기는 할지, 복원시켜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죽기 직전에 살려줬으니 충분한 선행을 베풀었고- 그 뒤는 내가 알바가 아니다.

애먼 남자들의 업보를 뒤집어써줄 호구는 이 제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집이나 가자.'

퐁-!

포션 한 병을 마시자 흉 하나 없이 사라지는 얕은 상처들.

로메리우스의 비전덕에 포션의 효과도 듣는 게 확실히 빠르다.

아문 살갗 위에 굳은 피를 성수로 사치스럽게 닦아낸 뒤 나무에 걸린 셔츠를 다시 껴입었다.

··

··

리케가 클로에를 통해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수도에 볼트 후작과 가신들이 게이트를 타고 아카데미에 우르르 찾아와 수업 중에 소동이 일어났다 한다.

다른 학부의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서 어찌어찌했다는데 그 이상은 생도들에게 알려진 게 없다나.

교단의 사제들이 아카데미로 오는 건 리케도 봤다고 한다.

'아이작이 먼저 일어나서 신호를 보낸 건가?'

리케도 그 이상의 관심은 없는지 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은 리케와 나는 침실이 아니라 거실 바닥에 앉았다.

"얼음 같은데 만져도 녹지는 않는 게 신기하지?"

내 다리사이에 앉은 리케는 손에 굴러다니며 한기를 뿜어내는 빙정을 신기한 듯 보다가 다시 내게 물었다.

"오빠··· 이거 진짜 내가 먹어도 괜찮아?"

"나랑 에클레어는 옛날에 먹어서 효과도 없어. 하나는 클로에한테 갈 거야."

"그건 나도 찬성인데··· 대단한 걸 받기만 하는 내 마음이 불편해."

찰랑이는 뒷머리를 내 가슴팍에 비비며 리케가 애교를 섞어 우는 소리를 내었다.

"또 그런 소리."

매번 영약을 섭취할 때는 '지금은··· 뻔뻔하게 받고 강해져서 보답할게!'라고 했다가.

막상 물건을 받고 이런 식으로 꺾이는 게 귀엽기만 하다.

옷 안에 손을 넣어 아랫배를 살살 만져주니 리케가 야릇한 비음을 흘린다.

"흐응··."

"다 마무리 지으면 해야 할 게 있잖아? 애초부터 받기만 하는 게 아니야. 사실 오늘 저녁이 너무 맛있어서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 말과 제스처에서 뜻을 이해한 리케는 키득키득 웃으며 등을 붙여 내게 편하게 기댔다.

"내 억지 때문에 에클레어 언니도 차례를 기다릴 텐데··· 뻔뻔해지려고 해도 오빠 앞에서는 잘 안되네··."

리케를 뒤에서 껴안아주며 진정이 되도록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조급해하지 마. 그냥 리케의 천성이 착해서 그래."

"나 착한 여자 아니야··."

"아니. 내가 볼 때는 맞아."

"흣··!"

손으로 말랑말랑한 귓불을 살살 만져주자 리케의 몸이 움찔거렸다.

"관계가 없는 타인에게 무심한 점은 결점이 아니야. 주위 사람에게만 신경을 쓰고 잘하기에도 손이 부족하고 벅찬 게 삶이고. 그걸 노력하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

빙정을 들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리케의 정수리에 턱을 올린 뒤.

그녀가 꿈꾸고 있는 미래를 연상시키는 말을 꺼냈다. 리케의 다짐과 굳건한 마음의 기둥이 되는 곳이니.

"매번 생각하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끝났을 때 내 인성이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게 두렵지만··· 리케와 에클레어는 분명 좋은 부모가 될 거야."

내 말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리케는 기대와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과한 욕심이지만··· 나는 내 어머니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내가 될 수 있을까··?"

리케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받지 못하게 된 애정과 상냥함을 자식에게 이어주고 싶어 한다.

나는 장담과 확신을 담아 리케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리케는 무조건 할 수 있어. 다 잘될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어조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는지 리케의 기분이 조금 들뜬 게 느껴진다.

"고마워··· 오빠는 대륙에서 최고로 멋지고 좋은 아버지가 될 거라 내가 확신해. 이미 그렇지만."

고개를 돌려 달아오른 눈동자로 나를 보는 리케에게 짧게 입을 맞춰 감사를 표했다.

"조금은 용기가 생겼어. 아직 아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화를 돌아보면 이미 임신을 하고 출산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서로 얼굴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흐우- 그럼 지금은 사랑하는 오빠와의 미래를 위해 뻔뻔하게 힘내볼까."

홍조를 보이며 배시시 미소를 지은 리케는 빙정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

빙정을 섭취하는 방식은 영약 중에서도 최고로 단순하다.

빙정만이 아니라 그냥 정(晶)의 영약은 연공법을 하든 안 하든 효과가 똑같은 게 특징.

가공할 필요가 없는 자연의 정순한 마나를 입으로 삼킨 뒤 신체에 흡수되는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빙정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오랜 시간을 품어온 냉기를 뿜어내며 마나를 풀어내는데.

거기에서 따라오는 추위가 혼자 버티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지독하다.

냉기를 걱정하여 온수를 받은 욕조에서 빙정을 섭취한다거나 그런 행위는 반대로 악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수라도 금세 빙정의 냉기에 잠식되어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냉수로 변할 것이다.

모닥불을 지펴도 서리에 나무가 축축해져 금방 꺼지게 될 정도에 옷을 두껍게 껴입으면 안쪽에 서리가 쌓이며 더 추워진다.

"안아줄게."

"흐흥~"

빙정을 섭취하기 전 리케와 나는 나신이 되어 서로의 살갗을 밀착했다.

"아암-"

빙정을 입에 넣은 직후 리케의 입에서는 호흡에 따라 뽀얀 냉기가 흘러나왔다.

따뜻한 실내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겨울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숨결.

리케의 살결에서 평소와 다른 서늘함이 느껴지며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을성과 별개로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

"후우우···흐우··."

몸에 퍼져가는 냉기에 덜덜 떨기 시작하는 리케를 품에 꽉 안았다.

"괜찮아. 괜찮으니 걱정 마."

빙정을 섭취할 때 나나 에클레어처럼 혼자 먹고 추위를 버티며 흡수가 끝나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지만.

일정이상의 냉기에도 체온을 문제없이 유지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다면 굳이 그런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살결을 맞대며 사람의 온기를 나눠주는 것만 해도 아주 큰 힘이 된다.

"흐으읏··!"

바닥에 얇은 서리가 생기고 집안이 빙정의 냉기에 잠식되어 공기 자체가 차가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체온을 나눠주며 리케가 진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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