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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93화 (93/250)

Chapter 93 - 한 명의 기사이지만 한 명의 여자이기도 하다. -1-

"언젠가 저희가 같이 오빠의 밤을 책임져야 할 텐데 그것도 사이가 좋은 게 중요하겠죠?"

리케라고 부끄러움이 없는 게 아니다. 그래도 마음을 먹은 건 에클레어를 찾아갈 때부터였기에 이미 결심은 되어있었다.

자신보다 명확하게 좋은 리액션과 큰 부끄러움을 느끼는 누군가 존재한다면 그 부담은 확연히 내려가는 법.

에클레어와 함께라면 무리 없이 가능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아직 이 언니는 경험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언질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 같이?"

말을 듣고 이해하는 순간 고장 난 마도구 같이 삐걱대는 에클레어의 손을 만져주며 진정시킨다.

"미안해요 언니···이제 첫날을 보냈는데 혹독한 말이죠? 걱정 마세요. 당장에는 계획이 없으니."

"그래도···그건··으으··!"

당장 어제까지 경험이 없던 처녀였기에 나오는 반응일까. 실로 귀여운 반응이라 오빠가 언니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는 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칼 같은 일 처리로 유명한 제국의 5기사인데. 막상 오빠와 연관되니 그녀도 대쪽같이 거절은 못 한다.

"이대로 한 명이 하루를 차지한다면 결국 이때까지와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을까요? 한 명이 지쳐서 쓰러지면 오빠는 또 애매한 상태에서 잠들고···."

하다 지쳐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눈을 뜬 에클레어이기에 로만의 만족감과 연관 지으면 반박할 말이 없었다.

"생··각은···해보겠··다."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일이 있고 잘못이 있다면 기사이자 단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과부하가 걸린 에클레어의 머리에서 정해져있는 메커니즘이 억지로 돌아가며 답을 출력해냈다.

"와아! 오빠도 기뻐하겠네요. 말은 안 해도 분명 엄청 기대하고 있을걸요?"

"···그런가. 하아··정말."

에클레어는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드는 자신에게 신기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건 결정됐으니···다시 오빠와의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볼까요."

*****

리케만이 아니라 로만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로만이 주위에 알리지 않고 네마 나타스의 지부를 궤멸시키고 다녔다는 것까지.

'트리스탄 공작령인 코븐의 사건도 로만이 해결했다니···요즘 일을 보면 수도라고 안심할 수는 없겠어··.'

교단이 아직도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공이 이 집 마당에 있다.

제국민들에게 애국심을 함양 시키기 위한 영웅의 무용담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듣고 있으면 이 둘의 만남은 실로 필연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오빠가 당장에 나서서 가문을 정리해 줄 수단이 있다고 했지만. 제 손으로 끝을 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고집으로 그걸 거부했어요. 그건 오빠에게도 언니에게도 정말 죄송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 지어야 멈춰있던 여러 가지를 움직일 수 있다. 그때가 되어야 로만과 에클레어의 관계도 구두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형태로 확실한 진전이 된다.

에클레어도 로만과 하루빨리 공인된 관계를 만들고 싶지만. 리케가 인연이 이어지며 첫 번째로 약조한 것들을 어기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복수가 끝난 뒤에 리케가 처음으로 가져갈 것들이 부러운 게 사실이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도 저도 아니게 행동하다 로만에게 우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형태로 이어지는 것도 절대 불가능했을지도.

"내가 엮이기도 전에 둘이서 한 약조로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나도 당장에 아··아, 아이가 생겨서는 곤란하다. 아직 모든 걸 내던지고 물러나기엔···시간이 필요하니 걱정 마라."

앞으로 이 소녀가 해내야 할 일들은.

쉽지 않다를 넘어 일개 생도에게는 수십 년이 주어져도 불가능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그녀라면 왠지 말도 안 되는 빠른 시일 내에 해낼 것 같았다.

"언니가 그렇게 빈말이라도 해주니 제 마음도 편해지네요. 현재 목표는 아카데미 졸업 전까지 모든 일을 끝내는 거랍니다."

자만도 오만도 느껴지지 않는다. 높낮이 없는 어조에 에클레어는 감탄했다.

"···대단하군. 로만 이외에도 경험할 대련 상대가 필요하다면, 시간이 있을 때 도와주겠다."

이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잠재력이 순수하게 궁금하면서도.

하루라도 빠르게 리케가 목표를 이루는 게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건···정말 큰 도움이 되겠네요. 전 클로에를 만나는 것도 좋아하니 저택에 자주 불러주세요."

클로에가 기뻐할 생각에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에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와 동시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로만과의 관계를 주위에 말하지 않았다면···클로에와 엘렉트라 영애도 모른다는 게 당연하겠지?"

"맞아요. 아무래도 교관과 생도의 관계인 점도 있고···남자 생도 하나가 어쩌다 알고는 있지만,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에클레어는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경우의 수를 나열하며 고민했다.

제국의 5기사와 백금의 모험가가 교제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난다면. 파급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 리케의 생각대로 누군가 눈치챈다면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 잡음이 거슬리는 건 사실이었다.

정치적인 목적도 없고 그저 개인의 감정만으로 교제하는 관계이다 보니. 입방아에 오르거나 부외자들의 참견을 받기도 싫다.

"내 입장도 리케의 일이 끝나고 공표해도 상관없지만. 클로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벌써 털어놓아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또 무언가 숨기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

"클로에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말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들킨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실질적으로 시끄러운 걸 피하는 의미가 크니."

"으으음···! 고맙다. 돌아가면 미루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겠어."

큰 결정을 한 에클레어를 보며 리케 또한 클로에를 떠올리며 물었다.

"언니. 제가 최근 정세는 관심이 없어서 까막눈인데···저야 가문과 무관하다 해도···차후에 드리트나 백작가문에서 이 사실을 알면 시끄럽지 않겠어요?"

리케의 말에 팔짱을 낀 에클레어는 잠시 생각을 하다 어림도 없다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의도한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 가문에서 나를 거스를 수 있는 인원은 누구도 없다···그게 설령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로만이 리케라 하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납득이 간다. 리케라는 소녀와 앉아서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클로에의 옆에 저런 비범한 친구가 있다면 그것도 클로에의 인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동생에게 털어놓아야 할 사항들을 생각하며 클로에가 좋아할 디저트를 사들고 저택으로 귀환했다.

문을 여는 순간 사용인 보다 먼저 나와있는 클로에가 보인다. 아까 창문에서 본 순간 뛰어내려 온 건지 행동이 재빨랐다.

"언니··! 오셨어요! 리케양은 일이 있다고 일찍 떠났고 세리아양은 바로 방금 돌아갔는데··!"

"내 타이밍이 안 좋았구나··· 집 주인이 자리를 비우다니. 다음에 또 초청해서 인사를 해야겠어."

다시 부르자는 말에 클로에는 정말 기뻐 보였다. 자기 의견도 피력하지 못했던 동생이 이리 다가오는 게 매번 뜨거운 감격으로 다가온다.

한 손에 들고 있던 디저트를 사용인에게 건네고 준비를 부탁한다.

"클로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 있다 서재로 와주면 고맙겠구나."

자신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클로에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전이라면 부정적인 결과를 먼저 떠올리고 지레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뒷골목에서 로만을 만난 그날을 기점으로 정신은 수렁에서 벗어났다.

똑- 똑- 똑-

-클로에 드리트나 입니다.

"들어와라."

서재의 문이 열리고 디저트가 담긴 그릇을 직접 들고 클로에가 들어온다.

"앉아라."

"··네!"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는 걸까. 살짝 긴장한 얼굴인 클로에는 맞은편에 앉아 허리를 쭉- 펴고 있었다.

"클로에. 편하게 있어도 된다. 친우들과 하루는 잘 보냈는지 듣고 싶구나."

"··무,무척 재밌었어요! 언니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 계속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제서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클로에는 물결치던 입술을 살짝 열어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이어갔다.

대단할 것 없는. 엘렉트라 영애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문이나 이야기들이 대다수였다.

'엘렉트라 영애의 언니가 모험가라···.'

영세한 귀족 가문에서 모험가를 지향하는 인물이 나오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님에도. 그 이야기에서 순간 로만이 떠올라 반응할 뻔했다.

한창 흥이 올라 카나리아처럼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생을 흐뭇하게 보고 있으니 클로에는 순간 너무 신이 났다 생각했는지 얼굴을 화악 붉혔다.

그걸 보며 에클레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즐거워 보여 무엇보다 안심했다."

"헤헤··다음에는 언니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바, 바쁘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그러도록 할까. 흐음- 음···."

막상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온몸이 근질근질 해진다. 쉽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생겨났다.

"언니··?"

그런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 클로에를 보며 에클레어는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ㅡ

로만에게 받았던 브로치를 깔끔하게 포장해둔 상자. 그걸 상에 올려두고 마음을 다잡은 에클레어는 눈으로 닫혀있는 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클로에. 두서가 많이 없는 이야기다만. 이렇게 오늘 서재에 부른 이유는 동생에게만 알리고 싶은 사실들이 있어서다."

"···네. 말씀하세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클로에를 보며 로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얼굴에 열이 확 오르기 시작했다.

"대단한건 아니니. 너무 놀라지는 말거라···그···교, 교제하는 남성이···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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