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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95화 (95/250)

Chapter 95 - 두 번째 형상 -1-

쨍강-!

에녹 스카디는 휘두르던 검을 바닥에 던져두고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다시 말해봐라·· 드리트나? 볼트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엘렉트라 남작가의 여식까지 합해 셋이 모여 다닌다고 합니다만··냉정하게 위세를 생각하면 중심은 드리트나라 생각됩니다."

엘렉트라? 그런 이름의 남작 가문은 들어본 적이 없기에 관심 없다.

"흐음···그 에클레어 드리트나의 동생이 지금 아카데미에 있단 말이지?"

"성적이나 능력에서는 5기사의 자매라 하기엔 특출난 점이 없다는 평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귀까지 소문이 돌지 않은 건가. 하기야 섭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한 가문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올라서야 되겠는가.

괴물 같은 인간을 둘이나 보유한 가문이 생기면 지금도 기울어져있는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이제 돈이 끊어져 자존심을 버리고 집으로 어떻게든 기어 들어올 때라 생각했는데.

볼트가의 약혼자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가문의 여식들과 붙어 다니고 있다니.

"방구석에 박혀있던 그 나약한 정신머리도 살려고 발버둥은 친단 말이지···."

"···그래도 최근에는 볼트 후작가의 연락도 뜸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조금은 진전이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락? 아아- 그래··그 망할 핏덩이 새끼··."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던 볼트가의 칭얼거림을 생각하니 또 열불이 올랐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 녀석이 약혼자 하나 못 다뤄서 징징거리는 꼴 하고는···그것만 봐도 볼트 후작가의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

"지금 잡아오라 하시면 수도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흠ㅡ 잠시 기다려라. 드리트나···드리트나라···."

얼굴은 제 어미를 닮아 반반해도 숨길 수 없는 커다란 흉터가 있어 수도에 숨어도 찾으려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이자 가주에 대한 반항을 손 봐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감정을 배제하면 이건 두 번은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현재 스카디 후작가문은 과거의 일과 자신이 3기사의 검법을 숙달하느라 외부적 행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고립무원에 가까운 형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정말 행사와 사교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힘에 대한 갈망이 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주 조금. 진짜 조금이면 무언가가 될 것 같은데. 그 애타는 감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하루 종일 검만 잡게 만들었다.

"좋든 나쁘든 드리트나와 안면을 틀 수 있다면···일단 내버려 둬라. 혹시 드리트나에서 서신이 온다면 바로 가져오도록."

백날 사교회나 행사에 출석해도 얼굴 한번 트기 힘든 가문들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가문은 작위를 무시하는 힘을 가지기에 현재 드리트나라 하면 모종의 이유로 찌그러져있는 스카디 후작가문은 만나서 비비기도 힘들다.

자신의 딸이 드리트나 여식과 엮여있다면 이것은 차후에 비싸게 써먹을 전개가 될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카데미 기숙사와 식사 비용은 다시 지불하는 게 좋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에녹 스카디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대로 드리트나에 들러붙어 있어도 사과를 겸해 서신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고···볼트의 그 핏덩이에게 안겨있어도 좋게 풀릴 일이다."

"···혹여 반항심에 이상한 행위를 하거나 가문에 누를 끼칠 일을 하지는 않겠습니까? 다른 귀족가의 남아를 끌어들일지도 모릅니다."

귀족인 에녹의 입장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이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선이 있다. 귀족들만큼 시선과 소문에 민감한 족속은 없다.

"하! 그럴 배짱이 있었다면 그 아까운 시간을 방에 박혀있지도 않았겠지. 가진 것도 없는 여식을 얻으려고 스카디에 볼트라는 후작 가문 두 곳을 등질 머저리는 세상에 없을 거다."

*****

"푸엣취-!! 어으··."

누가 내 욕을 하나? 좋은 피를 마신 몸이라 감기 같은 건 걸릴 몸은 아닌데.

의식하니 귀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끝나면 모험가 길드를 한번 들려서 용의자를 찾아봐야겠다.

하도 짚이는 놈이 많아서 문제지만. 대충 애꾸눈 하나 잡아서 족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으니.

빠드득- 뚜둑-

물기도 없이 바싹 마른 채 썩어버린 나무를 발로 치우며 앞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로프티 아카데미 2학기를 시작하는 날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신 놓고 보낸 즐거운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더라. 전생에 쏜 총알보다 빠른 것 같다.

리케와 일상을 보내며 훈련을 이어가고. 에클레어와도 끈적하고 긴 시간을 자주 보내고 싶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바쁜 그녀의 일정 탓에 첫날을 보낸 이후로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아쉽네··.'

바쁜 와중에 클로에에게도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어 보여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응원과 스트레스를 받아주고 풀어주는 것.

잠자리에서는 아직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에클레어라 대화로 분위기를 보들보들하게 풀어가며 유사성행위 없는 일반적인 행위만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의식 없이 남자를 미치게 하고 자극하는 모습을 흘린다.

리케도 에클레어도 색깔은 서로 다르지만 한번 빠지면 끝이 없는 무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급하게 할 필요는 절대 없지.'

이건 이것대로 관계 중에 느껴지는 풍미와 맛이 있다.

언젠가는 리케와 할 때처럼. 에클레어도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는 날이 오면 여러 가지를 즐기고. 세 명이서 화기애애 놀러 다닐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 기대감 하나면. 나라는 놈은 연비가 좋아서 죽어라 굴러가고도 남는다.

보아라. 지금도 이렇게 미루고 있던 형상의 일을 처리하러 멀리 나오지 않았나. 장하다 나!

목적지 앞에서 습관적으로 인벤토리를 열어 쇠사슬을 쏟아냈다.

촤르륵ㅡ

"흐음-"

이 사슬이 끊어진 건 내 오러로 직접 잘라본 이후로 처음이었지만. 이제야 수복이 끝나 깔끔하게 붙었다.

림노의 전투에서 배운 유익한 점을 뽑자면 사슬 중 완전히 끊어진 부분이 돌아오는 건 오러의 수준을 따지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점? 수복하는 시간은 내가 잘랐을 때와 체감상 비슷하다.

[ 이매망량이 깃든 쇄(鎖) ]

거리 조절을 하며 간을 볼 때 이만한 녀석이 없는데. 허망하게 잘려나가는 꼴이 마음 아프긴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내 실력 문제다. 연장을 다루는 솜씨가 더 좋았다면 할아범에게 잘리는 일도 없었겠지.

'다음에 그 정도 적을 만나면 전체를 얇은 오러로 감싸거나? 그럼 한 번은 아슬아슬하게 버틸 것 같은데··· 혹시 형상 스킬이랑 겹쳐서 발동이 되려나?'

이런저런 수를 생각하며 발을 움직이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깥도 칙칙하니 어두컴컴한데 그보다 새까만 동굴 안.

동물이나 인간의 사체로 완전히 물이 썩어버린 연못이 있다. 새라고는 까마귀뿐이고 언데드가 마을 주민처럼 살고 있는 숲과 퍽이나 어울리는 웅덩이다.

차라락- 퐁!

사슬의 끝을 넣어 대략적인 깊이를 가늠해 본다. 제법 깊이가 있어 한숨이 나온다.

'아··진짜 더러운 일은 그만해야 하는데.'

매번 생각하면서도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입수를 준비하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언제쯤 풀리는 걸까. 이제 기다리는 여자가 있으니 세척 물품을 챙겨왔다는 정도에서 좀 풀렸나?

첨벙!

알몸이 되어 더럽다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물에 몸을 던지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딱딱한 바닥까지 빠르게 헤엄쳐 손을 짚은 뒤 바로 옆 어설프게 뚫려있는 구멍을 힘으로 비집고 들어가 헤엄친다.

"푸하-! 퉤!"

쭉 뚫려있는 통로를 지나 수면으로 오르니 내가 서 있던 동굴과는 완전히 다른 위치. 더러운 물에서 빠르게 나와 찝찝한 마음에 침을 한 번 뱉어냈다.

콸콸콸.

인벤토리에서 성수를 섞은 물통을 꺼내 얼굴과 머리를 간단히 씻어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게임에서 본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에는 녹슨 쇠판들을 쌓고 겹쳐 억지로 막아둔 통로가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경비병 흉내를 내고 있는 좀비가 둘.

좀비들이 창이랍시고 긴 나무를 들고 있는데 다 썩어 버려서 어린아이 하나 못 죽일 것 같다.

'···옷을 입을 필요는 없겠지?'

덜렁거리는 양물에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쫀쫀한 속옷만 입고 맨발로 돌바닥을 걸었다.

워해머를 한 손에 들고 다가가니 좀비들은 특유의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폼으로 들고 있던 창은 내던지고 양손을 앞으로 내민 저돌적인 자세.

그어어-! 구억-!

"고생했다. 이제 자라."

빠박!

두 개의 타격음이 터지며 좀비의 머리통이 벽면을 질척하게 적셨다. 둔기에 끈적하게 묻은 썩은 피를 털어내고 빈손을 뻗어 녹이 가득한 쇠 판때기를 잡았다.

뜨드드득!!

억지로 벽에 끼워둔 쇠가 비명을 지르며 뜯겨 나온다.

사람이 지나갈만한 틈을 만들어 몸을 밀어 넣으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뻥 뚫려있는 거대한 공동이 나를 맞이해준다.

"오!"

조금 아래. 칙칙한 녹색 강이 흐르는 마을 비스무리 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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