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9 - 검으로 말해요. -2-
"당장 검을 뽑아라. 그리고 교관에게 휘둘러 봐라."
시잉-
로만의 말에 클로에는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듯 반사적으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흣!"
투박한 롱소드의 검집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한 발을 앞으로 뻗어 바닥을 부술 듯이 밟으며 동시에 찌른다.
피잉!
발구르기와 찌르기를 한 호흡에 담는다.
정석적인 검법으로 사거리를 한 순간에 늘려 거침없이 상대의 안면을 노렸지만.
상대방의 날렵함에 롱소드의 끝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당연하게 예상한 결과이기에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는 자다가 일어나서도 휘두를 만큼 몸에 기억시켜 온 검법을 따라 검을 휘두른다.
째앵-! 쨍!
"큭! 흐읍··."
중간중간 로만이 손목에 스냅을 줘 짧은 박자로 툭툭 던져주는 공격만으로 검을 잡고 있는 클로에의 손바닥을 당장에 찢을 기세로 아린 통증을 준다.
로만이 수업에서 던져주는 공격은 클로에가 제대로 집중을 해야 아슬아슬하게 막을 수 있는 파괴력과 속도를 담고 있다.
반대로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부터는 방어조차 허용되지 않기에 전력질주를 하는 것과 같이 심력과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는다.
····
주고받는 공방이 대략 3분. 짧다면 짧고 전심전력을 다하기에는 무척이나 긴 시간.
로만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클로에의 잿빛 앞머리는 땀으로 푹 젖고 공격을 버티느라 악력이 바닥난 손은 덜덜 떨려왔다.
"후욱-! 후우···!"
클로에의 입이 물기가 없는 단내 나는 숨을 뱉어냈다.
지쳤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지만 도저히 호흡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좋아. 일단 여기까지."
팍!
로만이 롱소드를 바닥에 박아 넣자 공방이 급작스럽게 멈추었다.
하늘로 향한 폼멜을 손가락으로 톡톡 때리다 로만이 클로에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도는 마나를 가시화하여 오러를 사용하게 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
혹시나 자세를 풀고 방심하면 공격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방어적인 자세를 유지한 채.
클로에는 로만의 질문이 품은 뜻을 재차 생각해 봤지만 문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교관은 말이다. 오러는 단순히 마나라는 불가사의한 에너지의 뼈대를 이해해 가는 과정- 이라는 설명은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한다."
"교, 교관님. 죄송하지만··· 후우-!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의 이해가 잘···."
흐트러진 호흡을 뱉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클로에의 말에 턱을 긁던 로만은 아예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갔다.
"마나는 우리와 같이 무구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오러도 되면서 마법사들에게는 불길이 되기도··· 하나의 돌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교관의 말이 맞나?"
"네에·· 맞습니다··."
당연한 말에 클로에는 이제야 긍정적인 대답을 냈다.
"마나를 최대로 축약하여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의지를 발현하는 에너지다. 그럼 오러를 사용하게 된 자는 오러를 사용하기 전에 비해 마나의 이해와 핵심에 한발 가까워졌으니 품고 있는 의지를 발현하는 힘이 더 강해지는 건 당연한 순리다. 여기까지도 이해가 되었나?"
차근차근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설명에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ㅡ
저택에 야밤이 드리운 그날- 클로에가 서재에서 느낀 익숙한 마나의 움직임이 둘을 감싸고 적막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로만이 바로 전보다는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클로에에게 말했다.
"클로에. 검에서만큼은 에클레어의 그림자를 버려라."
"···!"
"전부터 묘한 낌새가 있긴 했지만 내가 알아차리는 게 늦었어. 오러를 다루게 되면서 발달한 감각과 마나의 응용력을 에클레어를 따라 하고자 사용하고 있으니··· 기량이 올라가 흉내를 전보다 잘 내고는 있지만 그래서 어울리지 않고 어색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꼴. 하지만 그 행위가 장시간에 걸쳐 전신에 어느 정도 숙련되고 익음으로 타인에게 위화감을 거의 주지 않고 있었다.
마나를 가시화시키는 오러를 발현한다는 건 마나를 사용한 의지의 발현이 크게 진보한다는 것.
누군가를 따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진심으로 간직하고 있다면 이 또한 오러를 사용하기 전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로만이 림노에서 에클레어의 검에 대해 견문할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 클로에의 문제점을 느끼기는 하면서도 정확하게 집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곡을 찔린 클로에는 어버버 입술을 떨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저, 저는···."
*****
"저, 저는···."
내가 언니에게 닮고 싶은 건 검법인가? 아니. 검만이 아니라 모든 것.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전선에 뛰어들어 무훈을 세우는 강인한 무력과 가문의 기대와 무게를 짊어지고 버티는 강철과 같은 의지와 정신력.
능력과 재능이 중요한 귀족 사회에서 혼사를 거부하고 기사를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한없이 못난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자애로운 마음.
클로에 자신에게는 언니와 같은 무력이 있다 해도 험악하고 드센 사람들이 붐비고 핏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전선에 향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재능이 남다르다 평가받는 혈육에게 질투 한점 느끼지 않았다.
언니에 대한 순수한 존경과 동경만이 가슴에 들어찼기에··· 자신이 결코 언니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에클레어 드리트나의 동생이라는 이름에 부끄럼이 없기 위해 저 멀리에 점처럼 작게 보이는 언니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역시··· 나 같은 건··.'
그렇기에 언니를 흉내 내지 말라는 오라버니의 말은 청천벽력.
어설프게 따라 하다 들켰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말문이 막히고 다시 한번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은 아무리 흉내를 내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죄, 죄송합니다··."
목소리는 물기가 촉촉하니 당장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오라버니는 되려 이해를 못 하겠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사과를 하지? 나는 에클레어의 뒤를 따르는 게 잘못되었다고 혼을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조절이 불가능한 눈물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말에 고개를 들자 오라버니는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턱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단어 선택이 극단적이라 클로에가 오해를 하게 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뇨 그런···."
교관의 느낌을 벗어던진 오라버니는 자신을 생도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며 언니를 닮은 미소로 웃으며 물었다.
"클로에. 에클레어가 그렇게 좋으냐?"
"··네에··."
언니가 좋냐는 당연한 말에 긍정하는 게 철없다고 느껴져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본받는 건 좋지만 모든 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어."
"···."
"특히나 무구를 다루는 방향은 그렇지. 야외 수업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검으로 말한다.'라는 문장을 언급했던 걸 기억할까?"
"기억하고 있어요··."
오러를 개화하고 언니와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을 잊을 리가. 당장 특별한 일이 없는 며칠 전보다 선명한 것이 그날이었다.
"지금 클로에의 검이 상대에게 주는 감정과 느낌은··· 상대를 향해 에클레어의 성대모사를 하는 것과 같지. 실력도 썩 나쁘지 않지만 이 이상의 벽을 넘는 건 힘들 거다. 신체능력이나 마나가 늘어나면 그 차이는 있겠지만."
"···저, 저의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클로에의 마음 저 깊이 깔려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목을 타고 울컥 올라왔다.
애꿎은 오라버니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득 담은 말을 뱉어내고 아차 싶어 사과를 하려 다시 고개를 들자 오라버니는 커다란 손바닥을 보이며 자신의 말을 막았다.
"분명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을 힘으로 삼는 자도 있어. 하지만 그런 자들의 성정은 대체적으로··· 모난 것을 넘어 아집이 강하고 뻔뻔하지. 이건 검에 대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서 타고난 본성이 필요해."
오라버니는 최대한 자신이 상처받지 않게 장황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럼에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흉내를 내왔던 이유에 대한 구차한 변명만이 줄을 이을 뿐.
"저는 언니에 비해 모든 게 부족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클로에."
"네에··?"
"애초에 타인이 되고 못되고 하는 걸 떠나서 될 필요가 없다."
"클로에가 생각하는 나은 사람의 기준은 뭐지?"
"그건···."
막상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답을 내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오라버니가 재차 물어왔다.
"무력의 고강함만이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나? 마나가 농후하고 일격에 바위를 갈라낼 수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빵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힘없는 소녀보다 무조건 가치가 있고 나은 사람일까?"
"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클로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부정했고 오라버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음! 지금 같은 시대에 망설임 없이 그걸 대답할 수 있다는 건 진짜 대단한 거야."
"···."
이게 어디가 칭찬받을 만큼 대단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클로에가 감사도 표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로만이 피식 웃으며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해 조급한 마음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에클레어에게 진정 본받을만한 건 검만이 아니지? 오히려 검은 부수적이라 할 만큼 훌륭한 점이 잔뜩 있잖아."
클로에는 마지막 말에 격한 동의를 하며 고개가 부서져라 끄덕였다.
언니의 무력과 외모만이 아닌 진짜 장점을 알아주는 오라버니가 고맙기도 하고 동지가 생긴 기분이라 반갑기도 했다.
"좋아. 그걸 알고 있고 이해했다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
"네에··?"
"이때까지 배워온 검법의 기본기는 건축물로 따지자면 기둥이자 바닥.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 건물의 개성을 제일 강하게 표현하는 건 입장하기 전에 보이는 외관과 들어와서 보이는 내부겠지."
가문의 수많은 기사들에게 배우면서도 들어본 적 없는 자유롭고 독특한 비유에 클로에는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생각을 담아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본인의 특색을 곁들인 벽돌을 하나 쌓는다고 생각하자. 그건 네모난 모양일지도 삼각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군가를 흉내 내고자 하면 그 벽돌의 모양은 가지각색. 운이 좋거나 본인의 천성이 그런 것을 무시할 만큼 뻔뻔하다면 어떻게든 모양을 이루며 쌓일지도 모르지만 ㅡ."
네모난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 중간중간에 별모양이나 둥근 벽돌을 넣으면 당연하게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쌓아왔던 구간으로 돌아갈 뿐. 결국 정석적인 방법으로 본인의 개성을 성실히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 드리트나의 기본적인 검법을 계속해서 휘두르면 방어적인 성격을 떠나 자신만의 검이 보일 거다.
오라버니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언니가 해줬던 조언이 동시에 겹쳐서 들렸다.
그리고 머리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줄을 이어 시원하게 지나갔다.
배워왔던 것을 재차 정립하자 지나가기에는 좁지만 분명한 길이 보인다.
"클로에. 멋진 표정이 되었구나."
상념이 끝남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오고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는 실감이 났다.
"···오라버니. 한 번만 더 검을 휘둘러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동시에 지금껏 주위를 감싸고 있던 마나가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익숙함을 타고 머리에 떠오른 사건 하나에 클로에의 입이 급하게 열렸다.
"아··! 그, 그리고···!"
"음?"
"다음에 제, 제가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오라버니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바닥에 박혀 있는 롱소르를 뽑아 든 오라버니는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언제든지."
····
한번 더 이어진 대련에서 전신의 기력과 체력을 방전한 클로에는 실전 수업이 끝나고 세리아와 리케에게 부축을 받아 겨우 강의실을 이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