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5 - 혼자만 힘든 아침
클로에의 개인 공간인 방문을 넘어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대화를 하는 소리, 정리와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들.
사용인들이 출근을 해서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걸 일개 아카데미 생도인 본인도 알 수 있는데 예민한 감각을 가진 언니는 오죽할까.
전신 거울 앞에 놓인 브로치를 착용한 뒤 매무새를 재차 확인하고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평소처럼 잠이 덜 깬 졸린 눈에 흐트러진 잠옷을 입은 채 방문을 나서지 않고.
아카데미 정복을 입고 방에서 나온 자신을 마주한 사용인들은 표정을 어떻게든 무표정하게 지켰지만.
놀란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고 목소리에 은근하게 담고 인사를 했다.
"클로에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이때까지 자신이 그 정도로 풀어져있나 싶어 뻘쭘한 기분에 어색하게 웃으며 클로에는 제일 중요한 언니의 행방을 물었다.
"아하하··· 언니는요?"
"저희가 출근했을 때 이미 주방에 계셨습니다."
이미 언니는 평소처럼 자신과 먹을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자신이 온 것을 알고 언니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봤다.
"드문 일이구나. 클로에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준비까지 끝내고?"
자신을 보며 웃는 언니의 따뜻함에 어쩐지 가슴이 콕콕 찔리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 네에··응··."
대답을 하면서도 느껴지는··· 생선의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마음의 불편함.
야밤에 밀회를 엿보고 호기심을 충족한 죄책감이겠지? 어쩐지 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고개가 절로 땅으로 내려갔다.
식사 준비가 곧 끝나니 기다려 달라는 말에 테이블로 쪼르르 이동해 앉은 클로에는 평소와 다르게 혼자서만 느끼고 있는 불편함에 테이블 밑으로 손을 모아 애꿎은 정복 하의를 만지작거렸다.
"흐우우··."
절로 나오는 한숨.
어제 서재로 향한 것은 단순히 타이밍이 안 좋았다거나 불가항력이라 해도 오라버니 특유의 마나조작을 느끼고도 돌아가지 않고 시선을 들이밀어 그 장면을 지켜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잘못이었다.
정사를 목격하고 돌아온 야밤.
침대에 누워 몸의 열기와 정신적인 흥분이 완전히 증발했을 때 클로에는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
아침을 들고 오는 언니의 발걸음은 살짝 들떠 있는 게 느껴졌고.
자신에게 다가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놓고 맞은편으로 돌아가는 언니의 얼굴. 거기에 서려있는 옅은 미소와 행복감을 사용인들은 모르겠지만 클로에는 알 수 있다.
"자, 잘 먹겠습니다."
"오늘은 로만의 수업이 있는 날이지?"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꺼내는 동시에 긍정적인 색으로 짙어지는 언니의 감정.
"응·· 맞아."
생각이 필요 없는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내고 언니가 오라버니를 생각하며 웃는 모습을 자신의 벽안에 똑똑히 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와 동시에 클로에는 생각하고 - 한 가지 사실을 통찰하며 깨달았다.
이건 푸른색 오러를 처음 사용하게 되면서 배워왔던 여러 가지가 한순간에 맞물리며 돌아가는 감각과 비슷했다.
'이쁘다···.'
클로에가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담아낸 에클레어의 모습은 복장도 화려하지 않고 귀족가에 유행하는 값비싼 보석으로 도배된 장신구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미술을 아예 모르는 문외한의 시선마저 사로잡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클로에의 애독 장르인 로맨스 소설에 빠지지 않고 밥 먹듯이 나오지만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묘사가 있었다.
-사랑을 하고 있는 여성은 누구보다 아름답다.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형상은 없지만 신분과 시대를 떠나 소녀라는 무리에게 인기몰이를 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신이 읽어 나가는 로맨스 소설들도 그 두 글자가 중점이 되는 이야기이기에 사랑을 한다고 미모에 변화가 생긴다는 건 상상력을 자극하고 망상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라 생각해 왔다.
어쩌면 사모하는 상대의 앞에서 애교스럽거나 조신하게 변하는 행동거지를 추상적으로 포장하여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클로에는 이제야 그 문장이 뜻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제국의 여기사 중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언니지만 특히 오늘은 동성인 혈육의 시선마저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오라버니가 야밤에 다녀간 다음 날에 느껴지는 찬란하게 빛을 내는 생명력.
업무로 바쁘던 며칠간 목소리에 미미하게 깔려있던 피로함과 스트레스의 잔재들을 모두 털어낸 언니의 모습은 제국에 있는 누구보다 빛이 나고 아름다웠다.
'그게 이 뜻이구나.'
로맨스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을 하고- 함으로써 여성이 아름답게 변하게 된다는 건.
치장이나 화장 같이 외형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라기보다 외형에서도 느껴질 만큼 감정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연쇄 작용이 아닐까.
"클로에."
"으, 응?"
깨달음으로 멍하니 잠겨있던 정신을 언니의 목소리로 겨우 깨웠다.
"어딘가 안색이 좋지 않구나."
미소를 지우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는 시선에 클로에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떻게든 티를 내고 싶지 않은데 클로에 본인의 성향상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불가능에 가까웠고.
언니와 오라버니에게 선물 받은 브로치를 사용해 갑옷 뒤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걱정이나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하거라."
클로에는 자신의 잘못을 둘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감정이 가라앉은 새벽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속죄에 대한 갈망의 시작점은 그저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이기적인 악역과 같은 마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혈육인 언니의 성정은 소설에 나오는 천상기사와 같다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밀회를 훔쳐봤다고 털어놓아도 자신을 탓하지 않겠지.
되려 본인의 부주의 함을 탓하며 자신에게 미안해할 언니의 성격을 알고 있으면서 단순히 털어놓는 건 역시 아니었다.
'오라버니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고···.'
이 상황에 거짓말이 아닌 돌파구가 떠오른 클로에는 저조한 몸상태와 정신상태에 보탬을 하고 있는 여성만의 생리현상을 언급했다.
"그, 그날이라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언니는 납득하면서도 걱정을 지우지 않았다.
"몸 상태가 그렇다면 하루정도 아카데미를 쉬는 게 좋지 않겠느냐?"
걱정이 깃든 상냥한 목소리에 클로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지만 정신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클로에는 아침이 담긴 접시에 시선을 박아 넣고 주절주절 변명의 말을 뱉었다.
"일어나서 야, 약을 먹었으니 아픈 건 없어. 몸은 좀 무겁지만 수업은 놓치면 힘들어지고··· 친구들도 보고 싶으니 괜찮아··."
식사를 끝내기 전까지 어지간하면 자리를 뜨지 않는 언니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의자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하더니 금세 손에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내려왔다.
"혹시 모르니 여분 약을 챙겨가고 포션도 하나ㅡ··"
··
··
"다녀오겠습니다아··."
저택을 나서며 클로에는 팔짱을 끼고 작게 손을 흔들어주는 언니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발을 움직였다.
언니의 시선을 벗어나는 건물의 모서리를 돌아서 속에 있던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히우우ㅡ"
언니와의 아침이 이렇게 힘든 건 정말 오랜만이다.
서로의 속사정을 모르고 어색하던 시기를 상기하게 할 만큼 오늘 식사자리는 심력소모가 대단했다.
'앞으로 어쩌지 진짜··.'
또각- 또각-
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무거운 정신을 깨우고 재차 생각해 봐도 당장에 말하지 않은 건 옳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저택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아카데미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두 번째 고난을 생각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오라버니와의 수업이 하필이면 오늘!
개인적인 지도가 많은 실전 수업에서 오라버니를 어떤 얼굴로 대면해야 할지 벌써부터 눈앞이 막막해진다.
아카데미에 도착해 기사 학부 강의실에 도달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둔한 머리로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고.
자신과는 시야의 넓이와 머리회전 자체가 다른 리케와 세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내줄 것 같은 리케와 예상을 벗어나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할 것 같은 세리아.
집단지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친구들에게 언니와 오라버니의 관계를 아직은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우를 예시로 들면 깊이 파고들지 않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내주지 않을까.
그것도 클로에 본인에게 편의주의적인 가정이지만, 지금은 정말로 어둠이 내려앉은 숲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상담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고.
'실전 수업 전에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원래는 몸을 풀고 잡담을 하며 그 한 시간을 보냈지만 오늘만은 친구들에게 상담을 위한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다.
지금부터는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예시를 들것인지 대본을 간단히 짜는 게 자신이 할 일.
실수해서 교제하고 있는 관계를 노출시켜서는 안 되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