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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12화 (112/250)

Chapter 112 - 완벽함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으으응-!!"

리케가 잡고 있던 펜을 놓고 기지개를 켜자 집안에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울렸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오늘과 같이 책에 아무리 집중을 해보려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이 있는 법.

앉아있는 집 안이 너무 따스하여 마음이 풀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연인과 알콩달콩 하게 24시간 붙어있어도 모자랄 판에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세리아나 클로에와 만나 다 같이 공부를 하는 게 더 집중이 잘 되겠지.

연인이 옆에 있으면 자꾸 머리에 신호가 와 안기면서 달라붙고 싶거나 야릇한 행위를 상상하며 의식이 딴 길로 저항도 못하고 새어버린다.

'안되겠어···집중력이 깨지면 봐도 시간 낭비야. 오빠 성분을 조금 채워야 돼.'

반론을 허가하지 않는 너무나 합당한 이유. 마당으로 나간 연인을 지켜보며 정신을 한번 환기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에클레어 언니는 오빠 성분이 떨어지면 어떻게 버티나 몰라.'

기사는 절제를 숭상하니 그것도 나름의 수련일까. 기실 그것을 버티는 건 존경할 만한 점이다.

"흐흐흠~"

훈련 중에 마실만한 것도 챙기지 않고 덜렁 나간 것이 생각나 콧노래를 부르며 물병을 우선 챙겼다.

혹여 정말로 집중하고 있는 상태면 방해할 생각은 없기에 마당을 볼 수 있는 창문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시선에 워낙 민감한 오빠라 이것조차 조심조심해야 한다. 방해가 되지 않게 기척을 최대한 억눌러 시선을 움직였다.

"응··?"

이번에는 또 뭘 하는 걸까.

커다란 등 근육을 움찔거리며 마당에 쭈그려 앉아있다. 저런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달려가 강하게 안고 싶다.

자세히 보니 웃음을 만면에 띄고 혼자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 얼굴··· 손등에는 사슬을 감고 있는 상태다.

훈련 도중에 실수나 부족한 부분을 혼잣말로 상기하며 되짚어 본다든가 그런 느낌이 아니다.

'입 모양이···이, 이쁘다? 이쁘다고?'

도대체 뭐가 이쁘다는 건지···저 쇳덩이가? 손등에 감긴 사슬을 값비싼 공예품이라도 되는 양 소중하게 쓰다듬고 있는 행동에 눈에 절로 마나가 흘러들어갔다.

자신의 특별한 눈에 비치는 연인의 감정이 너무나 확연한 긍정이라는 게 불안감에 부채질을 했다.

허투루 저런 일을 할 오빠가 아니다. 그러니 분명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인데···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

감겨있는 쇠사슬을 보고 저리 기뻐하고 혼자 쓰다듬으며 이쁘다고 칭찬을 하다니···.

리케의 마음에는 그저 걱정이 먼저였다.

'고민이라도 있는 걸까?'

오빠가 자신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라면··· 걱정을 사기 싫어서 숨기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자면 힘든 소리를 하지 않는 오빠인 만큼 속에 발산하지 못한 스트레스가 너무 과하게 쌓인 걸지도 모른다.

'모험가나 기사들은 예고도 없이 전투의 후유증이 찾아올 때가 있다고 했는데···.'

평소라면 웃으며 다가가 무얼 하는지 가볍게 물어봤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불운이라면 불운일까, 하필이면 어제 아카데미에서 그쪽과 관련된 수업과 일화를 들어서 머리에 그 예시들이 먼저 떠올랐다.

ㅡ우리 영지에 엄청 유명한 사냥꾼이 있었는데 아들이 한번 크게 다친 뒤로는 정신이 나가서 여자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작업을 걸기도 했어. 술도 안 마셨는데!

ㅡ저희 영지에도 꽃이랑 이야기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남편이 먼저 떠나 미망인이 된 뒤로 그렇게 되었다고···.

그날의 수업과 더불어 세리아와 클로에의 경험담이 현실감을 더했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이야기. 정신의 병은 한번 터지면 정말 고치기 힘들다는 충고까지.

백금의 모험가인 오빠도 정신의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자신에게 말해왔었다.

'혹시 문제가 생겨도 내가 어떻게든 하면 돼!'

어떤 오빠라도 자신은 받아들일 수 있다. 저 행동만 봐서 상태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평생 붙어서 수발을 들어야 한다 해도 자신은 어떤 불만도 없이 할 수 있다.

그저 사슬을 보며 끝없는 혼잣말을 하고 있는 오빠의 행동이 걱정될 뿐이다.

눈을 감고 마나를 천천히 풀어 스킬을 해제한다.

꾸욱-

품에 있는 물병을 꽉 안고 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자신의 걱정이 그저 기우이길 바라며.

"오빠. 창문으로 보고 있었는데···뭐해?"

"··응?"

*****

"흠흠!"

리케의 걱정 어린 얼굴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글레이프니르가 말려있는 손을 뒤로 숨겼다.

이걸 보고 있었다니 상당히 뻘쭘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결과물이 있으니 보여주기만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 불러놓고 눈앞에서 '상태창!'을 외쳤을 때 그게 나오냐 안 나오냐에서 정신병자인지 선택받은 인간인지 모든 게 갈리는 거 아니겠나.

"··오빠 괜찮은 거지?"

"당연히 괜찮지!"

"···."

"리케? 왜 그래?"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 리케의 근심 어린 표정에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옆에서 볼 때 걱정이 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이었나?

이상해지는 분위기에 나는 뒤에 숨기고 있던 글레이프니르를 리케의 눈앞에 꺼내 보였다.

촤륵-!

"아니! 진짜 별일···은 맞는데. 이상한 거 아냐! 이게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사슬이 아니고··· ㅡ"

내가 살면서 이렇게 생각도 못 하고 황급하게 변명에 가까운 해명을 늘어놓은 기억은 없다.

여자의 눈물이 무기라는 말은 일단 나라는 인간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의 촉촉한 눈가는 핵폭탄 급 무기였다.

함께한 다사다난한 사건들이 있다 보니 리케가 우는 걸 본 적이 있지만··· 펑펑 우는 게 아니라 저런 걱정과 슬픔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으니 머리가 하얗게 탈색되는 기분이었다.

··

··

"ㅡ 해서 눈을 뜨니 이제 느낌이 왔는데. 혹시 몰라 실험도 해볼 겸 마당으로 나온 거고···아까 행동은 그런 이유가 바탕이 된 거야."

백금인 내가 숨이 찰 정도로 말을 줄줄 뱉어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리케는 걱정과 슬픔을 지워냈지만 그 빈자리에 당혹감과 의문스러움을 채워갔다.

"사슬이 기뻐한다고···?"

누군가에게 불려가 무기를 받았다는 점에서 태클을 걸지 않는 게 더 대단하지 않은가.

내 말은 검은색이 희다고 해도 의심 없이 믿는 리케가 보기에도 심상이라는 세계보다 무기에게 감정이 있다는 게 더 어이가 없는 상황이겠지.

몇 초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더니 갑자기 귀속 무기가 생겼다는 걸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리케는 글레이프니르가 내 칭찬을 듣고 기뻐한다는 말에 제일 큰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바니타스도 그렇지 않아?"

리케는 굳은 얼굴로 바니타스를 꺼내들었다. 이리저리 휘두르고 날의 윗부분을 몇 번 쓰다듬다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지금도 그렇지만 이때까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어. 이미지가 흘러 들어오고··· 오빠한테 내가 의지를 닮았다고 칭했던 건 틀린 동작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그걸 바로잡기 위한 마도구 같은 감각이라··."

"흠- 그렇단 말이지."

"솔직히 이건 정답을 찾기 위한 어떤 메커니즘이자 커리큘럼 같은 감각이지. 감정이라 할 느낌은 없었어. 무기가 기뻐한다니···."

리케는 북유럽 신화가 전해지지 않는 대륙에 살아왔고 '글레이프니르'라는 물건의 유례를 모르기에 더욱 믿기가 힘들 것이다.

애초에 북유럽이 아니라 어떤 신화든 마찬가지다.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해도 거기에 나오는 물건이 실존한다는 건 신용하기 어렵겠지.

그녀도 내가 한 말이니 진지하게 경청하고 믿는 것이지 타인이 꺼낸 이야기라면 이런 얼토당토않은 주제에 대해서는 듣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리케의 자색 눈동자에 마나가 모여들고 시선은 내 손에 있는 글레이프니르로 향했다.

확실히 기뻐한다는 감정을 확인하기에 리케의 스킬만 한 게 없었기에 은근하게 기대가 됐다.

"으음-?"

계속해서 글레이프니르를 들여다보던 리케는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듯, 눈가를 찡그리며 마나를 더욱 끌어올렸다가 해제했다.

피로한 듯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뜨는 리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넘겨주며 물었다.

"뭔가 보이는 게 있어?"

"으응··안 보여."

부정하는 리케의 말랑한 볼을 만져주며 나는 고심했다.

"그래? 감정이랑은 조금 다른 건가?"

"오빠···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게 아니야."

"응?"

"아예 읽어지지가 않는다 해야 할지···보는 걸 허락하지 않는 느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어."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다며 리케는 심각한 얼굴로 글레이프니르를 콕콕 건드렸다.

사륵!

글레이프니르가 건드리지 말라며 반항이라도 하듯 살짝 꿈틀거리니 리케는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바, 방금?"

"그치? 이렇게 표현을 한다니까."

나는 리케의 반응을 보며 킥킥 웃었다. 리케가 말을 더듬을 정도로 놀라는 건 얼마 만에 보는 건지 귀여움이 느껴졌다.

간파하는 눈으로도 읽지 못한다? 이건 신의 물건이라는 격에서 오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글레이프니르에 인격이나 감정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말 그대로 신이 가진 '창조'라는 영역에서만 파생되고 부여되는 물질이라는 말이겠지.

확실한 건 내 손에 감겨있는 이 아이는 아카라이트라는 게임을 포함하고 이 대륙에서 직접 살아가면서 본 물건 중에 장담컨대 제일 귀한 무구라는 것이다.

'글레이프니르'라는 이름의 진가를 알만한 가능성을 가진 자는···대륙에서 로버트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이곳에 떨어지기 전 북유럽신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봤다면 이름 정도는 알지도 모른다.

'로버트 앞에서 쓸 일이 있겠냐만···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

'정해진 대본이 있으면 조금은 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본인도 본인에게 완벽함은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는다.

임기응변이 약하기로는 슬라임 보다 약하다고 자신하는 클로에는 잠시 교과서를 덮어두고 펜을 들었다.

마주하는 상대가 상냥하다 하여 그 상냥함에 기대어 실수를 고치려 노력하지 않고 반복하는 행위는 정말 나쁜 짓이다.

"··일전에 제공··? 하사하신···? 음···선물해 주신··."

입으로 따라 읽어보며 자연스러움을 찾는다.

언니의 조언을 바탕으로 하며 꼭 전해야 할 말들을 메모지에 쭉 적는다.

사람과 대화하는데 대본까지 준비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막상 적어보니 이건 사전에 준비를 안 하면 분명 혀가 꼬이고도 남았다.

사각- 사각-

시간을 들이니 딱히 문제가 보이지 않는 무난한 글귀가 만들어졌다.

"··이, 이 정도면 이제 연습만 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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