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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28화 (128/250)

Chapter 128 - 검으로 말해요. -1-

어지간해서 자존심을 꺾지 않는 명문가 자제들이 로만의 명에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시간을 들여 각인된 공포감 하나만이 아니었다.

검술 학부와 달리 기사만을 목표로 하는 기사 학부의 생도들도 대척점에 서있는 모험가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자존심을 꺾을 만큼.

주에 한번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인정하기 싫어도 한 학기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통해 체감이 된 것이다.

금일 실전 수업의 내용은 무기의 종류부터 스타일까지 모든 것을 가리지 않았다.

로만과 아카데미의 생도 사이에는 그들이 까다로워하는 형태가 무엇이라 해도 맨손 혹은 썩은 나뭇가지를 들고도 그것의 특성을 구현할 만큼의 실력차이가 존재하기에.

세리아는 회피를 하기보다 방패를 들고 막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자신의 문제점을 항상 지적받고 개선이 절실했기에 이번 수업에 유독 눈을 빛냈다.

방패 하나로 막기 힘든 속도의 공격도 당연하지만.

자신의 가벼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버리는 무게감과 근력을 가진 상대를 특히나 힘들어했다.

"세리아 엘렉트라 생도."

"예!"

앞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군기가 바짝 잡힌 세리아가 덩치와 다른 우렁찬 대답을 내자 로만이 세리아와 같은 보급형 방패를 들어 올렸다.

"방패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 인간을 상대하는 것과 몬스터를 상대하는 기술에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나?"

"인지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든 방패나 던전이나 몬스터를 통해 얻은 이질적인 힘을 가진 방어구가 있다면 일정 수준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것도 일정 수준까지."

"···."

장난감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고 해야 할지··· 부동의 자세로 뒷말을 기다리는 세리아의 모습은 벌써 참기가 힘들어 보인다.

"오러를 사용하는 적이나, 사람 정도는 가볍게 짓이기는 몬스터를 만나면 일반적인 방패의 활용으로는 한계를 봉착하게 되지. 그때는 방패를 다루는 센스에 마나의 활용만 적절하게 한다면 이런 단순한 보급형 방패로도 오러가 담긴 무기를 막아내고 틈을 노릴 수 있다."

마나라는 유별난 에너지와 순수한 근력만으로 폭탄과 견줄만한 힘을 내는 몬스터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전생과 방패를 다루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방안은 뼈를 깎는 연습량을 필요로 하기에 금일 수업에는 도달하기 힘든 방법이지만··· 미래에 이 방법을 두고 고심하면 도움이 될 거다. 예시로 한번 보여주마."

"감사합니다!"

"교관에게 검을 휘둘러봐라."

스릉-!

'왜?'냐고 묻는 의구심은 없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리아는 허리에 걸린 숏소드를 거침없이 뽑아 최대한 빠르게 로만에게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방패로 막는 로만의 거구가 세리아의 녹안에 담겼다.

티잉!

날붙이로 허공에 묶인 작대기를 잘라내지 못하고 저 멀리 날려버린 듯한 어긋난 타격음.

로만의 거구가 세리아가 검을 휘두른 방향을 따라 부드럽게 한 바퀴를 돌아 안착한다.

"어음··?!"

늘 때려오던 감각과 다른 손맛에 세리아의 얼굴이 차오르는 의문으로 일그러졌다.

"축약해서 설명하자면 생도의 힘을 받아들이고 그 힘을 회전으로 풀어낸 거다. 하지만 매 순간 몸을 회전시키는 건 손이 빠른 상대를 만나면 급소를 노출시키기 쉽고 체력 소모도 보통이 아니지. 다시 검을 휘둘러봐라."

"알겠습니다!"

세리아가 정신을 잡고 검을 파지 하여 휘두르자 이번에는 자리에 서서 방패로 막아냈음에도 아까와 같은 실없는 손맛이 느껴졌다.

터엉-!

분명 자신과 같은 보급형 방패인데 타격을 하는 순간에 미끌거린다 해야 할지, 자신의 검이 유효한 타격을 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했다.

"처음에 몸을 크게 움직여 회전한 건 생도가 이해하기 쉽도록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대형 몬스터를 마주하면 그것도 유용하게 사용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방패로 단순하게 막는 게 아니라 흘려낸다.

굳이 방패가 아니어도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이나 창으로 행해도 좋으나 막아내는 면적이나 모양을 생각하면 방패를 활용하는 게 난이도가 확실하게 낮고 효율적이다.

흘리기를 익히고 실전에서 자유롭게 사용하기까지 정말 엄청난 훈련량을 필요로 하지만 연습을 계속하면 언젠가 되기는 된다.

"생도는 모험가가 꿈이라 했지?"

"···그렇습니다!"

"모험가가 되어 살아남고 싶다면 지금부터 공격보다 방어에 준비를 철저히 해라. 인간의 몸뚱이를 종잇장보다 쉽게 찢어버리는 완력을 가진 몬스터를 만나 방패를 단순하게 사용하면 오래 살아남지 못해."

로만은 자신의 손에 들린 방패를 주먹으로 퉁퉁 때리며 눈높이 설명을 이어갔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지능을 가졌다 하는 트롤이나 오우거를 만나 공격을 받았을 때. 생도가 그것들의 공격을 눈으로 포착하고 방패로 무작정 막으면 팔이 그대로 으스러질 거다."

"이해했습니다!"

한참이나 눈높이가 낮은 세리아가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로만은 세리아의 언니인 릴리네가 생각나 피식 올라오는 웃음을 참으며 조언을 이어갔다.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음에도 죽지 않고 밥값을 하고 있는 모험가나 기사들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을 하고 익혔든 마나를 활용한 흘려내기 정도는 모두 할 줄 안다는 거다. 숙련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혼자 있을 때 훈련을 하는 방법과 도와주는 파트너가 있을 때 흘려내기를 연습하는 법을 간략하게 전수한 로만은 당장에 사용할 차선책도 내주었다.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일단은 주위 환경을 확인하는 게 먼저다. 날아가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없다면 잘 날아가서 다치지 않아야겠지?"

"맞습니다!"

재능이 출중하지 않아도 배우려고 하는 의욕이 있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내어주고 싶은 법.

세리아는 흡수가 빠르다거나 리케와 같이 일취월장하는 미친 성장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죽어라 하는 태도 하나만으로 특히나 가르칠 맛이 나는 생도였다.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없는 힘을 흘려내는 손기술에 마나를 활용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생도가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을 마주했을 때는 타이밍에 맞춰 방어함과 동시에 뒤로 뛰는 것도 방법이다. 낙법과 부드러운 착지의 완성도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강한 힘에 날아갔을 때를 상정하여 세리아를 한 손으로 들어 몇 번 집어던지고 방패를 손바닥으로 가격해 날려 보냈다.

세리아의 작은 신체가 바닥을 계속해서 나뒹굴었지만 그녀는 오뚝이처럼 지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쿠당탕-!

"날아가는 거리나 환경이 동체시력으로 가늠이 되지 않는다면 목을 들어서 머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방패를 든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도록."

뒤로 넘어질 때 배꼽에 시선을 향하며 뒤통수를 보호하는 낙법의 기본 중 기본은 익히고 있지만 마나의 어설픈 활용과 착지하는 자세에서 아쉬운 부분을 간단하게 짚어주었다.

"모험가는 행색이 추해도 살아남는 게 먼저다. 공중에서 주위를 볼 정신이 없으면 머리를 먼저 감싸라."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펄떡이는 생선처럼 일어나 다시 해보겠다는 세리아를 보고 로만은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살짝 웃어버렸다.

'역시 릴리네랑은 완전 딴판인데··· 어딘가 닮았단 말이지.'

세리아와 릴리네. 엘렉트라 자매도 어떤 면으로는 드리트나 자매를 생각나게 하는 느낌이 있다.

*****

클로에는 자신의 순번이 온 것을 확인하고 휘둘러보고 있던 롱소드를 검집에 넣고 로만이 있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석에서 보여주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다른 생도와 차별이 느껴지지 않는 진중한 분위기였다.

"클로에 드리트나 생도."

"네, 네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나 무기가 있나? 아니면 훈련 중 막히고 있는 부분이라도 좋다."

오히려 그렇기에 야밤에 엿보았던 뜨거운 정사를 연상하기 힘들 정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던 예상과 달리 오라버니의 엄중하고 진지한 목소리에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잡혔다.

'내 약점이나 막히는 부분···.'

막상 생각하면 자신에게 문제점이 너무 많지만 현재 막히는 부분이라 언급하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드리트나에 전수되는 검법은 공격적이라기보다 방어적.

언니는 계속해서 휘두르면 방어적이라는 특징을 떠나 자신만의 검이 보일 것이라 했지만 자신은 드리트나 검법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특히 오러를 각성하고 급격한 상승선을 그릴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한 자리에 계속해서 체류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최근··· 야외 수업에서 '그것'을 사용하게 되면서 오히려 정석적인 검법에서 머, 멀어져 검을 다루는 기술이 제자리를 걷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오러를 말한다는 건 오라버니도 쉬이 눈치를 챘을 것이다.

자신만의 훈련에 빠져 주위에 이곳을 주의 깊게 보는 생도들은 없어 보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경지를 함부로 알리지 말라는 오라버니의 충고도 있었고.

"흐음- 훌륭한 도구를 얻었기에 거기에 의지하게 돼서 검법이 진전을 하지 못하는 감각이라는 말이지?"

"마, 맞습니다··!"

시잉-!

오라버니의 손에 들린 롱소드가 시원한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자신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음에도 위압감에 마른침이 넘어가고 숨이 멈췄다.

"당장 검을 뽑아라. 그리고 교관에게 휘둘러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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