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6 - 일주일은 무슨 이틀입니다.
오늘은 리케가 실신하기 직전에서 정사가 끝이 났다. 그렇다고 사정 횟수가 적은 건 아니라.
시간을 길게 잡고 리케의 페이스에 맞춰서 일주일간 쌓인 정을 토해냈다.
내 입장에서 느긋하게 즐겨도 리케의 몸은 한계가 있다.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그녀는 먼 옛날에 의식이 날아가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굳건하게 서있는 물건을 입으로 한 번 더 빼낸 리케는 더 이상은 무리인지 수십 번의 절정으로 침대 위에 슬라임처럼 축 늘어졌다.
"우리 강아지~ 씻으러 가자~"
머리띠를 써도 리케는 고양이인척하는 강아지. 타인에겐 어떨지 몰라도 외견을 넘어 내게는 강아지로 보였다.
그대로 두면 의지와 관계없이 꿈나라로 여행을 떠날 리케를 안아들었다.
쏴아아아.
"흐으응ㅡ으응ㅡ"
따뜻한 물을 맞으며 꾸벅꾸벅 조는 리케의 머리를 꾹꾹 지압해 주니 기분이 좋은지 콧소리를 낸다.
샤워로 노곤해진 서로의 신체를 껴안고 침실에서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니.
먼저 일어난 리케가 품에 안겨서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오빠."
"응?"
손가락으로 내 볼을 콕콕 찔러오기에 그저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볼을 누르던 손가락은 스르륵 내려가 호흡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복근으로 향한다.
간질간질하게 움직이는 손길에 배에 힘이 들어갈 뻔했다.
"오빠에 대해서 들려오는 소문들이 있잖아? 처녀를 선호한다던가 메이드복을 좋아한다던가 일부다처제를 할 거라 했다던가."
모험가 길드의 선술집에서는 남자끼리 모이면 여자 이야기 혹은 당장 죽은 놈들 이야기가 아니면 주제가 없다.
건설적인 미래를 토론하면 미친놈이라는 취급 말고는 못 받는다.
성벽이나 취향 정도야 쿨하게 피력하는 게 기본. 전생에서 이룰 수 없었던 일부다처제에 대한 매력은 끌림이 있었으니 항상 뱉어왔다.
"그···렇지?"
이런 것으로 꼬투리를 잡으려는 리케가 아니기에 이 대화의 갈피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처녀를 찾는 건 오빠에게 불가항력이지. 거기에 메이드복도 입으면 좋아하고···일부다처제는?"
"흐음···하고 싶냐고 묻는 거야?"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맞아. 그냥 오빠 생각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래."
리케의 눈에서 스킬을 사용하는 낌새는 없지만 애초에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한다 해도 내가 찝찝해서 못 버틴다.
비가 오는 첫날에 허락했는데 숨길게 어디 있나. 생각하는 걸 시원하게 말했다.
"나는 하고는 싶은데 ㅡ."
텁!
뒤에 의견까지 붙이려 하니 리케가 뽀얀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그냥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그것만 '확실하게' 말해주면 충분해."
다시 손이 떨어졌다. 자유를 찾은 입을 바로 열지는 않았다.
"···리케도 이견 없이 허락할 만큼. 내가 책임을 지고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여자가 있으면 하고 싶어."
"책임···후훗- 오빠는 진짜 로맨티스트네. 그거면 충분해."
질문에 결과만을 원한 리케에게 모두 풀어내지 못했지만.
일부다처제를 원한다 해도 내가 상상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
귀족들이 일부다처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서로의 이득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거래에 가까운 행위.
시간을 들인 연애? 그런 진득함으로 하나하나 꼬아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득실을 보며 여자를 물건처럼 팔고 사들이는 느낌이 강하다.
저런 방법은 내가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여자나 컬렉션 모으듯 쌓을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집에 멀쩡히 있는 리케를 두고 다른 여자 쫓아다니면서 꼬시고 애정을 갈구하여 하나하나 챙겨나가는 과정은 상상이 불가하다.
양심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생각해서.
이상적인 상황은 내가 끌릴만한 여자가 자기 발로 오는 건데···평상시에는 리케와 항상 붙어있는데 그게 말이 되나?
'무슨 라노벨 주인공도 아니고···.'
전생의 가치관이 뇌 한편에 알을 박고 있는 내 머리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과만 보자면 하고 싶다는 건 맞네. 그럼 기사님은 어때?"
"기사님이라면···에클레어? 갑자기?"
"응! 재밌잖아. 상상만 해봐 ~ 상상만."
리케가 두 손으로 내 눈을 가린다.
방금 리케의 눈에서 안광이 감도는 걸 봤지만··· 나는 까라면 까는 남자.
나에게 사용하지 않겠다던 스킬을 그냥 마음껏 사용하라고 한 주둥이도 내 주둥이다.
'상상이 뭐 죄도 아니고···.'
내 친구 에클레어 드리트나.
아카라이트의 공략 불가 네임드 NPC.
위 한 줄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올곧고 악의에 물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존경스럽다.
그 아래에는 서툴고 누구보다 번뇌하며 동생의 행동이나 말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귀여움이 있다.
무뚝뚝한 에클레어가 교태스럽게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 매력의 가치는 환산이 불가능하겠지.
그런데 다 떠나서.
'···걔를 어떻게 꼬셔?'
여기서 상상이 가로막힌다. 상상에서조차 그녀가 남자에게 넘어간다는 그림이 연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반쯤 억지로 개척한 친구라는 위치도 솔직히 기적이 아닌가 싶다.
"음~ 알았어. 이제 끝!"
눈을 뜨니 쿡쿡 웃고 있는 리케가 보인다.
한창때의 소녀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더니. 내 여자가 재밌으면 된 거지···.
잠이 물러나니 느껴지는 허기짐에 리케의 허리를 조물조물 거리며 물었다.
"조금 있다 빵이나 사러 갈까?"
*****
업무를 보고한 에클레어는 황제가 그렇게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건 처음 봤다.
그만큼 속이 시원한지 제국의 지배자라는 근엄함을 모두 집어던지고 체통을 잊은 채 큰 소리로 웃더라.
웃다가 지친 지배자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만연해있다.
당장에 논공행상을 논할 사항은 아니었기에 형식적인 치하를 받은 에클레어는 그대로 저택에 돌아왔다.
"언니! 오셨어요?"
"클로에··."
저택의 문을 여는 순간 들려오는 클로에의 밝은 목소리. 복잡하게 엉켜있던 정신이 느슨하게 풀리며 환기된다.
자리를 비웠던 사이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사소한 잡담을 섞으며 저택을 거닌다.
"일주일이나 나갔다 왔는데 내일 또 출근해··?"
말을 편하게 뱉었다가 주위에 사용인이 있는지 눈을 휙휙 돌리는 클로에.
때로는 경어 때로는 예전과 같이 느슨하고 친근한 어투를 섞어서 사용하는 동생을 보며 에클레어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제국에는 언제나 손이 부족하니."
"그렇구나···."
긴 시간 꿈꿔왔던 상황에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 동생과의 관계는 자신이 평생 꿈꿔온 것.
하지만 인간이란 어찌 이리 탐욕스러운 생물이란 말인가.
이 이상의 행복을 바랄 일이 없다 생각했는데 자신은 지금 또 다른 행복을 바라고 있다.
ㅡ
다음 날 아침.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집무실에 앉은 에클레어의 시선은 서류로 향하지 않았다.
머리에 들어찬 생각이 많으니 퇴근이 상당히 늦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흐음···."
그녀의 손에는 잉크가 묻은 펜이 아니라 로만이 선물해 준 말랑말랑한 금속이 자리했다.
겨우 일주일? 이제 날이 지났으니 일주일도 아니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촉박함이 있으니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똑- 똑-
노크 소리에 금속을 감추고 펜을 쥐었다.
"들어와라."
"우리 단장님 ~ 이번에 고생하셨다면서요?"
반쯤 둥실둥실 떠서 들어오는 여성.
림노로 다녀온 일주일은 외부에 장기 휴가라고 알렸으나. 사건이 종결된 지금은 내부 사정을 아는 인원들이 제법 늘었다.
"···나는 고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서 마법은 사용 금지다."
"치- 진짜 재미없어."
또각.
공중에 떠있던 그녀가 살포시 내려왔다.
"잡담을 하러 온 거라면 돌아가라. 지금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다."
"아아~ 그렇게 말하면 제가 매일 노는 사람 같잖아요. 저도 일 때문에 온 거거든요?"
"업무··? 거짓말은 아니겠지?"
에클레어가 손에 잡고 있던 펜을 통 안에 넣었다.
사실상 업무로 인해 그녀가 집무실에 찾아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로바로~ 제국의 국력을 키우는 업무!"
그녀는 마법사 다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번에 그 로··뭐더라? 백금 모험가가 대단했다면서요? 폐하가 그렇게 사람을 칭찬하는 건 처음 봤다고요."
"··대단한 인물인 건 맞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로만이 인정을 받았다는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미미하게 차오르는 불안감에 에클레어는 그녀를 노려봤다.
"저희 가문에 배다른 동생이지만 - 귀여운 아이가 하나 있거든요."
"···."
"얼굴은 볼만한데 마법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
뒤에 붙을 말. 그 예상만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마침 그 모험가의 소문을 듣자 하니 딱 들어맞는 것 같아서요! 첩으로라도 넣고 싶은데···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내가··?"
"정보원들 말로는··· 단장님이랑 그 모험가랑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마법사 가문에서 보증하는 순결한 처녀에 교육도 잘 시켜놨으니 다루기도 편하다고 전해주세요~"
기회가 되면 가볍게 물어봐 달라고.
매번 그러하듯 그녀는 자신이 할 말만 남겨두고 휘리릭 사라졌다.
"···."
딸깍-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에클레어는 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다.
만약 이 권유를 내가 전달해서 로만이 거절하지 않고 받는다면? 영문도 모르고 팔려나간 영애는 로만의 품에서 끝없는 사랑을 받으며 살 것이다.
교섭을 목적으로 물건처럼 떠넘겨진 여자라도 그는 마구잡이로 대하지 않겠지.
'나는 친구로서 축, 축하를···.'
빠드드득-!
그녀의 손에서 가루가 된 펜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 도저히 안되겠다. 이제 겨우 이틀인데? 이걸 견디고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영애의 허락을 받고 바라던 대로 선술집에서 로만과 친구 사이로 술을 마시면?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로만을 보고···그 특별한 감정을 담아내는 눈과 목소리를 듣고 지금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넘길 수 있을까?
"···읏!!"
분명 림노에서는 문제없이 괜찮았는데. 이제는 생각만으로 오장 육부가 뒤틀린다.
상상만으로 시려오는 감정을 참느라 꽉 물고 있던 입술에서 옅은 피 맛이 돌았다.
드륵ㅡ
에클레어는 손등으로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고 서랍에 넣어뒀던 펜과 편지지를 꺼내들었다.