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0 - 여자가 둘일 때 남자가 기대하는 것? (삽화 有)
도중에 자세를 바꿔 내 허벅지에 앉아 림노에 관련된 설명을 들은 에클레어는 자세와 달리 진지한 얼굴로 침음을 흘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활자만 놓고 봐도 큰 결단이라 할 수도 있지만···최근 기울어진 정세를 보면 합당한 일인지도 모르겠군."
"그래? 난 솔직히 이 정도로 파격적인 보상을 준게 이해가 안 됐는데. 아무리 그래도 황실이 모험가를 위해서 후작이나 되는 귀족을 내치려 한다는 게···."
"장담하건대- 황실은 누가 스카디 후작가를 다스리든 큰 관심이 없다.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않고 순종한다면 누가 가주에 앉든 의미가 없지···그리고··."
"그리고?"
에클레어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 어깨에 올려 박자감을 가지고 탁-탁- 두들겼다. 생각을 하는 버릇 중 하나인지 딱히 의도는 없어 보였다.
짧게 생각을 끝낸 그녀는 어깨를 톡톡 찌르던 손가락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제국은 안쪽에서도 늘 피가 말리게 바쁘고 날카롭지만. 최근 바깥 정세···특히 연방국과 힘의 줄다리기를 반복하며 전보다 더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있지."
"뭐지··? 하나만 말하기에는 짚이는 게 너무 많은데."
내 말에 작게 웃음을 흘린 에클레어는 지목하듯 내 볼을 폭- 찔렀다.
"현재 가장 민감한 사항은···전력의 외부 유출을 막는 거다."
비단 제국의 전력이라 하면 소속이 확실한 병사와 기사, 마법사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제국의 테두리 안에 살아가며, 모험가 길드에 등록되어 활동을 하는 그들도 결국 전쟁이 나서 연방국의 병사가 들이닥치면 절대다수가 제국의 편에서 싸울 인물들이다.
자신의 집과 현물, 연인과 친구, 고향과 부모가 모두 제국에 있으니.
"제국의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림노 같은 독립된 도시로 가도 공백에 뼈가 아픈데. 제국의 고위 모험가가 연방국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그 손실은 아프다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지."
"내가 수 틀려서 연방국으로 떠날까 봐. 리케와 부부로 만들어 묶어두려는 거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본다. 지금 방식으로 로만의 환심도 사면서···최종 종착지는 그렇겠지."
질문에 쿨하게 긍정한 에클레어가 예시로 말하기를.
수도는 감시가 있어 사건이 오히려 적지만 수도 외 영지에서 왕왕 있는 문제로. 모험가를 천하게 여기는 선민사상 귀족들과 갈등을 빚은 모험가들이 연방국으로 아예 망명해버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금 등급 모험가 하나만 잃어도 그 손실이 어마어마 한데. 저번달에는 금 등급으로 이루어진 파티 하나가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한다.
"그건 자주 듣는 이야기네. 선술집에서도 흔히 들리거든. 연방국은 제국보다 모험가가 더 살기 좋고 급이 낮아도 천대받지 않는다고."
"역시···냉정한 말로. 백금의 모험가를 후작가의 여식과 혼인시켜 제국에 확실하게 체류시킬 수 있다면 무척 싸게 먹히는 거라고 판단된다. 고위 귀족과 고위 모험가 서로의 위치와 자존심상 그런 일이 드물 뿐이지··."
"여식을 엮는 걸 떠나서 후작가의 적법한 가주가 사라질지라도?"
"거기까지 계산이 끝났으니 아까의 이야기가 나온 거다. 현재 에녹 스카디 후작은···파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국가 행사까지 단절한 채로 지내고 있지. 지금껏 행동거지로 폐하의 눈 밖에 난지는 오래됐을거다."
오히려 스카디 후작이 확실하게 귀족 파벌이었다면 아예 나에게 먹이로 던져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 파벌이 씹을 거리가 생기면 황실의 당파도 귀찮아지기 마련.
말 그대로 이도 저도 아닌 중립에다가 사고까지 친 상태. 그걸 무마하려는 재롱도 안 부리고 이쁜 짓도 안 하니.
이득의 천칭에 나와 에녹 스카디를 올린 결과 황제는 내 쪽에 손을 든 것이다.
"만약 후작가의 가주 자리가 비어도 나는 귀족이 될 생각은 없는데? 가문은 적법하게 리케가 가져야지."
"후후- 그런 점이 로만 답구나. 거기도 황실이 예상하고 있을지···모르겠군."
애초부터 그랬지만 나에게는 백금이라는 타이틀 하나면 족하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귀족이 되면?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경우만 허다할 것이다.
고위급 모험가에게 귀족의 작위는 메리트가 없는 허울만 좋은 감투였다.
늘 느끼고 있지만 모험가는 제국에 절대 목줄을 내어줘서는 안 된다. 노력하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만, 수 틀리면 물어버린다는 걸 명심시켜야 한다.
"키티도 마찬가지. 난 귀족 가문의 가주 같은 직책은 할 그릇이 안돼. 내가 알아."
"음··?"
갑자기 리케의 이야기에서 자신으로 넘어오니 에클레어가 의문을 품고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난 재물이나 작위가 필요해서 리케와 에클레어를 책임지겠다고 한 게 아냐. 원하는 걸 마음껏 펼치면서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기만 해."
에클레어는 기특하다는 얼굴로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훗···나라는 여자 하나만 봐준다는 게 실로 나쁜 기분은 아니구나. 드리트나는 걱정할 필요 없다. 다방면으로 생각 중이니··."
"걱정은 안 해. 나보다 똑똑한 내 여자가 어련히 잘 하겠지. 그래도 혹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전력으로 도와줄게.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또 앓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녀는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뜨며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은 고맙지만··아무리 내 남자라도 백금을 공짜로 부릴 생각은 없다. 그건 정말 안될 일이야··."
고개를 도리도리 움직이는 에클레어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자 그녀가 의문 어린 시선을 올려 나와 눈을 맞췄다.
"보수는 당연히 받아야죠. 기사님. 저 이래 봬도 엄청 비쌉니다?"
안겨있는 에클레어를 보며 입술을 가리키자 그녀는 호쾌한 미소와 함께 옅은 홍조를 보이며 내 얼굴을 부여잡았다.
"이렇게 비싸다면··· 원만한 업무를 위해 미리 선금을 지불해둬야겠군."
허벅지에 앉아 있으니 그녀의 얼굴은 나보다 살짝 높이 위치했다.
위치에 의한 작용인지 에클레어는 키스를 하며 처음으로 혀를 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도 어설픔이 느껴지는 혀놀림에 나는 역으로 흥분을 느끼며 그녀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읍··! 흐읍··."
제복 위로 풍만한 가슴을 주무르니 그녀는 달뜬 숨을 뱉으며 키스를 끝냈다.
"··하아··! 오늘은 안된다··휴일까지 조금만 기다려라··."
딱딱하게 서있는 자지를 슬쩍 만진 그녀는 내 허벅지에서 일어났다.
"이건 남자한테 고문이네."
"후후··참아라. 혼자만 참는 게 아니지 않나."
당당한 미소를 보이면서도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은 본인도 마음을 누르며 인내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렇지. 키티가 제일 힘들 텐데."
"··그, 그 정도는 아니다!"
일어나서 흐트러진 제복의 매무새를 정리하던 그녀는 내 말을 부정한 뒤 닫혀있는 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뭐해?"
"시간 여유가 없어 뜬금 없지만. 보여줄게 있다 하지 않았나···거기 있어라."
"오오-? 설마!"
"···이노센스(Innocence)"
빛의 덩어리? 입자? 저걸 무엇이라 명해야 할까.
그녀의 손에 빛이 흡입하듯 모여 순백으로 빛나는 검을 만들어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성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긴다.
짝짝짝-!
박수가 절로 나온다. 저 검은 교단의 누가 봐도 성검이라고 명명할 것 같았다.
"잘 어울려. 동화에 나오는 용사님 같잖아."
이름까지 내가 생각한 걸 채택해 준 게 순수하게 기뻤다.
"···덕분이다. 한 것도 없이 이런 대단한 것을 얻어 솔직히 민망하다··."
"그걸로 키티가 안전해지면 충분해. 불시의 상황에 사용할 패가 하나 늘어났으니 더 강해졌네."
에클레어가 검을 해제하자 빛무리를 일으키며 허공에서 검이 모습을 감춘다.
제복 품에서 화중 시계를 꺼내 시간을 한번 확인하더니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능력도 보여주고 싶지만···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하도록 할까. 일단은 이 검에 관한 보수도 일부 지불해야겠어."
"응? 보수?"
"···로만. 이리 와라."
오라는 말에 소파에서 일어나 다가가니 그녀는 내 멱살을 잡아당겨 절제 없이 거친 키스를 퍼부었다.
시간이 정말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타액을 교환하고 몸의 형태를 기억하듯 거칠게 만지고 더듬었다.
서로가 달아오를수록 욕구를 해소하고 싶어 참기가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았다.
그저 인상적이었던 건 돌아갈 때 에클레어의 표정이 휴일에 정말 나를 가만 안 두겠다는 각오가 느껴진 정도.
*****
아카데미 2학기가 시작된 당일에 정식으로 학장과 생도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고. 그 이후로 수업이 없는 날에도 주기적으로 아카데미를 혼자 들쑤셨다.
내가 주 1회 출근하는 교관이라도 바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도서관 지하실 입장 카드가 언제쯤 완성되는지 은근히 압박도 했고. 어딘가 퀭한 로버트가 아이작을 만나 헛짓거리 안 하나 싶어 수업이 없는 날도 출석해서 살폈다.
"····."
그렇게 열심히 한 나이지만.
현재는 뜬금없이 안대를 찬 상태로 침실에 멍하니 앉아있다.
손이 묶인 것도 아니라 언제든 풀 수 있지만 감각 자체가 예민한 나에게 이런 건 큰 장애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발단은 간단했다.
내일이 에클레어의 휴일이라 오늘 저녁에 집에 오는가 싶어 훈련을 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오후가 되어 아카데미가 끝난 리케와 에클레어 둘이 함께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평소에는 에클레어가 있으면 리케가 자리를 비켜주는데 오늘은 달랐다. 나는 순간 머리에 한 가지 경우를 떠올렸고.
군말 없이 침실에서 안대를 끼고 기다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두 명을 사귀는데 그걸 기대 안 하는 남자가 어디 있냐고··.'
그리고 내 민감해진 청력에 은근하게 들리는 소리들이 몸을 점점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클로에가 봤다면 난 혀를 물고 죽어버릴 거다···.
-언니! 진짜 잘 어울린다니까요? 엄청 야해서···음!
-크윽··! 끝나고 로만을 한 대만 때려도···
-아마 웃으며 맞아주지 않을까요?
처지를 한탄하는 에클레어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내 물건은 상상만으로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끼익-
"오빠~? 저거봐요. 엄청 기대하고 있잖아요."
"···하아. 미치겠군··어쩌다 이런··."
리케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에클레어의 한숨소리에 나는 기대감에 불을 지폈다.
"···이제 안대 벗어도 돼?"
스륵-
천이 움직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응. 이제 벗어도 괜찮아."
"···다 끝나면 각오해라."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했던가. 그 말에 나는 적극 동감한다.
아무리 내가 바래도 조급하게 입에 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특히 에클레어는 기사라는 직업에서 오는 강한 프라이드가 있으니.
시간이 몇 년이고 흘러 언젠가 세 명이서 관계를 가져도 그것만으로 분에 넘친다 생각했던 나에게.
그 이상의 세계가 열려있었다.
보는 순간 날아갈뻔한 이성을 부여잡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다 그대로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