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3 -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합니다.
클로에가 서재에서 벗어나고 체감상 대략 10분에서 20분?
에클레어는 리케처럼 실신을 하는 게 아니라 연이은 절정에 체력이 떨어지니 술기운과 함께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인벤토리에서 침낭을 꺼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든 에클레어를 바닥에 눕혀두고 이제 정리를 할 차례.
"후우-"
요리도 먹고 나서 설거지가 메인인 것처럼 잠자리의 마지막이 필로토크가 아니게 된 지금 상황에서는 뒤처리를 해야 하는 이제부터가 진짜 내 몫이다.
퐁-!
수건에 성수를 적셔 서로의 몸에서 나온 액체로 엉망이 된 부위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회복 포션을 꺼내 붉게 달아오른 에클레어의 엉덩이에 치덕치덕 바른다.
"으으응···."
진정이 되는 시원한 감각이 나쁘지는 않은지 졸면서도 콧소리를 내는 게 귀엽다.
빠르게 돌아오는 뽀얀 피부를 보며 다시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고 남아도는 여분의 옷을 꺼내 입힌다.
잠투정을 하는 에클레어에게 여러 가지 액체로 범벅이 된 파자마를 다시 입힐 수는 없으니··.
리케와 신장 차이가 얼마 안나는 에클레어이기에 역시나 내 옷은 사이즈가 워낙에 커 몸부림을 쳐도 어떻게든 입혀진다.
잠을 깨지도 못할 만큼 피곤한 건지 손을 뻗는 게 나라는 인식이 있어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모르지만.
숙면을 취하는 에클레어에게 기본적인 처치를 끝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목을 빙글 돌려주며 정신을 잡는다.
'해볼까!'
지금 시간이라면 자고 있겠지만 혹여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리케가 생각나도 엉망이 된 서재의 정리는 하고 가야지.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탈취제와 청소용 슬라임이 담긴 병을 꺼내 바닥을 기어 다니며 놓치는 곳이 없도록 정성을 들여 청소를 실시.
청소용으로 개조된 슬라임 특유의 접착성을 앞세워 야구공만 한 녀석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며 먼지를 닦아낸다.
촤악-! 쯔악-!
커다란 덩치와 달리 내 기민한 움직임은 보통 청소를 담당하는 일반 사용인과는 비교가 불가능. 후각과 같은 감각까지 예민하니 청소 또한 일사천리다.
그 까다롭다는 카펫의 청소를 끝내 장렬하게 변색된 청소용 슬라임을 빈병에 모두 쑤셔 넣고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재차 확인한다.
"오케이-!"
정사 전 보다 더 깔끔해진 느낌이 드는 서재를 본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낭에서 꿀잠을 자고 있는 에클레어의 탱탱한 볼을 살살 만져 사심을 충족하고.
혹여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입에서 입으로 포션도 조금 흘려 넣어 취기로 흐트러진 감각도 천천히 살려낸다.
마지막으로 에클레어가 사용하는 서재의 책상에 앉아.
스가각- 사각-
잉크병에 담긴 깃펜을 사용해 내 시그니처인 악필을 휘갈겨 애정을 담아낸 메모 한 장을 남긴 뒤 그걸 날아가지 않게 지탱할 포션 한 병도 놓는다.
이렇게 말하니 무척 쓰레기 같지만··· 또 한 명의 여자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는 끝났으니 에클레어의 저택에서 물러나야 할 시간이다.
정사 후에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지만 지금의 아쉬움과 미안함은 함께 생활하고 지내게 될 미래에 어떻게든 보충하고 채워 넣으리.
"사랑해."
꿈나라에 빠져있는 그녀가 잠결에 들어도 좋고 안 들어도 좋다.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감정을 귓가에 속삭여 표현해 준 뒤 들어왔던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확실하게 닫히는 걸 확인한 뒤 저택에서 몸을 떨어뜨려 거리를 둔다.
내 여자의 안전은 언제나 중요하기에 주위에 혹시 못돼 먹은 불한당이 없나 밤바람을 맞으며 경계를 잠시 서다가 수도의 외곽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
타닥!
다른 건물의 지붕에서 뛰어 마당에 뚝 떨어져 집의 문을 열었더니 불이 꺼진 침실에서 수마가 가득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아아~"
매혹적인 목소리에 홀린 나는 침실로 발걸음을 움직였고.
끼이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촛불정도로 작게 켜져 있는 취침등이 시야를 편하게 잡아준다.
침대에서 내 베개를 껴안은 상태로 졸린 눈을 떠 나를 확인하려는 리케가 보인다.
옆자리에 살며시 누우니 내 품에 파고드는 리케를 쓰다듬으며 목소리의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등을 일정한 박자로 토닥여준다.
"자고 있었어?"
"응···."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끝낸 뒤 나를 껴안고 다시 잠에 들어버렸지만 해가 뜨면 빵집에 가기 위해 자연스레 일어날 것이다.
나는 잠이 온다면 잠시 눈을 붙이고 생각할 게 있다면 생각이나 하자는 일념으로 눈을 감았다.
'클로에가 문제네.'
당장 오늘.
아카데미에 출근하면 실전 수업에서 클로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이 들지만 클로에가 나를 보는 시선이나 태도가 극도로 이상하다면?
그걸 괜찮냐고 묻는 것도 고민하게 된다. 대놓고 티가 나는데 묻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는 느낌 같아지고.
당장 설정으로 알고 있는 클로에의 성격을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했다가 빗나가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사람의 급소나 몬스터의 명줄을 끊어 낼 기회를 보는 날카로운 센스가 아니라, 변칙의 대명사라 불리는 소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통찰력과 시야가 필요했다.
'리케가 일어나면 상담해야겠네.'
··
··
"흐므··으으음-!!"
해가 떠올라도 아카데미에 가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
리케는 이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눈을 떠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침대를 기며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몸을 쭉쭉 늘리며 스트레칭을 한다.
톡- 톡-
엉덩이를 토닥여주는 익숙한 손길에 리케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잘 잤어?"
"오빠아··좋은 아침··."
쪽.
로만의 몸을 등산하듯 꾸물꾸물 기어올라가 인사를 겸한 짧은 입맞춤을 한 뒤 세면을 끝내고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며 나갈 준비를 한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생겼던 식욕부진을 어느 정도는 극복한 상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완치를 하고 싶은 그녀는 아침을 포함한 삼시세끼를 놓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아침마다 빵집으로 향하는 길은 자신의 연인이 동행해 주니 그녀가 매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집을 나와 새벽이 완전히 가지 않은 습기 어린 공기를 마시고 자신의 주먹이 쏙 숨겨지는 로만의 커다란 손을 잡고 걷는다.
"어제는 잘 다녀왔어? 언니는 건강해?"
"음~ 건강하게 잘 있고. 나도 잘 다녀오긴 했는데···."
잠결에 꺼내지 못한 안부를 이제야 묻자 어딘가 혼란스러움을 내포한 반응이 돌아왔다.
"무슨 일 있었어?"
"위험한 일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밖에서 꺼내기는 좀 그런 이야기라 집에 돌아가서 말해줄게. 안 그래도 리케한테 자문을 받으려 했어."
따뜻한 냄새로 길가의 행인들을 유혹하는 빵집에 들어서니 이제는 얼굴이 완전히 익은 부부가 우리를 반겨줬다.
-어서 오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며 신선한 병우유와 빵을 몇 가지 담아 가게를 나섰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빵집으로 향할 때보다 빠른 것이 리케도 어제 생긴 일이 많이 궁금한 모양새.
집에 돌아와 식탁에 빠르게 세팅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리케는 우유를 컵에 따르며 내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어제 내가 와인을 사 왔잖아? 두 병."
"응. 하나는 언니한테 준다 했지. 나한테 준 건 저기 잘 있어!"
그늘진 선반에 우뚝 서있는 병을 가리킨 리케는 헤실헤실 웃었다.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선물해 주면 반응이 이리 좋으니 남자로서 멈출 수가 없다.
쉬는 날에 같이 마시자는 약속을 재차 확인하고 나는 어제의 일을 조금씩 풀어나갔다.
"···설명하자니 이런 식으로 문제가 겹치는 것도 지금 돌아보면 신기한데 ㅡ"
어지간하면 이 중에서 하나의 사건도 일어나기 힘들고- 당연한 말이지만 겹치는 건 말도 안 되는 확률을 가진 상황들이었다.
하필이면 에클레어가 마음을 풀고 만취가 된 날이었고.
또 하필이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야밤에 서재로 찾아오는 클로에가 있었으며.
차음막부터 시작해 내가 막으려 하는 행동을 오해한 에클레어의 주사를 토대로 이어진 막장의 냄새가 풀풀 나는 코미디는 말을 하면서도 당사자인 내가 헛웃음이 나왔다.
서재까지 찾아온 클로에가 엿보는 와중에 나도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클레어와 정사를 이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중간쯤부터 참고 있던 웃음이 빵! 터진 리케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더니 한참이 지나서 진정이 됐는지 겨우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하아아! 미치겠다··! 오빠 진짜··· 웃겨."
리케가 이리 시원하게 웃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 나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당장 오늘이 실전 수업인데. 대처를 어찌해야 좋겠냐는 그런 이야기."
고개를 기울이며 살짝 고민을 해본 리케는 당장에는 답이 나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클로에의 반응을 먼저 봐야겠지만, 클로에는 성에 관해서 상당히 무지한 감각이 있어서 나도 오늘 만나봐야 알겠는데···."
"실전 수업 전에 너무 이상하다 싶으면 나한테 미리 눈치 좀 줄래?"
내 부탁에 리케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긍정을 표했다.
"좋아! 그리고 귀족 사회의 내부적인 이야기지만 오빠가 알아두면 좋을 게 있네. 지금은 아니지만 원래는 나도 기사를 배출하는 가문이었으니··· 앞으로 에클레어 언니의 행동도 그렇고 클로에의 행동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거야."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빵을 손으로 뜯어 리케의 입에 넣어주고 오물오물 씹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어떤 말이든 귀를 기울이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주고 싶게 된다.
"고마워. 리케가 해주는 조언이라면 무조건 집중해야지."
우유와 함께 빵을 꼴깍 넘긴 그녀는 내게만 보여주는 눈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