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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104화 (104/250)

Chapter 104 - 여자친구의 친구이자 여자친구의 동생 -2-

클로에 본인을 불렀다 가정해 보자. 당장 그녀를 자리에 앉게 하여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아라 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이론이나 암기과목은 상위권이지만 남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해야 하는 실습 평가.

거기서 긴장하거나 조바심을 내어 결과가 아쉬운 아카데미 성적 정도 아닐까.

현재 잘나가는 귀족가의 둘째는 먹고사는 일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만큼 클로에 자신은 굴곡 없는 평탄하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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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성적에 대한 고민.

이 문제는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하면 해결 가능한 일이기에 대다수는 보면 고민이라 하기에도 우습다 할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해답도 못 찾던 언니와의 관계도 회복되고 좋은 친구들도 두 명이나 사귄 지금. 자신의 인생은 전성기이자 절호조 그 자체 아닐까.

관계의 회복을 넘어 소중한 사람이 행복하기까지 한데 이게 최고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행복해 보이네~'

정말로 신기하고 정말로 다행이었다.

앞에서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는 언니지만 옆에 있는 자신은 너무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주위에 연애를 하는 친구도 없고 언니도 처음일 것이고 자신도 무경험자.

그래서 참고할 만한 것은 결국 서적이었다. 평소에 로맨스 소설이나 유명한 사람들의 수필에서 읽고 배운 이야기지만.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모양이었는데 언니는 좋은 쪽으로 보여 이대로만 쭉 가면 좋겠다고 여신님에게 기도하며 부탁했다.

언니의 무탈함을 위해 가본적 없는 교단에 찾아가 기도와 더불어 용돈을 털어 헌금까지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그만큼 지금 같은 날이 계속되길 바란다.

새벽에 저택을 나서는 언니의 얼굴은 피로감이 없고 무척이나 홀가분해 보여 자신도 순수하게 기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언니를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와 정복을 꺼낸다.

'나도 늦지 않게 준비해야지···.'

매일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반쯤 졸면서도 정복을 깔끔히 입는 경지에 이르렀다.

"으음-"

장식대 위에 놓인 검은색 브로치에 눈이 간다. 오늘도 고민을 한번 하다가 아카데미 정복에 브로치를 걸었다.

딸각.

언니가 자신에게 선물해 준.

아니···교관님과 언니가 선물해 준 브로치는 자신에게 매우 과분한 물건이었다. 가치는 그야말로 손이 덜덜 떨릴 정도.

하지만 자신이 가진 스킬과 문제점을 알고 있는 언니의 조언대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항시 착용하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이쁜 브로치네. 클로에랑 잘 어울려."

"오~ 소화가 되네. 나 같은 스타일은 해도 언니 물건 훔쳐 왔냐는 소리나 듣는다니까."

아카데미에서 마주하는 순간에 자신의 브로치를 보고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는 두 사람 덕에 과한 장식이라는 부담이 조금은 덜어졌다.

학부가 달라 따로 수업을 들어도 점심시간이 되면 세명은 자연스럽게 모여 식사시간을 가지고 다음 수업까지 시간을 보낸다.

당장 내일이면 언니의 남자친구···그 교관님의 실전 수업인데 어딘가 얼굴을 마주하기가 껄끄러웠다.

저번 수업에서는 크게 다를 것 없이 교관님이라 칭하고 개인 지도도 특별한 일 없이 평소대로 지나갔다.

그런데 수업 시간 이외에 대화를 시도하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클로에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직 언니랑 혼인은 하지 않았으니 그냥 교관님이라 부르면 되나?'

뜬금없이 다가가 형부라 하면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닐까. 야외 수업 때는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고조되었다 해도 무슨 배짱으로 먼저 다가가 질문까지 했는지 현재까지 모르겠다.

ㅡ··· 혹시 로만을 마주치면 그냥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주거라. 기뻐할 거다.

기뻐하지 않더라도 예의를 생각하면 언니의 말대로 받은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전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니 호칭부터 어지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언니와 그렇고 그런···연인다운 일을 했다는 걸 침대에 혼자 누워있을 때 뜬금없이 망상하기 시작했는데.

야밤에 하던 망상 위에 최근에 읽기 시작한 로맨스 소설의 영향이 더해진 건지. 언니와 교관님 둘이 있는 그림을 상상하게 되어 무작정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가가면 장담컨대 백 프로 말이 꼬이거나 혀를 깨물 것이다. 저택에 돌아가면 이불을 박살 낼 듯 뻥-뻥- 차며 후회할 역사를 또 만들겠지.

'그, 그리고 내가 실수라도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면··?'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제국이 들썩이고 난리가 나는 관계인만큼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교관님과 둘이서 이야기를 해볼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보자 생각했다.

교관님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가끔 아카데미에서 보였기에 타이밍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발을 움직이려는 순간 또 고질적인 성격이 병처럼 도지는 것이다.

'뭐라 말하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애초에 언니와 교제하고 있다는 이유로 백금의 모험가에게 하찮은 자신이 거리낌 없이 다가가도 되는 건가? 수업 시간도 아닌데? 건방지다 생각하지 않을까?

자신은 드리트나 백작가의 여식이자 아카데미 생도지만. 제국의 5기사인 언니와 달리 본인의 손으로 일궈낸 업적 같은 건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모험가의 눈에 자신은 온실 속 화초 그 이하일지도?

'아, 아냐··! 언니가 고른 남자인데··.'

수업을 받으며 느낀 교관님의 성격은 차갑고 무섭지만···자신을 깎아내리지는 않을 거라 마음은 알고 있었다. 이게 단순히 걱정에서 만들어진 망상이라는걸.

쭈욱ㅡ

자신의 볼을 꼬집고 강하게 당기며 망상으로 타인을 깎아내린 벌을 주고 생각을 정정했다.

"으으- 아파··."

아려오는 볼을 잡고 혼자 서있는 교관님을 슬쩍 눈에 담았다. 벌써 마음만 먹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상상으로 다가가 본 도전 횟수로 보면 백 번은 가볍게 넘은 것 같다.

보통 사람이라도 먼저 다가가는 건 힘든데···교관님은 가만히 있으면 언니처럼 주위의 대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특유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여, 역시 대화를 하기 전에 대본을 미리 만들어서 오는 게···.'

저택에 돌아가서 어떻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지 각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한숨을 뱉으며 등을 돌렸다.

"클로에 드리트나 생도."

"히갹-!!"

분명 저 멀리 있었는데?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니 눈앞에 교관님이 서있어 귀족적이지 못한 비명이 나왔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곳이라 다행이지 창피하게 시선을 모을 뻔했다.

"··미안하다. 놀라게 하려 한 건 아닌데."

당황하는 교관님의 얼굴을 보니 입이나 막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죄, 죄송합니다. 예의 없게 큰 소리를···."

"생도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혹시 지금 많이 바쁜가?"

일정이 있다면 이런 스토커를 방불케하는 행동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검술 학부 둘은 수업이 있지만 자신은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붕 뜬 상태였다.

혹여 말실수가 나올까 먼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다음 수업까지 일정은 딱히···."

허공을 보며 흉터가 진 턱을 긁던 교관님은 잠시 침음을 흘리다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흠- 교관도 너무 뜬금없다 생각하지만. 생도가 바쁘지 않다면···강의에 대한 평가도 들을 겸 잠시 어울려 줄 수 있나?"

최근 몇 번이고 눈이 마주친 건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아무리 둔한 자신이라도 이게 무슨 말인지는 안다.

이건 의미 없이 시간을 버리며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자신에게 먼저 손을 뻗어준 것이었다.

"··제 의견이 도움이 되신다면···."

"바쁠 텐데 고맙군. 자리는 내가 안내하지."

교관님은 수업과 완전히 다른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이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웃으시는구나··.'

인간이라면 당연한 사실인데 작은 안심과 신기함을 느낀다.

수업을 하며 턱도 없다는 듯이 웃는 건 봤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 미소를 그리는 건 처음 봤다.

또각-또각-

이동하는 동안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뒷짐을 지고 앞장서는 교관님의 걸음걸이는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아 뒤에서 따라가기에 딱 좋았다.

아카데미의 정문을 나와 평범한 카페로 향하는 것인가 생각했으나.

'응···?'

교관님이 향한 곳은 전문적인 디저트 카페였다. 그것도 가격이 상당해 자신의 용돈으로도 가기 망설여져 아직 가본 적이 없는.

딸랑-

문을 열고 입장하니 애매한 시간임에도 손님이 제법 있었다. 교관님의 덩치와 외견에 일순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걸 뒤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살짝 당황한 얼굴의 종업원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따라오라고 작게 손짓한다.

이번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고개를 바닥에 고정시키고 앞에 있는 발뒤꿈치를 보며 후다닥 따라갔다.

드르륵.

종업원을 따라 고풍스러운 방으로 안내를 받아 머리가 하얗게 변한 상태로 삐걱삐걱 걸어 맞은편에 앉았다.

뭔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전개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먹고 싶은거 있으면 편하게 시켜."

눈앞에 드리워진 메뉴판을 살짝 펼쳤더니 역시나 명성만큼이나 가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얼그레이로··."

"마실 것만? 디저트는?"

이제야 눈치챈 사항이지만.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교관님은 평소의 각 잡힌 말투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누그러져 있었다.

"···어."

"너무 긴장하지마. 아카데미를 나왔으니 딱딱하게 교관이라 부를 이유도 없겠지. 수업도 아니고···나도 숨이 막혀서."

자조적으로 웃는 목소리에 살짝 숨통이 트이는 분위기였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전 홍차로 충분해요··."

"음···그래? 여기 디저트가 그렇게 유명하다고는 하던데. 맛이라도 보자. 입맛에 안 맞으면 안 먹어도 괜찮아."

종업원을 불러 디저트 코스를 주문하고 기다리자 트레이에 실린 여러 가지 디저트가 원형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솔직히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긴 한다. 요즘 디저트를 절제하고 있기도 했고.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키니 침묵 속에 그 소리가 울렸다. 귀에 울릴 정도로 선명한 소리였다.

'죽고 싶어···!'

진지하게 창문이 있었다면 유리를 깨트리며 뛰어내렸을 것이다. 얼그레이면 된다고 해놓고 며칠 굶은듯한 추태라니 상대방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귀족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 같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타버릴 것 같았다.

조마조마하며 살짝 시선을 들어 교관님의 얼굴을 보니 평소와는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언니가 자신을 보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하고 있었다.

"눈치 볼 거 없으니 편하게 먹어. 부족하면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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