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5 - 여자친구의 친구이자 여자친구의 동생 -3-
클로에의 머리에서 '모험가'란 무엇인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다.
밖으로 나도는 성격도 아니라,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영지에 박혀 기사를 목표로 하며 훈련하고 평범하게 귀족의 예법을 배우고 살아왔기에 그 외 부분과 세상 밖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모험가 출신이라는 교관님이야 세상에 강한 사람과 대단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으니 그냥 그중에 하나라 생각했고.
처음 모험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진 건 아카데미에서 사귄 친구 중 한 명인 세리아가 미래에 모험가를 꿈꾸고 있기에 그때 처음 귀를 기울이고 정보를 들었다.
하루하루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무용담을 만들고 신체와 감각을 날카롭게 깎아나가는 모험가는 기사와 비슷하면서도 날개가 달린 새처럼 자유롭다는 매력이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자신 같은 심약한 인간은 절대 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온다.
거기서 첫 번째 관심은 끝이었다.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계처럼 느껴졌으니 관심이 식어버리는 것도 빨랐다.
하지만 언니가 교제하는 남성이 모험가 중에서도 정점이라는 '백금'이라 다시 한번 관심에 불이 붙었다.
마침 모험가에 대해 정통한 것 같은 세리아가 있으니 당장에 물어봤다. 굳이 멀리까지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고 믿을 수 있어 좋았다.
ㅡ실전 교관님은···백금의 모험가라 들었는데 모험가로서는 어떤 위치에 계신 분일까요? 최고 높은 등급인 건 알겠는데···.
자신이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백금의 위상을 묻는 질문이었다.
세리아는 모험가라는 직군에 떨어진 관심이 여간 기쁜지 안 그래도 넘치는 활기를 폭발시키며 모험가인 자신의 언니에게 들었다는 정보까지 풀어줬다.
그녀의 장황한 설명을 쉽게 간추리자면 기사라는 직업에 나의 언니.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있다면 그 반대편 모험가에는 교관님이 있다.
교관님이 정의로운? 마음으로 음유시인들과 결탁하지 않아 명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무슨 뜻인지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광기마저 살짝 엿보이는 세리아의 연설에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
"교관님에 대해 찾다 보면 일개 생도인 나조차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 있는데, 그게 다 말도 안 되는 악평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아마도 음유시인 길드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블러프가 아닐까?"
확실히 그런 대단한 인물의 악담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이상하긴 했다. 역시 세리아에게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그렇군요··!"
언니의 이야기와 자발적인 행보로 모험가의 사정을 제법 빠삭하게 알고 있는 세리아는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아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전설로 불리는 모험가 우루스 파티와 동급··· 거기다 최연소에 솔로. 음유시인들과 케케묵은 감정이 해소되고 조금만 입소문이 나면 우루스를 이어서 모험가들의 우상이자 전설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봐."
확신에 찬 세리아의 녹안이 틀림없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
··
그날 했던 대화가 마침 머리에서 빛과 같은 속도로 지나갔다.
전설, 최연소, 백금, 강자···나와 관련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칭호들. 그런 걸 모두 가지고 있는 대단한 사람과 디저트 카페에 앉아있는 것이다.
언니 같은 대단한 사람과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건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도 아니라 단어의 선정과 예법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저, 정신을 바짝 차려··!'
자신의 입과 행동이 드리트나 가문과 언니가 쌓아 올린 위업에 누를 끼치는 수가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에 생각을 한 번은 더 하고 행해야 한다.
이미 목 넘김으로 창피를 한번 보인 상황. 기행에 두 번은 없어야 하는 법.
"눈치 볼 거 없으니 편하게 먹어. 부족하면 말하고."
교관님에게서 상상도 못한 갭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미소라도 귀족인 이상 선은 지켜야 한다.
자신을 보는 언니 같은 미소라 해도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지. 철없이 굴어도 되는 믿음이자 이유는 아니다.
"··감사합니다."
대외적으로 나 클로에 드리트나는 그 에클레어 드리트나의 친동생. 첫 자리에서 이미지를 잘 만들어야 한다.
일단 말은 홍차로 괜찮다고 뱉은 시점이라 염치도 없이 날름 손을 뻗기도 민망하여, 디저트를 눈으로만 담으며 입에는 찻잔을 붙이고 있었다.
'··이거 자린고비?'
모 소설에서 먹고 싶은걸 머리에 그리며 맹물이나 빵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과 참으로 유사한 상황이었다.
비어있는 접시에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홍차에 코를 박고 있으니 교관님이 웃으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이 있는 가게라 확실히 맛은 있는 것 같은데. 에클레어가 먹기에는 단것 같기도 하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한번 봐줄래?"
연장자가 베풀어주는 자비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손을 움직였다.
"네에!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트레이에 놓인 디저트를 접시에 옮기며 들뜨는 마음과 더해서 궁금증 하나가 해결되는 쾌감에 클로에의 입가가 들썩였다.
'언니를 에클레어라고 부르는구나··!'
서로가 만났을 때 부르는 달콤한 애칭이 따로 있을지 모르지만 저것만으로도 클로에의 상상을 강하게 자극했다.
··
··
달그락-
의외로 예법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편한 자리였다. 친구들과의 티타임을 생각나게 할 만큼··.
교관님이 자유로운 모험가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ㅡ 그쪽으로는 다음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어."
"네에··."
이 자리의 목적으로 꺼냈던 실전 수업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첨언이나 의견을 더할 필요 없이 네, 아니오 정도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기에 부담도 없었다.
평소라면 주위에 자신의 실수를 케어해줄 사람도 없고 남자와 단둘이라는 상황에 포크를 떨어뜨리거나 찻잔을 넘어뜨리는 실수가 일어나도 이상할게 없었지만.
클로에가 평소와 다르게 실수를 하지 않고 긴장을 줄일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로만의 얼굴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긴장감이 돌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자신도 말할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언제일지 모른다는 그런 직감!
"저··저기."
"응?"
자연스럽게 꾸물꾸물 손가락이 움직여 가슴에 걸린 브로치에 향했다.
"이- 물건. 정말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생각해서··감사합니다··."
"하하-! 뭘 그런 걸로 감사까지- 전혀 과분하지 않아. 브로치가 주인을 잘 찾아간 것 같아서 다행이네."
최근에 자신을 옥죄고 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예의 없이 고개를 내리고 있었지만 남자와···그것도 대단한 사람과 눈을 마주 보고하는 대화는 역시 자신에게 너무 벽이 높았다.
'흉터가 엄청나게 많으시네···.'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으니 눈에 들어온다. 손등부터 손가락 사이를 포함해. 셔츠로 가려진 곳을 제외하고 상처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
특수한 속성의 상처 혹은 포션을 마시거나 교단에서 치료를 일정 기간 안에 받지 못하면. 치료를 받아도 흉터로 남는다고 들었다.
그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상대가 보낸 일생의 무게를 빙산의 일각이나마 관측한다. 편안하게 살아온 내가 죄책감이 들 정도로 무겁고 거대한 삶을.
에클레어에게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들었지만 클로에에게는 항상 그런 생각이 있었다.
자신이 그 5기사의 동생이라면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언니가 만든 호의에 기대서 그렇게 무작정 편하게, 평범하게 살아도 되나?
"교관님··."
"호칭은 그게 역시 편하려나·· 왜?"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편하게 물어봐."
이 정도로 대단하고 언니처럼 비범한 인물이라면 두루뭉술한 질문에도 시원한 해답을 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
축약을 거치며 질문의 요지를 살짝 첨가하자 속까지 이해한 듯 교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그런 삶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건 아니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삶을 싫어하는 사람은···없지 않을까요."
포크를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교관님은 바로 뒷말을 이어붙였다.
"지금은 밤새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그 영향으로 다음날 수업에 졸아도 보고. 친구들과 외출해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을지 한참을 의미 없이 광장에 서서 고민해 보기도 하고···그거면 충분하잖아? 먼 미래를 당장에 그릴 필요는 없는 거야."
"그, 그건 정말 행복하겠지만···언니도···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까요?"
"아니."
안다는 듯 뚝 잘라내는 답변에 클로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에 붉은빛이 미약하게 도는 교관님의 눈동자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에클레어는 그렇게 살고 싶다기보다, 하고 싶은걸 하며 행복하게 사는 동생이 보고 싶겠지."
"···"
"확실한 건. 에클레어가 평범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야. 결국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모두가 다른 것이고··· 하지만 굴곡 없는 인생은 절대다수가 원하는 삶의 모양이잖아?"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고난이 없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말이자 생각이겠지."
"···."
스푼이 아니라 포크로 남은 커피를 휘휘 저어서 한 번에 들이킨 교관님은 팔짱을 끼더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모양새를 끝내고 꽉 물려있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내 인생에 굴곡이 제법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굴곡이 없기를 바라고 있어.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지."
"그, 그렇군요··."
와아-·· 지금 언니를 '내 여자'라고 한 건가? 특유의 박력이라 할지 그 언니를 저렇게 당당하게 부르는 점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재물의 이득을 모두 떠나 그저 내 연인의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이 된다면 나는 가능한 건 어떻게든 할 거고. 그건 에클레어가 없는 사이 아카데미 안에서··· 동생의 안위를 지키는 일까지 포함되겠지."
"저, 저 말인가요?"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아직 교관님이 언니와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생인 본인은 좋게 봐도 일면식 없는 남에서 한발 정도 가까운 사이였다.
다른 귀족가는 여식 하나가 나가버리면 남자의 집에 거의 귀속되다시피 하니 형제나 자매의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몇 년에 한번 만나 흐릿하게 기억하는 게 태반이고.
그래서 더욱.
백금이나 되는 분이 자신을 이렇게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회적 위치나 여러 가지가 압도적임에도 자신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절대 보이지 않는다.
"동생한테 일이 생기면 에클레어가 슬퍼할 테니까. 그치?"
다시 찾아온 조금은 장난기가 있는 미소로 교관님은 말을 마무리 지었다.
ㅡ
딸랑-
가게를 먼저 나오고 문 옆에서 잠시 기다리자 교관님이 나왔다.
"가, 감사히 먹었습니다!"
영수증을 대충 접어 주머니에 넣은 교관님은 시원하게 웃었다.
"잘 먹었으면 그걸로 충분해. 다음에도 혹시 먹고 싶으면 말하고 친구들이랑 먹을 수 있게 예약 정도는 잡아줄 테니."
"아뇨! 어떻게 그런··!"
고개와 손이 동시에 붕붕 돌아가는 자신을 보고 피식 웃은 교관님은 눈썹을 살짝 내리며 미안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아카데미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이 가게에 들러서 아까 추천해 준 피칸파이 포장 부탁해뒀으니 에클레어한테 전해줄래? 바쁘면 배송으로 보내도 되니 부담 가지지 말고."
연인이 보낸 디저트라··· 그걸 전하면 언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써 달콤한 분위기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네! 제가··! 꼭 전할게요!"
"든든하네. 그럼 남은 수업 열심히 듣고~ 난 가봐야겠다."
"저, 저기!"
"응?"
주제넘은 말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부탁하고 싶었다.
최근의 언니를 보면 지금 같은 시간이 계속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클로에는 원하고 있다.
"저희 언니···잘 부탁드릴게요··!"
대답이 올 때까지 허리를 꾸벅 숙이고 있으니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어 눈 높이를 맞춘 교관님이 보였다. 방금까지 짓고 있던 웃음을 싹 지운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지만··· 에클레어를 내 목숨보다 소중히 하마 맹세하고 약속할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기사보다 기사 같은 모습에서 느껴지는 강한 진정성. 어떤 대답보다 마음이 놓였다.
"정말···감사합니다."
ㅡ
그날 클로에는 아카데미가 끝날 때까지 언니의 반응이 기대되어 헤실 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나자마자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