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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96화 (96/250)

Chapter 96 - 두 번째 형상 -2-

칙칙한 색을 가진 녹색 강은 누가 봐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건강한 숲이나 식물을 떠올리기보다는 전생의 산업 폐기물을 연상시키는 색이다.

병균 혹은 독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광고를 하는 물의 색에서는 곰팡이가 좋아할 법한 습한 냄새와 견과류 냄새가 섞여서 났다.

그냥 맵을 켜고 돌아다니면 되는 게임과 달리. 이렇게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와 습도 같은 것들은 내가 서 있는 공간과 시간대가 현실임을 실감 시키면서도 은근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준다.

"음···."

그어-! 구오-!

경비병을 흉내 내던 좀비 두 마리와 달리 다른 좀비들은 같은 행동만을 반복하며 나에게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일정 거리를 걸어 다니며 왕복하는 좀비. 둘이 앉아서 대화를 하는 '척' 하는 좀비. 녹색 물가에 앉아서 실 없는 나무를 들고 낚시를 하는 '척'하는 좀비.

농사라도 하듯 바닥을 부서진 막대로 계속해서 내리치고 있는 것들까지. 모든 것이 살아있는 인간을 흉내 내는 것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명령을 내린 좀비들의 주인에게 순수한 광기가 느껴졌다.

'알면서도 보고 있으면 좀 소름 돋긴 하네.'

나 같은 정상인은 정신이상자나 미치광이가 제일 겁나는 법. 은근하게 올라오는 닭살을 털어내고 발을 움직였다.

서로 손을 잡고 흐느적 흐느적 춤을 추고 있는 좀비 커플을 지나 철과 바위를 고인돌처럼 세워둔 입구 밑으로 들어가니 그 안은 더 가관.

바깥에 보이는 좀비보다 수 배는 되는 것들이 이런저런 행세를 하고 있다.

구멍이 송송 나고 너덜너덜한 옷까지 입혀둔 게 인형놀이에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구억- 그아아-

좀비들의 가래 끓는 소리만 귓가에 계속 울리니 노이로제가 도질 것 같다.

'쯧··조용히 가려 했는데.'

빠악!

손에 들린 둔기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후두둑- 썩은 살덩이들이 산개한다.

갑자기 나타나 팬티 바람으로 워해머를 휘두르는 남자를 보는 주인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헤엄쳐서 왔다는 속 사정이 있으니 모르겠다.

정신이상자의 마음을 멀쩡한 사람이 어찌 알겠나.

'게임보다 더 많은데?'

좀비만 백 마리 넘게 으깬 것 같다. 묶여있는 혼을 풀어주는 선행이라 생각하니 그리 지루하지도 않아서 좋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부패도가 낮으면서 인간의 형상에 가까운 좀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데드에 대한 상식과 반대되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인간의 형상을 깨끗하게 간직한 좀비들일수록 신체 결손의 정도가 높다는 것이다.

원래 급이 낮은 좀비 같은 언데드는 동물형이든 인간형이든 신체의 결손이 흔하다.

혼자 돌아다니다 단단한 곳에 걸려 팔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을 수도 있고 가만히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썩어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과 같이 인간의 형태를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는 좀비들이 팔 다리가 깔끔하게 없는 경우는?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잘라냈다는 것이다.

쿵. 쿵. 쿵. 쿵.

'이제야 오네.'

여기까지 내가 밀고 들어와서야 침입자가 있는 걸 알아챘는지 지진처럼 울리는 발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쿠아앙-!

흙먼지를 일으키며 눈앞에 거구가 떨어져내렸다. 신장은 내 두 배는 가볍게 넘어서며 피부는 전체가 핏기를 잃은 백색.

머리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씩 달려 총 두 개요. 중년 남성의 머리에는 쇠를 구겨서 만든 왕관이 있고 중년 여성의 머리에는 나무와 시든 꽃을 엮어만든 화관이 있다.

팔은 근육질로 온전히 4개나 달려있으니 각 손에는 인간은 다루기도 힘들법한 대검과 둔기를 각각 쥐고 있다.

이 기형적인 생명체의 행색을 이해하려면 몸 구석구석에 있는 저걸 봐야 한다. 누더기처럼 기워진 실밥 자국.

저게 없었다면 이런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인간!! 감히 어디서 행패를 부리는 게냐!!

-어··어떻게 들어온 거야! 우리의 왕국이··!

"조용히 좀 해봐. 어우 골이야···."

이놈들은 목소리도 공동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크면서. 성대를 어찌 개조라도 한 건지 중성적이면서 불쾌감을 고조시키는 기괴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듣고 쑤시는 관자놀이에 귀를 마나로 감싸니 울림이 확 줄어들었다.

-이, 일단은 죽이자!! 얼굴이랑 팔은 남기고!

-다리도 여유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럼 다리도 남기자!

한 몸에 달린 두 개의 머리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마치더니 쿵쿵 소리를 내며 한발 한발 다가온다. 덩치와 무기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위압감만은 대단했다.

"엽- 선물."

푹!

손을 타고 날아간 단검이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여자의 이마를 파고들었는데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허연 살덩이들이 꾸물꾸물 움직여 단검을 뱉어냈다.

-으하하!! 하등 한 인간아! 간지럽다!!

-호호호-! 간지럽다! 간지럽다!

"간지럽긴. 언데드니 느낌도 없겠지."

대다수의 언데드에게 일반적인 통각은 없다. 자아가 있는 저런 네임드도 마찬가지로 신성력 같은 특수한 힘이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내 말에 다가오던 걸음을 멈추고 서로 눈을 뒤룩뒤룩 굴린다.

-드으, 들켰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는걸··! 어찌하면 좋겠소?

-얼굴은 분명 완벽했는데···! 어쩌긴요! 빨리 죽여요! 다리는 필요 없으니!

-그럼 나, 나도 얼굴과 팔은 필요 없소!

웃음을 뚝- 끊어내고. 장난기를 버린 거구의 근육이 불뚝! 펌핑하며 질척한 마나가 맥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망가진 것치고··· 마나를 보니 급은 좀 있네? 확실히."

생명활동과 정신은 이미 완전히 끝장난 미치광이. 차라리 능력을 이용해 리치가 되면 죽음도 뛰어넘은 학구열에 멋이라도 났을 것을.

지하에서 연구를 거듭하다 외로움에 미쳐버려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고 거기서 좀비들을 주민처럼 놓고 왕 노릇을 즐긴 흑마법사의 또 다른 말로였다.

첫 번째 형상의 마지막 먹이로 딱 좋은 언데드 네임드.

나찰의 '갱생'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현 언데드이자 전 인간이었다.

*****

"으음··."

에클레어는 집무실에서 점심까지의 일을 끝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에 시간이 나면 꼭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로만이 림노에서 자신에게 건네준 이 수수께끼 금속의 이름을 늘 고민하는 것이었다.

외형은 세공이 필요한 단단한 보석? 그러면서 만지고 있으면 탄성을 가지고 몰캉한 것이 중독성이 있다.

리케의 훈련을 봐주면서 로만이 선물해 줬다는 대낫을 보았고. 로만을 만난 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설명까지 들었다.

혹시나 얻을 수 있는 스킬도 매력적이고 '귀속'이라는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들어 얼른 완성하고 싶었다. 무기를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반칙 같은 유용성도 있지만···.

말로 꺼내지 못하고 혼자만 품고 있는 솔직한 심정은 로만을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그를 상기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로만이 주었던 브로치는 클로에의 손으로 떠나 버렸고. 리케는 그에게 받은 무기에다 같이 살고 있으니···순수하게 부러웠다.

"하아-··정말."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의 도피니 모든 걸 다 버리고 그 사람만 있으면 되니, 하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해버렸다.

그에게 안기고 난 뒤로 틈만 나면 로만이 머릿속을 뛰어다니니···언제쯤 또 만날 수 있을까 애꿎은 달력만 노려보게 된다.

기대를 안고 만나면 아직 적응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딱딱한 말만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받아준다.

행위를 할 때는 존중받고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너무나 투명하고 선명하게 느낄 수 있어 매번 몸이고 마음이고 미칠 것 같았다.

특히 어제. 이 요망한 남자 같으니··.

야밤에 일을 끝내고 저택에 돌아가니 서재의 창틀에 로만이 두고 간 초콜릿이 있어 오늘은 유달리 애가 탔다.

자신의 입맛을 어찌 귀신처럼 아는지 림노에서 먹었던 쓴맛이 강한 초콜릿.

알아보기 힘든 악필이었지만. 보고 싶어서 잠시 얼굴이라도 보려 했는데 없어서 두고 간다는 메모까지.

처음 겪는 돌발 상황에 심장이 아플 정도였다.

그럴수록 그가 없는 하루는 건조하게 느껴지고 외롭다. 그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버티기 위해 이 녀석을 리케처럼 완성하고 싶다.

'···.'

하지만 작명이라 함은 센스가 없는 본인에게 특히나 자신 없는 부분이라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자주 사용하는 애검은 있지만 그것도 이름은 없다. 이름을 붙일 필요도 느낀 적이 없다는 게 맞겠지.

"로, 로만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싫으냐··?"

-우웅! 우우웅!

겉은 단단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몰캉한 탄력성. 척 봐도 로만이라 생각이 들어 가볍게 말해보니 격렬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솔직히 이 이름으로 되면 수치스러워서 그에게 설명을 어떻게 하나 싶으면서도 아쉽긴 했다.

"그럼··."

고심하는 자신을 위해 로만이 추천해 준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여 계속해서 뒤로 숨겨두었지만.

이제는 머리가 정말 한계에 도달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부여했다.

"···이노센스(Innocence)"

로만이 추천했을 때 과분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이미 자신의 몸은 순결하지 않다. 거기에 로만은 자신이 깨끗하고 선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맑은 선의를 가진 인간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만은! 로만이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라.

굳게 믿으며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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