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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25년차 모험가는 아카데미 교관이 되었다-88화 (88/250)

Chapter 88 - 암묵적 허락

"앉으세요."

이건 절대 농담이 아니구나. 에클레어는 리케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자리에 착석했다.

"기사님 성교육을 받으신 적이 없나요?"

"아니···기본적인 상식은 숙지하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얼굴로 일단은 대답을 뱉는다. 이런 주제로 타인과 대화하는 건 그녀에게 살아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가득한 기사단의 단장을 담당하는 이상 음담패설 정도야 심심찮게 들은 적 있지만 직접 연관되니 심력 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제 말은 그 교육의 연장선이라 생각해 주세요. 검술도 그렇지만 교본 밖의 세계가 더욱 넓지 않나요? 개개인에 따라 세부적인 건 모두 다르고···이건 전투로 보자면 제 경험에 의거한 대처법과 약점을 공유하는 감각이에요."

검술이라 하니 또 납득이 되는 의식의 흐름. 그럼에도 에클레어는 경험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으음···."

"제가 지금 생각하는 시간은···다음날 점심 정도까지 비워드릴 생각이에요. 그 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키스만 하시려고요? 몸이 달아올라서 죽을걸요?"

"주, 죽어?!"

에클레어의 반응에 조금 난감한 표정이 된 리케는 로만의 습관을 따라 하듯 턱을 긁었다.

"으음- 이걸 어디서부터···."

"미, 미안하군. 이런 쪽은 기초교육 외에 공부한 적이 없어 젬병이라."

얼굴을 넘어 전신이 붉어진 에클레어의 목소리.

리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에클레어의 옆자리에 앉았다.

"···제가 조금 성급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경험은 오빠밖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텐데 조바심에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도 문제겠죠."

"후우··ㅡ 필시 내가 이상한거겠지. 대다수가 가지는 관심사에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내 실수···이 나이까지 검만 휘두르는 외골수로 살았으니 내 무지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갸름한 턱 선을 톡톡 두들기던 리케는 주제와 맞지 않는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식을 바꿔볼까요? 아무래도 직접적인 묘사는 자극적이기도 하고 처음이라면 오빠의 리드가 제 사견보다 정확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대화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죠."

아까보다는 나아진 낯빛으로 에클레어는 긍정을 표했다.

"나도 아예 모르는 건 곤란하다 인지하고 있으니···따르는 게 좋겠지. 방향을 바꾸자는 건 무슨 소리지?"

무감했던 리케의 목소리에 온기가 실려 에클레어의 귀를 간지럽혔다.

"기사님. 저는 인간이란 생물은 예외 없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요. 이걸 대처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겠지만."

뻔하지만 심장을 관통하는 이야기였다.

클로에와 관계만 가까워지면 세상 무엇도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얼마나 지났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끙끙 앓고 있으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관계가 발전하고. 분위기를 봐서 키스를 한다면 로맨틱한 그날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기념일이 되겠죠."

"···."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저와는 달리 기사님은 그걸로 만족하실지 몰라요. 사람은 모두 다르니. 하지만 오빠는 만족할까요?"

"그건···."

"기사님이 꿈꾸는 상황과 이상적인 스킨십 타이밍이 있다면 죄송한 말씀이 되겠지만. 전 무엇보다도 오빠의 만족이 최우선이에요. 저희가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같은 남자의 연인이 된다 해도 그 우선순위는 죽어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우물쭈물하며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던 에클레어의 움직임이 멈췄다. 리케의 이야기를 듣고 속뜻을 이해한 에클레어의 눈에 선명한 빛이 돌아왔다.

"정말···강인한 마음가짐이군. 그래서 신용이 가는 이야기다. 여자들의 돈독한 사이보다 단단한 건 일원화 된 목표겠지. 나라고···이기적인 마음으로 혼자서 만족하겠다느니 그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다."

묘한 호승심을 불태우는 에클레어를 보며 리케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에클레어가 연상임에도 순수하게 저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장담하는데 오빠는 마음을 받아도 기사님에게 잠자리를 밀어붙이거나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괜히 무리하실 필요도 없답니다.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오붓한 시간을 지내신다면 오빠의 쌓인 욕구는 제가 받아내면 되니까요."

"···."

침묵을 지키며 애꿎은 찻잔을 죽어라 노려보는 에클레어를 두고 리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기 전에 클로에도 잠시 만나야겠네요. 인사도 하고 자리까지 만들어야 하니···."

"···자리?"

"기사님이 '승부'를 보시려면 제가 집을 하루 비워야 하잖아요? 그날 세리아도 불러서 클로에와 저택에서 하루 지내도 될까요?"

승부라는 단어에 에클레어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건 클로에도 원하는 것 같으니···내 쪽에서 부탁하지. 저택은 편한 대로 사용해라."

"아! 그리고 저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조금만 기다려라. 저택에 마차가 있으니 말해두겠다."

에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을 나가려 하니 리케가 말 한마디로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아뇨. 기사님이 직접 데려다주세요."

"···왜지? 마차가 더 빠를 거다."

이해가 힘든 그녀의 묘한 억지에 에클레어가 의문을 품었다.

"오빠가 이 시간에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하니 기사님한테 직접 부탁하라 했거든요."

"···."

그녀의 실력을 대강 알고 있는 에클레어의 입장에서는 로만의 과보호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리고 들린 김에 오빠 얼굴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지금 자신이 스카디 영애에게 휘둘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저 말 하나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자신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수도 경비대의 순찰 군기도 불시에 점검을 해줘야겠지. 금방 준비할 테니 클로에와 나눌 이야기가 있다면 끝내고 정문으로 와라."

*****

주책맞은 과보호라며 한 소리 하는 에클레어를 저택까지 내가 다시 데려다주는 비효율적인 일이 있었지만.

진짜로 제국 5기사가 경호를 해주며 리케가 저택에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다.

최근 들어 집배원이 몇 번이고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리케는 새로운 일정이 생겼다며 나에게 알려왔다.

"3명이서?"

"맞아! 세리아랑 나랑 클로에랑."

"에클레어가 허락했고?"

"오히려 클로에를 위해서 부탁한다 했는데?"

과연! 그것 하나만으로 납득했다.

아카데미 생도도 어찌 보면 학생이니 여학생들끼리 모인 파자마 파티 같은 그런 개념인가?

친구 집에서 모여 하루 놀고 온 다라···리케의 원만한 교우관계에 솔직히 감동했다.

··

··

날이 지나고.

깔끔하면서 편안한 차림으로 준비를 끝낸 리케는 세리아와 도중에 만나서 간다며 오늘은 같이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빠! 아~"

"응?"

리케가 무언가를 건네자 의문을 가지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굴러들어 오는 동글동글한 알약. 씁쓸하게 녹아드는 익숙한 맛.

매일 비타민 마냥 먹고 있는 살정제였다.

혹시 내가 까먹었을까 챙겨줬나 싶다가도. 오늘은 먹을 이유가 없어 의문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아침에 먹었는데? 그리고 내일 오는 거 아냐?"

"후후- 오빠는 머리가 좋으니 금방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거야."

쪽!

"다녀올게~"

뭐라 말이 길어지기 전에 리케는 내 볼을 부여잡더니 입을 맞추고 외출해버렸다.

'난 머리 안 좋은데···?'

입술에 남은 감각을 더듬으며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훈련이나 해야지."

오늘은 하루 종일 훈련만 할 거라 리케에게 말해뒀기에 점심까지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신체만을 사용해 무기들을 다루고.

점심은 가볍게 먹은 후 토납법을 이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니 창밖은 해가 떨어져 있었다.

"후우···."

머리칼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대충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리케는 잘 놀고 있으려나.'

땀에 절어버린 옷을 바구니에 넣어두고 샤워까지. 리케 없이 혼자 하는 샤워는 몇 분이면 끝난다.

머리에 있는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 있으니. 마당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갈무리 된 기세는 제국에서도 딱 하나뿐이다.

'···?'

급한 대로 반팔에 긴 바지를 주워 입으니 마침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끼익ㅡ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뭐야? 왜 여기 있어?"

리케가 하루 신세 진다며 놀러 간 저택의 주인. 에클레어 드리트나가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찾아왔다.

"···내 입장에선 거기 있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것도 맞긴 한데···."

이해 못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시선도 마주하지 못하는 그녀의 분위기에 내 머리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술이나 한잔하지. 할 이야기도 있고. 들어가도 되겠나?"

나는 리케가 떠나기 전에 했던 행동을 상기하며 에클레어를 집 안으로 들였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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