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3 - 여자친구의 친구이자 여자친구의 동생 -1-
딸랑-
고개를 움직이니 초커에 달린 방울에서 소리가 들렸다. 동물 귀가 달린 머리띠는 언젠가부터 사라져 있었다.
'몇 번이나 한 거지··?'
에클레어는 몽롱하니 정신이 붕 뜬 상태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메이드 복은 이미 엉망이 되었는데 복장의 매무새를 다듬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큰일이군.'
로만을 알게 된 건 꽤나 긴 시간이지만 연인으로 지낸 건 길지 않다.
연심을 자각한 것도 다른 커플이나 부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짧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의 진심 어린 공세를 받으며 깨달았다.
마음도 몸도 이미 빈틈하나 없게 완벽하게 함락 당해서 이건···로만이 없으면 정말 인생이 끝장나겠구나. 강하게 직감했다.
자신은 이제 절대 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오싹하면서 기분 좋은 예감.
딸랑-
고개를 천장에서 돌려 옆으로 향하면 아직도 교접은 이어지고 있다.
-아앙··! 주인니임!! 가, 가요··! 제발··아아앙! 살려···흐잇! 간··다··가요옷··!
아래에 깔린 리케를 허리로 찍어누르며 로만은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 거친 동작과 대화를 글자로만 나열해 보면 겁탈이나 다름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하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리케의 저 쾌락에 익사할것 같은 표정을 보라. 평소의 기품 넘치는 그녀라 하기에는 너무나 천박하고 원색적인 표정이었다.
뱉는 문장은 로만을 자극하고 더 만족시키기 위한 호소의 목소리겠지.
허나 이해한다. 방금까지 자신도 분명 저랬을 것이다. 리케도 자신도 로만도 이 방안에 가득한 열락에 취하고 미쳐버렸다.
어느덧 리케가 있는 것에도 익숙해지면서 로만을 꾸밈없이 갈망했고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 이쁨을 받기 위해 엉겨 붙어 야한 신음과 천박한 단어들을 뱉었다.
-아앙! 더··더··! 안에 가··득! 히잇··!
몸은 늘어지게 지쳤는데 옆에서 시각과 청각의 정보가 흘러들어오며 몸이 또 슬슬 달아오른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정액이 줄줄 흐르고 있는 그곳으로 향할 뻔한 걸 정신을 차리고 멈췄다.
자신을 마음대로 하라 했다고 정말 이렇게 많은 걸 경험하게 할 줄이야.
'이래서야 이제···평범한 잠자리는···.'
오늘 큰 선을 넘어버렸다. 지금까지 해온 건 어린이들 소꿉장난 수준이었구나.
애정이 넘치는 그와의 느긋한 교접도 행복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있지만. 아득히 위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경험이 없는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로만이 얼마나 절제하고 참아왔는지. 오늘 그의 진정한 남성성을 마주했다.
평소보다 낮은 로만의 목소리와 타오르는 눈빛을 마주하면,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부끄러운 자세와 행위를 시킬 때마다 자신은 저항하지 못한다.
'···로만 앞에서는 기사가 아니라 한 명의 여자일 뿐이구나···.'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기사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배덕감을 느끼면서도 그 점이 강한 쾌감으로 다가왔다.
평생을 쌓아온 기사의 프라이드 보다 한 남자를 기쁘게 하고 싶다는 감정이 우위에 있었다.
우위를 선정한 대가는 너무나 확실했다. 연인의 품 안에서만은 모든 걸 잠시 잊고 머리가 타버릴 것 같은 행복과 쾌락만을 채운다.
최고의 칼잡이에게 잡혀 휘둘리는 검이 된 기분은 이런 것일지도.
"에클레어. 이리 와. 한숨 자자. 일어나면 같이 씻고 밥도 먹고."
로만은 다시 한번 사정을 끝내고 오른 편에 반쯤 눈이 감긴 리케를 껴안고 있었다.
비어있는 왼쪽에 꾸물꾸물 다가가니 로만이 팔베개를 해주며 품을 열어준다. 리케는 그 잠깐 사이에 옅은 숨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로만의 얼굴을 보니 그의 눈은 아직도 생기가 번쩍이고 있어 그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로만."
"응?"
그가 자신의 목소리에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본다. 자신을 보는 눈에서 애정이 뚝뚝 꿀처럼 떨어지고 있다.
마주하고 있으니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안겨있는 지금도 그를 더 만지고 싶었다.
"···사랑한다. 정말로···."
오늘 만족했는지. 자신에게 부족함은 없었는지. 그런 질문을 꺼내려다 그의 애정 어린 눈길에 모든 게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필로 토크에는 피드백을 주고받는게 아니라 이 말 하나면 충분하구나.
"나도 사랑해."
숨이 턱 막힌다. 오늘따라 그의 사랑한다는 말에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한 번만 더 말해달라 하면 귀찮아할까··?
"아아···언니가 오빠 유혹하고 있다아-··."
리케의 졸음 가득한 목소리에 에클레어가 화들짝 놀랐다.
완전히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듣고 있었구나.
"아, 아니 이건 그런 게ㅡ!"
허둥거리는 에클레어와 잠투정을 하는 리케를 로만이 양팔로 당겨서 품에 더 파묻었다.
"뭐 어때. 연인끼리 애정 표현은 많이 해야지. 사랑해. 둘 덕에 오늘도 난 최고로 행복한 남자였어."
림노의 선술집에서 로만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를 떠올리면 항상 바라던 것.
손을 뻗어 그의 울퉁불퉁한 복근을 만지며 에클레어가 작은 소원을 말했다.
"로만. 자고 일어나면 직접 요리를 해주겠나? 맛이 없어도··간단해도 좋다."
"으으음··나도오··! 오랜만에 오빠 요리 먹고 싶어어-···."
반쯤 졸고 있는 리케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로만은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힘 좀 써야겠네. 풀코스로 대접하지요."
*****
아이작과 로버트는 아카데미 2학기가 시작하고 둘이서 자리를 한번 가졌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또 자리를 가졌거나 밖에서 별도로 자리를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차원의 틈은 아직 열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둘이 아무 상처도 없이 살아있다는 점이 증거.
두 번째 유랑자는 내 관점에서 강한 상대가 아니지만 지금 스킬이나 튼튼한 신체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로버트가 감당할 만한 상대는 아니다.
로메리우스 때처럼 열어두고 자리를 비웠을 경우도 생각해 봤지만··· 연구에 미쳐있는 아이작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을까?
'당분간은 신경을 더 써야겠는데···.'
귀찮아도 할 건 해야지. 안전 불감증의 나라에서 첫 인생을 시작했어도 두 번째 인생은 제국민이니 안전과 관련된 사항에 게으를 수는 없다.
로버트와 게임에서는 메인이지만 내게는 서브 정도인 이야기다.
그건 그거고···정작 지금 당면한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휙-!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시선을 황급히 피하는 여성.
일단 이 문제는 도끼병이자 착각은 아니었다.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시즘도 아니고.
최근 한 여자 생도에게 은근한 시선을 받고 있는데··· 이게 예민한 감각에 너무 선명하게 걸려든다.
클로에 드리트나의 시선.
본인은 최대한 몰래 흘깃 보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대놓고 시선을 쏘아내는 느낌과 같았다.
틈만 나면 주위를 자꾸 맴도는 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에클레어와 교제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것과 관련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자매가 서로를 생각하는 정말 끈끈한 관계니.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
내 여자의 친구이자. 내 여자의 친동생. 이 무슨 개족보···?
일단 클로에 본인이 아는 점. 공식적으로는 여자친구의 동생이다.
클로에의 성격을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먼저 다가오는 데 한참은 걸릴 것인데. 그렇게 진행되면 내가 먼저 정신적으로 지쳐쓰러질지도 모른다.
'···불러서 용돈이라도 줘?'
리케와 더불어 미래를 진지하게 구상 중인 에클레어와의 관계에 대한 인정을 확실히 받고 안정감 있게 지내려면. 클로에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입장이 정말 중요하다.
'동생 말이면 껌뻑 죽는 언니인데 내가 밉보여서 좋을 건 없지.'
일단 단순하게 인간적인 호감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돈은··전생에 만났던 여자친구 동생은 그렇게 하면 단순하게 좋아했는데. 잘나가는 귀족가의 여식이 돈이 부족할리는 없을 것 같고.
지금 내 이미지가 클로에의 머릿속에서 어떤지도 모르니 접근법에 있어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당면한 것이다.
"흐음···."
깊이 생각할수록 암담하고. 좋지 않았다.
기사 학부 생도인 클로에의 앞에서 보여준 거라곤. 생도들을 교육으로 두들겨 패는 것이나, 수업 초창기에 기사도 같은 건 쓸모없다고 기사 학부 눈앞에서 터트려 버리거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내 이미지는 그냥 성격 더러운 모험가이자. 외골수 교관 정도 아닐까. 그래서 저렇게 감시하듯 주위를 감도는 걸지도 모른다.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니라서 난감함과 위기감이 온몸에 차올랐다.
만약 클로에가 언니가 걱정되어 '백금의 모험가 로만'에 대해 조사를 했다면?
단순하게 나에 대한 것을 찾아봤을 때 그녀가 제일 먼저 접할 정보는 뻔했다.
호색한, 처녀충, 지하 선술집 싸움꾼, 메이드 복, 가터벨트, 제복 성애자 등등.
'···? 이거 좀 큰일 난 거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긴장감은 폐 바로 위에 관통상을 당하고 적에게 둘러싸였던 상황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
클로에가 진심으로 '그 남자'는 아니라며 울며불며 에클레어를 설득하려 들면 에클레어도 많이 난감할 것이다.
헤어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녀도 동생에게 떳떳하고 싶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주위를 은근하게 맴돌고 있는 클로에에게 먼저 다가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