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6 - 두 번째 유랑자 -2-
수도의 로프티 아카데미가 깔고 앉은 부지는 생도 전체 수를 포함하고 교직원과 계약직 등의 인원을 포함한다 해도 터무니없이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건물이 들어서있는 땅만이 아니라 뒤로 이어지는 숲과 야트막한 산도 아카데미 소유에 포함되어 수업에서 가끔 사용하는 훈련장이나 공터가 있는데.
옛날에는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체육관과 강당이 증설되면서 지금은 1년에 한 번 사용하면 많이 쓴 거라고 할 장소이다.
그렇기에 생도인 로버트와 아이작이 찾고자 나서면 잉여롭게 비어있는 한적한 공간은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생도들이 수업을 하는 지금 같은 시간은 공터만 가도 적막과 침묵이 감돈다.
"아직이야? 거의 다 된 거지?"
로버트는 자신의 식견으로는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한 상자를 들고 아이작의 뒤를 따라다녔다.
"로버트. 이건 그리 쉽게 되는 게 아니니··· 참을성을 길러봐."
아이작은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재료를 두거나 기하학적인 문양을 바닥에 그려나갔다.
문양을 그리고 이상한 액체를 부어서 지워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등 아이작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슥- 스슥-
평평하게 다져진 바닥에는 난잡한 마법진과 촉매가 되는 재료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갔다.
안전을 위해 혹시 모른다며 여러 가지 마법을 즉시 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아이작은 한 손으론 마법진을 그리고 남은 손의 손톱을 주기적으로 물어뜯으며 기대감을 지우지 못했다.
수업까지 던져두고 바쁘게 준비한 보람이 있었을까.
"흐으그극-!"
아이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뻐근해진 허리를 뒤로 넘기며 스트레칭을 몇 번 하더니 로버트가 들고 있는 상자에 있는 마지막 촉매를 꺼냈다.
"저기 엑스자로 표시해 둔 장소에서 스크롤을 발동시키고 바로 빠져나와. 알았지? 나오면서 절대 발로 진이나 촉매 건드리지 말고."
"알고 있다니까."
저벅- 저벅-
로버트는 조심조심 걸음을 밟아 표시가 있는 곳으로 향해 스크롤을 펼쳤다.
손에 들려있는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진의 크기는 초라하지만 복잡함으로 따지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은 비할게 아니었다.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찾은 서적을 토대로 전과 같은 마법진을 복구한 스크롤.
로버트는 자신의 마나에만 감응하는 마법진을 펴고 그대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
··
쯔저적-!
어디라고 지칭할 수도 없는 허공이 쩍 갈라지더니 저번과 같이 오묘한 색을 품은 덩어리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아이작은 놀라움에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며 그 광경을 재차 확인했지만 로버트는 다시 목격하는 현상에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었다.
떨어져 나온 조각을 조심스레 주운 아이작은 가방에 챙겨 온 첫 번째 차원의 파편과 이번 것을 번갈아 보고 마도구들을 꺼내 이상한 짓을 반복하더니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놀라워··! 미치도록 놀랍다고··! 로버트! 이 조각과 이 조각이 서로 다른 마나의 파장을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미친 마법사'라는 단어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된 아이작의 눈이 광기로 번쩍였다.
로버트는 허공에서 떨어져 나온 또 하나의 조각을 보며 기대감을 가득 안고 물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게 간략하게 좀 말해봐."
"첫 번째 가설은 공간마다 다른 고유한 파장이 있다는 것이지. 기숙사가 1의 파장이라면 공터는 2의 파장. 이해했나?"
"음·· 뭐."
"하지만 이건 필사해 온 서적에서 이미 틀린 가설이라 증명이 된 사실이지."
그럼 왜 언급한 건지 이해가 불가능한 로버트의 이마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리고 두 번째 가설로 서적에 실려있고 나도 생각했던 유력한 가설은··· 이 균열과 연결된 세상이 가진 고유의 파장이 있다는 가설. 이 가설이 확실하다고 확정이 되는 경우. 각 차원이 가진 고유의 파장을 알게 된다면···."
"···된다면?"
기대감을 숨기지 못한 로버트가 마른침을 넘기며 아이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는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를 입증하고 ··· ㅡ?"
로버트와 아이작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 허공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향했다.
불길하고 기분 나쁜 마나의 흐름.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균열에서 무언가 변화가 느껴졌다.
"로버트- 뒤로 빠져! 빨리!"
"뭐, 뭔데··?!"
상정했던 경우가 있던 아이작은 비교적 빨리 정신을 잡았지만. 로버트는 괴기스러운 존재감이 흘러나오는 것에 당혹감을 지우지 못했다.
"···."
로버트와 아이작의 속을 뒤흔드는 불길함이 요동치다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양이 한 마리도 지나가기 힘들법한 크기의 구멍은 액체를 흘리듯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앳된 남자 하나를 토해냈다.
*****
언젠가부터 이 세계에서 인권단체가 몸집을 점점 키우더니 이제는 정말 무시하기가 힘들어졌다.
그 계기는 유명 학자가 황금시간대 공영방송에 나와 증명한 연구 단 하나.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개화한 초능력이 인격을 폭력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물들일 수 있는 경우가 실제 연구로 증명되면서.
빌런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자의에 의한 범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견에 타당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직후에 기다렸다는 듯 매체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장악되고. 감옥에 있는 빌런들의 회고록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기이한 사회현상이 불어왔다.
그날 이후로 실로 악독한 빌런이라도 체포가 된 이후 사형이 집행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변해버린 사회와 현실을 알기에 히어로들은 갱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빌런은 애초에 체포가 아니라 제거를 먼저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실제로 과잉진압이라는 말이 나올만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헌신과 봉사로 동경의 대상이었던 히어로가 살인멸구라는 삭막한 수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 사회.
어떤 집단의 오랜 노력 끝에 빌런은 타고나기를 불행하고 불우한 인간이라는 사회 인식이 싹이 트기 시작했고.
대놓고 자극적인 사건이 대거로 일어나면서 흉악범죄라고 평가받는 선이 높아진 1월 1일.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이제 막 22살이 된 앳된 청년의 손에서 일어난 참극은 그날 인터넷 뉴스를 도배했다.
참극이라 해도 사건의 잔혹성 보다 청년의 외모가 이슈가 되었고 그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ㅡ갑자기 죽을 것같이 배가 고팠어요!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찢어지게 고파와서··· 죽기 싫어서 그냥 눈앞에 있는 걸 먹었을 뿐이에요!
앞을 보았더니 커다란 케이크와 햄버거가 보여 먹었을 뿐이라며 뉴스에 출연한 청년은 서러움을 토하며 엉엉 울었다.
당시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먹은 게 사람인지도 몰랐다고 하였으며 체포 당시에 저항도 하지 않았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청년의 앳되고 반반한 얼굴은 빌런이라고 낙인이 찍혔음에도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후천적으로 초능력을 개화하면서 뜬금없이 허기를 느끼게 되었는데. 그 배고픔이 정말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 눈앞에 보이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증언하였고.
본인의 눈에는 단순히 음식으로만 보였다며 정신적인 문제와 착란증상을 호소했다.
몇 명인지 모를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허겁지겁 먹다 그 자리에서 체포당한 범죄자.
1년간 치료소에서 지내라는 형을 선고받고 그것도 억울하다며 소리치며 재판장을 끌려 나왔고.
그 장면이 인터넷에 박제되면서 팬클럽과 인권단체에서 나온 인물들은 법원 앞에서 항의를 이어갔다.
내부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뒤를 돌아서 비릿하게 웃었다.
'병신들~'
실제 자의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억울했을지 모르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제 체포된 빌런들에게 동정심 유발을 노리는 방식은 당연한 일이니.
식인도 살인도 그냥 궁금해서 해봤을 뿐이다.
자신이 가지게 된 능력의 한계를 알고 싶어 지나가던 사람을 죽이다 보니 뜬금없이 사람의 맛을 알고 싶었기에 입에 넣어봤다.
"하아암-!"
구속복을 입고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입이 무의식 중에 하품을 뱉어냈다.
이제 궁금증도 해소했으니 치료소가 끝나서 사회에 나가면 뭘 또 해볼까 고민이 되는 나날이다.
'아직 10개월이나 남았나. 지겨워~ 지겨워~'
말하는 본인도 어이가 없는 헛소리만 좀 지껄이면 특정단체에서 유리한 병명을 진단 해주는 정신과 의사를 붙여주고.
여러 매체들이 알아서 범죄자를 불쌍한 인간으로 포장을 해준다. 특히 잘생기거나 이쁘면 효과가 훨씬 좋다.
"으으음··."
미래를 위해 지루함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하는 시간. 최고의 놀이는 눈을 감고 망상을 즐기다가 잠을 자는 것이 되었다.
오늘도 잠이 들락 말락 하는 몽롱함에 취해 꿈나라에 떨어지려는 그 순간.
쩌저적-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눈이 뜨였다.
독방에 박혀있는 자신에게 뜬금없이 나타난 허공의 균열.
"뭐, 뭐야!"
쿠당탕-!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감각에 그는 몸을 뒤로 던져 등을 독방의 벽에 붙였다.
"···?"
한참을 지나도 다른 이변은 없다는 걸 알아차린 그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연합에 공간이동을 하는 능력자가 있다 하지 않았나?'
빌런 연합에서 눈에 든 범죄자를 스카우트할 때 공간이동이 가능한 능력자를 보낸다는 도시전설. 그게 실제 이야기라는 걸 알 놈들은 안다.
이제야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연합에서 직접 찾아왔구나.
감형을 위한 연기와 노력들?
실질적으로 세상을 주무르고 있는 연합이 자신을 찾아온 이상 억울하고 나약한 연기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찌이익-
몸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던 구속복을 간단하게 찢고 일어난 남성은 거침없이 그 균열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